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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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아 보이는데 판매지수가 대단하다. 무려 6만점 대. 게다가 100자평이건 리뷰건, 호평 일색. 

소설 [페인트]를 만났다. 


기대가 컸고, 몇 가지 선입견이 있었다. 


  1. 첫째, (표지만 보고) 그래픽 노블인줄 알았다. 
  2. 둘째, (소설 도입부까지는) 근 미래, 저출산 한국 사회라는 구체적 배경 아래 인구의 정치, 재생산신기술 및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과 얽힌 사회문제를 비판하려는 목적성이 뚜렷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3. 셋째, (끝까지 다 읽으면서도) 작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아직 생성가족을 만들지 않은 비혼자에 양육 경험 없는 사람이라고 상상했다. 



촉도 없으면서 감 있는 척 했다. 셋 다, 그렇지 않았다. 


  1. 첫째, [페인트]는 그림 없는 소설이었다. 그것도 아주 참신한 소설. 
  2. 둘째, 물론 출생방식 및 양육 경험에서의 차이로 사람을 구별짓고 차별까지 하는 사회, 출산과 양육이라는 영역에 국가가 깊숙히 개입하고 통제하는 양상, 자본이 매개된 위선의 관계(정부보조금을 타기 위해서는 입양에 성공해야 한다. 따라서, 최대한 준비된 모범적인 부모의 모습을 연출해야한다) 등을 대놓고 비판한다. 하지만,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이 작가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부모-자식 관계, 생물학적 부모와 사회적 부모 사이의 우선성 문제, 양육과정에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인간적 성장일기를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3. 셋째, 놀랍게도 작가는 열두살 자녀를 둔 엄마이자 아내였다. 즉 최소한 3~40대 일 것으로 추정한다. 생성가족을 경험하지 않은 비혼자일 거라는 상상에 보기 좋게 콧잔등을 얻어 맞았다. 


 이희영 작가가 하루 다섯 시간 이상씩 키보드를 두드려 낳은 작품이 [페인트]라 한다. 작가는 회색 중에서도 검은색에 가까웠던 유년기 회색을 본인의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노력하고 있고, 마음이 아픈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썼다 했다. 자라지 못한 자기 안의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방식이 글쓰기라 했다. 가시돋힌, 냉소적인, 세상을 뚫어보는 애어른. 그 아이와 많이 놀아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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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7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전 페인트 현대판 피노키오 같다고 생각했어요

얄라알라 2021-02-19 22:13   좋아요 1 | URL
scott님께서 피노키오 언급하셔서 며칠 동안 짬짬 생각했어요^^ 작가님께서 scott님 피드백 들으면 기뻐하실 것 같아요. 저는 Janu301이 극도로 냉소적이고 소위 애어른인 점이 내내 맘에 걸리더라고요. 비워지고 틈새가 보이면서 오히려 예측도 못하게 크는 것이 어린이, 청년(?)일 텐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틈을 안 보이게 큰다는 게 쓸쓸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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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문학 아케데미로부터, 메일 수신 설정을 해두었는데 

"호락호락한 시 한편 보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알라딘 이웃분들이 시집을 열심히 읽으니, 그 리뷰라도 기웃거리지만 고백하자면 시를 천천히 음미할 준비가 덜 된 독자이다. 나는. 그런데 "호락호락한 시"가 재미있어서, 공유해본다. 


하하, 혼자 웃고 씁쓸해지고, 짠하다! 우리는 뭘로 꿰뚫어 보여주지? 호락호락하게 내 갈 곳은 어디메? 호락호락한 시 한편이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거구나! 


 gteddy 


소주 한 병이 공짜 임희구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호락호락하게     -    문학의 전당⟫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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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13 14: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갈가메시도 그랬어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어라고 ㅎㅎㅎ
우아 사진 진짜 전시감이네요 ㅎㅎㅎㅎ
먹자골목 근방에서

하나 2021-02-13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가자, 호락호락하게.” ㅋㅋㅋㅋㅋㅋ 아 좋네요. 모두 반대의 결심을 할 때, 기꺼이 호락호락해지기로 하는 마음이요.

