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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미 투 헬 - Drag Me to He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백하건대 나는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극장에서 내 돈 주고 공포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본 것은, 얼마 전 <천사와 악마>를 보러 갔을 때 예고편을 봤는데,
주인공의 캐릭터와 줄거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크리스틴(알리슨 로먼)은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은행원이다.
크리스틴은 어느 날 상사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출금 상환을 연장해달라는 노파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랬더니 그 노파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악마 중의 악마인 라미아의 저주를 퍼부었고,
크리스틴은 3일 동안 살아있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의 상황에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고, 그녀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이 영화를 극장에서 제대로 보리라 마음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상은 별 네 개.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한 것은 극도의 공포나 놀라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인정상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지만 승진을 하려면 상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소시민적인 갈등,
그리고 그 갈등에 굴복한 주인공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역시나 주인공은 저주에 걸려 배설물이 쏟아지고, 벌레가 몸 속으로 들어가고, 코피를 분수처럼 뿜는(!) 등
상상하기도 힘든 괴로움을 겪었다. 가지고자 했던 모든 것을 눈 앞에서 놓친 것은 물론, 가지고 있던 것마저 빼앗겼다.
얼마나 지독한 저주에 걸렸으면 영화 제목이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이겠는가.
"이렇게 살려두느니 차라리 날 지옥으로 데려다 줘!"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왜 하필 크리스틴에게 이런 시련이 다가온 것일까.
상사, 동료직원, 남자친구 어머니처럼 당장이라도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싶은 사람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들보다 덜 이기적이고 덜 못된 크리스틴은 왜 이런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저주에 걸렸다는 크리스틴의 믿음이 이런 고난을 부르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틴은 원래 승진에 대한 압박감과 동료와의 경쟁, 남자친구의 부모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등 욕망이 내재된 상태였다.
그런데 가엾은 할머니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할머니의 저주가 자극제가 되어
스스로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자책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고간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틴이 겨우 저주에서 벗어났다고 믿었을 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저주가 여전히 유효함을 알게 되고나서 다시 공포를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맞닥뜨린 크리스틴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크리스틴은 이성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는 커녕, 점술사의 말만 믿고 그가 알려주는 방법을 따르느라 3일 내내 안절부절 못했고,
공포가 찾아오면 '난 상사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에요'라며 울부짖었다. 때로는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슬픔을 잊으려 노력(?) 하기도 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저주)을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비이성적인 판단에 나를 맡기고,
남의 핑계를 대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이런 대응이 어쩐지 나와 너무나도 닮은 것 같아서
무서우면서도 슬펐고 우스웠다. (나도 차라리 지옥으로 데려다 줘ㅠㅠ)
영화 리플렛 뒷면에 이런 문구가 써있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극한의 공포! 평범한 일상을 뒤흔든 두려움의 실체를 확인하라!"
결국 공포라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만드는 것이고, 평범한 일상과 비이성적인 판단이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