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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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금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수천 권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서가 아직 유효한 이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김유태의 <나쁜 책>은 동서고금의 금서를 소개하는 책이다.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는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어떤 책을 금서로 지정할 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손상을 입힐 만한 책에 대해 주로 금서라는 딱지를 붙인다.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팡팡 <우한일기>,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그 권력이 정치 권력이 아닌 종교 권력, 젠더 권력인 경우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니코스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미셸 우엘벡 <복종> 등은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에 위배되거나 종교적 갈등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넬리 아르캉 <창녀>,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마광수 <운명> 등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금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배경과 이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덕분에 금서가 된 책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작가,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나라의 역사와 정세까지 알 수 있는 점이 유익하다.


재미있는 점은 (금서를 지정하는 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금서가 금서 지정을 통해 더 유명해지고 책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팡팡의 <우한일기>이다. 중국 작가 팡팡이 코로나 19 확산 초기 봉쇄된 우한의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출간 금지 조치를 당하고 중국작가협회에서 작가를 제명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큰 관심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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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성공할수록 불안해할까 - 남에겐 관대하고 나에겐 가혹한 여성들의 가면 증후군 탐구
밸러리 영 지음, 강성희 옮김 / 갈매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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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시카고 메드>라는 미국의 의학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병원이 배경인 만큼 등장 인물 대부분이 유능하고 숙련된 의료진인데, 의외로 많은 수의 캐릭터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심지어 스스로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여긴다. 햇병아리 의사, 간호사는 물론이고 몇십 년 차 전문의조차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에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반드시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와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문제는 그러한 자기의심 때문에 도전이나 성공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가면 증후군 환자들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견된다.


<우리는 왜 성공할수록 불안해할까>의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밸러리 영은 40여 년 동안 가면 증후군을 연구해 왔다. 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에게 지능도 능력도 부족하다고 일관되게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가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확신하며 모든 것이 운, 매력, 인맥, 기타 외부 요인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과거의 성공을 되풀이할 능력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심지어 성공을 거두면 즐기는 대신 결국 자신의 무능이 발각되어 창피를 당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가면 증후군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에 따르면 날 때부터 가면 증후군인 사람은 없다. 양육자로부터 완벽을 요구받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학교나 직장 등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거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 가면 증후군의 증상이 심해진다. 집단에서 약자, 소수자라고 느끼는 상황도 가면 증후군을 악화시킨다. 특정 성별, 지역, 학교, 종교, 피부색, 성정체성 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에 속하게 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몇 배의 불안감을 느끼며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어느 집단의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 노력하고도 그 집단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초 집단의 남성이 대표적이다. 책에 인용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 과학자들이 연구 보조금을 신청한 남성 과학자들과 동일한 능력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2.5배 더 많은 연구와 그만큼의 출판물이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더 적게 일하고도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이 발견은 소수자 우대정책이 '수준 저하'를 가져올 거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남성의 평범함은 한 번도 성공의 장애 요소가 된 적이 없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83)


그렇다면 가면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 변화가 우선이겠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시도로는 실패나 실수, 비판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공으로 향하는 길에서 불가피하게 마주쳐야 하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 계기로 인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책에 인용된 스탠퍼드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여덟 배 더 많은 비판을 받으며 자란다. 남성이 비판에 더 강한 이유는 비판에 더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서 자라면서 그러한 비판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공을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이유 중에는 가면 증후군도 있지만 성공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도 있다. 많은 남성들이 지위, 돈, 권력을 추구하는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일과 가정의 융합,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의 양립을 중시한다. 남자만큼 성공하고 싶지만 남자처럼 성공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저자의 분석에 크게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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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강의 - 10개의 강의로 프랑스사 쉽게 이해하기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바타 미치오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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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맛있는 빵과 디저트, 아름다운 강과 거리, 우아한 궁전과 정원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의 일면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다양한 면을 보고 싶다면 장장 2천여 년에 달하는 프랑스의 역사를 알아야 할 터.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시바타 미치오의 책 <프랑스사 강의>는 10개의 강의로 프랑스의 길고 복잡한 역사를 알기 쉽게 소개해 준다. 프랑스의 시작부터 중세 사회와 카페 왕국, 중세 후기의 위기와 왕정의 강화, 근대국가의 성립,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혁명 이후의 혼란기, 양차 세계대전과 현재에 이르는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유익하다.


