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혁명 - 더 나은 밥상, 세상을 바꾸다
남기선 지음 / Mid(엠아이디)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름의 추천 도서


건강, 질병, 음식에 관한 오해와 진실(원제: The China Study)』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큰 빚을 졌다. 영양학, 의학 분야 문외한이지만 이후 콜린 캠밸 박사의 저서라면 경전인 양 읽고 또 읽는다. '전문가'라는 권위를 업고, 영양학 지식을 전달하고 개인 차원의 영양학 권고를 하는 책이야 많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선택하는 한 끼가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음식공급의 글로벌 연결망이 실은 우리의 선택과 취향을 어떻게 방향 지워지는지를 일깨워 주는 거시적 관점의 책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콜린 캠밸 박사의 책은, 아무리 추천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남기선(풀무원 기술원장)의 『식사혁명: 더 나은 밥상, 세상을 바꾸다』도 기쁜 마음으로 더 하고 싶다. 그는 "삼사십 년을 글 재주 없는 '이과생'으로 살아온 저의 한계라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다(10쪽)"며 대중을 겨냥해 쓴 교양과학서치고는 다소 건조한 문체에 양해를 구한다. 놀랍게도 저자는 먹거리에 대한 개인의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음식혁명』을 끝까지 읽고도 그가 채식주의자인지 '플랙시테리언(flexitarian)'인지 감이 안 오고, 'GMO'로 대표되는 변형식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도 모르겠다('풀무원'에서 재직 중이라니 '유기농'과 '채식'에 더 기울어져 있으리라고 추정을 하지만).



명확한 것은 저자의 주장이다. 남기선은 육식에 높은 가치를 두고 육식에 길들여져 온 데는 거대자본(축산업계와 식품산업으로 대변되는)의 입김이 컸으니 이에서 벗어나, 채식이나 곤충 등 비육류 식단을 대안 삼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힘을 실기 위해 저자는 인류의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진화사에서 '육식'은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우리 조상은 현대인류만큼 육식에 열광하지 않았다는 고고학자의 가설을 빌어온다. 현대인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서 육식에 가치를 부여하고, 공장식 축산이 만연하면서 마치 '육류 단백질 안 먹고는 죽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독창적인 주장이라기 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콜린 캠밸 박사,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도 유명한 존 맥두걸 등 많은 이들의 주장과 같은 방향이다.



남기선 저자는 동물 단백질에 의존하다가는 지구환경문제, 전염병 등 글로벌 보건 문제, 먹거리의 GN/GS 불평등 문제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통제 불능이 되리라는 예견과 함게, 채식에서 대안을 찾자고 주장한다. "단백질의 패러다임을 바꾸다"라는 16장에서는 콩 단백질의 우수함을 역설하고, 17장에서는 "식용곤충"이 친환경적 식량의 유망주라고 극찬한다. 19장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노블 다이어트"에서 저자는 "노블 다이어트"를 이렇게 정의한다.

지혜로운 인류는 그들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든, 살다 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에게 받은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자연을 공짜로 선물 받아 살아왔으니 우리도 이를 후대에 온건히 물려줄 의무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에 군림하기보다 더불어 살 줄 아는 지혜로운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품격 있는 식습관이 곧 '노블 다이어트'입니다.

『식사혁명』 285쪽

에필로그에서 남기선 저자는 '행동점화 효과 behavioral priming effect'와 '백 번째 원숭이 효과'를 언급하며, 2019년 우리의 선택이 후손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네요. 네네, 동의합니다! 입에 달고 먹기에 편리하다고 플라스틱 포장재에 든 1회용 음식과 육류만 찾다가는, 우리 후손의 식문화는 '설국열차' 단백질 블록보다 더 암울한 메뉴로 구성될지도 모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라! 소설이었어?' 『유토피아 실험』은 첫 페이지부터 정신 병원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그것도 정신과에 입원한 환자 1인칭의 시점이 저자의 것이다. "이 책을 정신의학의 이름 없는 영웅인 전 세계의 정신과 간호사들에게 바친다"라는 헌정 문구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저자 딜런 에반스(Dylan Evans)가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구하며 닉 보스트롬과도 친구 사이인 과학자라는데 '왜 정신 병원에 있어?' 어찌 궁금하지 않으리.



