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에 CKL 스테이지, 다녀왔는데 또 청계천 나들이합니다. 목적도 분명합니다. "Modern Table"의 "다크니스 품바" A팀 공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담아 박수 응원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주말 종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다만 10분의 1이라도 CKL stage로 이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Modern Table"과 아무 이해관계 없는 관객일뿐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무용인만의 작은 잔치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적극 현대무용을 알리고자 장기 공연을 시도한 이 젊은 무용단을 응원하고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시사in'기사를 읽었거든요. "Modern Table"을 이끄는, 또 이 공연 "Darkness 품바"를 안무하고 작품에 출연해 춤추고, 노래하고, 사회도 보는 김재덕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줄 사람들이 와주길 기대했다. 스스로 무용계 밖으로 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이런 시도는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는 30회 공연을 할 만큼 단단한 팬덤이 없다. 그런 팬덤을 조성하기 위해 이 공연을 하는 것이다.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일회성 공연으로는 팬층을 확보하기 힘들다. 한번은 우리를 던져야 한다. 각오했고,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했다.

"시사in" 김재덕 인터뷰 中

현대무용으로는 아주 드물게, 장기 공연으로 가는 "다크니스 품바"를 위해 최소 1억 2천여 만원이 필요했고, 그 중 4000만원 협찬을 받았기에 나머지는 빚이랍니다. 관객이 많이 와주어야 마이너스 폭이 줄어드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개인적으로 저는 목소리에 예민한데 4월 7일과 4월 13일 공연장에서, 김재덕의 목소리가 사뭇 달랐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고 도와주는 분들 많고, Modern Table팀원의 팀웤이 단단할지라도 그 혼자 짊어질 부분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새로운 시도가 애초 기획만큼 잘 안 풀려여서일까 살짝 걱정도 되었어요.



각설하고, B팀 공연은 B팀 공연의 색깔이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김재덕이 직접 춤추고 노래하는 A팀 공연에 반표 더 드리고 싶지만요. 정원영 배우는 전문 무용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라던데 기우였습니다. Modern Table 날고 기는 춤꾼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더군요. 어쩌면 안무가 김재덕이, 뮤지컬 배우 정원영에게 특화된 몸짓 어휘를 소화할 수 있게 쪼개어 입혀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통상 공연 감상은 맨 앞 줄을 선호하는데, "다크니스 품바"는 객석 앞줄이냐 뒷줄이냐에 따라 관람 소감이 크게 달라질 공연입니다. B팀 공연은 앞줄에서, A팀 공연은 객석 뒷줄에서 감상했는데, 각각 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더군요. 앞 줄에서는 무용수들의 춤, 특히 공연 후반부의 '각설이 젓가락 춤'의 동작을 잘 감상할 수 있는 반면 노래하는 무용수의 표정과 몸짓을 놓칠 수 밖에 없어요. 객석 뒷 줄에서는 노래하는 무용수의 표정, 호흡까지 다 보며 같이 느낄 수 있답니다. 정원영 배우, 멋졌어요! 아니 이 날만큼은 무용수로 칭해야겠네요.




이렇게 단정한 자세로 인사하고 끝나냐고요? NO!No! 현장에 가보시면 알 수 있어요. 점잖은 인사가 끝난 후에, "Modern Table" 팀의 끼와 흥을 맘껏 느낄 뒤풀이도 이어지지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젓가락도 달리 보이고, "한 잔, 두 잔" 하는 노래 가사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 거예요.

저는 또 가고 싶습니다. 이번엔 다시 A팀 공연으로요! 아무쪼록 "다크니스 품바" 롱런 공연, 많은 분들이 알고 찾아 주셔서 "Nanta"처럼 상설극장에서 공연될 수 있는 레퍼토리로 커나가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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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선언 -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사회를 위한
피터 바잘게트 지음, 박여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요새 가장 궁금한 두 가지. "왜 자꾸 '수렵채집 사회에서 배우자!'는 건데?"와 "왜 다들 '공감(empathy),' '공감력'하며 야단인데?" 각기 다른 방향의 질문으로 보이지만 큰 지도 위에서는 얽혀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공감"을 검색어로 온라인 서점을 뒤져본다. 2000여 개 콘텐츠가 뜬다.