프랑스가 위치해 있는 유럽의 서쪽 지역은 예부터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해 고대 그리스인, 켈트인, 로마인, 게르만족 등 다양한 민족이 이주해 왔다. 그러다 5세기 경 게르만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이 이 지역을 통일해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프랑크 왕국은 건국 초기부터 가톨릭 세력의 지원을 많이 받았고 현재도 프랑스는 가톨릭 신자의 비중이 높은데, 14,15세기 경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페스트와 백년 전쟁 등으로 인해 교회 세력이 약해지고 민족 의식이 높아졌다. 이후 절대왕정 시대를 지나 프랑스혁명을 치르고 국민국가로 발전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 책의 장점은 프랑스의 역사를 단순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요 사건의 전후 맥락과 의미를 해설하고 동시대 일본 및 아시아의 역사와 비교, 분석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럽이 근대 이후의 세계 패권을 차지한 이유에 대해 근대 직전 해상 무역의 발달을 드는 경우가 많은데, 사료를 살펴보면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도 활발한 교역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해외 무역의 발달이 국내 산업 및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원활하게 연계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그러한 연계가 일어나지 못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해외 무역 증가가 국내 산업 발전까지는 연계되어 막부 말기 개항 시기에 어느 정도 대응력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프랑스 혁명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프랑스 혁명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시기적으로는 1세기 정도 차이가 있지만, 두 사건 모두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화를 통해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혁명 주체에 일반 시민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자코뱅주의와 인민 투표적 데모크라시로 파생된 반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민중의 개입이 약했기 때문에 그러한 파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정치적 함의까지 분석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역사서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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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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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한 건 수렵과 채집을 위해 유목 생활을 하다가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상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하고 BBC의 뉴델리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샘 밀러의 책 <이주하는 인류>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주성이 강한 동물이고,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건 고작 1만 2천 년 전의 일이며, 최근까지도 - 실제로는 지금도 - 수많은 사람들이 정착 대신 이주 또는 이민을 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이주 또는 이민의 사례를 제시한다.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선사시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그리스 로마의 정착지 건설, 북유럽의 바이킹,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 노예무역, 황색 위협, 유대인, 남북전쟁, 이주 노동자 등 수많은 예시가 나온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든 사례의 대부분이 서양, 그중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역사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제1세계에 포함되지 않는, 제2, 제3세계 국가들(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동유럽 국가들, 인도, 이집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등등)은 어떤 이주 또는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이주의 역사와 유전학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TV 프로그램의 클립을 보고 한동안 빠져 살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가계도를 추적하며 조상의 삶과 역사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빅뱅이론>의 배우 짐 파슨스는 프랑스계 조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 페이보릿>의 배우 올리비아 콜먼은 인도계 조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미국의 TV 프로그램 <Finding your roots>에선 일본계 미국인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센이 사실은 한국계임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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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역사 - 중동의 3천년 역사를 이해한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토미 유조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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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란 무엇일까. 아라비아 숫자, 아라비아 문양, 아라비아 커피 등등 아라비아라는 단어가 포함된 말이 은근히 많은데 (나를 포함해) 그 뜻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일본 도쿄대학 명예교수 시토미 유조가 집필한 책 <아라비아 역사>에 따르면, 아라비아는 '아랍이 사는 땅'을 의미한다. '아랍'이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료는 앗시리아 왕 샤를마네셀 3세의 비문이다. 이후 기록에도 표기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어떤 경우든 '시리아 사막의 낙타 유목민'을 가리켰다. 아라비아는 아시아 대륙 남서쪽에 위치한 반도이며 북쪽으로 시리아 사막과 연결된다.


이 책은 아라비아와 아랍에 관한 정의에서 출발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아라비아의 약 3천 년에 걸친 역사를 각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한다. 아라비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낙타다. 낙타는 원래 야생 동물이었는데 가축화를 통해 짐을 싣거나 이를 타고 사막을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발들일 수 없었던 사막지대가 처음으로 인류의 생활권에 편입되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융성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12세기경 안장의 개발은 이동 수단으로서의 낙타 이용을 더욱 활발하게 하여 대상무역을 가능하게 했다.


아랍 문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슬람교다. 이슬람교는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빠른 속도로 아라비아 반도를 장악하고 오리엔트와 지중해 세계 남반을 정복했다. 그 비결에 대해 저자는 당시 유행하던 '네이티비스트 무브먼트'와의 결합을 든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수많은 종교가 난립하고 너도나도 선지자를 자처하면서 정치 갈등, 민족 갈등에 더해 심각한 분열 및 혼란 양상을 보였다. 이런 시기에 무함마드를 필두로 한 이슬람 교가 등장하면서 같은 종교, 같은 민족끼리 연대하고 타자와는 대립, 배척하는 문화가 보편화 되었다는 것이다.


근세 이후에는 여기에 유럽이 가세하며 더욱 복잡한 정세를 이루게 되었다. 15세기 이후 유럽은 신대륙으로의 항로 개척을 위해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정세 역시 다양한 변화를 보였다. 18, 19세기 이후로는 영국의 영향력이 컸는데,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이 지역의 역사와 정세를 알 수 있는 영화로 그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저자 후기에 따르면 아라비아는 지리적으로는 하나의 반도이지만 역사적, 정치적으로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내용을 완벽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지역에 관한 책에 워낙 적어서 무척 귀한 독서 체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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