어이없게도 소설이 아니었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고,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당했고, 아직도 회복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유토피아 실험"을 진행하며 깊어진 정신 질환과 이 실험으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자기 고백서였다. 저자는 강박증 환자의 읊조림처럼 수십 번이나 같은 자문을 한다. "내가 왜 멀쩡한 직장(대학교수)도 그만두고, 집도 팔아 버렸을까?" (책으로만 접하는 독자도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하는 저자의 한탄이 지겨워지는 데, 실로 그의 가까운 지인들은 넋두리를 들어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도 싶다).

실은 저자는 실험 초기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다 걷어 찰 수 있었다. 딜런 에반스는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붕괴 직전에 이르러 여러 생필품의 글로벌 공급망이 끊어지고 소수가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 온다고 확신했다. 고고학자 친구가 "네 유토피아 실험에 어떤 가설이 있어?"라고 묻자 딜런 에번스가 내민 쪽글은 그의 세계관을 요약한다.



세계 문명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위기로 우리 생애 동안 붕괴될 것이다. 문명이 붕괴되며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죽겠지만 일부는 살아남는다.

문명은 재건 불가. 살아남은 이들은 야생으로 탈출해 무리를 이루어 생존 기술을 익힌다. 이를 '재야생화' 혹은 '탈산업화,' '신부족 혁명'이라 부른다. 이 과정이 이뤄지면 삶의 질은 붕괴 이전보다 나아진다.

『유토피아 실험』 265쪽

사진출처: The Rotters


문명이 붕괴되어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자급자족 공동체를 미리 연습하자는 취지의 실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딜런 에반스를 포함 이 실험 지원자들은 문명의 혜택이 제로에 가까운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꿈꾸면서, 자급자족 채소가 부족하면 매주 대형 마트에서 사 오고 각종 이국적인 향신료를 선반에 늘어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특히 딜런 에반스는 공동체를 이끌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현격히 부족한 와중에 우울과 망상이라는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어 공동체의 구심은커녕 우울의 수렁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공동체에서 정기적으로 탈출함으로써 도리어 다시 이 공동체로 돌아갈 버틸 힘을 재충전한다. 예를 들어, 자급자족 공동체에서는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가 어려운데 딜런 에반스는 여자친구 핑계로 주말마다 온수, 전기 다 들어오는 오두막집에서 쉰다.


결과야 뻔하다. 실험의 창시자가 제 발로 정신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정도로 흔들리는데 18개월 예상한 프로젝트가 끝까지 순항할 리가 없다. 결국 딜런 에반스는 정신병원 입원을 핑계로 자연스레 이 실험에서 하차하였는데, 『유토피아 실험』 참가자 중 일부는 이후에도 남아 "피닉스(불사조) 실험"이라는 명칭으로 이 프로젝트를 더 지속했다고 한다.





"가디언(The Guardian)"지는 『유토피아 실험』을 두고 두 줄 평 하기를 "이 책의 진짜 줄거리는 망상과 우울이다. 에번스가 이 책으로 쓰는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동의한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 그동안 이 실험의 실패를 다른 참여자 탓으로 돌리던 자신을 성찰하며 고통스러워 보일 만큼 솔직히 자신의 자질 부족과 교만함을 인정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철학 박사 학위에 로봇 공학 전공에 제분야 학자들을 친구로 둔 딜런 에번스인 만큼 『유토피아 실험』을 읽다 보면, 고고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등에서 불러온 재미난 생각거리가 엮여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과연 망상이었을까? 망상 여부는 누가 규정할까? 규범적 공동체를 일탈해서 만드는 새로운 공동체는 또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다시 읽을 예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봄,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를 통해서 국립무용단을 재발견했다고 할까요? 한국 전통춤 무용수가 소화하는 현대무용 안무는 색다른 맛이 있더군요. "넥스트 스텝 Next Step"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감이 왔습니다. 국립무용단이 변신하고 있구나. 말 그대로, next wave/generation, 국립무용단의 젊은 버전 미래형 무대를 보여주려나 싶었는데, 그렇습니다.



. "넥스트 스텝 Next Step Ⅱ"의 공연장,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을 찾았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극장인데, 묘하게도 올 때마다 비가 내리네요. 이번 공연의 두 안무가, 박기량과 황태인의 전신이 담긴 야외홍보물이 비 오는 저녁 하늘빛과 잘 어울립니다.