나는 '공감'이 적어도 한국 사회 출판계에서는 2010년대에서야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공감 선언(원제: The Empathy Instinct)』의 저자인 피터 바젤게트는 (아마도 저자가 속한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 등 구미 사회에서) 이 단어의 사용이 이미 1940년대 급증했다고 본다.

'공감'이라는 용어는 1962년 대중심리학 용어인 '의지력'을 능가했고, 1980년대 '자기통제'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도 훌쩍 뛰어넘었다. (...) 공감 본능은 진정으로 대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보다 나은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감 본능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미래, 30년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제는 공감의 과학이 정책을 주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공감 선언』 338쪽

위 인용문이 저자의 집필 의도, 지향점, 『공감 선언』의 기여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피터 바잘게트는 이 책을 단순히 학술적 차원에서 '공감'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고자 쓴 것도, 실현 가능성 희박하거나 미래형 제안으로서의 주장을 던지려고 쓰지 않았다. "Sir"라는 기사 작위가 말해주듯, 영국 왕실이 인정하는 인사로서의 그 엄청난 (정계, 학계, 재계, 방송계 등) 인맥과 실제 관련 기관들의 수장으로서의 실무 경험에 기반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


피터 바젤게트는 40년 넘게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방송 프로듀서이며 영국 ITV 회장이다. 2013년부터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영국 홀로코스트 추모 재단(UK Holocaust Memorial Foundation)' 회장직을 겸하며 '공감 본능'을 연구하고, '공감력 있는 시민 육성'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안하고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4장에서는 디지털 디스토피아 시대의 공감 문제, 5장에서는 교도소, 6장에서는 의료기관, 7장에서는 부족주의, 인종주의를 '공감력'으로 극복한 실사례와 방법론을 소개해준다.



9장의 "공감헌장"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인데, 열 개의 강령 중 특히나 "문화예술"의 힘에 주목한 점이 인상깊다.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과 대중문화 장려"하라는 이 강령은 어쩌면 가장 즉각적으로 시도가능하고 효과도 빠를 듯 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예술을 집과 학교, 의과대학, 용양소, 교도소, 갈등 지역 등에 배치하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방법임을 살펴봤다. (...) 하지만 오늘날 학교에서 예술 관련 교육은 교양 과목 정도에 인색하게 배치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실수다. 모든 아이에게서 창의적인 불꽃이 튀어야 하며, 불꽃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이어줘야 한다.

『공감선언』 347쪽

인간의 공감본능과 내집단 편향성은 동시에 타집단의 배제, 밀어내기 더 극단적으로는 적대적 폭력을 낳기도 한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대학살, 불편한 목록은 길게 늘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원래 그래'로 모른 척 해야겠는가? 피터 바젤게트는 "No"라며 긍정의 미래를 말한다. 비단 '공감'을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교육계, 문화예술계, 정치계에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어르신들 꼭 『공감 선언』을 읽었으면 한다. 한국형 공감력 증진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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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 -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피곤한 걸까?
나카노 히로미치 지음, 최서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교과서적 정의야 있겠지만, "건강(health)"이라면 사람마다 꽤 다르게 정의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라기 보다는 "아침에 가뿐히 일어날 수 있고, 뭔가 하고싶다는 활력이 넘치는 상태"로 생각하고 싶다. 『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의 저자인 나카노 히로미치 역시 '피로를 모르고, 활력이 넘치는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는 듯 하다. 


나카로 히로미치는 전문의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유명인사를 고객으로 확보할 정도로 성공한  카이로프랙틱 닥터(DC)라고 한다. 그는 건강검진 결과지에 나온 개별 "병명"에 주목하는 대신, '일상의 피로감'을 강조한다. 노화(aging) 역시 질병이나 장애로서가 아니라, 인체의 자가치유력이 몸의 기능저하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평소 피로감, 권태감 등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목하여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평소에 몸의 기능 운동성, 더 자세히는 유연성(관절의 가동력), 안정성(근육의 강한 정도), 밸런스(움직임의 협조성) 을 향상시켜서 피로는 모르는 몸으로 스스로 만들어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한 저자의 제안은 첫째, 내 몸 상태를 바로 진단하기. 둘째, 나의 기능 운동성에 알맞은 운동을 찾아서 일상에서 운동을 지속하기, 마지막으로 호흡과 자세 등 일상에서 내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늘 하기로 요약할 수 있다. 『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의 저자는 그 동안 많은 고객의 몸을 돌봐온 노하우에 의거해 실제 따라할 수 있는 다양한 생활 속 운동법도 알려준다. 





