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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만년의 사색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고즈윈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일본이 자랑하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스물두 살에 문단에 데뷔한 이래 일본 전후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1994년에는 <만엔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사회 참여를 활발하게 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 우경화 현상을 규탄하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으며(일본의 우익 세력이 만든 역사 교과서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1970년대에는 한국의 문인 김지하를 구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이라크 민중들을 보호하기 위한 반전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에게는 소설가와 사회활동가 말고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라는 얼굴이다. 그의 장남은 태어날 때부터 뇌에 장애를 지닌 지적장애인이다. 태어났을 때, 아들의 상태는 너무나 안 좋았다. 의사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그 때 고작 이십대 중후반의 나이였을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어쩌면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니......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란 그에게 죽음의 공포가 다시 밀려왔다. 하지만 수술 끝에 아들의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했지만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아들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음악을 통해 그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극적인 경험을 통해 그는 소설가, 사회활동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도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오에의 산문집 <회복하는 인간>을 읽으면서 저자의 다양한 얼굴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1장 '전하는 말'과 2장 '플러스'로 구성되어 있다. '전하는 말'은 그가 2004년부터 2년 동안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으로, 막역한 사이였던 미국의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추모의 글을 비롯하여, 평화헌법 개정 논란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 현상을 일갈하는 내용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는 현실을 규탄하는 근거로 자주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고, 사회는 전쟁으로 인해 무척이나 척박해진 상태였다. 그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어른들은 그가 도쿄대를 졸업해 관료가 되거나 돈 잘 버는 기업가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우경화되는 정부를 위해서 일하고 싶지 않았고, 돈을 탐하지도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손가락질 할 때, 안식처는 오직 책이었다. "저는 전쟁 중에도 전후에도, 성장하여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미궁=숲속에서 그저 책을 읽고 있던 자신이, 조그만 미노타우로스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아이는 입에 물고 있던 책에 의지하여 미궁을 빠져나왔던 것입니다."(p.28) 그러한 소년 오에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는 결국 책을 통해 꿈을 이뤘고, 구원받았다. 모두가 돈과 권력에 미혹되는 시대에, 그만은 책 속의 지혜로 무장한채 꼿꼿하게 양심을 내지르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 지성인의 삶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런데 이뿐이라면 그는 사회적으로 구원받았을 뿐, 인간으로서 구원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로 하여금 새로운 구원을 체험하게 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2장 '플러스'는 아들 히카리의 콘서트를 비롯하여 여러 장소에서 그가 강연했거나 토론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는 히카리의 생후 1년 동안의 체험을 토대로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책을 썼다. 당시 미시마 유키오는 이 책에 대해 "영화는 해피엔딩이어야만 한다는 소리를 들은 감독이 영화를 끝맺는 방법"이라며 비판했다. 저자는 오랫동안 그의 말을 마음에 품고 고민했다. 자신이 정말 과도한 낙관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아들 히카리와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그는 아들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미시마 유키오가 보지 못한 낙관의 세계, 희망의 증거를 그는 살아서 목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의 제목에 '회복'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어려운 시절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회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면 인간은 괜찮다. 그의 아들처럼, 일본 사회도, 그리고 온 세계도 '회복'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문학과 지식이라는 수단으로만 사회를 비판하고 더 나은 미래를 부르짖었다면 턱없이 공허하고 무책임하게 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고백했다. 그래서 깨달음과 감동의 무게가 더욱 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의 '인간'은 아들 히카리뿐 아니라 오에 자신과 인류 개개인을 뜻하는 것 같다. '하 수상한 시절'에 대한 걱정, 개인적인 고민 - 무엇이 되었든, 그의 뜻을 받들어 나도 한번 회복의 힘을 믿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