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 정신분석학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본 성
이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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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정신분석학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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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의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은 그 방대한 참고도서를 쌓아놓기만 해도 "얕지 않을" 듯하다. '정신분석학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본 성'이라는 부제에 부합하는 참고문헌 목록은 "다양성"의 향연이다.  본문에서 소개한 지그문트 프로이드, 조르주 바타유, 미셸 푸코 등 8인의 학자 대표작은 물론이거니와 김형경의 <사람, 장소, 환대>(2015)이라는 최신 인류학서에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1925)까지 250여권의 참고서문헌을 나열하기에 무지한 독자인 나는 살짝 주눅부터 들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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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블러거 (http://blog.ohmynews.com/specialin/)이자  "다중지성의 정원" 등에서 인문학 강의를 해온 저자 이인은 (다른 작가들이 ̄불리 다가가지 못했던) "성性을 맛깔나게 요리하고자 오랫동안 갈고 닦은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중략)… 사랑을 잘 알고 잘 나누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우리는 좀 더 진실하고 건강한 어른이 될 필요가 있지요. "(pp. 9 -10)라며 성을 요리한 인문요리사로서의 목적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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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의 "갈고 닦은 칼"이란 이인 작가의 독서력, 공부내공을 비유한 표현일텐데 실로 그는 밖으로 끌어내는 젊음의 유혹을 이기고 참 진득하게도 책을 후벼판 듯 하다. "뜨거운 / 생의 배꼽 위에서/ 복상사/ 하는 것만이 / 내 꿈의/ 전부"라는 김언희의 시(詩)를 위시하여 문학, 인지과학, 여성학, 사회학, 진화심리학, 철학, 생물학, 행동경제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성"이라는 화두를 통해 사유한다. 살짝 아쉬운 점은 서구의 지성사에 주로 기대다 보니, 동양 (동/서양 이분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권에서 성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 함구한다.  참고 문헌에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이 기재되어 있지만 본문의 인용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만 못찾았나.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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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트를 여러 장 채울 정도로 열심히 메모하며 읽었는데, 워낙 방대한 이론과 학자들이 소개되는지라 그 방대함을 꿰뚫는 한 줄을 기억하지 못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 줄을 못찾으니, "21세기의 지성인이라면 이 정도의 성 지식은 있어야 한다"라는 출판사 측의 홍보 문구 앞에서 다시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 한 줄을 시원하게 뽑아내지 못한데 대한 변명을 하자면, 2장 빌헬름 라이히의 <오르가즘의 기능>이나 4장 베티 도슨의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개인의 성해방을 주장하는 내용이라면 7장 제프리 밀러의 <연애>나 8장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종 species'으로서의 인간의 성에 접근하는 등 챕터마다 관점과 초점의 차이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초보 독자의 얕은 시각에서 <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의 핵심을 뽑아보자면, 인간의 다양성과 본연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탈억압의 시선이었다. 이인 작가를 대면해보지도 그의 다른 글을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글로 유추했을 때) 그는  권위에 저항적이고 다양성의 무지개를 존중하는 자유인같다.  "우리 몸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두 등급으로 나뉘지 않으며,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정상의 무지개" (p. 221)라는 진화 생물학자 조안 러프가든 (Joan Roughgarden)주장을 빌어온 것도 그의 지향성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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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미셸 푸코를 빌어와 성이 어떻게 억압의 도구로 기능하게되었고 그 작동 방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언급한다. 담론으로서의 성과 행위로서의 성 모두 음지에서 이뤄질 때 이것이 오히려 지배를 용이하게 해준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미국은 밤이면 온갖 환락이 밀물처럼 들어차지만 낮에는 몸의 쾌락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종교 문화가 개펄처럼 드러나는 사회" (p.232) 라고 그 성의 은폐와 위선을 비꼬는데 그렇다면 그가 본 2017년의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복상사를 갈구해도 복상사 하기 어려운 위선사회일까? 획일적인 정상성을 서로 강요하고 서로 감시하고 침묵하는 사회일까? 정작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해 이인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열된 많은 외국 학자들의 이론과 사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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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부엌 -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 라이프
김미수 지음 / 콤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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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부엌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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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과 "빠이~~~!" 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지만, 다음 순간 플라스틱 변기에 앉아있는 자신을 보고 선언 철회했더라 하는 농담같은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수세식 변기만큼이나  "빠이~~~!"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필수품이 냉장고 아닐까? 텃밭에서 방금 따온 신선한 야채로 요리해 먹는 일이 없는 현대인들 대부분에게 냉장고는 든든한 적금이다. 게을러도, 요리를 포기해도 배 고프지 않게 해줄, 그 냉장고를 포기했다고? 게다가 냉장고 없는 자급자족 라이프를 부부 동의하게 합심해서 살고 있다고? 보통 부부라면, 냉장고가 없어지면 매일 외식하거나 다툴텐데?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른 부부이길래? 헬렌 니어링같은 부부 정말 있어? 하는 호기심이 책 제목만 보아도 스물스물 올라온다.