대단한 도구나 공간을 요구하지 않는 일상의 운동법. 이런 류 건강도서의 마무리가 늘 그러하듯, 문제는 실천이다! 피로감을 무시함으로써 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몸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다리 근육을 움직이고 폐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을 것인가! 또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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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더 정확히는 남성 무용단의 현대무용을 보러 주말 오후, 청계천로의 CKL Stage를 찾았다. 60분 동안, 춤도 보았지만 끼와 재능이 넘쳐 나는 사람을 보았다. 이름은 김재덕. 만약 샤먼이 정녕 운명의 점괘를 미리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태어났을 때 이렇게 조아렸을 것 같다. '너, 이 엄청난 불 뜨거운 불 어떻게 다 풀어내며 산다니.'

한 마디로 김재덕! 엄청나다. 무대가 본격 달아오르기 전에 자신과 작품을 소개하면서 "작곡, 작사, 안무, 춤" 다 자기 손길을 거쳤다고 하기에 "가우잡나?" 했는데, 웬걸. 그는 겸손할래야 겸손할 수가 없는 사람이겠다. 재능과 끼가 넘쳐나서 가릴 수가 없다!!!!!!

공연보고 나와서 제일 먼저 "김재덕"과 "모던 테이블" 검색.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7020311951


아니나 다를까, 김재덕은 타고난 끼와 재능을 묵혀두거나 외면한 소심쟁이가 아니었다. 인문고등학교에서 안양예고로 편입했다 한다. 16세에 처음 춤(짐작하건대 현대무용, 발레 등)을 배웠다고 한다. 공식적 춤 교육이 고1때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김재덕은 초딩, 중딩 시절에도 틀림없이 학교나 동네에서 이름 날리던 춤꾼이었을 거다. 그의 춤을 보면 알 수 있다. 4월 6일 오후 6시 공연 TEAM A, 8명 멤버 모두 뛰어난 춤꾼이었으나 김재덕의 춤은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차별적 질감을 보인다.

워~~~워~~~~!!리뷰가 어째 김재덕 예찬으로만 흐른다. 하긴 직접 공연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그럴 걸?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비트박스 하고, 하모니카 불고, 작품 설명하고, 작사했고 1인 몇 역이나 하는지. 입이 절로 벌어지고, 박수와 함성이 절로 터지게 하는 재주꾼.


이 정도 퀄리티가 보장되니, 현대무용으로는 드물게 장기공연으로 가는 배짱을 부리겠지(성공하리라 믿는다! 응원한다!). 그가 이끄는 무용단 Modern Table의 "다크니스 품바"는 3월 28일을 시작으로 4월 21일까지 TeamA, TeamB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계속 공연된다.


토요일에는 B팀, 일요일에는 A팀! 나는 일요일 A팀 공연을 보았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주인공은 김재덕이지만, 이정인의 춤도 돋보였다. 이름 접수함! 이! 정! 인! 이 분이다. 팀원 모두 출중했다. 각자 다른 공연, 혹은 수업 스케줄이 바쁠텐데 연습시간 조율과 확보 위해 서로 양보했을 것이다. 팀웍도 대단하다!

B팀에서 밀어주는 얼굴은 정원영인가보다. 뮤지컬 배우인데 춤 원없이 무대위에서 춰보고 싶은 열망을 안무가 김재덕이 풀어내 주는 듯. 뮤지컬 기반의 춤 어휘를 가진 그가 김재덕 안무를 어떻게 소화했을지 궁금하다. 그럼 또 토요일 공연 가야하나?


아 참! Modern Table 측은 장기공연 기획하면서 fandom형성도 확신하는지, 재관람 고객을 위한 품바티켓 이벤트도 진행한다. 2~3회 까지는 나도 생각이 있지만, 30회는 과한 거 아닐까? 아닐지도. 4월 6일 공연에서 관객 호응을 보니, 관객들도 함께 놀고 싶어하더라. 젓가락만 쥐어 주었으면 무대 나가서 '품바, 품바'할 기세로 추임새 넣고, 박수 치고. 한 마디로, 공연장은 이래야 한다! 열기와 흥과 숨결의 교환이 느껴지는 공연장!



