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높새바람 35
오시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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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오시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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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은 작가에게 미안해지는 동시에 감탄하였다. <내가 너에게>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 난 후.'아이들 책이려니......'하며 별 기대 없이 집어 들었다가, 내 안의 작은 분노와 의협심(?), 혼란스러움 등이 뒤범벅된 불편한 마음으로 몰입해 읽은 <내가 너에게>. 수록된 단편 대부분이 어두운 내용이거나 상처입은 영혼들을 등장시켰다. 간간이 '윗집에 사는 승우는 손이 따뜻한 아이'처럼 희망의 편린도 보이고 환타지의 외양을 입긴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해졌다. '도대체 오시은이라는 (젊다고 느껴지는) 작가는 산전수전 다 겪었나? 교육계에 몸담고 있어서 학교폭력, 가정폭력을 가까이서 목도했나? 아니면 본인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있는가?' <내가 너에게>를 다 읽어갈 때쯤에는 거의 확신했다. 오시은 작가의 경험 세계가 그러하리라고. 그러니 이처럼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면서도 구체적인 동화를 쓸 수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틀렸다. 작가의 집필의도는 더욱 숭고했다.  

작가는 왕따를 당했다는 여중생의 죽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바로 꺼지는 데 충격을 받았나 보다. 사람들이 외면하지만 그런 일은 날마다 되풀이된다는 인식을 했다 한다.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어와 보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정말 사라지는 걸까?'하는. 그건 단순한 착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도 한번 일어났던 일은 절대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중략)....어째서 진실이 괴담의 옷을 입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사람들이 그 진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꾹꾹 눌러 놓은 진실은 용수철과 같아서 나중엔 더 높이 튀어 오른다.(pp. 109-110)" 그렇다. 작가는 사람들이 모르는 척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고발자를 자처하였다. 그래서 "여기 실린 글들을 쓰는 일이 고달팠음을 고백 (p.111)"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에 실린 6개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하고도 작가의 주제의식과 재능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작품은 표제작인 '내가 너에게'이다. 1인칭 시점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문장이 반복될수록, 화자가 망자(亡者)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다. 화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아이이자 왕따였다.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인 아이들의 악랄한 올가미에 걸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49재 날, 엄마가 안고 있는 영정에 담겨 학교를 찾은 아이의 영혼은 가해자인 아이에게 말한다. "너를 겁주려던 건 아니었어. 다만 사실을 밝히고 싶은 것뿐이었어. 엄마가 진짜 이야기를 모른 채 슬퍼하는 게 싫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답답한 아이로만 기억하는 것도 싫었어. 내가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죽으려 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싶었어.(p.21)" 소름이 돋을 만큼 안타깝고도 처절했다. 오시은 작가의 글이, 억울하게 생명줄을 놓게 된 이 땅의 많은 왕따 피해자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는, 이런 불편한 독백이 계속되지 않도록 오시은 작가는 조용히 각성을 촉구한다.

 

'내가 너에게' 외에도 '낯설고도 익숙한'이나 '숨바꼭질,' '그날의 오늘,' '문,' '헛것' 모두를 꿰뚫을 키워드는 바로 환상성이다. <내가 너에게>를 읽다 보면, 피범벅이 아니어도 불편하고 섬뜩해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소화시켜주는 유화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시은 작가가 추구하는 환상성이 아닌가 싶다. 불편한 진실의 고발자, 즉 글로 하는 사회운동가로서 <내가 너에게>를 집필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었을 오시은 작가가 다음번엔 좀 쉴 수 있도록 가벼운 작품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독자를 찾아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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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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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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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한 위인전>을 위시하여, 유명 인물들을 맛깔나게 버무려놓은 책들이 많이 나온 줄로 안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 역시 그처럼 가볍게 넘길 책인가 싶어 집어 들었는데, 생소한 베살리우스니 울스턴크래프트뿐 아니라 평소 더 알고 싶었던 이름들이 함께 올라 있다. 하인리히 슐리만,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등 소개된 인물의 전공과 저자 김경민의 전공분야가 겹친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제국주의와 고고학: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썼고, <네이버캐스트>의 '인물과 역사'에 글을 연재하던  재원이다. 스스로 말하길 "학계에 몸담고 있는 학생으로 '전공자들'을 위한 글만 썼던" 그에게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하기는 참신한 도전이었다.

