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2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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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2권은 자선공연 <춘향전> 무대에서 방자 역할을 맡게 된 정년이 난생처음 해보는 남자 연기를 어떻게 해낼지 고심하는 과정이 나온다.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고사장'이다. 정년이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파스텔 다방의 단골손님인 고사장은 여자만 보면 치근덕거리는 행실 때문에 정년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정년은 고사장이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힌트 삼아 생애 첫 남자 연기를 해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고사장의 명대사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 이성적이고 용감하고 근육질인 남자와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가녀린 여자.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를 연기하며 살지. 국극 배우처럼. 하지만 평범한 삶 어느 날, 어떤 사람은 느끼고 말아. '피곤하다', '답답해', '이건 내가 아냐', '이 지긋지긋한 연극 때려치우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될까?' 돼. 내가 그 증거야." (<정년이> 2권, 103-6쪽) '남자됨'과 '여자됨'이 천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며, 배우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남자 혹은 여자를 연기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은 정년은 여성인 자신도 남자를 연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자신만의 방자 연기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드라마 <정년이>를 보기 전에 만화 <정년이>를 읽을 때에는 국극 장면이 나올 때 배우들의 노래와 춤, 연기를 멋대로 상상하며 읽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만화를 읽을 때에는 배우들이 들려주고 보여준 노래와 춤, 연기가 머릿속에 떠올라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만화를 읽을 때에는 흐릿하게 인식되었던 이야기 전개와 인물들의 관계 등도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만화를 읽으니 훨씬 더 명료하게 보였다. 드라마 <정년이>든 만화 <정년이>든 하나라도 재미있게 보셨다면 다른 형식으로도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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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1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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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정년이> 만화책 보는 재미에 빠져 살고 있다. <정년이>를 웹툰으로는 안 보고 만화책으로는 4권까지 보다 말았는데, 드라마 <정년이>를 보면서 원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권까지 전부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 <정년이>와 드라마 <정년이>는 같은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원작 <정년이>가 '여성'에 집중했다면 드라마 <정년이>는 '국극'에 집중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정년이>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여성 국극의 재미, 화려함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원작 <정년이>는 여성이 여자도 남자도 연기하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관념이 지닌 허구성, 폭력성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정년이> 1권은 1956년 목포에서 생선을 팔며 살고 있던 소녀 윤정년이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가 기적적으로 발탁되어 서울 최고의 여성 국극단인 매란국극단의 단원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 <정년이>와는 다른 설정이 많이 보이는데, 가령 원작의 정년에게는 언니가 아니라 여동생이 있다. 정년의 어머니 채공선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정년이 번 돈을 전부 헌금으로 내서 정년의 속을 뒤집는다. 드라마에선 문옥경이 정년을 발탁한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국극단 단장 강소복의 지인이 정년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다.  


1권의 하이라이트는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백도앵에게 미움을 산 정년이 도앵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데 드라마에선 다 잘렸다. 원작 <정년이>에서 도앵 캐릭터가 정말 멋있는데 드라마에선 비중이 많이 축소되어 아쉽다. 단행본마다 특별부록으로 '매란국극단의 일상생활'이라는 SD캐릭터 만화가 실려 있는데 이 만화도 정말 귀엽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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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일 3 - 완결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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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웹툰=만화'인 줄 안다는데, 내가 어릴 때는 인쇄 만화밖에 없었다. 더욱이 나는 <보물섬>, <나나>, <파티> 같은 만화 잡지로 만화를 처음 접했고, 단행본 만화는 혼자서 도서 대여점을 드나들 수 있게 된 후에나 읽었다. 그사이 도서 대여점이 없어지고 만화 잡지도 다수 폐간되어 현재 한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만화 잡지의 수가 몇 개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나마 남아 있던 단행본 만화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는 웹툰 시장에 밀려 축소되는 형편인 것 같아 인쇄 만화의 팬으로서 안타깝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동경일일>은 만화, 그 중에서도 인쇄 만화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감동하면서 읽을 만한 작품이다. 23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만화 편집자 시오자와 카즈오는 담당했던 만화 잡지가 폐간된 후 책임을 지고 퇴사한다. 이참에 그는 만화 일에서 아예 손을 떼려고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만화가들을 한 명 한 명씩 만나면서 역시 만화를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결국에는 직접 만화 잡지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시오자와가 직접 만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업계 사람들은 환영하는 기색보다 걱정하는 기색을 더 많이 비친다. 자본과 유통이 안정된 대형 출판사에서 만드는 만화 잡지도 매출이 안 나와서 폐간되는 마당인데, 전성기를 지난 만화가들을 데리고 중년의 프리랜서 편집자가 만드는 잡지가 뭐가 그리 대단하겠느냐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적잖다. 시오자와와 만화가들도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번민한다. 


