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슬로우 - 나는 모든 순간의 여행자 일상이 시리즈 8
신은혜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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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루트에 맞춰 삶의 행로를 정하고, 조금이라도 정체 되면 자책하고 낙오될까 두려워 하며 산다. <일상이 슬로우>의 저자 신은혜도 그렇게 살았다고 말한다. 제일기획 카피라이터인 저자는 학창 시절 내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선 조기 졸업을 위해 기를 쓰고,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선 남보다 더 인정받으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랬던 저자가 인생의 행로를 바꾼 건 서른네 살 때의 일이다. 취업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만 했던 저자는 일 년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들은 승진과 재테크에 목을 매는데 나만 한가하게 쉬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평생을 살면서 단 1년도 원하는 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저자는 퇴사 후 1년 간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퇴사 후에 쓸 돈을 모으고, 바다에 갈 걸 대비해 수영을 배우고, 영포자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웠다. 그렇게 준비해서 떠난 곳은 바로 하와이. 그곳에서 6개월을 살고, 다음 6개월을 여행하며 보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신은혜 작가가 이 책을 낸 다음에 쓴 책은 친구와 함께 10년 동안 1년에 하나씩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도전한 기록을 담은 <가능한 불가능>이다. <가능한 불가능>에서 저자가 한 도전 중에 영어 공부, 수영 배우기, 하와이에서 살아보기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 하와이에서 살아보기 편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 아침은 출근을 위한 시간으로만 알았던 저자가 하와이에서 지내면서 아침을 여유 있게 보내는 법을 배웠고, 그 후로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 일출보다 먼저 아침을 기다린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이런 여행. 나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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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의 섬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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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틀랜드 제도는 영국 스코틀랜드 북동쪽에 위치한 100여 개의 섬을 일컫는 명칭이다. 인구도 적고, 오랫동안 사용해 온 언어도 영어와 달랐던 이 지역은 1970년 북해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영국인들의 관심 밖이었다. 영국의 소설가 샤론 볼턴의 데뷔작 <희생양의 섬>은 바로 이 셰틀랜드 제도를 배경으로 한다.


런던의 산부인과 의사인 토라는 셰틀랜드 제도 출신인 남편을 따라 셰틀랜드 제도로 이사한다. 낯선 직장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토라는 어느 날 집 앞마당을 파다가 심장이 없는 여자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곧바로 경찰을 불러 감식한 결과, 죽은 여성은 죽기 얼마 전에 출산을 한 흔적이 있으며, 등 뒤에는 수수께끼의 고대 문자 세 개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경찰은 최초 발견자인 토라를 위로하며 더 이상 사건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산모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을 외면할 수 없다는 책임감에 토라는 경찰 몰래 사건을 조사한다.


토라는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지식과 접근 가능한 정보를 활용해 사건에 대해 알아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토라가 알게 되는 정보는 경찰이 알려주는 정보와 조금씩 달랐다. 토라가 문제를 제기하자 경찰은 토라가 더 이상 조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막고, 심지어 토라의 남편과 상사도 경찰의 편을 든다. 그러자 토라는 순순히 조사를 관두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방해하는 인물들이 모두 셰틀랜드 출신 남성인 점에 착안해 사건의 배후에 셰틀랜드의 숨겨진 역사와 남성 연대의 음모가 있으리라 추측하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이 소설은 최근에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발표한 정세랑 소설가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가로 샤론 볼턴을 들어서 구입하게 되었다. 정세랑 작가의 추천작은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었지만 나는 이 소설도 무척 좋았다. 일단 셰틀랜드 제도라는 배경이 신선하고, 낯선 환경에서 외부인 취급 받으며 겉도는 여성이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라는 점도 공감을 자극했다. 이 소설은 또한 여성들의 연대로 남성들의 연대를 무너뜨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토라 말고도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더 등장하는데, 이들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 힘을 합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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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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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서 사는 사람은 왕족만이 아니다. 적어도 조선 시대에는 왕족을 보필하는 수많은 하인들도 왕족과 함께 궁에서 살았다. 그중에는 어릴 때 궁에 들어와 궁중 여인들의 시중과 잡일을 도맡아 하는 궁녀들도 있다. 현찬양 작가의 소설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은 바로 이런 궁녀들 사이에 오가는 기담으로부터 출발한다.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 소속의 궁녀 백희는 같은 궁녀인 노아에게 나이가 몇인데 세숫물 하나 제대로 못 받아 온다고 지청구를 듣는다. 그럴 만한 게 백희는 원래 남부럽지 않은 가문의 딸이었는데, 오빠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면서 부모가 가산을 탕진하고 종국에는 집안 전체가 몰락하면서 고아 신세가 되는 바람에 궁녀가 되었다. 반면 노아는 고려 시대부터 궁녀로 살아서 말투가 할머니 같다는 뒷말을 듣기는 해도 궁녀 중에 가장 왕실 법도를 잘 알고 몸가짐도 바르다.


