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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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다. 계절이 네 개인데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니. 그러면 그냥 계절 중에 제일 싫어한다는 말 아닌가, 라고 생각한 걸 반성하게 되는 글이 이 책에 있다. "여름은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세 번을 거쳐온 마음은 미약하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한껏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 사랑하면 되지." (8월 7일 <조금 사랑하기> 중에서) 싫다고 말하는 건 쉽다. 싫다 대신 조금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애써 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꽃이 필 정도로 완연한 봄이지만 아직은 긴소매 옷을 입는 게 당연한 날씨다. 그러나 외출해서 걷다 보면 반팔 차림이 그리워질 만큼 더운 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여름이 곧 다가올 거라는 생각에 미리 괴롭고 이내 울적하다(그렇다. 내게도 여름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름 아닌 계절에 이 책을 읽으니, 다가오는 여름은 조금에서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이 쓴 책이지만 사슴, 멧돼지, 솔개, 매미, 고양이, 개 등 동물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좋았고, 나의 더위, 나의 추위만 살피지 말고 나보다 더 덥거나 추운 존재들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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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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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는 내가 비를 맞고 있을 때 우산을 가져다 주는 친구가 아니라 나와 함께 비를 맞아주는 친구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러면 그냥 비 맞은 사람 둘이 되는 거 아닌가?'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손해 볼 걸 알면서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라는 걸 안다. 친구든 연인이든 간에 그런 사람은 드물다. 드물기에 귀하다.


한강 작가가 201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에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나온다. 여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까지 빼앗긴 트라우마로 인해 말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다. 오래 전 처음 말을 잃었을 때 낯선 프랑스어 단어를 듣고 다시 말을 하게 된 것을 기억해낸 여자는, 그저 배울 수 있는 언어 중에 가장 낯설다는 이유로 희랍어를 택해 강의를 듣는다. 남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서른 살 후반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희랍어 강사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중인데, 이런 사정을 아는 이는 독일에 있는 가족 외에는 없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는 각각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와 희랍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한 교실에서 만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몇 회의 수업이 지나도록 서로의 존재는 알지만 서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남자에게 여자는 그저 말수가 없는 학생이고, 여자에게 남자는 그저 낯선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상대방이 중요한 감각 하나를 잃었거나 잃어가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되고, 어떤 감각인지가 다를 뿐 세상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는 수단 하나를 잃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걸 깨닫는다.


그 깨달음의 순간, 나는 여자가 남자의 눈이 되고 남자가 여자의 입이 되는 전개를 예상했다. 실제로 그런 전개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건, 여자가 눈을 감고 남자가 입을 닫는 때부터다. 볼 수 없는 건 볼 수 없는 것만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건 말할 수 없는 것만이 아니다. 비를 맞아본 적 없는 사람은 비에 젖어본 사람의 기분을 알지 못하듯이, 볼 수 없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상이 있고 말할 수 없음으로서 말해지는 감정이 있다. 2016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잃어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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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과보호인 마왕님 2
센리 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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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과 갑자기 동거를 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그 사람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마왕이라면...? 센리 미코의 <참으로 과보호인 마왕님>은 천애 고아인 극빈층 여고생 야마다 세이나가 자신을 '다시 태어난 성녀'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마왕님과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믹 로맨스 만화다. (세이나는 기억 못하지만)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이나를 잠시도 혼자 두지 못하는 마왕은 급기야 세이나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야마다 마오'라는 이름으로 입학해 학교에서도 세이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가 마왕이라는 것과 두 사람이 동거한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세이나는 늘 긴장 상태.


2권에는 하이틴 로맨스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사 중 하나인 수학여행 에피소드가 나온다. 수학여행 중에도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는 마왕 때문에 세이나는 조금 귀찮고 불안하기는 하지만,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반드시 자신을 구해주는 점이 믿음직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는 남학생에게 질투심을 드러내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는 세이나와 마왕의 거리... 그런데 2권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마왕에게 위기가 발생한다. 과연 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서 3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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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과보호인 마왕님 1
센리 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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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세이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천애 고아에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서 아파트에서 혼자 극빈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세이나는 가뜩이나 없는 돈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는데 때마침 나타난 이상한 차림의 남자가 세이나를 구해준다. 자신을 '마왕'이라고 밝힌 남자는 "널 따라 이 세상에 왔어."같은 믿기 힘든 소리를 하면서 세이나를 따라다닌다. 급기야 세이나는 마왕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되는데,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낸 세이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그리 싫지 않다.


센리 미코의 <참으로 과호보인 마왕님>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 세이나를 과보호하는 마왕님과 세이나의 동거 생활을 그린 코믹 로맨스 만화다. 세이나에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마왕이 세이나를 '다시 태어난 성녀'라고 부르며 엄청난 애정을 쏟아붓는 것으로 보아 세이나의 전생에 마왕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무슨 일일까? 얼른 공개되었으면...). 세이나를 찾기 전까지 인간 세계에 온 적이 없어 보이는 마왕이 인간의 생활에 대해 잘 몰라서 벌이는 바보짓? 실수?가 상당히 귀엽고 재미있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마왕 답게 마법으로 해결하는데 이런 설정도 웃음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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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의 열매 10
히가시모토 토시야 지음, 원성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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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읽은 작품인데 드디어 완결이다. 주인공은 약간 괴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속 깊고 성실한 소아과 의사 스즈카케 마코. 가정사에 문제가 있어서 오랫동안 본가에 돌아가지 않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환자가 소아과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병원에 입원하면서 마코 자신도 그 병원에 취직한다. 마코는 아버지와 되도록 마주치지 말고 일만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소아과 의사인 형 히데키가 미국에서 귀국해 아버지의 병원에 취직하면서 세 부자(父子) 간에 긴장 상태가 발생한다. 


의학물답게 환자들 이야기가 에피소드마다 빠지지 않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는 프로 축구 선수 지망생 유키. 그를 담당하게 된 마코와 히데키는 완치율이 높지만 축구선수로 활동하기는 힘든 수술 방법과 축구선수로 활동할 가능성은 남지만 완치율이 낮은 수술 방법을 두고 의견 대립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유키의 아버지가 과거에 벌인 '어떤 일'이 마코네 가족의 불화의 원인이 된 사건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난다. 개인으로서의 감정과 의사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 부자 의사의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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