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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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많게는 수백번씩 다른 사람을 본다. 지하철 안에서 서서 갈 때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정수리를 보기도 하고, 앞서 가는 사람의 등을 보기도 하고, 고개 숙인 사람의 목 뒷덜미를 보기도 한다. 얼굴은 수없이 많이 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다. 자기 정수리를 온전히 본 일이 있는가? 내 등, 내 뒷덜미를 바로 본 적이 있는가? 사진을 찍어서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진이라는 물체를 통해 만들어진 '상[image]'이고, 거울로 본다 해도 그것은 역상, 즉 반전된 이미지다. 얼굴 역시 마찬가지. 내 얼굴을 바로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바로 볼 수가 있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본다. 하지만 내 마음을 보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마치 내 정수리, 등, 뒷덜미, 얼굴을 바로 보는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악한 사람도 자기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뒤에서 험담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저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남을 보듯이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대인관계클리닉 원장 양창순이 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남들은 다 욕하는데 저 혼자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부정적인 자아상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 은근히 주변에 많다.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눈치를 주어도 캐치를 못 하는 사람, 내가 보기엔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만나면 늘 자책하고 하소연만 하는 사람... 어느쪽이든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사람들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자기 모습과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본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해질까? 스스로 편해지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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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바로 '과거 들여다보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읽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제가 바로 과거, 그 중에서도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님에 관한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가정환경, 어린시절, 학교생활 등 과거에 있었던 일과 그로 인한 기억들은 그 사람을 만든 밑거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과거를 무심하게 끌어안고 갈 수만도 없고, 아예 잊어버릴 수는 더더욱 없다. 대신 과거를 미래의 자산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또한 부정적인 자아상으로부터 벗어나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드는 방법도 소개가 되어있다. 그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말 하기'.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불렀던 노래 '말하는 대로'의 노랫말처럼, 사람은 평소에 말하는 대로 된다. 평소에 부정적인 말만 하고 심지어 욕까지 하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 없고, 잘 되는 사람 없다. 반면 같은 내용이라도 공손하고 예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매너 지키기'. 저자의 말로 하면 '머리 나쁜 사람은 매너도 나쁘다'. 머리 나쁜 사람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매너 없이 굴었던 것도 바로 까먹어서 결국 계속 매너 없는 사람이 된다. 반면 머리 좋은 사람은 남들이 나 때문에 상처 입지는 않는지 잘 캐치할 수 있고, 행여 실수를 했더라도 바로 고치기 때문에 매너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니 머리가 좋다면, 아니면 머리가 나빠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얼마든지 매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저자 양창순 선생님은 정신의학뿐 아니라 심리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서적에도 자주 인용되는 분이셔서 (바로 어제 읽은 경제경영 서적에도 이 분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었다.) 전부터 저작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이분의 저작을 계속 찾아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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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문제는 정책이다
스테판 에셀 & 에드가 모랭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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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딱 작년 이맘 때 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었다. 그는 청년 시절 나치에 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으며, 전후에는 1948년 발표된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기여했다. 이런 그의 이력은 살아있는 현대사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보기에 21세기 프랑스, 그리고 전 세계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라>라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진 글을 썼고, 이 글이 담긴 책은 이 분야의 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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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분노할 것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분노의 대상은 바로 '세계화'. 문명은 원래 어느 한 곳에 정체하지 않고 흘러다니며 확산되는 속성을 가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교통, 기술의 발전과 탈냉전 등으로 인해 세계는 전례 없는 속도로 연결되고 있다. 세계화의 장점, 물론 있다. 하지만 생태계 파괴, 금융 투기, 국수주의 등 부작용도 낳았다. 또한 이 세계화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서구의, 그것도 미국 한 나라의 스타일로 획일화 된다는 점도 문제다.


자국 문화를 수호하는 데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인 프랑스도 이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테러, 실업난으로 인한 소요 등 몇몇 굵직한 소식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농촌공동화, 다문화 가정 문제, 청년실업난 등 프랑스와 똑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이데올로기 행세를 하는 경제자유주의는 실패한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자유방임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풍요보다는 빈곤을 초래했다. 경제자유주의 시스템 하의 세계화, 개발, 서구화(똑같은 현상의 세 가지 이름)는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을 다루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p.14)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르네상스'를 제시한다. 암흑의 시대로 불리는 중세가 르네상스를 맞아 종식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르네상스, 즉 새로운 문화의 출현이라고 보았다. 군사, 경제 같은 '딱딱한(hard)' 이슈들을 어떻게 문화 같은 '부드러운(soft)'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군사적 위기,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문화적 파워를 바탕으로 미국이 아직까지는 세계 1위 국가로 건재한 것을 보면 문화의 힘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한 것 같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이미 그 자체로도 여타의 학문과 과목들 사이에서 구획화된 상황에서, 이 두 학문 사이의 소통 불능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인문학은 과거의 작품들을 되살리고, 자연과학은 현재의 학문에 가치를 부여한다. ... 그런데 현재는 인문학이라는 분쇄기가 자연과학의 살아 있는 알갱이를 받아들여 분쇄하고 곱씹는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문화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사실 사회과학이 자리하고 있으나, 사회과학은 두 문화 사이에서 연락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p.65)