그런 백희와 노아에게 어느 날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 한 명이 찾아온다. 그는 바로 교태전의 주인인 중전의 딸 경안궁주다. 올해로 열세 살인 경안궁주는 궁녀들 사이에서 도는, 경복궁 자리가 원래 도깨비 집터였고 그래서 밤마다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에 대해 질문한다. 백희와 노아는 조선의 기틀인 유교 사상에 반하는 괴력난신의 이야기를 어찌 궁주님 앞에서 할 수 있겠느냐며 거부하지만, 경안궁주는 더욱더 강하게 궁녀들을 조른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점점 더 해괴한 사건들을 부르는데...


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은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궁 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궁중 여인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궁녀들만 해도 일견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누구는 고아가 되어 살 길이 막막해 궁녀가 되었는가 하면, 누구는 양갓집 규수로서 가문을 위해 궁녀가 되었다. 궁주들 또한 왕의 총애를 받는지 안 받는지에 따라 궁중 내의 입지가 전혀 다르다. 이러한 차이와 차별로 인한 애환을 기담이라는 형태로 승화한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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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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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생인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마른 몸이 콤플렉스였다. 사람들은 몸이 말랐으니 힘도 약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함부로 대했으며, 자연히 '나'는 누구와 있든 주눅 들고 의기소침한 성격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마른 몸에 대한 콤플렉스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분화되었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것도, 제2차 성징이 늦은 것도, 가슴이 작은 것도, 성 경험이 늦되고 적은 것도 자신의 책임, 자신의 죄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그런 저자에게 어느 누구도 그런 느낌, 그런 생각이 잘못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저자의 불안과 열등감을 점점 더 강화할 뿐이다.


이서수 작가의 <몸과 여자들>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소설이다. 이서수 작가의 작품으로는 <젊은 근희의 행진>을 읽어본 것이 유일한데, 아직 읽지 않은 <헬프 미 시스터>도 그렇고 주로 여성의 '노동'에 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소설은 1983년생인 '나'와 1959년생인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어머니 세대의 수동적이고 폭력적인 성 경험이 딸 세대의 금욕 및 비혼, 비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고 느꼈다. 저자가 들려줄 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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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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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사라진 후 예빈은 예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지 못한다. 유나가 어디서 나쁜 일이라도 당했을까 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한 명이라도 목격자를 확보하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나가 천안에서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유나가 사라진 부천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는 100킬로미터도 넘는다. 예빈은 유나가 그 먼 거리를 혼자서 이동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나의 마지막 목격자를 찾아 간다. 과연 예빈은 유나를 찾을 수 있을까.


임솔아 작가의 소설 <짐승처럼>의 도입부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의 시작 부분처럼 읽히지만, 사실 이 도입부에는 반전이 있다. 문제의 실종된 유나는 인간이 아니라 개다. 그것도 자신이 키우던 개가 아니라 남이 키우던 개. 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다. 엄마를 여의고 여동생 채빈과 단둘이 살고 있는 예빈은 별나라는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데, 이 별나의 엄마가 바로 유나다. 자식들을 전부 입양 보내고 자신은 임시 보호 신세였던 유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빈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발 벗고 유나를 찾는 일에 나섰다. 그때마다 예빈과 함께 행동하는 인물들이 소장과 간호사이다.


예빈이 유나의 실종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이유는 예빈의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 예빈과 채빈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친자매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는데, 친자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예빈이 기억하는 채빈은 어린 시절 내내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엄마와 자신을 괴롭히고 종국에는 가출로 가족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빈은 별나의 엄마인 유나를 보는 마음이 애틋하고, 유나의 딸인 별나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예빈은 피가 섞인 자매이고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살았지만 채빈의 속을 모르겠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실종된 유나를 찾는 과정에서 예빈은 자꾸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진실을 알고 싶어진다. 그 결과 예빈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이 아주 놀라운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도입부만이 아니라 결말 부분도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원래 모든 인간의 마음이 풀기 힘든 미스터리이고, 모든 인생이 죽음을 피해 달려가는 스릴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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