제목, <생태부엌: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 라이프>. 한국인 아내 김미수와 독일인 남편 다니엘이 그 '어느 부부'이다.   2001년 독일에서 처음 만났다는 그 둘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삶의 동반자일 것이다. 물론 부부가 냉장고 없이 살기에 처음부터 저항없이 매끄럽게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제안했고 아내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냉장고 없는 삶'에 서서히 적응한 아내에게 냉장고는 '자리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30)'로 전락했다니 이 부부가 얼마나 자급자족하는 생태 부엌 만들기에 성공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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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부엌>은 요리책, 소박하지만 심지가 굳은 아낙의 일기, 생태적 삶을 촉구하는 성명서……. 어떻게든 읽힐 수 있겠다. 그만큼 저자 김미수가 격을 따지거나 정형성에 꽉 매인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일지도. 이렇게 내공이 높으면서 잘난 척 한 번 하지않고, 가르쳐 들려 하거나 비교하면서 생태적 삶을 이야기하는 젊은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신선했다. 이런 보물같은 부부를 발굴해낸 방송 작가나, 출판사 관계자의 발빠름도 신기했지만, 이런 보물같은 사람들이 큰 내공만큼이나 깊은 존재감을 발산하며 목소리를 내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절로 존경심이 이는 만큼, 기꺼이 그들의 목소리와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다. 

B U T 

애당초 시도도 못하겠다. 김미수와 다니엘 부부 만큼으로는. 이들은 철저한 비건(Vegan)이면서, 세수물도 아끼고 뒷일처리한 물도 아껴서 퇴비로 쓸 정도로 환경 사랑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제 몸 아끼고 제 가족 건강하려 '자연을 닮은 삶'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브랜드로서의 유기농을 소비하며 우월감을 갖는 부류와도 전혀 다르다. 흙을 사랑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다보니 삶의 태도가 자연히 부엌으로 연결된 부부이다. 환경 운동가 사티쉬 쿠마르의 말을 빌어, "소박한 삶, 생태적인 삶을 살려면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는 김미수 부부의 식탁은 싱그럽다. 야생초와 활련화처럼 식용 가능한 꽃, 통곡물의 식감이 살아 있는 식탁이다.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보기만 해도 오감이 충족되는 듯 하다. 저자는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다른 삶을 꿈꾸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게라도 울림을 주기를. 야생초의 쓰임처럼 미처 발견치 못하고 숨어 있는 우리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의 의식이 좀 더 깨이고 성장해 우리 몸도 마음도 이 지구도 좀 더 맑고 깨끗해지기를 (247)" 바라는 마음으로 <생태부엌>을 썼다고 했다. 가벼운 요리책으로 생각하고 집어 들었다가, <생태부엌>에서 얻은 감동과 충격이 너무 커서 소화시키려면 조금 걸리겠다. 김미수와 다니엘 부부처럼 의식이 깨일려면, 당장 무심코 플라스틱 용기에 '테이크 아웃 take out'하는 커피도 삼가고, 하루 10분씩은 족히 할 샤워부터 줄여야 할 것. 갈 길이 멀다. 갈 길을 보게라도 해준 김미수, 다니엘 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멀리 한국에서 독일까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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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2 : 한산 45전 무패의 전쟁 신화 이순신 2
문성호 지음, 제장명 감수, YJ코믹스 / 다락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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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전 무패의 전쟁신화 이순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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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전 무패의 전쟁 신화 이순신> 1권과 2권이 4월 28일에 출간되었습니다. 4월 28일이란 D데이의 의미를 아시나요? 1554년 이 날이 바로 성웅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이랍니다. 한국인이 존경을 가장 많이 받는, 품격 넘치는 리더쉽의 귀감인 이순신. 워낙 민족의 영웅이다보니 다양한 버전으로 그 전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아이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만화가 가장 접근하기 쉽겠지요? 다락원 출판사에서는 총 4권으로 이순신의 주요 전쟁을 조망하는 만화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덕분에  어린이 독자는 역사책에서 명칭만 친숙했을 '옥포해전,'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을 생생한 역사 만화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중 2권 <한산>을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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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성호는 한산 대첩과 연관한 조선과 일본의 실존인물을 중심으로, '대길'과 '정은'이라는 상상의 인물들을 더했습니다. 자칫 전쟁의 기승전결과 승패에 집중될 수 있는 스토리가, 이 두 인물 덕분에 현재감과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이 둘은 모두 조선인 부모를 두었으나 일본군의 협박 때문에 조선에서 정탐꾼, 첩보원으로 활동하는 쓴 운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이야기가 주로 바다 위에서 전쟁 형태로 펼쳐진다면 이 두 젊은이의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의 삶과 일본의 정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해주며 마치 사극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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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작가는 2000년,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한일합동 만화 공모전"에서 준대상에 입상하였고, <뱁티스트> 등 창작품을 해외로 수출했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완성도가 높다 생각하며 읽었던 <플루타르크 영웅전> (비룡소) 시리즈도 문성호 작가 작품이라는군요. 