 

또한 저자는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을 보니 '유럽의 지성'이라고 불리던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도 현재 실업난으로 인해 최고교육기관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인턴,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인문학은 자연과학 같은 실용적 학문을 '분쇄하고 곱씹으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여러 방면으로 시너지 효과를 많이 낼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돈 못 벌고 고루한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아니, 학문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무언가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고, 돈으로 바꿀 수 없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이런 세태에 대한 저자의 쓴소리가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저자는 경제적, 사회적인 여유만을 추구하는 웰빙 대신 심리적, 도덕적, 정신적 웰빙도 함께 추구하는 '웰리빙'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니 경제적인 소득이 낮을수록 값이 싸지만 영양가는 낮은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고, 소득이 높을수록 영양가가 높고 몸에도 좋은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고 했다. 이 고소득자들 중에는 싸구려 음식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업체, 이런 음식을 유통하는 유통업체에 다니는 임직원들도 있을터. 싼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유기농 음식을 사먹는 이런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저자의 짦은 문장 한 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분노하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두께가 매우 얇다. 하지만 한 줄 한 줄의 임팩트가 세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찌는 듯이 더운 이 여름, 가슴 속에도 무언가 세상을 향해 뜨겁게 분출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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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새벽부터 동네 아주머니들과 등산을 가셨다. 어머니 마중을 해드린 뒤 멍하니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침을 대충 챙겨먹었다. 아침 9시 땡 치자마자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제법 멀다. 걸어서 45분.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뒤 공원을 따라 한참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주택가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다보면 4층짜리 마을 도서관이 나온다. 오늘은 도서관 근처 편의점에서 나는 두유, 동생은 바나나 우유 하나를 사느라 5분이 더 추가되어서 50분이 걸렸다.

 

도서관에서 한참동안 책을 빌리고 빌린 책을 읽다가 다시 50분, 아니 45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더워서 그저께 홈쇼핑으로 산 냉면을 먹을까 했는데, 찬 밥이 많이 있길래 남은 반찬을 섞어서 제법 그럴듯한 - 그래봤자 잡탕(?) 볶음 같았지만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TV 재방송을 봤다. 요즘은 TV가 하도 좋아서 쿡 채널인가 하는 걸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웬만하면 다, 그것도 무료로 볼 수가 있더라. 그걸로 고소영이 나온 힐링캠프도 보고, 얼마전에 보고 푹 빠진 정글의 법칙도 봤다.

 

설거지를 하고난 뒤에는 웬일인지 운동화를 빨고 싶어져서 운동화를 빨았다. 욕조 안에 쪼그려 앉아서 운동화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한참을 빨았더니 제법 깨끗해지기는 했는데, 하늘색 운동화라서 그런가, 아무리 비비고 문질러도 색깔이 흐리멍덩해서 때가 묻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묻은 것 같기도 해서 찝찝했다. 그래도 대야 가득 나온 땟물을 보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백수인 듯 아닌 듯, 일하다 말다 하며 지낸지도 어느덧 삼 년 째. 일하는 친구들 보면 부럽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보면 대단하다. 부모님이 누구네 집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회사에서 벌써 승진을 했다더라 하는 얘길 들으면 주눅이 들기도 한다. 취업 대신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일찌감치 학위부터 딸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벌써 시집 간 친구도 있다. 곧 시집 가는 친구도 있다.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TV를 봐도 벌써 내 또래의 연예인들은 연예계에서 선배급, 주연급 대우를 받는다. 이제 내 나이에 신인, 초보는 없다. 

 

나는 내가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한참 뒤떨어지고 있는 걸 느낀다. 하지만 내 삶이 싫은가, 부끄러운가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이 더욱 충만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 같으면 왕복 한 시간 반이나 걸어서 도서관에 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고, 점심은 당연히 사먹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 그것도 1인분에 만원 정도 하는 파스타나 일식으로 - 운동화를 빨아서 신느니 새로 사서 신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봤자 그렇게 지낸 시절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다. 걸어가면서 들가에 핀 풀꽃을 보며 기뻐하고, 같은 반찬이라도 어떻게 맛있게 먹어볼까 궁리하고, 운동화를 빠느라 몸무게가 몇 백 그램은 빠진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읽은 책에 돈이야 있으면 당연히 좋고, 성공도 안 하는 것보다야 하는 게 좋지만,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를 필요는 없다는 구절을 보았다. 그 전까지 나는 백수라서 돈도 못 벌고, 남들보다 승진도 늦어져서 남들보다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돈을 버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그 나름대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에는 완전한 손해도 이익도 없는 거니까.