 독자로서 고마워할 일인데, 을유문화사의 편집자가 김경민의 글재주, 정확히는 독특한 관점을 알아보았나보다. 편집자는 "(그 유명한) 인물이 왜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즉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집중적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김경민은 그 기획의도에 부응해 무려 열다섯 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저자는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도 "세상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든 인물들에 대해 빠르고 쉽게" 접하도록 글을 썼다한다. 성공이다. 충분히 흥미롭고, 기대 이상으로 자극적이다. 책을 덮고나서도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인물들이 머릿 속을 파고 들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라고 자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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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열다섯 명은 연대기 순으로 배열된 듯 하다. 르네상스기 비운의 천재라는 베살리우스를 필두로 마키아벨리, 로베스피에르,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베토벤, 찰스 다윈, 슐리만, 던컨, 샤넬, 애거사 크리스티, 파농, 마거릿 미드, 에드워드 사이드, 크레이그 벤터,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순서이다. 국적, 활동하던 시기나 활동 분야 등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우나 이들은 도전정신에 충만하고 행동력이 따라준 혁신가였다는 점에서는 한 우산을 나눠 쓸 수 있겠다. 추리소설, 현대무용, 고고학, 음악, 인류학, 역사학, 문화비평, 해부학, 유전공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인물을 선정한 저자의 매의 눈에 감탄한다. 그래도 굳이 딴지를 걸자면, 동양 출신의 인물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동양에도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보인 이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
전공 공부하며 박사 논문 쓰느라 바빠 무용이나 고전 음악, 해부학까지 탐색할 여력이 많지 않았을텐데 김경민이 쓴 글을 보면,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 썼다고는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인물의 핵심을 짚어 파고들어갔다는 인상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인 '생각의 단초'를 놓치지 않았기에,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다 읽고 나서도 개개의 인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보다는 굵은 흐름이 남는다. 어떤 이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고민하고 달려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상에 도움을 줄까? 주위 시선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끝까지 따를 수 있었던 그들은 어떤 정신력을 가졌을까? 대한민국 땅에서도 혁신적인 질문을 던지고, 과감히 행동하는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 어떤 풍토여야 그런 인물이 나올까? 등의 질문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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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열 다섯 명의 인물 중 애거사 크리스티, 더 정확히는 그녀의 첫 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나 매력적인 미남을 남편으로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유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머릿 속으로는 온갖 살인법과 범죄자 캐릭터를 구상했을 그녀를 상상하니 묘하게도 소름이 돋는다. 그 외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역작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프란츠 파농이 활자에 묻히지 않고 실제 해방운동가로서 뜨겁게 살았고 에드워드 사이드 역시 이스라엘 초소에 돌을 던졌다는 일화는 실천적 지식인상을 고민하게 해준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읽고나면, 고민하되 아집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움직일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인물들 뒤편으로,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는 저자 김경민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도, 역사 전문가로서 역사 문외한을 위해 이런 유익한 책을 많이 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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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
금태섭 지음 / 푸른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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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730일 정치 분투기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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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출판사 편집부에서 제목 한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저자 금태섭 변호사가 원래 마음에 두었던 제목을 출판사 측에서 살짝 비틀어 뽑았다는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호기심 끄는 제목을 모른 체 지나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건실하게 제 몫을 다하고, 여당을 아름답게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들은 많을 테니까. 

