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필법 교양 100그램 3
유시민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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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는 끝이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여 활용하는 것 자체가 능력이 되고 자산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시 공부, 취업 공부, 자격증 공부만을 공부로 여기고 그 이상의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유시민의 <공감필법>은 입시 공부, 취업 공부, 자격증 공부 이외의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서가 공부로 이어지고 공부가 글쓰기로 연결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공부의 원점은 독서다. 공부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만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있어 아직까지 책만한 수단은 없다. 독서를 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읽지 말고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텍스트에 담긴 그대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다. 내용의 오류를 찾거나 글쓴이의 견해에 반박하는 것은 일단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적어도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에 최대한 이입해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어야 비평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자기 자신도 독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을 쓸 수 있다.


독서를 통해 공부를 했다면 그다음에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공부한 내용을 글로 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문자 텍스트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이 담긴 책을 여러 번 정독하고, 귀찮아도 스마트폰 대신 수첩에 메모하며, 그렇게 쓴 메모를 열심히 모아서 컴퓨터에 정리하고 글로 완성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 책에는 다독가로도 유명한 저자가 읽기를 권하는 책들도 다수 소개 및 인용되어 있다. 올겨울 한 권씩 찾아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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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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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 중에서도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을 좋아한다. 범죄 소설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준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비롯해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시기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소설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최근에야 완독한 스웨덴 작가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의 범죄 소설 중에도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 많은데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애정을 가진 작품은 아직 못 만났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범죄 소설 <가연물>의 주인공 경찰 가쓰라는 어떨까. 가쓰라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가연물>의 후속편이 나오면 읽어볼 것이다.


<가연물>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일본 군마 현경 본부 형사부 수사1과의 가쓰라 경부는 현내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을 수사하느라 사계절 내내 바쁘다. 봄에는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인질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쁘고(진짜인가), 여름에는 유명 산책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의 주인을 찾느라 바쁘고, 가을에는 주택가에서 일어난 강도치상 사건의 범인을 찾느라 바쁘고(<졸음>),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일어난 조난 사고를 처리하거나(<낭떠러지 밑>) 쓰레기 수거장 연쇄 화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느라 바쁘다(<가연물>).


가쓰라가 바쁜 건 그를 기다리는 사건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몸과 머리를 다 써서 일하는 경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쓰라는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유족과 용의자는 물론이고 목격자와 주변인들도 샅샅이 찾아내 직접 만나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상을 믿지 않지만 사람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요한 증거를 최대한 확보한 다음에는 혼자서 오로지 두뇌만으로 모든 가설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진다. 가능한 모든 명제들을 나열한 다음 하나씩 진위를 확인하며 정답을 가려내는 과정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가쓰라는 해리 홀레나 마르틴 베크 같은 안티 히어로적인 경찰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상부에서 탐탁지 않은 지시가 내려와도 군말 없이 순응하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카페 오레와 달콤한 빵으로 당 충전을 하면서 회복한다는 점에서 히어로보다는 소시민에 가까운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사건을 대하는 이성과 어떤 압박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근성, 결국에는 진범을 찾아내는 유능함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대표작 <빙과>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후속편이 나온다면 잊지 않고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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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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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소리네 담임 선생님은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되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하는 게임을 시켰다. 채운이 전학 온 날에도 담임 선생님은 어김 없이 그 게임을 시켰다. 나는 외동이다, 나는 작년에 다리를 다쳐 축구를 관뒀다, 나는 돼지갈비를 싫어한다... 무심히 채운의 말을 듣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채운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못을 밟아 발을 다친 적이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가끔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렵다... 그리고 ...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


김애란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인 지우, 소리, 채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지우는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엄마의 애인이었던 선호 아저씨와 함께 살다 가출했다.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생겨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채운은 일 년 전에 벌어진 어떤 사건 이후로 감옥에 수감된 어머니와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혼자서 돌보고 있다. 세 사람은 같은 반이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소리가 지우의 도마뱀 용식을 돌보고 채운의 강아지 뭉치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서로 연결된다.


지우, 소리, 채운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가족이나 친구가 없거나, 있어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우는 즐겨 찾는 인터넷 카페에 웹툰을 연재하고, 채운은 영어학습 앱을 열어 자신의 감정을 적는다. 두 매체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점이다. 웹툰(만화)은 허구를 가정하기 때문에 실제의 사건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는 거짓인 척할 수 있다. 영어학습 앱은 문법만 정확하다면 어떤 내용이든 영작할 수 있다. 지우와 채운은 그렇게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각자를 짓누르는 진실의 무게를 견디고 거짓된 현실을 감당한다.


