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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평점 :
"내년에 대학 졸업하면 뭐 할 거니?" 친척 어른이 물으신다.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는 내 옆에서 다른 어른들이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드신다. "당연히 직장에 들어 가야지! 근데, 정외과 나와서 어디 취직하니?" (그러게요) "요즘은 공무원 시험이 대세야." (이미 대세인데, 저까지 따를 필요 뭐 있나요) "여자는 선생님이 최고다. 교직이수는 했니?" (학점 따기도 바빴어요)
걱정이 되어 하시는 소리겠지만, 당사자인 나의 귀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우선 '대학 졸업'과 '취업'의 상관관계를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대학에서 취업을 잘 하는 방법 내지는 취업의 당위성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암기식 교육의 폐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지, 사회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등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이 전제되어야 직장에 들어 가든가 공무원 시험을 보든가 하는 것 아닌가?
왜 내게 그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고민의 답을 얻었느냐고 묻는 어른은 없는걸까?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한다고 믿는 관습 때문일 수도 있고, 타자의 고민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야 정신적인 수양도 가능하다는 유물론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제대로 된 철학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는 철학과 일상을 접목한 철학 입문서다. 저자인 황상윤은 철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반인들이 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뜬구름 잡는 철학'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자의 사상들이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책을 읽으며 철학이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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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이고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결국 생각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삶을 만들어 나간다. 즉 다른 철학이 다른 삶을 만든다. (p.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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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철학 사상을 설명함에 앞서 '짬뽕을 먹을까, 자장면을 먹을까?', '송혜교와 전지현 중 누가 더 예쁜가?', '슈퍼맨은 인간일까, 아닐까?' 하는 문제들을 던진다. 쉬워 보이지만 금방 답할 수 없다. 금방 답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알기는 어렵다. 답이 정답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근거가 필요한데, 그 정당한 근거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일 수도 있고, 도덕적인 관습일 수도 있고, 개념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며, 이는 또 다시 정당한 근거를 정당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책은 이토록 어렵고 복잡한 철학적인 사고를 어렵고 복잡하게 쓰고 있지만, 이 책은 가벼운 소재와 친근한 어투로 유쾌하고 풀어썼기 때문에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철학, 인간, 도덕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하여 유물론에서 이어지는 경제, 그리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철학은 언뜻 우리네 삶과 동떨어진 문제처럼 보이고, 경제나 정치처럼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학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제와 정치는 철학에 기반하고 있으며(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자였고, 정치학의 원래 이름은 정치'철학'이었다), 하물며 과학과 수학 같은 자연과학도 철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초기 과학은 종교가 아닌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됐다.)
'철학이 내 삶의 나침반이듯이 독자들도 이 책 속에서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나침반으로 삼을 만한 가치관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당부처럼 살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직업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철학에 대한 고민은 '나침반'처럼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전공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다. 어떤 학문을 공부해도 철학과 이어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는 그런 갈증과 미련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