*

'이기는 야당'이란, 단순히 국회의원 의석수 경쟁이나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만을 말하지 않는다. 금태섭 변호사가 고심하며 제안한 "이기는 야당이 갖춰야 할 4가지 조건"은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 그야말로 농축액처럼 달이고 달인 문장으로 등장한다. 먼저 야당은 현 여당인 새누리당의 특징인 '일사불란함'이 없을지라도 야당 고유의 스타일인 '토론과 비판정신'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둘째, 야당은 남의 잘못만 비판하지 말고, 의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20대 위원장을 둔 청년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직업인으로서의 정치 정문가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번에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라는 변명은 더 이상 소통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정치는 개인이 경험쌓으러 드나드는 영역이 아니니까 말이다. 넷째, 영리한 충고를 받아들이며 몸을 사리기 보다는 결단하고 위험을 감수할 때 이기는 야당이 될 수 있다.

*

그렇다면 예비 독자들의 마음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가 어떻게 이런 초강수 훈수를 대한민국 야당에 둘 수 있느냐고? 금태섭은 그럴만하다! 또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일수로는 730일을, 정치최전선에서 대선, 단일화, 창당과 합당의 과정을 지켜보고 관여하며 일반 국민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많았으니까. 동시에 지난 2년 자신을 돌아보면서 "가장 고귀한 형태로서의 애국"이라는 비판을 던짐으로써 야당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고 싶었으니까.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의 곳곳에서, '바른정치'를 향한 금태섭의 열망과 야당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동시에 안철수 의원과 거리두기 위해 깔아놓은 포석을 발견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안철수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금태섭은 "나는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를 명확하게 해둔다. 애당초 정치에 뜻이 있어 찾아갔던 것은 조국 교수였고,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의 적극 영입 권유로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이 자세히 이어진다. "좌절과 환희의 롤러코스터"라니 "최고의 시절과 최악의 시절"이라는 소제목이 금태섭 변호사가 안철수 캠프에서 겪은 일을 압축하는 듯하다. 좋은 취지에서 참여했더라도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불거지고 소통부재로 인한 불쾌감까지 캠프에서 좌절을 많이 겪었나보다.

전체적으로 금태섭 변호사는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듯 하나, 그리 우호적인 코멘트를 하지는 않는다. 우선, 출마를 선언하기까지 좋은 말로는 고뇌의 시간, 나쁜 말로는 질질 끌었던 시간을 기술한다. 이어 단일화 협상에서의 고충과 예상 밖의 사퇴에서 금태섭 변호사가 느꼈던 실망감은 정점에 이른다. "적어도 지지자들에게 묻는 절차는 거쳤어야 하는데 (162쪽)" "안 후보의 갑자스러운 사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힘이 빠졌다 (163쪽)"고 말한다. 안철수 의원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금태섭 변호사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준다고 한다. 하나는 안 의원이 얼마나 규칙을 잘지키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살짝 비꼼의 의미도 내포하는 에피소드이다. 금태섭 변호사가 안 후보가 두 시간을 걸으며 이야기를 했는데, 금태섭 의원은 좁은 보행길을 둘이 나란히 걷다 보니 부득이하게 울퉁불퉁한 진흙 위를 걸느라 신발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안 후보가 전혀 보르더란 에피소드이다. 금태섭은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한히 함께 걷는에 옆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은 정말로 인상적" (211쪽)이라며 초강력 한 방을 날린다.


