추석 연휴, 가벼운 마음으로 대림미술관을 찾았다가 '설마, 설마, 설마.....저 혼잡스러운 줄이 '코코 카피탄?' 했는데 그랬다. 티케팅 하기까지 대기 몇 번째인지 알려주는 시스템이라 전화번호를 등록하니, 허거걱....말도 안된다. 티케팅하는데, 대기번호가 무려 세 자리 수이다. 세자리수!!! 대기시간 60분 예상이라고 했지만 실로 90분을 기다렸다.....대기하느라 힘을 다 빼고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 관람할 시간 촉박하느니 다음을 기약하며 무겁게 발걸음을 돌렸다.
티케팅 하기까지 내 앞 대기자만 세자릿수 .....혹시나 그런 재앙이 또 있을까 싶어 대림미술관 안내 번호로 십수차례 전화를 걸어도 통화는 번번히 실패. 그래, 설마  또 세자릿수겠어? 가보자. 그래서 또 대림미술관을 찾았으나...오호, 통재라.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역시 대기 50분!!!!!!티케팅 하는 데만 대기 50분!!!!!!
되레 늦은 오후로 갈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듯 하다. 도대체 왜 코코 카피탄이 이처럼 주목받고 입소문 타고 있는걸까? 도대체 어떤 전시이길래, 이처럼 긴 대기시간을 감수하고도 사람들이 몰릴까? 더욱 궁금해진다.


대기 50분 시간 때우며 미술관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한적할 때 찾았다면 몇시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도록 아기자기한 공간인 듯 하다. 카페(티켓 소지자에게는 아메리카노 한정 1000원 할인)도 있고, 예쁜 정원과 잉어도 있다. 기다림에 지쳐 역으로 아트숍부터 방문. 관람의 끝은 미니어처화된 예술작품의 구매와 소비? 암튼 구매충동을 눌러본다. 



오랜 기다림 끝, 드디어 티켓 발권 받아 전시관으로 고고!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의 전시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Coco Capitán: Is It Tomorrow Yet?)>은 1992년생 작가의 사진을 위시해 페인팅, 핸드라이팅, 영상, 설치 등 총 150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공간은 2층을 시작으로 대림미술관의 3층과 4층까지 각각 독립된 세션으로 하여 구성하였다. 
2층에서는  패션 화보, 페인팅, 설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전시회에 실제 오기 전부터 노출이 많이 되었던 친숙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이 노란 구찌(Gucci) 티셔츠 사진은  예술가와 기업 간의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준다고 한다.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을 찍어내야하는 사업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굳이 그으려 하지 않는다. 납작해진 코카콜라 캔을 소비문화를 경멸하거나 배척하려는 의도에서만 활용한 것은 않닌 듯 하다. 


앤디 워홀 스타일을 패러디(?)한 작품도 있는데, 코코 카피탄은 자신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점만 빼고는 앤디워홀과 닮았다는 문구도 같이 전시한다.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작품처럼 코코 카피탄은 아디아스 운동화를 복제시켜 놓았다. 관람객 중에는 '나 나이키 신고 여기서 사진 찍어야해?'하면서 머쓱해하는 이도 있었는데, 브랜드 개별 네임이 중요한 것이 아닌 듯. 브랜드의 복제품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소비사회에 이미 최적화된 우리들. 


이처럼 많은 관람객의 행렬은 2층, 3층, 4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관람객은 모바일 투어를 하는 듯. 코코 카피탄의 작업 노트를 들으며 감상한다면 작품이 새롭게 다가올 듯 하다. 하지만, 일단 너무 많은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사색하며 작품과 인사하기란 어려운 노릇. 그냥 줄 행렬의 이동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될까 사진도 아껴 찍어가며.....


 전시회 관람 전에 미리 다녀간 이들의 리뷰를 여러편 읽었는데, DEATH가 화두로 자주 등장하는 3층 전시관에서 감동을 많이들 받은 듯 하다. '이야. 이 젊은 친구는 "살고 싶어, 죽기 싫어"라고 낙서만 하여도 작품이 되는구나.....멋지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할 시기의 젊음, 사라질 구두광과 흰색 바지의 날렵한 선......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사진은, 거의 'anorexic body'로 오인받을 만큼 앙상한 팔을 쭉 뻗어댄 'hold onto life'였다. 말괄량이 삐삐가 아침 풍욕하러 나온 사진처럼 느껴졌기에......



실로 전시관 3층에서는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타이틀 아래, 코코 카피탄의 창의적 혼자 놀기의 씬들이 펼쳐진다. 물론 관람객이건, 카메라 렌즈건 코코 카피탄은 자신을 관찰하는 눈을 의식하기에 진정한 '혼자 놀기'라 할 수는 없지만......역시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난다. 한국 사회의 1996년생 중, 이처럼 무슨 짓을 하고 놀거나 만들거나 말해도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해주는 예술계 스타가 누구던가? 비록 두발규제는 옛 뉴스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표준화'의 각종 잔소리세트 속에서 자라나는 친구들이 만약 코코 카피탄의 제멋대로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을 드러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하긴, 이런 질문 역시 판에 박힌 생각같다.  