얄라알라 2021-02-13 1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글쵸^^ ˝모질게˝ 끊어내다 보면 포기해야하거나 눌러야 하는게 굴비처럼.....그냥 호기롭게 퍼 마셔마셔, 하던대로! 이런 생각도 잠시 듭니다^^

cyrus 2021-02-13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금주를 했는데, 누군가가 술을 사준다면 저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ㅎㅎㅎ 물론, 너무 많이 마시지 않을 거예요. 건강을 생각해서 음주량을 줄이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저도 그 사람에게 술을 사줘야하기 때문이죠.. ^^;;

얄라알라 2021-02-13 18:46   좋아요 2 | URL
cyrus님의 ˝한동안˝이 과연 몇 달(?), 몇 년(?)인지 혼자 궁금해하며 ㅋ저라면 몇 주일 듯 ㅋ

그렇게 술이건, 밥이건, 커피랑 달코미건 좀 얻어 먹고 다시 사주고 했던 시절로 빨리 돌아가고 싶네요. 코로나 시대, 술 모임 가본적이 없어서 아득해요.

cyrus 2021-02-13 19:39   좋아요 2 | URL
코로나 때문에 술집에 갈 일이 없는데다가 집에만 있으니 어머니 눈치 보여서 혼술을 못해요.. ㅎㅎㅎ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주를 하게 됐어요.. ^^

감은빛 2021-02-13 2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이 가는 ˝호락호락한 시˝네요. ㅎㅎ
과연 공짜술을 누가 마다할 수 있을 것인가?

붕붕툐툐 2021-02-14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소주 사진 너무 영롱하네요~😍

바람돌이 2021-02-14 0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호락호락합니다. ^^

얄라알라 2021-02-14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키야! 멋진 말씀이십니다. 극친밀관계외 사람과의 접촉이 줄다보니, 경계만 강화되는 거 같아요. 제게는 호락호락 느슨느슨이 필요해진 시점인데 멋지시네요

coolcat329 2021-03-24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제가 소주 사진보고 침 삼키기는 첨입니다...시는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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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1, 2월에 천천히 [재생산에 관하여: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을 읽었다. 재생산신기술과 페미니즘의 교점에서 "낳는 문제, reproduction"를 이야기한 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일상에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난임 혹은 불임(이라고 명명된 몸의 현상)을 의학적 도움 받아서 해결하려는 분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게다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저자들의 학문적&생활 공간이 주로 서구사회인 만큼(간혹, 인도나 아시아 사례가 몇 줄씩 지나가듯 나오지만), 치우칠 수 밖에 없다. 활자 밖에서 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이 난다. 아니, 실로 경험하고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공감 욕구가 올라온다.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Eva Rinaldi,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페리스 힐튼이 가쉽성 기사에 등장한다. 이번에는 동영상 유출 등 스캔들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다. 그녀가 IVF로 쌍둥이 임신을 시도 중이라 한다. (상상 속의 쌍둥이) 두 명 중, 한 명에는 벌써 이름도 지어주었다고 하며, 앞으로도 서너 명 더 시험관시술로 갖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한다. 모두, 최근 그녀가 출연했던 팟캐스트 기사를 인용해  2월 11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밝힌 내용이다. 페리스 힐튼에게 비난이 쇄도했다고 한다. 아기를 갖고 낳고 싶어하는 욕구는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왜 그녀는 비난받을까? 최근 읽은 [재생산에 관하여]와 연계점을 고민해 본다. 