사진: 국립무용단

황태인 안무가의 "무무"는 "한 편의 그림처럼 그려낸 한국무용 고유의 움직임"이라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검은 의상, 푸르른 무대 조명, 심플한 무대 디자인, 현의 소리, 오직 네 명의 무용수(김미애, 조용진, 조승열, 황태인)이 '헉' 소리 절로 나올 기량의 춤으로 채워갑니다. 15분 내내 진지하고,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정중동, 점선면,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손 움직임으로 얼마나 큰 에너지가 전해지는지, 한국춤의 본질을 안무가가 깊이 고민했구나 감동받았습니다.

https://youtu.be/O9CD9E35ruQ


상대적으로 "쁘랭땅 printemps"은 공연 시간이 깁니다. 무려 30분. 그런데 조명, 무대 의상과 소품, 음악 등을 어찌나 골고루 썼는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박기량 안무가는 "여성들만의" 봄을 그리고 싶었을까요? 여성 무용수들만 등장하는데, 아마존 여전사가 절로 연상됩다. 남자는 가라. 우리끼리 쾌락, 우리끼리 놀고, 탈출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심지어 재생산으로 사회 존속시킬 수 있다! 너무 멀리 간 해석인가요? 아무튼 오늘 이 공연 관객 중에 축제(특히 페미니스트의) 기획자가 있다면 "Printemps"섭외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했습니다.




황태인 안무가가 안전하게 다져지고 고르게 평편한 길을 간다면, 박기량 안무가는 일부러 울퉁불퉁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외발자전거 같다는 인상을 주네요. 적어도 제게는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보다 훨씬 "Primtemps"이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작품이었어요. 앞으로, 박기량 안무가가 만든 작품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티켓 예매할 듯합니다. 




공연 보고 나온 후에 "next step"문구가 더 확 와닿네요. 국립 무용단이 이렇게까지 참신하게 우리 춤에 새 옷을 입힐 수 있구나. 브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품격경영 - 상 - 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 백서
신성대 지음 / 동문선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66쪽인, 들고 읽다가는 손목을 시큰거리게 하는 두툼한 책을 킬킬, 큭큭거리며 다 읽었는데 왠걸, 마지막 문줄에 "하권에서 계속"!

와우! 알고보니 『품격경영』은 "상," "하" 두 권으로 같은 날 출간된 책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쓴 신성대라는 도대체 어떤 분? 고양이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해보니, "동문선" 출판사 대표이자 "전통무예연구가"에,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컨설턴트"이기까지 하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품격 매너 강연도 했다.

최근 몇년간 의전 싸구려 네임펜, 구겨진 태극기, 무개념 사적 취향의 브로치 등이 신문 기사 소재로 등장하던데 이 분 덕분이구나! 신성대 대표는 청와대측, 언론에 꾸준히 자신의 주장을 어필해왔다한다. "대한민국 국격을 나타내는 대통령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핸드백 들고 정상회담 소파에 앉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잠옷 연상시키는 분홍색 캐주얼을 정장이라며 입고 순방외교 가시면 아니됩니다"라고.


읽다보면, 계속 빵빵 터지는 사례들이 줄지어 소개되어 킬킬거리다가도 뜨끄해진다. 나 역시 비웃음 당할만한 (글로벌) 매너 흑역사 꽤 길게 늘어지는 거 아닌가싶어서. 저자 신성대는 누구 눈치 보지 않는지 박근혜 전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까지 격하고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사심에서가 아니라, 국격 높여주시라는 충언으로. 특히나 이렇게 콕 집어 지적당하지 않는 이상,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글로벌 에티켓들 정리해보자.

일반인보다도 특히 상위 1%에게 격하게 요구되는 (글로벌) 매너는



1. eye contact!

2. 협상, 대화시 몸짓 언어!

3. 테이블 매너! 특히 건배할 때 굴욕 굽신 자세는 NO!

4. 격식에 맞는 옷차림!

5. 놀 줄 알고, 문화 코드를 적절히 활용한 사교법!

6. 표정관리! 특히 "입 앙당물기" 사절!





Question] 서울지하철 광고판에 실린 "서울여자대학교 정시모집" 광고 이미지에서 '글로벌 매너' 정석에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보면?



Question] 백안관 오찬 회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오바마 대통령 측 신체 언어의 큰 차이는?


