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방이라는 말이 참 좋다. 풀 해(解), 놓을 방(放)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상상만 해도 가뿐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그러나 무엇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막막함과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해방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지탱할 것을 마련해야 한다. 정신적인 지지대로 삼을 만한 것 중에는 책이 있다. <해방의 밤>의 저자 은유 역시 그랬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초보 엄마 시절 유아차를 끌고 집 근처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추억을 소개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도서관 책기둥 사이를 누비던 그 시절의 저자는 몇 년 후 자신이 유명 작가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자신의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어준 책들을 소개한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해 이십 대 중반에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저자는 당시 자신이 얼마나 어리고 젊은지 몰랐다. 그랬던 저자에게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 책이다. 왜 남편의 노동, 아빠의 노동은 자상함의 발로이고 특별한 일로 찬사를 받는데 아내의 노동, 엄마의 노동은 당연한 희생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폄하되는가. 왜 아들에게는 더 주고 덜 받는 것이 당연하고 딸에게는 덜 주고 더 받는 것이 당연한가.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늘 책 안에 있었고, 책을 읽으며 저자는 현실을 곧바로 바꿀 수는 없어도 더 나은 미래가 올 때까지 버틸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덧 두 아이를 다 키우고 오십을 넘긴 저자는 최근 '간헐적 자취'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자식들이 자취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자신은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늦기 전에 혼자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한다. 자취에 관한 책은 많지만 비혼 무자녀에 살림 경험도 적은 사람이 쓴 책이 대부분인데, 만약 저자가 자취에 관한 책을 쓴다면 기혼 유자녀에 임출육 경험자이고 살림 실력도 만렙이라서 기존 책들과는 다른 내용이 나올 것 같다. 저자의 또 다른 해방기(記)를 기대해 봐도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아닌 여행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시모토 바나나는 나에게 여러 의미로 특별한 작가다. 부모님이 사주시는 책이나 학교에서 읽으라고 하는 책만 읽었던 중학생 시절. 집 근처 서점에서 예쁜 표지에 혹해 <키친>, <암리타> 같은 소설을 사서 읽었는데 그 책들의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였다.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내가 몰랐던 세계가 이 책 안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일본 소설 읽기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해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등으로 취향을 넓혀갔다. 지금은 일본 소설을 그때만큼 열심히 읽지 않지만, 그 시절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이 나오면 옛정으로 읽곤 한다.


<여행 아닌 여행기>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2012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원제는 <人生の旅をゆく2>. 1권은 <매일이,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2017년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제목만 보고 여행 이야기도 있고 여행 아닌 이야기도 있겠구나 짐작했는데 과연 그랬다. 서민 동네 출신인 저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시 경관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것에 불만이 많다. 새로 지은 고층 건물이 늘어나면 부동산 업자들은 좋겠지만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어울려 살아온 이웃 관계가 무너지고 소상공인의 형편도 어려워지는 등 여러모로 안 좋은 점도 많기 때문이다.


여행을 즐겨 하는 저자는 외국에 갈 때에도 그곳의 이른바 로컬 문화에 눈길이 간다. 저자가 특히 좋아하는 여행지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그리스 미코노스섬, 이탈리아 카프리섬 등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자연 경관과 현지 문화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사잔 올스타즈, 오바케의 Q타로, 마쓰우라 야타로 등에 관한 글도 흥미롭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글도 있고, 동물 및 식물과 어울려 사는 삶, 육아의 기쁨과 어려움에 관한 글도 있다. '그때그때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을 찬찬히 헤아리자'라는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한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닐 터. <하필 책이 좋아서>는 책을 너무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은 세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은 산문집이다. 공저자 중 김동신은 돌베개 출판사 디자인팀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동신사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신연선은 출판사 홍보 기획자, 온라인 서점 MD, 독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작가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다. 정세랑은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소설가다. 에세이 형식을 취하지만, 책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거친 세 사람의 실제 경험을 통해 한국 출판계의 '내부 사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 정세랑은 이 책에서 저자의 입장을 들려준다. 요즘은 신간이 나오면 굿즈를 제작하고 리커버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환경을 걱정하는 저자 입장에서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소위 인기 작가가 되면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원고료는 몇십 년째 그대로인 데다가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강연, 심사, 외부 원고 등 다른 일들을 하다 보면 집필에 집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작가는 연예인도 아닌데 인터넷에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가 온갖 악플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고, 스토커 등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경호를 받기는 어렵다. 웹소설, AI가 쓴 소설 등 디지털 기술과의 경쟁 역시 저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북 디자이너 김동신은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북 디자인의 세계를 상세히 소개해준다. 북 디자인 하면 책 표지 만드는 일을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 북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책 표지 만드는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본문 글자를 왼끝맞춤으로 정렬할지 아니면 양끝맞춤으로 정렬할지 정하는 일부터 책등 디자인, 출판사 로고 디자인도 전부 북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놀랐다. 이른바 'PPT로 한 것 같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책이라는 매체는 물성을 지닌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미감 또는 취향을 만족하는 시각적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다.


