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6년 여름 어느 날. 진평강 하류에 두 구의 시체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도담의 아버지 창석이고 다른 한 사람의 해솔의 어머니 미영이다. 그로부터 1년 전인 2005년. 저수지와 계곡으로 유명한 진평에 해솔과 미영이 이사 온다. 소방관인 창석이 물에 빠진 해솔을 구한 것을 계기로 네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문제는 도담과 해솔이 서로 좋아하게 된 것처럼 창석과 미영도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도담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뿐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정대건 작가의 장편 소설 <급류>는 2022년에 출간되었으나 최근에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나는 이 책의 존재만 알고 있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보고 궁금해서 뒤늦게 읽었는데, 과연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읽은 사람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도담과 해솔이 처음 만난 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까지의 일들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린다. 고등학생인 도담이 도시에서 온 전학생 해솔과 사랑에 빠지는 초반부는 마치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다. 비록 두 사람 앞에 대학 입시라는 장벽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쯤은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벽이 나타나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도담의 아버지 창석과 해솔의 어머니 미영 역시 서로 좋아한다는 것. 남편이 없는 미영과 달리 창석은 아내가 있으므로 이들의 연애는 사실상 불륜이다.


이조차도 도담과 해솔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창석과 미영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둘의 관계는 심각하게 악화된다. 도담에게 해솔은 자신의 어머니를 배신한 아버지와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아들이고, 해솔에게 도담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남자의 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첫사랑이자 서로가 간직한 상처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고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초의 이별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몇 번의 연애를 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털어놓거나 분명히 이해받지 못하고, 결국 서로에게 돌아갔다가 다시 멀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소설 후반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두 사람은 어릴 때 잠깐 사귀었다 헤어진 사이에 그쳤을지도 모른다고. 그 일 때문에 풋사랑에 불과했던 감정에 분노와 증오, 후회와 미련 같은 감정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불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이 온전히 사랑이기만 한 것일까. 나를 지켜주고 완성한다고 여기는 그 사람이 사실은 나를 주저 앉히고 심지어는 파괴하는 사람은 아닐까. 곱씹을수록 복잡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는 계절의 소중함을 몰랐다. 봄 되면 꽃이 피고 여름 되면 비 오고 가을 되면 단풍 들고 겨울 되면 눈 오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나이가 든 지금은 계절만큼 정확한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결정은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데 반해 자연은 철마다 확실히 싹을 틔우고 잎을 떨군다. 일찍이 이를 깨달은 조상들은 한 해를 4계절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24절기로 나누어 각 계절의 흥취를 더욱 촘촘히 즐겼다. 각각의 절기에 붙인 입춘, 우수, 경칩, 춘분 같은 이름들과 동짓날에 팥죽 먹기 같은 풍습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김신지의 산문집 <제철 행복>은 저자가 절기별로 실천하고 있는 자신만의 행복 루틴을 소개하는 책이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저자는 도시 생활을 동경했다. 그런데 막상 도시 생활을 해보니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시골에선 당연한 풍경이었던 꽃과 나무가 도시에선 너무도 귀했다. 어릴 때는 지겹고 귀찮기만 했던 농사 일과 나물 캐기 같은 연례 행사가 그리웠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을 더 자주 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24절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거창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어렵지 않다. 벚꽃 피면 벚꽃으로 유명한 장소에 들르고, 간 김에 제철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제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정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27일은 소설(양력 11월 22일경) 무렵이다. 찾아 보니 소설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겨울 기분이 들면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있어서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소설에는 김장을 담그거나 보리나 밀, 마늘을 심는다는데 마침 우리 집도 내일이나 모레 김장을 할 예정이다. 내 생일은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 직전인데, 올해는 대설이 오기도 전에 큰 눈이 내렸다. 대설 무렵에는 방어 등 겨울철 물고기 잡이가 활발하다고 한다. 이번 생일에는 방어회를 먹어볼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 이연이 말하는 창작에 대한 이야기
이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예술가가 되기를 포기한다. 예술을 전공한 아이들 중에서도 전업 예술가가 되는 사람은 한줌이다. 그만큼 예술의 길은 어렵다. 아니, 예술로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점에서 미술 전공자 이연의 성공은 여러 예비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저자는 미대 입시를 거쳐 미대에 진학했다. 예술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예술하면 밥 먹고 살기 어렵다 등등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저자는 졸업 후 창작이 아닌 취업의 길을 택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신의 채널에 올린 드로잉 영상 몇 편이 '대박'을 쳤다. 자신의 그림이 돈이 된다는 걸 안 저자는 이후 전업 유튜버로, 작가로, 강연자로 변신했다. 예술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예술하면 밥 먹고 살기 어렵다던 주변 사람들의 말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기적'이다.