4층 전시장은 이색적인 공간이다. 대형 핸드라이팅과 실물크기 싱크로나이즈 선수들 사진이 양쪽 벽을 마주하고 서있는 구조의 널찍한 전시공간이다. 

위 사진은 대림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빌어온 것이고, 실제 4층은 북적북적. 아래와 같다.



사실, 리뷰를 쓸 만큼 몰입해서 전시를 즐기지 못했다. 인산인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동선도 확보가 안되고 작품과의 교감이 이뤄질 시간도 부족했다. 왜 2018년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코코 카피탄 열풍이 불 수 있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처럼 많은 젊은이(2번 방문하여 총 2시간 이상 waiting하며 관찰한 결과, 관객 8~90%는 20대로 추정됨)가 코코 카피탄의 세계를 궁금해할까? 나는 이 젊은 예술가보다는, 이런 팬덤 현상이 유독 한국만의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왜 젊은이들이 코코 카피탄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아직 전시 기간에 여유가 있으니, 평일 오전에 혼자 다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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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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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2014년부터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새롭게 운용하는 프로그램이라 한다. 그 중추에 장한업 교수가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20세기 말 이후 본격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민족중심주의와 차별의 언어가 성찰 없이 통용됨을 안타까워 하며 『차별의 언어』를 썼다. 문제의식은 명료하고 분석은 냉철하지만, 독자는 마치 대중강연의 앞자리에서 저자 직강을 듣는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한 문체를 구사하였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헉, 내 이야기구나'하는 뜨끔뜨끔한 반성과 함께 저자의 주장에 자연스럽게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르다"와 "틀리다"  
장한업 교수는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다르다"를 "틀리다"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그 익숙한 어법이 누군가에는 차별의 칼날이 되는데 인식하지 못할 뿐. 사실 내가 속한 집단에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바깥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에는 부정적 인식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런 차별적 인식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한업 교수가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단일민족신화'라는 특수한 색채가 더해진다. 유독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만큼이나, '우리'라는 울타리에 쉽게 누구(들)을 집어 넣지 못한다. 울타리 밖 대상에는 가혹하리만큼 차별적이라는 것이 장한업 교수의 관찰이다. 

*  *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서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그리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수집한 이야기와 일상에서의 면밀한 관찰로 충분한 사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거의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는 '쌀국수'란 명칭도 실은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현지에서 쓰는 'pho'대신 한국인에게 친숙한 용어로 부르는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스파게티는 '이태리 밀국수'라고 불러야겠지 않느냐는 반문에 뜨끔하지 않을 한국인들 얼마나 있을까? 그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국민' 혹은 '가족'에의 비유어가 실은 민족중심주의를 반영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단순히 저자 독단의 해석이 아니다. 실로 한국의 민족중심주의는 자칫 제노포비아나 국수주의로 비춰질 수 있을 지경인지 2007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을 수정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한업 교수는 이런 차별의 언어가 언젠가는 한국인을 겨냥한 칼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에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차별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갈만큼 고치기 어려운 습관, 하물며 개인이 아닌 사회 집단에 굳은 살처럼 박혀 있는 언어 습관인데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있으랴. 그래도 장한업 교수의 말을 그대로 빌어오자면, "우리의 편협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호문화적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233쪽)"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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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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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범죄학(cultural criminology)이라! 일찍이 CSI시리즈나 Criminal Mind 시즌 13까지 완파한 범죄물 광팬으로서도 상당히 생소하다.  이 분과의 전문가 역시 당연히 금시초문일 수 밖에. 제프 페럴(Jeff Ferrell)이라는 분은 문화 범죄학, 사회학, 인류학을 넘나드는 학자인 동시에 그래피티 애호가란다. 공식적 이력서 외에 한 줄을 더 추가하라면 "쓰레기 수집 전문가"라고 꼭 써넣어야겠다. 이 분이 쓴 책제목이 바로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Empire of Scrounge:  Inside the Urban Underground of Dumpster Diving, Trash Picking, and Street Scavenging』이다.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제목에 끌려 뽑아든 책이 이런 보물일 줄이야.  엄청 빠져 읽었다. 


