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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평점 :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님들 중 한 분이 바로 고미숙 님이다. 고미숙 작가님은 1960년 강원도 정선의 광산촌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여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면 교수가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미숙 님은 세상으로 나와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를 세우셨고, 10여 년 가까이 '몸, 삶, 글'에 뜻을 품은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책을 쓰고 공부를 하고 계신다. 이력도 멋있지만, 이분의 지식과 삶과 생각이 절절히 녹아 있는 글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에 이런 지식인, 이런 학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출세나 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이분은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계신다. 닮고 싶은 분이다.
아직 고미숙 작가님이 쓰신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너무 좋아서 이번에 구입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이하 동의보감)>, 어머니와 함께 읽고 있는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그리고 이번에 읽은 신간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까지 총 네 권. 이 중에서 <동의보감>,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이 이른바 '동의보감 3종세트'라고 한다. 어쩌다보니 세 권을 전부 읽었고 소장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달성감 내지는 성취감 때문에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아닐까? (조만간 달인 3종세트, 열하일기 3종세트에도 도전하겠습니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동의보감 3종세트'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성격의 책이지만, 원래 작년에 동아일보에서 고미숙 님이 연재한 칼럼에 실렸던 글을 묶은 것이기 때문에 세 권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이고 읽기 쉽다. (<동의보감>과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읽다가 포기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이 책은 <몸과 인문학>이라는 제목대로 현대인의 몸을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 사회, 경제, 운명 등 인문학적인 관점을 통해 성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쓰니 어려워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신문 칼럼답게 스마트 기기 열풍, 성형 중독, 개그콘서트의 인기, 조기교육, 동안 신드롬 등 사회 이슈와 트렌드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이런 이슈들이 <동의보감>에서 다루는 한의학, 그리고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 나오는 사주명리학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를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근대적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근대 서양 학문은 지성과 에로스, 미와 윤리, 냉정과 열정 - 이런 식으로 대립항을 만들었고, 양자는 결코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오해를 심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들이 조화되고 융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고, 자기와 다른 것을 배척하게 되었다. 또한 근대 서양 학문은 몸은 의사가 관리하고, 운명은 종교가 주관하고, 교육은 학교가 담당하고, 생산은 기업이 담당하는 식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분리하고 타자화시켰다. 이로 인해 사람은 병이 생기면 무조건 의사에게 의존하고, 고민이 생기면 종교에 매달리고, 혼자서 배우지 못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노예' 상태로 전락했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치과 진료를 받은 일이 생각난다. 1년 전 이맘때에 진료를 받고 검사차 들렀는데 충치가 있다고 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잘 끝났지만 마음은 영 찜찜했다. 충치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관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1년 사이에 충치가 생겼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통증이 있어서 다시 갔더니 염증이 생겼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치실이 치아 사이에 남아있어서 아팠던 것뿐이었다. 이런 일도 있고 해서 앞으로는 치과 진료를 비롯해 의료 서비스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내 몸을 챙기려고 한다. (왜 부모님, 선생님들이 의대에 가라고 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나 난 수학, 과학을 못해도 너무 못했는 걸...)
<동의보감> 서두에 보면 고미숙 저자님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셨고 그 결과 여러 권의 책까지 내게 되셨다고 한다. 책까지는 못 내더라도 앞으로 이런 책들을 꾸준히 읽으면서 몸에 대해, 내 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