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시작은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소리네 담임 선생님은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되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하는 게임을 시켰다. 채운이 전학 온 날에도 담임 선생님은 어김 없이 그 게임을 시켰다. 나는 외동이다, 나는 작년에 다리를 다쳐 축구를 관뒀다, 나는 돼지갈비를 싫어한다... 무심히 채운의 말을 듣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채운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못을 밟아 발을 다친 적이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가끔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렵다... 그리고 ...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
김애란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인 지우, 소리, 채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지우는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엄마의 애인이었던 선호 아저씨와 함께 살다 가출했다.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생겨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채운은 일 년 전에 벌어진 어떤 사건 이후로 감옥에 수감된 어머니와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혼자서 돌보고 있다. 세 사람은 같은 반이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소리가 지우의 도마뱀 용식을 돌보고 채운의 강아지 뭉치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서로 연결된다.
지우, 소리, 채운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가족이나 친구가 없거나, 있어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우는 즐겨 찾는 인터넷 카페에 웹툰을 연재하고, 채운은 영어학습 앱을 열어 자신의 감정을 적는다. 두 매체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점이다. 웹툰(만화)은 허구를 가정하기 때문에 실제의 사건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는 거짓인 척할 수 있다. 영어학습 앱은 문법만 정확하다면 어떤 내용이든 영작할 수 있다. 지우와 채운은 그렇게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각자를 짓누르는 진실의 무게를 견디고 거짓된 현실을 감당한다.
소리에게는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자체가 남들에게 숨기고 있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소리는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림을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남과 접촉해 그의 미래를 알게 되면 침묵을 택하거나 거짓을 알리는 식으로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무당이나 영매처럼 초현실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판타지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청소년 성장 소설의 형태를 빌려 진실만으로 또는 거짓만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이야기 또는 창작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주는 소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