오해는 마시라. 너무 재밌어서, 인문학이라면 절반은 팔리는 시대에 인문학 '농축서'여서도 아니다. 스릴러로 치면, 마치 이쯤해서 한 방 먹여줄 만 한데 하면서 스릴을 조마조마 기대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도라는 뜻이다. 작가가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고향인 텍사스 주 포스워스에서 8개월간 쓰레기 더미를 뒤진 이야기라는데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 있으리. 한국 사회 그 누가, 이런 과감한 인생 역전의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 남이 신다 버린 고린내 나는 신발을 말려 신고, 커다란 쓰레기 통 안에 일단 방뇨부터 하고 본격 작업(쓰레기 더미 뒤지기와 건질 거리 건지기)을 무려 8개월간 생업 삼을 수 있는 대학교수가 한국에 있겠는가? 

34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80퍼센트는 제프 페럴이 쓰레기를 수집하며 기록한 일기를 편집하고 에피소드를 나열한 내용이다. 꽤 많은 논문과 책을 펴낸 학자이기에, 자신의 경험과 수집한 자료에 대한 본격적 분석은 어느 시점에 등장할까, 분석의 요지는 무엇일까. 기대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 그래서 스릴러의 '한방'을 기대했다고 표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한방'은 아주 유연한 방식으로 부드럽게 와서 지난 줄도 모르겠더라.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본격적 사회과학서라기보다 장르를 한정지을 수 없는 에세이라고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는 오히려 제프 페럴이 굳이 방법론을 목차 속에 설계해 집어 넣고 설명하거나 분석틀을 딱딱하게 언급하는 아카데미아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이처럼 그래피티 그리듯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옮기고 의미있는 주장을 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느껴진다.


이쯤해서 저자의 '한방'을 살짝 소개해본다. 실제 대화해본 적은 물론 없지만 제프 페럴이라는 학자는 천상 아나키스트적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같다. '모난 돌 정맞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괴짜" 딱지를 떼레야 뗄 수 없었을 것 같은. 그마나 크록스 신발에 등산조끼 입고도 대학강단에서 군소리 안듣고 강의할 수 있는 (일부) 미국 사회에서의 교수였으니 인정받았을 듯. 


『경계의 민족지 Ethnography at the Edge』의 저자이기도 한 이 분은, 연구자이자 쓰레기 수집가로서의 이중적 정체성을 고민할 여지도 없이 흠뻑 빠져들어 쓰레기를 수집한다. 만나는 이들과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인터뷰를 할 의도도 아예 없다. 그냥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사는 듯 하다. 즉, 오만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쓰레기 수집가의 삶을 묘사하고 분석하지 않았다. 정치인이나 도시 행정가들이 '해충,' 혹은 '괴물'로 제거하려드는 도시 쓰레기 수집인들의 삶을 긍정하고 그들이 이루는 지하경제의 미학을 예찬하고, 역으로 도시(특히 미국사회)의 속 빈 강정같은 소비문화를 비난한다. 



도시와 거리의 길모퉁이의 쓰레기통, 쓰레기더미, 쓰레기봉투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서 나는 확실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끝없이 확산되는 미국 소비문화, 나날이 벌어지는 빈부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과 그 결과로서의 낭비가 그것이다. (278쪽)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주체적 생산: “물질문화의 가장자리에서, 소비와 도시의 삶 사이에서, 법과 도덕의 복잡한 혼돈 속에서 길거리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중략)…소비 지향 도시의 집중화된 불평등 한가운데서 도시의 탐색자들은 날마다 남아도는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pp.297-301)”


소비자는 어제의 신제품을 오늘 쓰레기통과 길거리로 집어던지기 바쁘고, 거리의 탐색자들은 쓰레기더미를 분류하고 솎아내서 찾아낸 것을 재활용한다. 결국 양자 모두 상품과 쓰레기, 공공과 개인, 소유와 버림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틀렸음을 증명해내는 셈이다. 이 과정에는 소위 불법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비공식적 교환과 재활용을 통해 도시는 쪼개지지 않을 수 있었고, 사회적 계급이나 경제적 특권에 의한 도시의 분리를 막을 수 있었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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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게 마련"이라는 삶의 경험을 농축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나무와 풀"에서 덤으로 기운을 더 얻는 이도 있겠죠. 제가 그렇습니다. 아는 건 없어도, 제대로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관계를 맺지도 못하면서 나무를 보면 사시사철 참 좋습니다. 기운을 충전받기에 고마움을 늘 느낍니다. 1년에 365일 생일이라면 365일 수목원 나들이 생일선물을 해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조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나무 구경을 제대로 하러 작정하고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주목받는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으로요. 


다양한 경로로 입장권 할인 받거나, 무인발권 시스템으로 대기 없이 빠르게 티케팅할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발길가는 대로 돌아다닐 작정이므로 사실 지도를 미리 머릿속에 채워두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5시간 쯤 확보하고 올 경우라면, 지도를 꼼꼼 살피겠습니다만......


