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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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가 온다. 몸도 찌뿌두둥하고 마음도 축 가라앉은 것이 공부할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참에 밀린 리뷰나 쓰면서 시간을 떼워야겠다. 오늘은, 오늘만은 괜찮겠지. 요즘 나의 화두는 환경, 소비(브라보! 노 임팩트 맨), 그리고 명상인데, 먼저 명상에 관해 읽은 책 한 권에 대해 써보겠다.

 


올해 초에 MBC에서 방영된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으로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도쿄대 출신이다. 그 간판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직장에든 들어가 승승장구하며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믿었다. (결혼도 했던 걸 보니 직장도 다녔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망나니가 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DV'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그는 그길로 아내와 헤어지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도시로 돌아왔고 지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명상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장래가 보장된 도쿄대 졸업생에서 고된 수행을 하는 불자로의 변신. 이만큼 극적인 인생의 변화가 또 있을까. 방송을 보고 하도 신기해서 일부러 그의 웹사이트 '가출공간(http://iede.cc/)'에도 방문해보고 그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명상과 수련을 지향하는 그는 '신세대 스님' 답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명상 철학이 담긴 그림일기를 올리고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불교식 요리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웬일인지 그의 책을 읽을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얼마전 도서관에서 <번뇌 리셋>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바로 읽었다. 군데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솔직히 거슬릴 정도였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기에는 괜찮았다. (많이 참았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번뇌, 즉 화, 짜증, 우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살면서 안 좋은 일 한번 안 겪는 사람 없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안 좋은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며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을 좀먹는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진짜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은 이런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내가 나라고 느끼는 존재는 온갖 감정이 모인 감정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더욱 강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났다는 걸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멈춰야 한다. 화를 참거나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것 또한 '화를 참는 자기', '착한 자기' 등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산다는 건 자식, 부모, 학생, 친구, 연인, 사회인 등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는 과정의 반복이다. 더 많은 가면, 더 비싸고 좋은 가면을 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눈 가리기'일뿐이고 그 가면에 만족해서는 진정한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기 쉽고 불안정하고 취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 즉 자기라는 것은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서 많은 환영을 계속 모으는 고생, 수고는 일종의 함정입니다. 자기 이미지는 상처입고 깨지기 쉬운 것입니다. 쉴 새 없이 깨지는 것을 부실하고 이상한 실로 꿰맨다든가, 접착제로 보강한다든가 영양을 계속 보충해 주어야만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기', '유머와 센스가 있는 자기',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자기', '기독교도인 자기', '불교도인 자기', '사랑받고 있는 자기',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일에 익숙한 자기', '당신을 이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자기'... 실이나 접착제로 봉합한 가지가지의 아이템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발가벗겨진 우리의 속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게 눈 가리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pp.108-9)
 
   

  
 

정말 그럴까? 이 부분은 마침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이다>라는 책인데, 이 책에는 멀쩡한 직업 가지고 잘 살다가 인생 중반에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극적으로 전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고보니 전환, 리셋... 비슷하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새로운 인생을 찾은 느낌이 마치 안 맞는 옷을 벗은 것처럼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이라고 한다. <번뇌 리셋>의 저자의 말대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쓰고 있었던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긴 고민 끝에 자기한테 가장 맞는 삶을 선택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고보면 명상이든 일이든 인생이든 모두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되기(Be yourself), 그리고 선택과 집중, 나에게 올인. 그걸 몰라서 이제까지 빌빌대고 살았나보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피해다녔던 걸까. 아무튼 끈적끈적한 날씨 때문에 치밀어오르는 화와 짜증은 그만 '인정'하고 이제는 오늘 일과로 다시 복귀해야겠다. (하루 리셋?) 아, 그리고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은 '다른 번역자의 책으로' 더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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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생 - 평범한 삶이 아주 특별한 삶으로 바뀌는 7가지 이야기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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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에는 그 자체로 성 같고 집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다른 책으로 인도하는 다리 같은 책도 있다. 구본형의 <깊은 인생>은 후자다. 저자가 1인 기업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자기계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분이라고 하는데 다른 책을 읽어본 적도 없거니와 이 책만 놓고 봤을 때에도 솔직히 '뭐가 깊은 인생이라는 거지?' 라는 물음만 가득했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찾자면 역사 속의 인물들을 탐구하여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한 태도와 미덕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걱정이 떠나지 않을 때가 있으면 좀 유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주술을 걸어보았다. 서랍의 맨 위 칸에 1달러짜리를 넣어두고는 "여기 1달러가 있는 동안은 나는 빈털터리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는 그 때 알게 되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p.104)
 