문 작가는 두 뼘 남짓한 작은 종이 위에 한산대첩의 열기와 규모를 놀라우리만치 생생히 담아 냈습니다. 마치 전개가 빠른 영화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림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진짜 이순신 장군이 진두지휘하는 전쟁의 현장에 나가 있는듯, 긴박하고도 결연한 전장의 느낌이 살아 있습니다. 특히 '학의진'처럼 이름만 들어보았던 전법들이, 만화를 통해 기승전결 과정으로 보니 이제서야 머릿 속에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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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가 얕아서 잘 모르겠지만, <45전 무패의 전쟁 신화 2- 한산>편에서 작가는 이순신을 비롯 조선군은 대의와 애국심 때문에 싸우는 반면 와키자카 야스하루(1554~1626) 등 일본 장수는 "돈과 명예"를 바래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네요. 또한 조선의 포로와 민간인을 잔혹하게 참수하고 시신을 조롱하는 일본군의 잔혹성도  소름끼치게 그려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왜 임진왜란 당시의 우리 조상뿐 아니라 2017년의 한국 국민에게 이순신이 이토록 절실히 감사할 존재이고 추앙받아 마땅한 성웅인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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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 덕분에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륙병진 작전을 좌절시켰고, 조선은 전라도와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연해 지역을 일본군의 마수에서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준비하는 장수의 치밀함과 대범함, 리더쉽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가슴에 뭉클함을 안겨줍니다. 비록 한산대첩에서 조선 수군의 사망자는 19명이라고 공식 기록되어 있는 듯 하나, 기록 이면에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대의를 위해 헌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뭉클해집니다. 문성호 작가는 전쟁터에서 싸우느라 손바닥이 피가 날 지경으로 헐은 격군[ ]의 고초를 책 속에서 잠깐이라도 보여줍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폐선이 되다시피한 배들을 밤새 수리해서 출전시켜 이순신 장군을 도운 이름모를 우리 조상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45전 무패의 전쟁 신화 - 이순신2 한산>편에는 부록으로 "이순신과 함께한 사람들"이라는 코너를 두어, 지휘관과 참모를 자세히 소개해줍니다. 한사람의 영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전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해준 많은 이들을 잊지 않게 해주어 고마운 페이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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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진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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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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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1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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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로 보면 말 사료 상인에 한 표"라는 표현이라든지, 사전에도 안나오는 유행어 "엽색"이 등장하는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서울대)의 문장이 경쾌하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애당초 몇 년 동안 천천히 퇴고하며 만든 정통 역사책이 아니라 네이버팟캐스트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에 가깝다. "온라인의 글을 짧고 강렬하고 섹시해야 통한다 (325)"는 조언에 따라 주경철 교수가 "나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만큼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는 스포츠신문 기사만큼이나 흥미롭다. 동시에 읽는 중간중간,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아하! 유럽사가 이렇게 재미있었어? 좀 제대로 공부해볼걸. 이제라도 알아야겠다."는 자성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공부자극' 역사책이다. 주경철 교수가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서의 세계사에 무지할뿐더러, 그 "사고가 '해저 2만리 수준'으로 떨어(324)"진 수준에 있음을 절감한다고 한다. 알아야 보인다고, 세계사 특히 유럽사를 젊은세대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세계사'가 '문과'계 '필수'과목이던 시절에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교과서를 샅샅이 읽었어도 기억에 남는 건 '장미전쟁,' '헨리8세' 정도의 단어 나열 수준이었다.  하지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 단어들 사이에 멋진 '짜잔'하고 시냅스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암튼 정말 재밌었다. 총 3권 시리즈로 기획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의 첫번째 권 부제는 "중세에서 근대를 본 사람들"이다. 