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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재킷 ㅣ 창비청소년문학 127
이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아침부터 비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고은은 교실에 도착해 몇몇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빈 자리의 주인은 키 크고 조용한 장진, 반장인 노아, 그리고 전학생 태호. 고은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고 같은 반인 것 외에는 공통점도 없는 이들이 동시에 결석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직감한다. 때마침 고은의 머릿속에 떠오른 전남친 천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갑자기 전학 간다며 이별을 선언한 천우를 잊지 못하고 천우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던 고은은 어제 천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우리 요트 탈래?"라는 글이 올라왔던 걸 떠올리고 초조함을 느낀다.
<푸른 사자 와니니>, <호수의 일>의 작가 이현의 신작 장편 소설 <라이프 재킷>은 장난 반 허세 반으로 올린 SNS 게시물 때문에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겪게 된 여섯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문제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린 천우는 부모님 사업이 망해서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학교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가족의 보물이자 자랑이었던 요트마저도 압류되어 더는 탈 수 없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못마땅한 천우는 홧김에 "우리 요트 탈래?"라는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고, 이걸 본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서 총 여섯 명이 출항을 하게 된 것이다.
출항 직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이 만화 <원피스>의 해적들처럼 신나고 즐거운 모험을 할 줄 알았다. 세계 일주까지는 못해도 가까운 일본이나 대마도, 제주도에 갈 수도 있고, 어디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드넓은 바다 위에서 한동안 푹 쉬다가 돌아오면 그 자체로 특별한 추억이 될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는 다르다. 딱 한 시간만 요트를 타자고 했던 약속은 갑자기 퍼진 안개 때문에 지킬 수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배 안팎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아이들은 점점 더 패닉 상태에 빠진다. 바다를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는 건 어쩌다 한 번 바다에 놀러 가는 사람의 오해이자 편견임을 보여주는 전개다.
십 대 청소년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속절없이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월호 사고 자체보다는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비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설의 대단원에서 결과의 책임을 두고 아이들이 설왕설래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확신이 더 강해졌다. 누구는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로 책임을 피하고, 누구는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워서 차라리 침묵하는 편을 택하는 모습이 너무나 친숙했다. 그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이나 사고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 처벌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나라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몇몇 등장 인물의 선택과 행동이 더욱 영웅적이고 이타적으로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누구 한 사람이 영웅이 될 필요가 없이 모두가 조금씩 용기를 내면 어떨까,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을 발휘할 필요 없이 모두가 조금씩 더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좁은 시야로 보면 개개인의 삶이 각자 배 한 척씩 타고 경쟁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모두가 한 배에 타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