신성대 저자는 566쪽 곳곳에서 "~~하면 아웃(out)," "어글리 코리안"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가 하는 지적에 뜨끔하지 않을 매너짱 "한국인" 많지는 않을 것이다. 서열이 높은 사람이 건배 제의하면 자연스레 허리가 굽신거려지고, 직위고하 떠나서 놀 자리에서는 우아하게 소셜댄스로 사교하는 여유를 아는 인사도 많지 않으니까. 예상했듯 신성대 저자에게 "왜 우리가 서구의 매너를 따라야만 하는가?"의 질문이 떨어지더라. 저자는 "글로벌 매너니까, 서양에서 온 거니까."라는 식으로 답하는데, 몰라서 "out"되는 것보다 잘 체화해서 "꿩 먹고 알 먹고"의 전략 삼는 게 좋겠다. 적어도 부제를 통해서도 강조하는 상위 1%(누굴까?)의 글로벌 무대 누빌 분들은......99%는 당장 (글로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존 매너부터 익히면 되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스터 옆얼굴로 먼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를 상상해보았다. 카리스마, 결단력, 고집스러움, 높은 자존감. 그렇게 그러졌다. 88년생, 한국 나이로 31세인 조진주는 2006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20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 이어 2014년에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실력파 연주자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가서 현재는 캐나다 맥길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데다가 연주 솜씨뿐 아니라 말 솜씨와 글솜씨가 대단하다. 내년엔 '객석'에 연재하던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다니 다재다능해서 더욱 매력적이다.


https://youtu.be/C9Z_YFjszUY


 2019년 4월 중반부터 말까지, 조진주는 서울에 한참 머무르려나 보다. 4월 19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를 시작으로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 무대에 연일 오르는 스케줄이 잡혀 있다. 30대에 들어섰어도 연주하는데 체력적 변화가 없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동감이요! 4월 19일 독주회는 인터미션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한 90분 연주였건만, 객석의 성원에 "나의 살던 고향"을 앵콜곡으로 가뿐히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음치, 박치, 클래식 백지상태인 나는 '가나다라' 배우는 마음으로 공연장 순례를 다니는데, 이번 '조진주의 독주 무대'는 익숙한 뷔페가 아닌, 아주 드문 기회에나 맛볼 수 있는 명인의 밥상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연주된 4곡 중에서, 오로지 "Bach"의 "파르티타 제2번 D단조"만 익숙했다. 처음 들어보는 나머지 3곡 중 2곡은 2010년대에 작곡된 컨템포러리 음악이었다. 조진주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rock and roll," 그 중에서도 "메탈리카 Metallica" 느낌의 곡이다. '귀에 친숙해서 쉽게 소비되는 음악만 하려고 이렇게 애써 연습하고 공부하지는 않았다'며 혁신적 시도를 꾀하는(연주회에 드레스가 아닌 정장 팬츠 차림인 것도 그 한가지로 보고 싶다) 그녀는 포스터 얼굴 옆선에서 전달하는 만큼이나 '고집 세고, 소신 있는,' 실로 그런 성향의 예술가인듯하다.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 공식 누리집(Photo by Denis Kelly)



2019년 4월 19일 독주회 선곡의 이유를 조진주는 이렇게 밝힌다. 2014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조진주와 선의의 경쟁을 했던 이들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를 두고 한 남성 전문가가 비아냥 거리는 뉘앙스로 칼럼을 썼나보다. "어떻게 최종에 오른 6명이 모두 여성냐?"라고. 조진주는 "속된 말로 '빡쳤다. 여성 예술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통쾌하게도 그녀는 "인디애나 콩쿨"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카네기 홀 무대에서 일부러 21세기 "여성 작곡가"의 곡을 2곡이나 선곡하며 카운터펀치를 날렸다고 한다. 두 곡중, 제목부터가 힘 넘치는 "String Force"는 조진주의 연주로 유튜브에서도 들어볼 수 있다.


https://youtu.be/mjYIOKfRjts

  


 매력 넘치는 예술가이다. 4월 19일 티엘아이 아트센터 연주, 고맙습니다.


사족..... 티엘아이 아트센터, 클래식 음악 전용 아트홀로서 이름값하는 좋은 공간이지만 객석 앞줄과 뒷줄에서의 청음 경험이 사뭇 다르다. 뒤 줄에 앉았더니, 앞 좌석 관객들 몸 뒤척이는 소리, 겨울 점퍼 입고 사각거리는 소리, 구둣발 바닥에 대는 소리, 잔기침하는 소리, 정말 별 소리가 다 섞여 소리 뭉치가 돼서 날아오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처럼 잔 소음이 많았지만 Bach 연주할 때만큼은 조진주의 연주에 모두 몽환상태일 정도로 몰입했는데 잡음이 전무했다는 점! 이 많은 청중을 완전히 몰입시킬 수 있는 조진주의 바이올린 선율이란! 음악의 힘이란! 멋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