   

 

인용한 부분은 신화 연구로 유명한 조셉 캠벨이 우드스탁에 칩거하던 시절에 남긴 말이다. 조셉 캠벨은 프랑스 유학을 떠났지만 학위를 포기하고 돌아와 시골에서 무려 5년이나 은둔생활을 하며 책을 읽었다. 말이 좋아서 은둔생활이고 책 읽기지, 명문대 나온 아들이 장학금 받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시골에 쳐박혀 있는 동안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아마 본인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도 성인이고 남자인데, 왜 세속적인 욕망이 없겠는가. 남들처럼 편하게 돈벌고 여자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 꾸리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데 왜 그걸 못하고 이 고생인가 싶었겠지.

 

하지만 남들 찬사 받고 누릴 것 다 누리고 하는 것이 학문이고 예술이라면 누가 안 할까.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다 내놓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경지의 삶을 택하는 대가는 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는 그런 인생을 가리켜 보통 사람들은 다다르지도 못할 차원의 삶, 즉 '깊은' 인생이라고 일컬은 게 아닐까 싶다. 조셉 캠벨 외에도 스피노자, 간디, 피카소 등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고 감명 받은 인물들이 많다. 앞으로 이들의 삶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지.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의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년,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탁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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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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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아이폰이나 평면 텔레비전이나 버뮤다 행 여행티켓이나 기타 오락거리를 손에 넣을 방법을 연구하는 것보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더 힘들다. 예를 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것들 말이다. 인생의 목적이 좋은 직장, 두둑한 연봉, 들어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자, 타고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는 또 다른 상자라고 생각하고 그런 상자들만 있으면 무엇이든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쉽다. 심지어 앞에서 말한 고민들까지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지만 가끔은 눅눅한 날 습기처럼 그런 고민들이 차오를 때가 있다. 피할 곳이 없을 때가 있다. 한국 조계종에 이런 선사가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내가 명상할 때 즐겨 찾는 선종이라는 종파를 미국에 전파한 분이다. 제자들은 그분을 대선사님이라고 불렀는데, 한국말로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스승이라는 뜻이었다.

아무튼 그 대선사님은 "모두들 나는 이걸 가지고 싶다, 저걸 가지고 싶다 하는데, 이 '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종종 말했다. 세상 모든 걸 가지고 싶어하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사는 이유가 뭘까? 죽는 이유가 뭘까? 이런 고민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욕구를 충족시켜야 행복해진다고 믿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고, 경제는 이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별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pp.158-9)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이 문장이 가슴을 푹 찌른다. 감정에 솔직한 삶. 나 자신과 충분히 대화하고, 내 욕구를 정확히 아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돌이켜보면 스무살 이후의 내 삶은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이었다. 학교, 내신, 수능, 수행평가... 지긋지긋한 굴레는 다 버리고, 모범생인척, 우등생인척 하며 스스로를 감췄던 가면은 다 벗고,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지독하게 찾아다녔다. 결국 시도했던 모든 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얄궂게도 가장 처음에 품었던 꿈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남은 것은 흘려보낸 시간과 백수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 뿐이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적어도 나는 비겁하게 내 고민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받아들였다. 많이도 망가지고 깨졌다. 통장 잔고는 언제나 비어있고, 내 이름 석자밖에 날 보여줄 것이 없지만, 그 경험만으로도 지난 6년 동안 영혼이 반 뼘은 자라지 않았나 싶다.

 

