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다운 애장판 1
사이토 타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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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13>, <생존게임> 등의 작가 사이토 타카오의 또 다른 명작 <브레이크다운>이 애장판으로 출간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는 판형이나 표지 이미지 등이 비슷해서 <생존게임>의 외전인가 했다. 읽어보니 <생존게임>과 비슷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인데, 주인공이 십대 소년인 <생존게임>과 달리 <브레이크다운>의 주인공은 성인 남성이라서 그런지 재난에 대처하는 태도도 훨씬 성숙하고 이야기도 풍성하다. 


주인공 오토모는 지역 방송국 보도부 소속 기자다. 새를 구하다 특종을 놓칠 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만 회사에선 눈엣가시 취급 당한다. 어느 날 오토모는 천체와 위성 궤도 분야의 1인자인 친구 하토야마로부터 소행성 '윌비'와 관련해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는다. 오토모는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우츠미 주임과 함께 하토야마가 있는 천문대로 향하는데, 그 날 밤 윌비가 지구와 충돌해 전 지구적인 규모의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생존게임>의 초반부와 비슷하다. 대지진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오토모는 우츠미와 함께 마을을 향해 가는데, 이 과정에서 먹을 물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참혹한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우츠미가 오토모의 상사인데도 오토모의 도움만 받고, 오토모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인간이 아니라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차라리 혼자인 사토루가 나아 보였다). 아마도 앞으로 이러한 인간 관계가 <생존게임>과는 또 다른 재미와 통찰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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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 그림일기
유아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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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 그림일기>는 트위터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만화인데(@koalaenikki) 이번에 정식 한국어판이 나왔다. 웹으로 봐도 귀엽고 재미있지만 단행본으로 보니 훨씬 더 귀엽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부드럽고 따뜻한 종이의 질감이 만화의 느긋한 분위기와 코알라의 포근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일까. 만화의 글밥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일본어 문장이 한국어로 해석되어 있는 점도 가독성을 높인다. 


책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는데, 만화 자체가 웃겨서라기 보다는 만화 속 코알라의 모습이나 생활이 내 반려인과 너무 닮아서 웃었다(ㅋㅋㅋ). 매일 그림 그리고 산책하고, 어쩌다 맛있는 디저트를 사 먹거나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 하지만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 사는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귀엽고, 힐링되고, 그리고 왠지 눈물이 난다."라는 띠지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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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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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뒤늦게 영화 <영웅>을 보고 안중근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그 전까지 나는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독립 운동가로만 알았는데, <영웅>에서 보니 그는 독립 운동가인 동시에 독실한 천주교인이었고 한 집안의 맏아들이었다. 특히 천주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살해하고 십계명(살인하지 말라)을 어긴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거사 직전까지 상당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안중근에 대한 책을 읽고 싶어져서 찾다가 이 책이 떠올라서 읽어보았다. 


<영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안중근이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 것으로 그린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영웅>의 안중근은 독립운동가로서 이토를 살해할지 아니면 기독교인으로서 십계명을 지킬지를 두고 내적인 갈등을 하는 반면, <하얼빈>의 안중근은 독립운동가로서 일본 정부+조선 왕실과 대립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천주교 사제들과 갈등하는 식으로 외적인 갈등을 치른다. 


즉, 이 소설에서 안중근은 일본 정부와 대립하는 동시에 1) 일본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조선 왕실과 대립하고 2)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와 결탁한 천주교 사제들과 대립한다. 일본 정부는 그렇다 쳐도 조선 왕실과 천주교 사제들은 그들의 백성이자 신도인 안중근을 마땅히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을 버린다(갈등하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안중근의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로 버린다). 


<영웅>을 봤을 때는 안중근의 내적인 갈등에 흥미를 느꼈는데, <하얼빈>을 읽으니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 당시 조선 왕실과 천주교 사제들(을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이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지 궁금하다. 친일파 하면 보통 이완용을 비롯한, 한일강제병합 전후에 매국 행위를 하고 이를 통해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본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그들 외에도 다양한 부류의 친일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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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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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의 왕복서간을 책으로 엮은 '총총문고'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엔 편지글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 시리즈를 꾸준히 따라 읽다 보니 편지 쓰는 사람들의 관계나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서 글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대표적인 예가 이슬아x남궁인 편). 그래서 작년에 황선우x김혼비 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글 잘 쓰는 건 당연하고, 두 분 모두 단어나 문장을 맛깔나고 재치 있게 쓰는 분들이라서 (읽으면서) 엄청 웃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특히 김혼비 작가님은 시트콤 급의 일상을 사는 분 같았다. 현금 없이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사 먹은 이야기도 그랬고,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기 싫은데 양보하고 싶을 때(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책을 읽어 보면 안다) 쓰는 테크닉에 관한 이야기도 그랬고, 친구와 경칩맞이 개구리 뛰기 한 이야기도 그랬다. 황선우 작가님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게 많았는데 여둘톡 애청자라서 아주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전국노래자랑이나 망탁클(망원 탁구 클럽), 논어 이야기처럼 방송에서 언급했지만 차마 다 풀지 못한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편지 교환을 시작할 때 작가님들은 서로를 웃게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고, 실제로 웃기는 이야기가 많지만, 반대로 울리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김혼비 작가님이 쓰신 당근마켓 거래 이야기의 결말을 읽고 한동안 얼떨떨했다. 작가님처럼 나도 당연히 사기 사건인 줄 알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이야기를 읽었기에 충격이 컸다. 이야기의 전개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과 비슷한데,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은 허구이지만 책의 이야기는 실제라는 게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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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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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은 김영하 북클럽 7월 선정 도서라서 읽게 된 책이다. 김영하 북클럽을 통해 만난 책들이 대체로 좋았는데 이 책도 그랬다. 일본 소설(특히 여성 작가 소설)을 나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즈무라 미나에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한국에도 뛰어난 여성 작가들이 많지만 중년 또는 노년에 이른 여성의 삶의 문제(노화와 죽음, 투병과 간병, 이혼과 사별 등)에 있어서는 일본 여성 작가의 글에서 참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미쓰키는 프랑스 유학 시절 만난 남편과 삼십 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오십 대 여성이다. 유학으로 갈고 닦은 외국어 실력을 살려 대학 강의와 번역 일을 하고 있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연말의 어느 날, 미쓰키는 실버타운에 모신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쓰키는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쓰키에게 어머니는 경애의 대상이 결코 아닌데, 그도 그럴 것이 미쓰키가 어릴 때 어머니는 언니인 나쓰키와 여동생인 미쓰키를 차별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간병을 미쓰키에게 맡긴 것으로 모자라 외도까지 했다. 


이후 미쓰키는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열심히 돌아본다. 미쓰키는 전쟁 직후 일본 전역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남편의 외도를 알기 전까지는)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했고, 대학 강사와 번역가로 일하는 삶에도 만족했다. 하지만 삶의 끝을 향해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기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는지 되묻는다. 나는 정말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맞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그만둔 것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게 맞나? 


이 소설은 '신문소설(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에 연재하기 위하여 쓰인 장편소설 형식)'이기도 하다. 다양한 독자층을 겨냥한 작품인 만큼 문장이 쉽고 내용이 현실적이며 전개가 속도감 있다. 한국에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잘 알려진 일본의 신파 소설 <금색야차>를 비롯해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일본의 문학 작품과 <이방인>, <마담 보바리> 등 서양의 문학 작품이 여러 번 언급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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