우여곡절 끝에 잡지를 완성한 시오자와는 잡지를 어디서 어떻게 팔지 고심한다. 예전에는 대형 출판사 소속이라서 편집부가 책을 만들면 영업부가 영업을 맡아주었는데, 프리랜서인 지금은 편집도 영업도 시오자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서점업계도 불황이고 예전처럼 만화 잡지를 파는 서점, 문방구가 많지도 않은 형편이라 판매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말은 다행히 밝은 편인데 실제 인쇄 만화 업계의 현실과 미래도 이렇게 밝은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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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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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수아는 유복한 부모 슬하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학교생활도 원만하게 하고 있다. 수아의 가장 친한 친구는 윤서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동안 단짝으로 지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윤서와의 관계는 대체로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서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수아의 눈 앞에서. 윤서의 죽음은 수아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충격을 주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과 친구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수아를 계속 힘들게 했다. 그래서 수아는 1년 후 자신도 윤서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설정한 시한부 인생의 결과는 무엇일까.


백은별 작가의 소설 <시한부>는 여러 번 나를 놀라게 한 작품이다. 첫 번째는 제목이다. <시한부>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말기 암 같은 병에 의해 원치 않게 죽음을 앞두게 된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젊고 건강한 여자 중학생이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내용이라서 놀랐다. 두 번째는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중학생인데 이들 중 다수가 죽음을 바란다는 점이다. 윤서와 수아뿐 아니라 이들의 주변 친구들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해 또는 자살 충동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작가의 나이다. <시한부>를 쓴 백은별 작가는 2009년생, 올해로 15세다. 작가 자신이 교실에서 보거나 겪은 청소년들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용이 생생하고 작가의 메시지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주인공 수아와 마찬가지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수아가 느끼는 감정적 고통이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이 글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에게도 읽어주고 싶다.


"윤서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생각날 때면 많이 그리워진다. 함께한 모든 기억이 그냥 많이 소중한 기억이다. 보고 싶다. 그냥 그때로 돌아가서 한 번 더 느끼고 싶다. 다시 살아 돌아와 달라는 말도, 내가 시간을 되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겠다. 그냥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어리고 순수했던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고 싶다. 더 소중하게 간직할 텐데." (270쪽) 이별 후에 드는 감정과 생각이 희미해진 후 결국 그리움만이 남는다는 걸 작가는 어떻게 알았을까. 통찰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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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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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 시대의 고비키초. 극장과 유곽이 밀집해 있다는 이유로 악처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정월 그믐날 저녁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여인의 옷을 입고 나타나 칼을 휘두른 소년의 이름은 기쿠노스케. 그로부터 2년 후, 한 사내가 고비키초에 나타나 그 날의 사건을 목격한 자들을 만나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듣는다. 이미 지나간 일인 데다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느냐며 손사래치던 이들은 그 날의 사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준다. 과연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나가이 사야코의 소설 <고비키초의 복수>는 2023년 나오키상,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마쓰이 게사코의 소설 <유곽 안내서>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일단 에도 시대의 유흥가를 주 무대로 삼은 점이 그렇고, 살아온 배경도 종사하는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그렇다. 공교롭게도 <유곽 안내서> 역시 나오키상 수상작(2007년)이다. <고비키초의 복수>를 읽으면서 구성과 내용에 흥미를 느꼈다면 <유곽 안내서>도 읽어보면서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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