  금태섭 변호사의 책 읽기 취미와 뛰어난 글재주 덕분에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는 몹시도 매끈한 문체로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 비단 정치권에 이해관계를 둔 사람이 아니더라고, 한국 사회에서 뒷무대(back stage)에서 작용하는 생존 논리, 구역질나는 구태의연, 고질병의 환부에서 나는 역한 냄새가 궁금한 이들도 얻어갈 것이 많은 책이다. 금태섭 변호사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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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 - 잡동사니에서 탈출한 수집광들의 노하우
브렌다 에버디언.에릭 리들 지음, 신용우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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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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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정리 경험 46년 차 브렌다 에버디언 (Brenda Avadian)과 경력 37년 차인 에릭 리들 (Eric Riddle), 모두 83년의 정리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함께 쓴 책의 제목은 몹시 섹시하다. <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 처음북스 출판사에서 원제 (홈페이지: http://stuffology101.com) 를 재치있게 옮겨 주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잡동사니(STUFF)의 일차적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 물건 (20)"을 말한다. 물질적 잡동사니(다 읽지도 못할 텐데 사들인 책 무덤!), 정신적 잡동사니(감정, 후회, 걱정!), 디지털 잡동사니(일 년째 열어보지도 않은 이메일!), 시간의 잡동사니, 감각적 잡동사니(감각의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세분된다. 잡동사니(STUFF)를 달리 풀어 말하자면 "시작 (Start), 신회 (Trust), 이해 (Understand), 집중 (Focus), 마무리 (Finish)의 과정으로 분해된다(169쪽). 즉 잡동사니 정리의 핵심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삶과 함께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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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은 주제는 섹시할지 모르나, 문체만큼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현란하여 어지럽기까지 한다.  '해요'체와 '하다' 체를 넘나든다거나, 문장마다 줄 바꾸기를 하는 통에 독자 입장에서는 친절함을 느낄 여지가 없다. 신문기사 한 꼭지를 빌어오기도 하고, 온라인 상에 올린 글의 조각조각을 옮겨오기도 한다. 저자가 둘이다 보니, 주어도 자주 바뀐다. 게다가 저자들은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니 페이지 넘길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미국에서라면 독자는 99센트에 책을 살 수도 있고, 저자들에게 돈을 내고 정리 컨설팅을 받을 수도 있다. 3개월 동안 2주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클라이언트가 잡동사니를 알아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나 보다. 하지만 이 같은 옵션이 일본이나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을 듯하다. 다다미방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주거문화와 한국의 성냥갑 아파트 문화에서는 저자들이 강조하는, 트레일러며 당구대가 놓인 차고나 30년 전 교과서가 놓인 다락방을 정리할 필요가 거의 없을 듯 하다. 애당초 차고와 다락방 있는 저택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잡동사니 분류에서 문화적인 차이를 느낀다.

반면, 저자들이 제안하는 정리의 기술 중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항목은 "디지털 잡동사니 치우기"였다. 나야말로 책을 읽다 말고 메일함을 열어서  몇 년 묵힌 메일들을 지우고, 노트북 파일을 일일이 열어 부피를 줄여버렸을 정도였으니……. 저자들의 정리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할 수 있다. 강박적일 만큼 저장(compulsive hoarding)하지 않는다면 잡동사니에 치여 못 살 정도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 집에는 '읽으려고 모셔둔' 정기 간행물에 오래 묵은 청첩장과 보험 관련 서류들이 있을 것이다. 하루, 한 자리에서 다 치우려 조바심내지 말고 마라톤 하는 심정으로 치워 나가라는 것이 저자들의 충고이다. 새겨듣게 된다.
*
<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에서 이 두 가지 질문은 확실히 취하고 넘어가자! 첫 번째, 재난이 닥쳐 이 물건이 없어진다면 대신할 물건을 구하는 데 오래 걸릴까? 둘째, 잡동사니가 없어진다면, 그 공간이 어떤 느낌이 날까? 상상해보라. 홀쭉해진 공간, 가뿐해진 마음. 버린 만큼( 혹은 기부한 만큼) 삶이 가벼워진다.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할 여력이 생길 것이다.