  • 향후 패리스 힐튼이 공개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시험관시술을 시도한 이유가 의료적 필요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힐튼을 옹호하는 글을 쓴 에이미 클라인 기고문(아래 링크)으로 유추하건대 그렇다. "I get why people are upset about Hilton’s easy-breezy statement about using IVF for nonmedical reasons to have twins of specific genders." 즉, 차별적 용어라는 이유로 요즘에는 잘 안 쓰지만, 특정 성별의 특정한 명수의 아이를 갖겠다는 힐튼의 포부는 "디자이너 베이비 Designer baby"를 떠올리게 한다. 
  • 대놓고 말하지 않았어도 힐튼은, "원하는 대로 재생산 계획을 하고, 계획대로 얻을 수 있는" 소수자의 누림을 연상케 한다. 쌍둥이 이후에도 서너 명이라니? 그렇다면 최소 5명의 아이를 계획 중이다? "낳고 난 이후"의 돌봄은 누가 하는가? 질문이 저절로 꼬리를 물며 올라온다.  즉,  황금빛 예비엄마 미소를 띤 힐튼은 임신, 출산, 양육에서의 재생산 격차를 보여준다. 


 [The Trying Game]의 저자인 에이미 클라인은 힐튼이 성별과 아기의 명수를 특정했다 해서 비난받을 수 없다며 힐튼을 옹호한다. 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힐튼이 아무리 훌륭한 의료진과 기술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시험관시술로 아기를 갖는 과정에서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롤러코스터를 타며 힘들 터이기에, 미리 응원을 보낸다고 했다. 


이후, 힐튼 관련 기사를 따라가면서, 이 이야기가 미국 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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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와 칼] 11장 "자기 수양"은, 일본 종교에 이해가 깊은 독자가 더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다. 


공역자 김윤식, 오인석 교수는 "self-discipline"을 본문에서 "자기 수양"으로 옮겼다. 2021년의 독자에게는 "자기규율"이 더 친숙한 번역어일 텐데, 내용상 '수양'이 적합해 보인다.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한 문화의 '자기 훈련' 방식은 "외부자(=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243)"에게 유별나게 보이기 쉽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에게 일본인의 수양 방식은 속된 말로 '사서 고생, 생고생, 헛짓거리'로 보이기 쉽다. 엄동설한 해 뜨기 전, 폭포 냉수를 뒤집어쓰다니! 또한 "죽은 셈 치고"나 "산송장"이라는 관용어는 미국에서는 부정적 뉘앙스를 전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죽은 셈 치고, 해본다!" 이런 식의 표현은 "달인"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 보이는 "일체의 자기감시, 공포심이나 경계를 버린(266)" 긍정 상태를 의미한다. 


Utagawa Kuniyosh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좀 더 비교해보자.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인에게 "자기 훈련"은 사회화를 위한 욕망의 억압과정이자 "자기 희생"과 동의어로 쓰인다 지적한다. 흥미로운 예시인데,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고, 제시간에 '자지 않으면 안 되는' 식 규율 말이다. 따라서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에서 어른 지위로 넘어가는 표지는 금기 음식(junk food 등) 억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인에게는 자기 훈련이 희생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결국 "뿌린 만큼 거둬갈" 투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나중에 변제받는 투자," "일종의 민간 계약"에 비유했다. 미국인에게는 "희생"이 일본인에게는 "상호 교환"이다. 받은 이가 같아야만 하는 의무를 지고, 나는 투자했기에 같은 선에서 얻어갈 권리가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11장은 일본의 종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의 자기훈련 방식이 대개 인도의 요가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명상, 자기최면, 트랜스 상태 경험 등 신비주의적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 외 제 6관이 열린다고 한다. 이로써, '부끄러움(하지)'라는 자기감시에서 벗어나 무가(無我)의 경지에 도달한다. observing self, interfering self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즉 '내가 지금 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식 자체에서 벗어나는 숙달의 경지를 말한다.  책 제목, [국화와 칼]에 비유하자면 수양한 사람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249)" 행위를 통해 결국 자신을 예리한 칼로 만드는 것이다. 