책 표지에 멋들어진 활자체로 이름 새겨진 8인의 인물 - 잔 다르크, 부르고뉴 공작들, 카를 5세, 헨리 8세, 콜럼버스, 코르테스와 말린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틴 루터 -를 중심으로 근대를 향한 유럽의 물결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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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인물은 잔 다르크로(Jeanne d’Arc)서 "역사상 가장 신비한 인물 중 하나 (17)"라는 표현과 "성녀인가 마녀인가"라는 부제에 인물의 의미가 압축되는 듯 하다.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하기 전, 무려 2년 반이나 긴 재판을 받았기에 그녀에 대한 자료가 방대한 재판기록으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유랑자들을 배려한 '선정적' 글쓰기를 염두한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의 남장(男裝)에 대한 설로서 "비정상 DNA"까지 거론해준다. 또한 잔 다르크의 측근이었던 젊은 귀족 '질 드 레 Gilles de Rais'가 소년 200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소금간도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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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받고, 국왕에게서 황금 백합이 그려진 문장(紋章)을 하사받았던 소녀가 어떻게 종국은 이단취급받고 화형되었을까?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애국자,' '신비주의자' 등 그 모두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51)"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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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부르고뉴 공작들" 편에서는 필리프 2세, 장 1세, 샤를 1세, 필리프 3세가 언급되는데 흥미롭게도 주경철 교수는 이들의 겹치는 이름을 변별해줄 별칭을 써준다. 앞에서부터 각가 대담공, 용맹공, 담대공, 선량공과 매칭하면 된다. 중세판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베고 베이는 정치판 싸움'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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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카를 5세"를 다룬 장에서도, 나처럼 가쉽성 기사 좋아하는 얕은 독자는 카를 5세가 근친가족력으로 인한 주걱턱('일명 '합스부르크 턱') 에, 통풍으로 말년까지 고생하였다더라 식의 내용에 귀를 가장 많이 팔랑거린다. 비록 21세기 현대인의 눈에 카를의 외모는 비호감이나, 그는 왕관만 17개를 가진 권력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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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헨리 8세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푸른 수염의 거인"을 연상시키는 엽기왕의 전형같이 느껴졌다. 친형 아서(1486~1502)가 불과 결혼 5개월만에 사망하면서 6세 연상의 형수뿐 아니라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왕권을 확립하고 "기껏해야 양이나 쳐서 양모를 대륙에 팔던 가난한 국가" (169)였던 "잉글랜드를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인물(169)"이었지만, 헨리 8세는 재임기간 동안 무려 985명을 공식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총 6명의 아내들이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사망 died,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생존 survived'했으니 가히 '푸른수염'으로 불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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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의 인물은 서양사에서 가장 많이 이름 오르내리는 인물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콜롬버스'를 집중해서 다룬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얼굴 초상은 사실 상상화이며, 콜롬버스는 독학으로 지리와 천문학을 배운자로서 사실 말년에는 신비주의 점성술가와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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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는 신대륙을 상징하는 '코르테스'와 구대륙을 상징하는 '말린체'를 중심으로 멕시코가 탄생하기까지 그 이전 조우의 역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나를 묘사한다. 특히, 코르테스의 통역사이자 정부였던 '말린체'가 한 동안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 취급을 받가가 '멕시코 혁명 (1910~1917)으로 민족주의 정신이 고취되면서 혁명정부가 멕시코 건국의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적 아이콘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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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살핀 7장에서는 인류사를 통털어 최고의 천재라 할 레오나르도를 향한 주경철 교수의 애정(?)이 느껴지기도한다. 레오나르도를 두고, "파우스트의 이탈리아 형제"라고도 한다지만, 사실 그는 "인간의 경험이 가장 천재적으로 꽃핀 시대, 르네상스가 낳은 '경험의 아들(283)'"이라고 평한다. 7장을 읽다보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별칭으로는 다 담아낼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과 시공간을 넘나들고 싶어하는 초월적 인간의 욕구가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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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마틴 루터편. 교과서에서 '면죄부'로 배웠던 그것의 옳은 번역은 '면벌부'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배웠다. 벼락이 신의 계시라 생각하고 수사가 되기를 맹세한 루터가 변호사로서의 보장된 출세길을 버리고 수사되기로 마음 먹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600여년도 더 전 유럽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가. 