가장 최근에 내 영혼을 파고든 화두가 있으니, 바로 eco-friendly. 친환경적인 생활을 한다는 게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처음에는 에코백 들고 다니고, 씻을 때 물 받아서 쓰고, 가까운 거리는 차 타는 대신 걸어다니는 정도만 지켜도 뿌듯하지만,
달인 레벨(!)로 갈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난 떤다'는 눈총을 받는 일이 다반사에,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아무리 아껴 쓰고 노력해도 남들이 펑펑 쓰면 도로 아미타불 아닌가 싶은 생각에 허무한 마음만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일 년 동안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남자가 있다.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환경에 자극을 주지 않고 살아보겠다니. 일찍이 헨리 데이빗 소로가 1세기도 더 전에 시도했던 일이기는 하지만(<월든>) 콜린 베번의 도전은 차원이 다르다.  소로는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없었던 18세기 중엽에 문명의 손이 닿지 않은 산골 구석에서 지내기라도 했지, 온갖 유혹이 산재한,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 뉴욕에서, 그것도 쇼핑 중독 아내와 기저귀도 안 뗀 딸이 있는 남자가 엘리베이터, 자동차, 비행기, 종이신문, 커피, 패스트푸드, 텔레비전, 심지어는 종이기저귀까지 다 포기하고 산다는 건 뉴욕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현대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무모한 도전이었던지, 도전을 선언한 후에도 콜린은 한참동안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피자 한 조각을 사먹고 싶어도 딸려 나오는 종이 포장(=쓰레기) 때문에 사먹을 수가 없지, 아내와는 싸우기 일쑤, 딸이 쓰는 종이 기저귀를 천 기저귀로 바꿨다가 집안 바닥을 아이 오줌으로 온통 적신 적도 있다. 언젠가 파리에서 본 근사한 그물 장바구니 하나를 살까 했더니 이것도 쓸데 없는 소비를 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슈퍼마켓에서 비닐봉투 대신 (그것도 콜린이 직접 가져온!)유리병에 담아달라고 부탁해도 점원은 유난 떤다며 흉을 봤고, 살이 쪽쪽 빠지도록 걸어서 통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으로 다녀도 매연 뿡뿡 뿜는 대형 자동차는 그를 비웃는 양 잘만 달렸다. 남들은 혀빠지게 아껴 써도 나 혼자만 '노 임팩트'여서는 '딥 임팩트'같은 위기가 전지구에 닥치는 건 시간 문제ㅡ 그런데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거지?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내가 보기에도 이건 답이 없다.

   

   
  바라던 걸 손에 넣으면 욕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대상으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이걸 가지고 싶다"거나 "저걸 가지고 싶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냥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나는 그물 장바구니가 생기면 또 다른 게 가지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의 경험 밑바탕에 욕구가 자리잡고 있고 하루의 변덕스러운 욕망을 충족시켜도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p.101)  
   

 

그래도 콜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환경문제를 먼저 인식하고 고민한 사람들의 책을 구해 읽고, 동양철학에서 답을 구했다. (특히 한국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중생'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환경을 넘어 소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로 생각을 확장시켰다. 그의 접근법대로 환경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나에 대한 고민이고, 소비에 대한 생각도 결국 나에 대한 생각이다. 환경이 무엇인가. 내가 살고 먹고 배출하고 순환시키는 장(場)이다. 환경을 더럽히는 건 나를 더럽히는 것이고, 환경에 무관심한 건 곧 자신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소비는 또 무엇인가. 내가 살고 먹고 입고 즐길 것을 구입하는 행위다. 내가 구입한 것이 나를 규정하고 표현한다. 아무거나 '사는(buy)' 것은 아무렇게나 '사는(live)' 것이고, 쓸데 없이 '사는' 것은 쓸데 없이 '사는(live)' 것이다.

 

콜린은 현대인들이 근본적으로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욕구를 알지 못하고 주관 없이 소비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나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뭘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고 더 구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야 진작에 명품족, 된장녀는 (시도해 본 적도 없고 능력도 안 되지만) 내 팔자에 없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비록 반쪽자리가 되더라도 eco-friendly consumer로 살아볼까 싶다. 그나마도 과소비하는 건 책과 음식뿐이지만(^^;;;), 잘만 하면 '노 임팩트'까지는 못 돼도 '딥 임팩트'는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콜린의 노 임팩트 맨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와 그의 프로젝트를 유명하게 만든 블로그(http://noimpactman.typepad.com/)도 여전히 업데이트 중이다.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려고 했는데 이미 구독자 한도가 다 차서 안 되는 모양이다. 번거롭더라도 홈페이지에서 직접 그의 소식을 들어야겠다.) 

 

  

실천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올바른 것이니라.
그대는 실천의 결과를 목적으로 삼지 말 것이며, 나태에 심취하지도 말라.   