천리포수목원은 그 설립자, 민병갈님을 알고 보면 더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는 이 분은 미군이라는 신분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으셨다지요. 하지만 (만약 전생이 있다면) 마치 전생에 한국인이었듯 한국의 많은 부분이 친숙하고 못내 좋아서, 3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하여 귀화하셨습니다. 그 사이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풀과 나무로 채워나가셨지요. 수목원 내, 민병갈 전시관에는 누군지 참 재치 넘치게 이 분을 일컬어 "오타꾸의 궁극을 보여준 식물계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연세가 드실 수록, 되레 그 어려운 식물 학명도 척척 외우시고 수목에 대한 앎과 사랑이 깊어지셨기에.....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참아냈던 효자이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한국 땅의 나무와 풀들을 공부하시고 아끼셨다지요. 이 분의 생전 쓰셨던 집무실입니다. 한눈에 수목원의 주요 전경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암투병으로 몸이 쇠약해지셨을 때도 이 수목원으로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셨답니다. 


발길 가는 대로 탐색해서 이하 사진에 두서가 없습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예사로운 생명이 하나 없습니다. 만지고 싶어 자꾸 발길이 느려집니다.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는 유언대로 목련나무 아래 잠드셨다네요. 그래서인지 수목원에서 목련나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오호! 그런데, 이 가을에 목련 꽃을  발견합니다. 봄에 피는 꽃의 대명사 목련이 아니던가요?
이게 왠일? 하며 수목원을 나오다보니, 수목원 입구에 이런 mission이 있었네요. 의도치 않게 미션 완료한셈이네요. 인증 샷은 아래에! 


혼자 왔더라면, 점심 식사로는 생수만 챙기고 5시간이고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한그루 참 개성이 강한데 서로 어우러지네요. 원산지를 보면 민병갈 박사가 세계 각지에서16,000여종의 식물을 수집하고 키워왔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민병갈 박사의 집무실과 그 밖 풍경입니다. 심지어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탁트인 서해바다와 함께 낭새섬도 볼 수 있어요. 하루에 두번 길이 열려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지요. 



이미 9월 숙소 예약이 꽉차서 포기해야했던 수목원 내 한옥 별채. 그 중에서도 이 집이 단연 으뜸입니다. 메롱나무집. 봄에 오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히 힘을 얻어 왔으니, 이제 어떻게 이 힘을 흘려보낼까요. 보내고 새로 받고.....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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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라의 손(Tara's Great Hands)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 전시 일정은 행여 놓칠세라 일부러챙겨둔다. (기획자와 행사 관계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점점 아이 눈높이의 생기 넘치는 체험전에서 어른 눈높이의 세련된 갤러리풍으로 변질되가는 듯 하지만) 챙겨 찾는 보람을 느낀다. 


이번 "타라의 손 (Tara's Great Hands)는 평소 눈여겨 보았(지만 워낙 고가이기에 집안으로 들이지 못했던) 보림 출판사 그림책 원본을 볼 수 있을 듯 해서 찾았다. 더 솔직해지자면, "나무"를 보고 싶어서 찾았다. 이유는 탐색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늘 나무향에서 힘을 얻으면서도 초록이 무섭다. 인류 멸망을 다룬 어떤 SF 중에서도 식물이 인류의 정신을 조종해서 자멸하게 한다는 SF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믿는 이유겠지만. "타라의 손" 전시실을 들어서자 마자, 기대했던 대로 "나무"랑 만난다. 

전시 제목 "타라의 손"은 인도의 남쪽 첸나이 지역에 기반을 둔 출판사 ‘타라북스’에서 따왔을 듯. ‘타라 Tara’가 '나무'일거라 생각했는데, 인도 말로 ‘별’이라고 한다. 또한 짐작했던 대로 '타라의 손'은 한 점 한 점, 한 면 한 면, 사람의 애정과 끈기를 담아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이 출판사의 특징을 나타내는 듯 하다. 전시회 휘리릭 둘러보고 나가는 관객이 많던데, 5F 구석에 마련된 영상실에서는 타라북스의 최근 대표작인 "CREATION"의 제작과정 영상을 보여주는 데 꼭 감상, 추천한다. 팀웤이 단단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일이 실크스크린 작업에, 한장 한장 그림책 낱장을 모으고 실로 꿰어 책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18000여권의 제작을 위해 이 팀은 8개월 꼬박 일했다고 한다. 

보림 출판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나무들의 밤" 책을 좋아해서, 기대는 했지만 흐뭇하리만큼 잘 소개되어 있었다. 단 '옥의 티(?)'가 있다면, 기념품으로 파는 에코백의 가격이 무려 무려 80000원이었다는. 일본에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그 반값이었다면 업어 왔을 텐데 과도히 비싸다! 

어린이를 위한 실크스크린 및 파지 책, 체험 코너 


 인도 각 지역에서 전해지던 신화, 설화 등의 직접 전역에서 수집하고, 인도 토착 문화의 숨결을 살리려 노력해온 타라북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그림책을  만나게 해준 보림 출판사와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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