 

그러고보면 진작 배워야 했던 것을 백수 시절에, 아주 비싼 값을 치르며 배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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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9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2-09-09 20: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전에 쓴 글에 귀한 댓글이 달리니 힘이 나네요 ^^
일요일 저녁 편안히 보내시고 즐거운 한 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월스트리트저널 경제지표 50 - 경제신문 속 암호같은 경제지표를 해독하고 미래를 예측하라!
사이먼 컨스터블 & 로버트 라이트 지음, 김숭진 옮김, 송경헌 감수 / 위츠(Wits)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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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학을 뜻하는 'Economics'라는 말의 어원에는 '살림', '생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들은 체득하고 있다. 가령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수요의 법칙',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의 수요는 가격 변화에 덜 민감한 반면, 명품 같은 사치성 수요는 민감하다는 '가격탄력성' 개념 등은, '수요의 법칙', '가격탄력성' 같은 용어를 몰라도 그 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경제학을 어려워 하는 이유는 수식이나 통계가 어렵고,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경제지표는 경제뉴스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름 자체가 어렵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기사전체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경제지표는 자주 보는 몇 가지만 알고 있을뿐, 대부분은 모른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 경제지표 50>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반가웠다. 선행지표, 금리, 국가부채 등 경제지표를 통해 경제를 예측하는 방법이라니. 게다가 전세계 구독률 1위, 영향력 1위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제로 경제를 예측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갔다. 사실 경제 소식, 투자 정보는 언론에 공개될 즈음이면 이미 전문기관이나 소위 큰 손들 사이에서는 대응이 다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믿고 투자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그걸 믿고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개미투자자들도 많이 보았다. 정말 똑똑한 투자자라면 공개되기 전에, 전문기관이나 큰 손들이 예측하는 방법을 알고 투자를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하루를 먹고 살게 하려면 고기를 낚아주고, 평생을 먹고 살게 하려면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읽어보니 책에 소개된 경제지표들 중에는 미시 경제학 시간에 배운 경제지표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지표들도 매우 많았다. 무엇보다도 지표별로 특징과 장단점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고, 그저 설명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때 필요한 내용, 즉 투자수익률과 위험도 등이 제시되어 있어서 투자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 같다. 거기에 각 경제지표를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 인터넷 사이트, 업데이트 일자 - 까지 나와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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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20대 청년의 50개 직업 도전기
대니얼 세디키 지음, 서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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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청년 실업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을 괴롭히고 있는 사회문제다. 우리나라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중국 상하이에는 '개미족'이 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20대 청년층으로, 취업난으로 인해 정규직을 얻지 못하고 파트타임 또는 인턴을 전전하느라 극히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생활비를 아끼느라 작은 방에 남녀가 열 명, 스무 명씩 동거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고 한다. 일본도 비슷한 실정이다.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24시간 운영하는 PC방에서 장기 거주하다가 아예 주소지로 등록하는 청년들도 있을 정도다. 프랑스는 몇 년 전부터 이른바 '700유로 세대'로 불리는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자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미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몇 주 전 저녁 무렵, 언제나처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었다. 시계가 일곱시로 넘어가면 '철수는 오늘'이라는 짧은 코너가 나오는데, 거기서 마침 대학 졸업후 3년 동안 취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전부 낙방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50개 직업을 체험한 청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단하다 싶어 어떤 사람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마침 그 사람이 직접 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보았다. 

  

제목도 당돌한 <까짓 것 해보는 거야!>. 이 책의 저자 대니얼 세디키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후 3년 동안 금융권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번듯한 대학, 취업 잘 된다는 학과를 졸업했지만 보낸 이력서만 2천 통, 면접만 40번 이상 응시했다가 떨어졌다. 무보수 또는 파트 타임 일자리를 전전하다보니 1달러 짜리 샌드위치로 연명하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다. 처음 몇 번은 다음엔 잘 될 거라고 응원해주던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도 점점 그를 '루저'로 보기 시작했다.

 

면접 때마다 면접관들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네는 경험이 부족해'. 그 말이 늘 대니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문화를 겪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 전역 50개 주를 돌아다니며 각 주를 대표하는 직업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대니얼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모두 반신반의하며 반대했지만, 그는 천천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각 주의 회사에 연락을 하고 숙소를 찾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지만, 어차피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CNN, 폭스 채널 등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50개 직업을 체험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손이 부족하며 환영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개는 잠깐 일하다 떠날 그를 반기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 숙소를 구하는 일도 힘들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수도 아주 적고, 어떤 곳은 아예 안 주기도 해서 여행 내내 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복병도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 문제.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를 응원한다며 웹페이지 운영까지 담당했던 여자친구는,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고, 여행 내내 대니얼의 마음을 괴롭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나이가 높아진다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대니얼은 처음엔 경제적으로만 독립을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정신적으로도 여자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못한 '어른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대니얼에게 이 여행은 진정한 '성인식', '통과의례'가 아니었나 싶다. 비록 이 여행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기로 결정했는지, 돈을 많을 벌었는지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제 힘으로 먹고 살 수는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여러번 한국 언론이 그를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어떤 언론사가 취재했는지 찾아봤더니 2009년에 방영된 <SBS 스페셜> 중 한 편에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영상을 찾아서 봤는데 책을 읽고나서라서 그런지 괜히 더 반갑고 신기했다. 영화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개봉은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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