왜 아들러 심리학에 일본인들이 열광할까? 궁금했는데, [국화와 칼] 11장을 읽으며 조금 답을 알 것 같다. 보는 나 observing self, 방해하는 나interfering self, 수치심(하지), 외부의 시선(상호의무의 강제력, 체면 등)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심적 상태, 인생에 대한 가정이 어린시절의 훈육을 통해 어떻게 길러지는지는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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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0 11: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옹의 ‘마음‘읽으면 일본인들에 성향이 이런것이라는것 ㅋㅋㅋ 아들러가 소세키옹 작품을 읽고 일본인들 심리 집중 탐구 한거 아닐까 라는 ^ㅎ^

얄라알라 2021-02-10 11:27   좋아요 3 | URL
소세키....? scott님께 외람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신듯.
정말 고마워요. 찾아볼게요^^ 이 책이랑 같이보면 더 좋겠네요.

바람돌이 2021-02-10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안봤는데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일본 또는 동양이란 관점이 점점 궁금해지네요. 요즘 일본인의 여러가지 신기한면들이 눈에 많이 보여서 이런 류의 책들도 관심이 훅 갑니다. 어쨌든 보관함에 넣어두고요. 북사랑님 명절 잘 보내시고요. 새해 복도 듬뿍 받으세요.

얄라알라 2021-02-10 12:51   좋아요 1 | URL
70여년 전의 책인지라, 같이 읽으면 좋을 21세기 책도 찾아봐야겠어요^^ 바람돌이님께서도 좋은 책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감사^^ scott님께 [마음] 추천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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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에 관하여 -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머브 엠리 지음, 박우정 옮김 / 마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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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다. 아기를 낳다. 

어떻게 낳을 건데? 왜 낳으려는데? 혹은 낳지 못하는 데? 누가 낳을 건데? 낳을 수 있는데? 낳지 않으면 뭐가 어때서? 낳고 난 후의 책임과 의무는? 



[재생산에 관하여]는 본격적으로 '낳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8년, "Once and Future Feminist" 포럼에서 발표된 글을 엮었다. 머브 엠리Merve Emre가 발제문 형식으로 쓴 "재생산에 관하여 On Reproduction"에 대해 생물 정치학, 생명윤리학, 문학, 여성학 등을 배경으로 활동중인 페미니스트들이 피드백하는 형식의 얼개를 갖췄다. 따라서, 총 14명 필진의 글과 인터뷰가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 글에서 숨 틀 길을 제대로 찾으려면 머브 엠리의 발제문부터 충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엠리는 '기술-유물론적 페미니스트' 와 '급진적 재생산 정의(radical reproductive justice)'라는 두 라인의 사고가 서로 대화가능한 접점을 포용적 페미니즘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2차 페미니즘 운동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보조재생산기술에서 되레 저항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엠리의 주장 기저에 흐르는 핵심 생각은 바로 ""심지어 '자연스러워'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40)"인데, 이 주장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동조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8명에게서 생산적이고 비판적 피드백을 받은 엠리는 " "A Right to Reproduce"라는 글에서 오독을 거부한다.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 "나는 페미니스트 선언문들에 나타난 자연과 기술의 역사적 대립을 추적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내가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단언한다면 주장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90)"



즉, 엠리가 진정 주장하는 것은 보조생식기술이 여성을 재생산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리라는 기술적 해결 예찬론이 아니라는 의미같다( 실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기술"의 이항대립에 갇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재생산이 제기하고 있는 논의들을 단순화시키지 말자는 제안도 한다. 즉 영화 <GATTACA>(1995)에서처럼 "자연적인 분만으로 나은 태양의 아이 vs. 우생학적, 선별적 기술로 창조된 강화 인간"의 대립구도로만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재생산에 관하여]는 얇지만 쉴 새 없이 메모하게 만드는 책이다. 14명 필진의 저서만 찾아 읽어도 한 분기가 지날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의 리뷰로는 출판사 편집진이 내 놓은 출판사 소개글이 무척 훌륭하다. 정독 후, 출판사 측에서 내놓은 리뷰를 두어 차례 읽고 다시 머브 엠리의 발제문을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을 추천한다. 



* "심지어 '자연스러워'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임신하기 위해 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임신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의사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에 충분히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40)"



  • "우리가 유익한 방식으로 요구해야 하고 친밀한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모방하도록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정치 체계가 필요하다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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