<주변이 섹시해지는 정리의 감각>과 함께 소린 벨브스의  <공간의 위로 (SoulSpace)>와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도 함께 읽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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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생존 육아 - 스스로 하는 아이로 키우는
박란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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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생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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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아내감의 요건을 물었더니, "유모차 끌고 광화문에 나오는 아줌마 안 될 여자라면 합격"이라고 답하는 20대 대학생이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한동안 그 대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모차 부대"라며 동질적 집단으로 싸잡고, '내가 입 열면 토론, 그녀들이 입 열면 "질펀한 수다"'라고 폄하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존재이자, 무시해도 될 집단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 "유모차 부대"도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고, 발언력 있고, 학벌과 능력에서 뒤지지 않고, 한때는 명함이라는 사회적 인식표도 있었다고! 처음부터 "아줌마 부대"아니었다고!
*
단지, '엄마,' 그것도 '착하고 능력있는 엄마'로서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이후로 갈팡질팡할 뿐이라고. 재생산의 장에서 생산의 장으로 다시 나가고 싶지만, 유리 천장에 갇혔을 뿐이라고!
*
조선일보 박란희 기자도 그러했다!
서울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결혼할 때만 해도 내 미래의 모습, 롤 모델은 살아남은 여자 선배들이었다. 그들처럼 악착같이, 독종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15쪽)"는 그녀는 시댁과 친정 네트워크를 최대 활용하며 난이도 C등급의 육아만 하던 워커홀릭이었다. 거침없이 솔직한 그녀는, 워커홀릭 워킹맘 시절 자신이 전업주부들을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고백한다. '엄마 문화'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도, 기회도 없었던 그녀에게 전업주부들이 올인하는 브런치 모임은 낭비로 보였고, 온라인 쇼핑 중독은 한심함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혼의 위기가 와서 사표를 낸 후 전업주부가 된 그녀는 암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과정에 자신의 정체성 변화를 비유한다. 처음엔 '부정,' 그리고 '분노,' '타협,' '우울'을 거쳐서 '수용 단계에 이르렀노라고. 워커홀릭 워킹맘 때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이 비싼 그릇 사는 여자들이라고 욕을 했던"(36쪽) 저자는 15% 할인쿠폰을 프린트해서 블랙 프라이데이 새벽 5시에 '레녹스 버터플라이'를 산 극성 주부의 경계로 들어섰다. 
*
사실 '나, 한 때는 잘 나가던 여자였는 데 말야 ……'로 시작하는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의 사례는 숱하게 많다. '난 이렇게 엄마 노릇 했거든, 한 수 배워볼래?'하는 육아서도 시중에 넘쳐 난다.  이미 차고 넘치는데, 무슨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박란희 기자가 육아서를 썼을까? <워킹맘 생존육아>에 대한 출판사 측의 홍보 문구에 그 답이 있다. 그녀는, 사교육 1번지라는 목동에 사는 엄마이자 커리어 우먼이다. 그걸 내세운 육아서였던 것이다.  '목동 엄마들'은 어떻게 애 키우나, 어떻게 대학보내나를 궁금해하는 독자가 꽤나 많거든. 실제 <워킹맘 생존육아>에는, 저자의 '엄마 네트워크' 레이더에 포착된 다양한 엄마들의 실사례뿐 아니라 학원 고르는 정보, 영어공부 시키기, 심지어는 학급 임원 엄마(186쪽부터 188쪽, 무려 세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정리된 '목동에서 임원 엄마들의 한 학기 일정)의 일정까지 소개되어 있다.
*
<워킹맘 생존 육아>는 한 마디로, '일과 가정 사이'라는 딜레마를 극복하고에서 남 뒤지지 않게 잘 '생존한' 이야기이다. 활자로만 만났어도 그 활달함과 기자 특유의 부지런함이 팍팍 느껴지는 박란희 저자는 솔직하다. 감추거나 척하지 않는다. 전업주부 사회에서 통용되는 암묵의 규칙을 '기브 앤 테이크'라고 차갑게(혹은 현실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충실한 생존기법을 기술해주거나 '전업주부' 실패사례, '워킹맘' 실패사례 등을 풍부하게 들어줌으로써, 독자들 정신 차리게 한다. 다만, '조선일보 일간 섹션 편집장'이라는 직함이 빈번히 등장하는 만큼이나, 이에 상응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탐색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 많던 한국의 여성인재들이 안방 커텐 뒤로 사라져갔는지, 어떻게하면 박란희 저자처럼 성공적으로 다시 사회 무대에 데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5% 아쉬운 이유이다. 그녀에게 <타임푸어 (원제:overwhelm)>을 강력히 권해주고 싶다. 적어도 그녀가 담당한 섹션에 한정이겠지만 일욜 근무, 직장 문화에 변화를 가져온 박란희 기자의 생존전략! 화이팅! 작더라도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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