프리랜서 작가 신연선은 출판사 홍보 기획자, 온라인 쇼핑몰 도서 MD로 일한 경험을 들려준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 도서 MD 시절의 이야기가 강렬했다. 매출 경쟁이 심한 건 온라인 서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도서 이외의 다른 품목들도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도서 MD는 경쟁사뿐 아니라 타부서와도 경쟁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압박에 놓인다. 더욱이 이 시절은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이라서 매출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고, 그것이 나중에 죄책감으로 돌아왔다고. 그런 저자가 여전히 책의 곁에 있는 건, 출판사 재직 시절 옥상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했던 친구 정세랑의 존재 덕분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읽아웃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금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수천 권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서가 아직 유효한 이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김유태의 <나쁜 책>은 동서고금의 금서를 소개하는 책이다.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는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어떤 책을 금서로 지정할 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손상을 입힐 만한 책에 대해 주로 금서라는 딱지를 붙인다.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팡팡 <우한일기>,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그 권력이 정치 권력이 아닌 종교 권력, 젠더 권력인 경우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니코스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미셸 우엘벡 <복종> 등은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에 위배되거나 종교적 갈등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넬리 아르캉 <창녀>,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마광수 <운명> 등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금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배경과 이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덕분에 금서가 된 책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작가,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나라의 역사와 정세까지 알 수 있는 점이 유익하다.


재미있는 점은 (금서를 지정하는 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금서가 금서 지정을 통해 더 유명해지고 책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팡팡의 <우한일기>이다. 중국 작가 팡팡이 코로나 19 확산 초기 봉쇄된 우한의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출간 금지 조치를 당하고 중국작가협회에서 작가를 제명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큰 관심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년이 3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년이> 3권은 <춘향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매란국극단의 정식 연구생이 된 정년이 규칙을 어기고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들켜서 국극단에서 쫓겨나는 내용이 나온다. 국극단을 나온 정년은 가수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방송국 PD의 말에 혹해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이때 만나는 귀인이 패트리샤 김이다. 드라마에선 패트리샤 김이 이혼을 했다는 정도만 나오는데 원작에선 남편의 폭행으로 얼굴을 다쳐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어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된 패트리샤 김을 정년이 도와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으로 나온다.


3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방자 연기 이후 기고만장해 있는 정년에게 선배 도앵이 훈계하는 장면이다. 도앵은 다른 단원들에게 <자명고> 오디션에 같이 들어가 달라고 부탁하라면서 말한다. "어떻게 합을 맞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거냐? 설마 네가 천재라서? 그저 서 있는 게 다인 촛대 역을 수십, 수백 번 연습한 애들이야. 그애들이 들인 시간, 노력, 열정이 네 방자를 '받아'준 거다. 네가 방자를 훌륭하게 해낸 건 그애들이 있어서야." (<정년이> 3권 61-2쪽) 정년이 '군졸1' 역을 맡은 것도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면서 더 겸손해지라는 도앵의 뜻이 담긴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선 이 부분이 생략되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