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만드는 마음 - 보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서해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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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열 개 정도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가 ㅎㅇ(서해인) 님이 매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이다. (구독하러 가기 https://contentslog.stibee.com/) 어떤 계기로 이 뉴스레터를 알게 되어 구독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매주 이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알게 되며 얻는 즐거움이 크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콘텐츠 감상 이력을 아카이빙할 목적으로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같은 콘텐츠 향유자(중독자?)로서 오랫동안 응원하고 싶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콘텐츠 로그> 제작자 ㅎㅇ 님이 본명 서해인으로 2022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보는 사람'은 저자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페스티벌, 팟캐스트, 책, 케이팝, 호러물 등에 관한 에세이를 싣고 있다. 2부 '만드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었던 저자가 뉴스레터를 '만드는 사람'이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소개한다. 3부 '일하는 사람'은 프리랜서 창작자로 일하는 저자에게 영감과 자극을 준 책, 드라마 등의 리뷰를 담고 있다. <콘텐츠 로그>의 각 코너의 탄생 비화라든가 저자에게 영향을 준 콘텐츠 또는 콘텐츠 제작자 등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어 <콘텐츠 로그> 구독자로서 재미있고 유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콘텐츠 로그>야말로 콘텐츠 감상과 기록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엄청나게 많이 지속적으로 소비해온 사람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책을 제외하고) 감상한 콘텐츠에 관한 기록을 꾸준히 남기지 않은 나와 달리 저자는 자신이 감상한 콘텐츠를 꾸준히 기록하고 뉴스레터라는 공적인 형태로 발행까지 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상한 콘텐츠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발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감상할 때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정자세로 보게 되고, 본인의 취향이나 흥미에 치우친 감상을 덜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감상 경험의 폭을 넓히고 질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몇 년 동안 <콘텐츠 로그>를 구독하면서, 처음에는 ㅎㅇ님이 일주일 동안 보고 듣는 콘텐츠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점에 놀라고 관심 있는 분야나 장르가 다양한 점에 놀랐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예리한 점에 놀랐다. 내 생각에는 오랫동안 많은 양의 콘텐츠를 보면서 일종의 자기만의 데이터 베이스 같은 게 생겨서, 새로운 콘텐츠를 볼 때 그 콘텐츠를 이해, 분석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과정이 (콘텐츠 감상 경험이 적거나 데이터 베이스가 부족한 사람에 비해) 훨씬 신속하고 수월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토록 양질의 리뷰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기록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뉴스레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책에 따르면 뉴스레터 제작자는 제목을 정하거나 새로운 코너를 만드는 일에도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한다고 한다. 내가 매주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보는 뉴스레터 한 회차를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수고가 들었다니. 앞으로 더 열심히, 세심히 읽어야겠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뉴스레터 시장 자체가 작아서 뉴스레터 운영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레터라는 공익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 업을 만들고 지속하는 모습이 멋지다. 저자의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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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스테의 언덕길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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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게 어려울까, 에세이 쓰는 게 어려울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에 들은 모 소설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보다 에세이 쓰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를 전제하기 때문에 글쓴이의 실제 경험도 허구인 척 쓸 수 있는 반면, 에세이는 어떤 내용을 써도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실제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글쓴이 자신도 아직 미처 소화하지 못한 감정에 관한 것이라면 글로 쓰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걸 해낸 책이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집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이라고 느꼈다.


이 책의 저자 스가 아쓰코는 1929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세이신 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게이오 대학 대학원 사회학과 중퇴 후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고 1958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했다. 대단한 부잣집 딸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스가 자신은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자란 영향으로 인해 더 큰 부와 명예를 얻는 일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학문을 따라 신앙을 따라 살다가, 밀라노에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이 책은 스가 아쓰코의 남편 주세페 리카(페피노)가 사망한 후에 저자 홀로 이탈리아 북동부의 항구 도시 트리에스테를 여행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트리에스테는 저자에게 특별한 도시인데, 트리에스테 출신 시인 움베르토 사바의 시를 생전에 남편이 매일 밤 저자에게 읽어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편의 시 낭송을 들으며 언젠가 남편과 둘이서 트리에스테를 여행하고 싶다고, 조만간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혼한 지 7년째 된 해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 꿈은 물거품이 된다. 남편과 사별한 후 남편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을 혼자서 돌아보는 여행이라니. 이보다 더 슬픈 여행이 있을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남편과 함께 밀라노에서 사는 동안 알고 지냈던 이웃들, 남편의 가족들,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는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편의 가족들과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 받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비록 그들을 연결해준 페피노는 세상을 떠났지만 페피노를 기억하고 페피노를 상실한 고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했을 것 같다. 