출세길을 포기한 아들이 못마땅해 악담을 퍼붓고 속상해했다는 루터의 아버지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루터는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서 종교 개혁의 물꼬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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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권에서는 '근대의 빛과 그림자’, 3권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조주한 사람들’을 다룬다고 한다. 두 권 모두 2017년에 출간완료된다니 목 빠지게 기다려야겠다.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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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그녀의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다이어리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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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미국 3대 트레일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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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까막눈인지라 원제 의 뜻을 모르겠으나 한국어판 제목,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자꾸 곱씹게 된다. "생이 보일 때까지" 걷겠다면, 저자 크리스티네 튀르미 (Christine Thurmer)는 아직도 그 "生"이란 걸 찾고 있는 걸까? 1967년생, 한국 나이로 51세인 이 분은 여전히 고국인 독일에 집도 두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걷고, 사이클 타고, 걷고 있으니까. 여전히 생을 찾고 있나보다. 그녀의 개인 블로그( http://christine-on-big-trip.blogspot.kr/ )의 자기 소개란에서 " I still have not had enough."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아직 덜 충분하다는 뜻일까?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 나서도, 난 아직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본인이 카페인 중독이 아니라 식수조차 귀한 산 속에서 다행이라던 그녀는 그냥 "걷기 중독"일까?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도 도통 모르겠어서, 그게 참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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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생각하면 크리스티네 튀르미야 말로 걷기 자체가 목적인 도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사로운 '무엇'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저 낯선 곳을 걷는 자체가 즐거운 사람. 일반 하이커들과 차원이 다른 사람. 그녀는 트리플 크라운 (멕시코와 캐너다 국경 사이의 PCT 4277km,  CDT (4900km), 미국 동부의 AT (3508km)를 완주한 자에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가 수여함)을 받는 다거나, 걸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지병을 고치고 건강해지겠다거나, 정신적 성숙을 도모하겠다거나,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자유를 느끼겠다거나 하는 구체의 목적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맘이 내키면 행동으로 옮겨 바로 걷는다. "오로지 걷는 것이 목적"이 진정한 걷기의 달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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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cm가 넘고, 족히 80kg은 넘어 보이는 거구에 평소 운동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30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필 받아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총 4277km에 이르는 PCT 길을 종주한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잡 인터뷰를 하는데 사장단에게 질문을 받는다. "PCT, 그게 뭡니까?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는 질문에 그녀가 받아 친다.
"빌헬름 사장님, 진작 자아를 찾지 못한 사람은 그런 트레일을 절대 완주할 수 없습니다. 다섯 달 동안 혼자서 야생 속을 걸으려면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죠.(235)" 이 문장이 암시하듯이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는 한국인 독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여행을 그리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착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왜 그런 착각과 기대를 했을까를 역으로 내 자신을 정신분석했으니까. 쓰루하이커(through-hiker) 사이에서 GT (German Tourist)로 통하는 그녀는 독일인 독신 여성의 시각에서 미국 문화와 다른 국적의 쓰루하이커들을 관찰한다. 하이킹에서조차 1등을 하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에게서는 성과 제일주의를 읽어낸다. 겉으로는 자유를 표방하지만 동성애자들의 무지개 상징에 긴장하고 온천 앞에서 나체되기를 꺼리는 미국인의 이중성을 비웃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를 찾는다거나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땅이 보이니까 걷는다. 걸으면서 도시에서의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듯, 트레일 도중에 만난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고 그들 세계의 보이지 않는 규칙과 관계맺음의 논리를 보여준다. 공간이 대자연으로 바뀌었을 뿐, <생이 보일때까지 걷기>는 등장 인물 수십 명 나오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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