이연이 2023년에 발표한 산문집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를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창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육하원칙에 맞추어 설명한다. 왜 창작을 하는가, 언제 하는가, 어디서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 무엇을 하는가, 누가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가 저절로 저자의 창작론, 창작 루틴 등을 알 수 있는 구성이다. 


창작자로 살려면 일단 자신을 창작자로 믿어야 한다. 창작자가 되는 데에는 특정한 자격이나 커트라인이 필요하지 않다.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다면 일단 아무 선이나 그어보자. 계속 그리다 보면 더 잘 그리는 법을 찾게 되고, 찾다 보면 자신에게 적합한 화풍을 발견하게 된다. 학교 공부나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창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 그림 일기라도 그려보자. 실제로 저자는 힘들게 입시를 통과해 미대를 나온 자신이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게 답답해서 그림 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하는 습관은 이후 글쓰기, 영상 제작, 저서 출간, 강연 등으로 이어졌다.


창작자가 되고 싶은데 창작의 원천이 되는 영감이 없다면 영감이 생기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영감을 찾아야 한다. 안 가본 동네에 가보거나, 안 먹어본 음식을 먹어보거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친구의 결정을 따라보는 식으로 자신의 틀을 깨는 선택을 해보는 것이 좋다. 여행도 좋지만 여건이 안 된다면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 서점, 화방 등에 가보는 것도 좋다. 창작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쓸모 없는 일이 아니다, 고흐처럼 잘 그릴 수도 없으면서 고흐의 삶을 불행하다 여기는 건 잘못이다 같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절친에게 고백받은 이야기
카모가와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 쿠리하라는 어느 날 황당한 일을 겪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11년 간 절친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을 떠난 모모세가 유령이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 모모세로부터의 충격적인 고백 - "쿠리하라 좋아해." 갑자기 왜 이러느냐고 묻는 쿠리하라에게 모모세는 죽고 나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어져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 모모세에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일단 게임이나 하자고 말하는 쿠리하라. 이후 모모세는 성불을 하기는커녕 쿠리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데...


카모가와 케이의 <죽은 절친에게 고백받은 이야기>는 죽어서 유령이 된 절친으로부터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BL의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한 명은 인간, 한 명은 유령이라서 수위 높은 장면은 없다. 단편 <타케무라와 마츠다>는 대학교 1학년인 마츠다가 입주한 원룸의 전 주인인 타케무라의 유령을 만난다는 설정이다. 낯선 환경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유령이라도 곁에 있어주니 오히려 좋다는 마츠다를 보니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보너스 만화인 <모모세와 쿠리하라>는 두 사람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린다. 일종의 프리퀄로, 이 만화를 읽고 나면 본편의 감동이 더욱 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인이 나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 소중해
마에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회사에 다니는 쿠레노 모미지와 후지미야 스미레는 사실 비밀 연애 중이다.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이 사내에 알려지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봐 둘만의 비밀로 하는 건데 좀처럼 숨기기가 어렵다. 특히 모미지는 누가 "후지미야 씨는 얼굴은 예쁜데 다가가기 어려운 성격이라 별로"라고 말하면 '스미레가 집에선 얼마나 귀엽고 상냥한데'라고 바로 반박하고 싶다. 그런 모미지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집에서 만나는 스미레의 환한 미소와 귀여운 애교다. 회사에서는 무표정인 스미레가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귀여운 모습에 모미지는 점점 더 비밀을 지키기가 힘들어지는데...


마에바의 <애인이 나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 소중해>는 비밀 사내 연애 중인 커플의 일상을 그린 오피스 배경의 로맨스 만화다. 회사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자기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 여자친구 때문에 (좋은 의미로) 힘들어 하는 남자친구 모미지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밀 연애 중인 회사에서의 아슬아슬한 텐션과 둘만의 공간인 집에서의 해방감이 이야기에 완급을 형성하며 재미를 더한다. 두 사람의 연애 계기를 그린 에피소드가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모미지의 캐릭터가 사뭇 달라서 놀랐고 스미레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권으로 완결되어 아쉽다(더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