- 인도의 대서사시 바가다드 기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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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 개정판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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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5 

 

아마도 사회과학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수업 시간이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수님께서 경제학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어보라시며 책 제목 몇 개를 칠판에 적어주셨다. 그 책들은 대부분 '경제팩션(faction)' 이었다. 당시 나는 [북& 월드] 에서 나온 [소설로 읽는 경제학] 시리즈를 찾아서 읽었는데, 이 책들이 나의 경제학 성적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 역시 그 목록에 있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당시에는 읽어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2003년 1쇄 발행되고, 올해 12쇄 발행된 [애덤 스미스 구하기] 는 세계 유명대학이 교재로 택하고 있으며, 여러 신문과 잡지, 단체에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기도 있고 명성도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 경제학 책이 재밌어봤자 얼마나 재밌겠어?' 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경제학 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의 매력은 첫째, 애덤 스미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와 자유무역 경제의 기초를 제공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제학이나 애덤 스미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나 푸줏간 주인의 일화 등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실은 도덕성과 정의를 중시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 매우 낯설다.  

 

   
  이기심은 인성의 본성이지만 그 이기심을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안정감을 얻으면서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애야. 이기심이란 자신의 욕구가 타인의 합법적인 권리와 상충될 때 자기 본위대로 자기 욕구에만 집착하는 것을 뜻하니까. (p.197)  
   



[애덤 스미스 구하기] 는 경제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철학 서적에 가깝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가 아닌 도덕 철학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제학 공부에 보탬이 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한 '참고서'로서 이 책을 읽는다면 곤란하다. 오히려 이 책은 이제까지의 경제학적 개념을 뒤흔드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초보나 학부 신입생이 읽는다면 미리 경제학적 배경을 다진다는 점에서 좋을 것이고, 경제학을 오래 배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적어도 말로만 들었던(!) 애덤 스미스의 책들을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둘째, 여행기 혹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생인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애덤 스미스를 만나서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을 하는 틈틈이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대한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편안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여행 도중에 애덤 스미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괴한에게 연달아 습격을 당하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후반의 즐거리는 흡사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 책은 본문 외에도 애덤 스미스 연보, 자료 노트, 참고문헌 가이드, 교사를 위한 가이드 등 알찬 부록이 실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나는 초록색 표지와 가로 폭이 좁은 디자인, 그림과 사진 등 이미지가 거의 없고 활자가 위주인 편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이런 '책 다운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양장본에, 활자는 별로 없고 이미지만 잔뜩 들어있는 책이 많이 나와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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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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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리뷰를 다시 정리해서 올리고 있는데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새로운 버전으로 나온 줄은 처음 알았다. 표지도 예쁘고,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새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솔솔 든다ㅎㅎ 


2009-05-06

민음사에 세계문학전집이 있다면, 열린책들에는 [Mr.know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었다. (지금도 있나?) 세계문학전집에 비해 책의 폭이 좁고 두께가 두툼한 ㅡ 페이퍼북 같은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었다. 또한 [Mr.know] 시리즈는 비교적 현대 작가의 작품들이 많았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도 [Mr.know] 시리즈로 읽었는데(그러고보니 제임스 미치너와 알렉스 헤일리 모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들이다) 논픽션스러운 픽션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두 소설 모두 '완소'다. 
 

이 '소설'에는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 여럿이 등장한다. 독일계 미국인 작가인 루카스 요더는 자신의 여덟번째 소설을 막 탈고했다. 탈고한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편집자 이본 마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본은 어릴적 책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편집자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추억이 있다. 그리고 비평가 스트라이버트는 요더의 책에 대하여 안 좋은 평을 쓴다. 자신이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믿으면서. 독자인 제인 갈런드는 요더의 책을 읽으며 손자인 티모시가 이런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만나고 얽혀서 어떤 책을 만들게 되는지ㅡ 에 대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소설] 의 가장 큰 형식상 특징은 네 사람의 시각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소설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등 책을 둘러싼 네 인물의 이야기가 차례로 나온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이어지거나 혹은 겹쳐지기 때문에, 한 이야기를 네 사람의 시각해서 해석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내용상으로는 대립하는 개념들이 여러번 등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전통과 현대, (예술적 의미의) 창작과 (산업적 의미의) 생산, 대중소설과 순수소설, 독일인과 유태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대립적인 개념들이 종국적으로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궁극적으로는 소설 자체의 새로운 발전과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책 읽기는 책과 나만이 교감하는 1인의 경험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여러 사람이 공유한다면 온전한 자신의 감상은 집단의 공통 양식이 될 수 있고 문화가 될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쓰고 만들고 평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녹아있는 소설ㅡ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가장 궁금하고도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재미있게 건드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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