소리에게는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자체가 남들에게 숨기고 있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소리는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림을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남과 접촉해 그의 미래를 알게 되면 침묵을 택하거나 거짓을 알리는 식으로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무당이나 영매처럼 초현실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판타지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청소년 성장 소설의 형태를 빌려 진실만으로 또는 거짓만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이야기 또는 창작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주는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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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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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고정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오랫동안 애정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셀럽 맷 님이 진행하는 <영혼의 노숙자>이다. <영혼의 노숙자>에 자주 출연하는 맷 님의 지인이 몇 명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스트는 굉여 님이다. 굉여 님 특유의 솔직하고 구수한 입담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 굉여 님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제목은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굉여 님이 본명인 전성진으로 출간한 이 책에는 8년 전 그가 처음 독일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일들이 담겨 있다. 


글과 음식을 전공한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음식 잡지 에디터로 활동하다 애인을 따라 독일로 갔다. 그 때까지 독일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두 달 정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어학원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지내며 천천히 독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계약을 종료하게 되는 바람에 서둘러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비용 문제로 원룸은 사치라고 느껴져 다른 사람과 집을 나눠 쓰는 WG, 셰어하우스를 계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 저자의 독일 생활 첫 플랫메이트인 요나스다.


처음에 저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젊은 여성인 저자가 낯선 독일인 아저씨와 한 집에 산다는 것에 걱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요나스와 함께 사는 저자의 고민은 그게 아니었다. 집에서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요나스, 위생 관념이 없어도 너무 없는 요나스, 자꾸 말을 걸고 방 문을 노크하는 요나스... 요나스의 모든 것이 불편했고 불평 거리였지만, 요나스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자꾸만 '요며드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같이 '요며들었다'. 어쩌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기 힘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더 큰 사랑 아닐까.


책에는 요나스 아저씨 이야기 외에도 독일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지만 물가가 높은 독일, 한국에 비해 성소수자 차별은 적지만 인종차별은 만연한 독일 등 독일의 다채로운 면을 알 수 있다. 독일 음식 하면 맛없기로 유명한데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책에 소개된 음식들이 하나 하나 궁금한데 작가님 유튜브에서 만드는 법을 보여주시면 궁금증도 해소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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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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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터스는 완벽한 남자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외모와 농구 선수를 할 정도로 큰 키, 우수한 성적, 점잖은 성격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요소를 모두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내내 외롭고 우울했다. 자신이 태어난 지 엿새 만에 누나가 죽고 그 여파로 부모가 우울의 늪에 빠지면서 윌리엄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기는커녕 자신이 그런 관심이나 애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도 못하고 자랐다. 그랬던 윌리엄의 인생은 대학 진학을 계기로 바뀐다.


농구를 잘한 윌리엄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고 그곳에서 첫사랑 줄리아 파다바노를 만난다. 이탈리아계 부모 슬하에서 네 자매의 장녀로 자란 줄리아는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완벽하게 성취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 윌리엄은 매사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줄리아의 매력에 반해 결혼까지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등을 뒤늦게 깨닫고 우울 속으로 침잠한다. 줄리아 역시 윌리엄이 자신의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실망하고, 급기야 줄리아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지자 도망치듯 윌리엄의 곁을 떠난다.


앤 나폴리타노의 소설 <헬로 뷰티풀>은 사이 좋은 네 자매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헬로 뷰티풀>의 파다바노 가(家) 네 자매는 <작은 아씨들>의 마치 가(家) 네 자매와 마찬가지로 성격도 취향도 전혀 다르다. 장녀 줄리아는 리더십이 강한 현실주의자이고 차녀 실비는 책을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이다. 쌍둥이로 설정된 삼녀 세실리아는 타고난 예술가이고 사녀 에멀라인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에 재능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아씨들>에선 로리를 두고 조와 에이미가 연적이 된다면 <헬로 뷰티풀>에선 윌리엄을 두고 줄리아와 실비가 연적이 된다는 점일까.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지만 가족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상처다. 윌리엄의 부모는 물론이고 파다바노 자매들의 부모도 문제가 많다. 파다바노 자매들의 아버지는 사람은 좋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해서 아내와 딸들에게 부담을 주었고, 어머니는 남편을 대신해 딸들을 부양했지만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과 관용 없는 태도로 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김영하 북클럽에 참여하기 위해 읽은 복복서가 책인데, 문제적 부모를 다룬 복복서가의 다른 책 <완벽한 아이>, <어머니의 유산> 등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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