더욱이 저자에게는 페피노를 알지 못하는 고국의 가족들이나 친구들과는 나눌 수 없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을 테고. (친화력이 좋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인들이라면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페피노의 원가족은 지독하게 가난했는데, 저자는 페피노와 결혼 생활을 하며 페피노의 원가족이 안고 있던 진짜 문제는 가난보다 더한 것임을 알게 된다. 원래 페피노는 4남매 중 둘째였는데, 맏이였던 형이 급사하고 막내였던 여동생이 뒤를 이어 사망했다. 가족 중 두 사람이 갑자기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사건은 남은 가족들의 성격을 비밀스럽고 음울하게 만들었고, 이는 직업을 구하거나 사람들을 사귀는 일에도 지장을 주었다. 급기야 아버지와 장남이 세상을 떠난 후 실질적 가장 노릇을 했던 페피노마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남은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는 2차 대전 직후이고, 이탈리아도 일본도 전쟁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저자와 페피노의 가족들에게 죽음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 죽음이 여러 번 겪는다고 익숙해지는 일이던가. 오히려 겪으면 겪을 수록 지난 상처에 새 상처가 더해져 고통이 배가 되는 일이다. 게다가 그 죽음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이라면, 자식이라면, 형제의 것이라면. 아마도 페피노의 가족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그저 살아내는, 살아남는 문제가 더 시급하고 중대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부잣집 딸로 자란 자신이 그저 가난하게만 보았던 페피노의 가족들이 사실은 그토록 깊은 상실의 고통을 안고 생존해 왔음을 알고 경외감을 느낀다. 페피노의 가족들뿐 아니라 동네 수도사, 창부, 이웃, 문제아 등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여러모로 미달인 사람들이 사실은 각자 매우 숭고한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발견한다. 그러니 일상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둘도 없는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차분한, 그러나 거부하기 힘든 태도로 전한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스가 아쓰코가 평생에 걸쳐 찾고자 했던,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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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6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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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복수를 위해 수도인 에도로 온 오니우다 하루야스는 불사의 능력을 지닌 소녀 시노의 권속이 된다. 오니우다는 불사의 능력 때문에 고통 받은 어머니를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시노를 도와주게 되는데, 시노의 오빠인 이쿠마츠는 불사의 능력이 저주라는 시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불사 남매의 대결의 시작되고, 각자의 권속들과 도서계의 병사들까지 휘말리며 대결은 마치 전쟁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


<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6권에는 대결의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불사에 대한 남매의 생각 차이가 발생한 사연이 자세히 나온다. 남매의 어머니인 미치토세는 불사의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열다섯 살 때부터 계속해서 강제로 임신을 당해 불사의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출산해 왔다. 시노는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고통에 공감해 불사의 능력을 저주로 여기는 반면, 남성인 이쿠마츠는 남성을 혐오하게 된 어머니가 아들인 자신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혐오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자식이라도 성별의 차이에 따라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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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발 이세계행
오타케 마사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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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발 이세계행>은 <히나마츠리>의 작가 오타케 마사오의 첫 단편집이다. 단편집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단편집의 구성을 예상했는데 마치 연작 만화처럼 각각의 작품이 연결되어 있어서 놀랐다(작가 후기를 봤을 때 처음부터 이런 형식의 책을 내려고 구상하고 그린 건 아닌 것 같고, 단편집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앞의 만화와 뒤의 만화를 연결하는 'Transfer Station'이라는 형식을 고안한 듯하다). 맨 마지막에 실린 코믹 빔 신인상 수상작 <파란불이 켜지기까지의 시간>만이 앞의 작품들과 연결되지 않는데, 이는 이 작품만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개그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단편집은 형식도 기발하지만 내용도 매우 다채롭다. 일상, 학원, 범죄, 오컬트, 스포츠, 마법, 판타지 등 온갖 장르를 섭렵할 뿐 아니라 각각의 장르를 개그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시키는 솜씨도 훌륭하다. 예를 들어 공동주택에서 칼로 난자당한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최후의 만찬>이 그런 결말을 맺을 줄이야... 일본의 건강한 남자 아이로 태어났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이세계에서 환생, 이후 거듭된 환생 끝에 00000이 되기로 결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미타무라 사쿠라코(가명)의 일생>도 예측불허의 전개를 따른다. 시노하라 켄타의 <스켓>, <위치 워치> 등을 재미있게 본 독자라면 이 단편집도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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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들이 세계를 멸망시킵니다. 4
코바야시 키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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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최고의 암살자 'No.0(넘버 제로)'는 조직의 보스로부터 어떤 임무를 명받는다. 임무의 내용은 마법 학교 '오리온'에서 가짜 교사 '솔로'로서 재직하며 장래에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예지된 2학년 D반 학생들의 미래를 바꾸는 것.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학생도 퇴학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당장 눈 앞에 닥친 중간고사에서 모든 학생들이 낙제를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솔로는 중간고사 전부터 학생들을 관리하며 시험에 대비했는데, 막상 시험 당일 예상 외의 마물이 등장해 토토리와 렉스가 시험장의 밀림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토토리는 마법 실력은 떨어지지만 항상 밝은 미소와 씩씩한 태도로 주변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존재다. 반면 렉스는 D반의 고독한 늑대라고 불릴 정도로 좀처럼 웃지도 않고 같은 반 학생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 아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솔로와 학생들 그리고 세계의 운명이 걸린 대망의 중간고사 결과는...? <선생님! 저희들이 세계를 멸망시킵니다> 4권에는 토토리와 렉스의 오랜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이전 에피소드들과 다르게 로맨스 장르 느낌도 나고 전체적으로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이런 에피소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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