이 작품이 이미 해외 무대에서 호평받고, 초대받았다는데 다 이유가 있다. 한국 밖 외국인들이 밴드 사운드에 소리꾼의 판소리, 젓가락을 무대에 두드리며 '각설이 타령, 품바'하는 춤에 얼마나 눈이 휘둥그레지겠나. 공연 전에는 Goods 진열대에 생뚱 맞게 "웬 젓가락 기념품?"했는데, 일단 보시라. 60분 "Darkness 품바" 보고 나오면, 젓가락이 달라 보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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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2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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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통이 느슨해지면 죽은 듯이 잠에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통증의 파도가 밀려오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중략)...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얇고 노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순록의 달(Reindeer Moon)'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2편 332~333쪽.

한국에서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많이 읽힌 소설의 클라이맥스 대목이다. 원제 『 Riendeer Moon 』에 등장한 초승달 아래, 홀로 아기를 낳는 주인공 야난의 고독과 생존본능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다. 저 독백을 조아리던 한 사람, 여성, 초산 중인 10대 소녀, 야난의 숨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야난은 그렇게 죽어갔고, 아기는 태어났다.





벚꽃 만개한 4월의 환한 대낮, 스타벅스 매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물을 어찌 억제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다 뜨거운 눈물의 강둑이 몇 번이나 터지려는 걸 어찌 막으랴.

K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짧은 혼절과 진통 주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칼라하리 사막의 니사도,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생명을 낳았어."를 되뇌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진통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런 낭만적 생각을? 에라!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야난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 아기를 낳는 그 장면에서 바로 K가 전해준 그 '짧은 잠과 진통의 반복' 대목이 등장했다. '소설이 아니었구나. 경외했던 것이구나. K는 야난, 아니 생명을 낳고 지켜온 이 땅의 그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격했기에 진통을 감사해하며 견뎠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은 20,000년전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매머드, 여우, 늑대, 호랑이, 순록, 하이에나가 등장하고 파카(기능성 방한 아웃도어가 아니라, Inuit언어에 등장하는 가죽옷의 이름이다)를 입은 수렵채집 부족들이 등장한다. 원서로는 393쪽, 번역판으로는700쪽에 이르며 무려 2만년 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21세기 넷플리스 SF마냥 빠른 전개와 생동감 있는 묘사로 쓰여진 건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인생이력과 관련 있다. 그녀는 부시맨(San族) 탐사대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에(1950~1956) 칼라하리 사막에서 지내며 그 곳 사람들과 자연물,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인류학자로서 그녀는 이 경험에 기반해 『The Old Way』, 『The Harmless People』 등을 썼다. 부시맨이 따뜻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이라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묘사한 수렵채집민들은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견뎌내야하는 지역 사람들인데,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부시맨의 생활양식, 종교의례, 약혼과 결혼, 선물 교환의 규칙 등을 반영해서 상상해냈다.


예를 들어, 이 가계도만 보아도 약혼과 결혼으로서 집단의 연망이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에 어떤 잇점을 가져오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좁은 사회, 면대면 관계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상상한 20000년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체면, 윗 어른에 대한 공경, 서열짓기보다는 공동체성, 공동육아, 연대 등의 정서와 가치가 발달했다. 주인공 야난은 이 사회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한다면 더 충동적이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남편 티무에게 발끈해서 바로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여동생 메리와 함께 집단을 떠나 홀로 이동하는 길을 택한 에피소드가 야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야난은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생존에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고 고난과 마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동생도 살아 남긴다.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페미니즘의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1980년, 90년대에 학술서가 아닌 소설로서 여성의 존엄과 특히 어머니로서의 거룩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야난,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아내로...



스마트폰이나 족보가 없던 20000년 전, 사람들은 피부 냄새와 음성으로 서로를 식별하고 이야기의 타래에 엮어 이름을 기억하고, 황홀경에 이르는 춤을 추어 천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하고자 한다. 마블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유니버스가 아니어도, 이들은 원초적 생명력과 상상력의 힘으로 이 불가해한 우주의 거룩함을 만난다.『세상의 모든 딸들 』을 꼭 여성, 어머니의 시각에서만 읽으려하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 그 거룩한 생존력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를 비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육체성으로 살지만 나는, 너는, 우리는(심지어는 늑대와 순록까지도) 연결되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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