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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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는 연세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학위를,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동유럽 지역의 문학에 정통한 작가라서 그런가. 정보라 작가의 소설은 동세대 한국 작가들보다 프란츠 카프카나 안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동유럽 지역의 작가들의 소설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미신이나 마법 같은 사건이 일상에 틈입해 균열을 낼 때의 긴장과 공포를 섬뜩하게 그린 점이 그렇다. 


표제작 <저주토끼>도 그렇다. 대를 이어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안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오래 전 할아버지에게는 술을 만드는 집안에서 자란 친구가 있었다. 친구네 집안은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전통주를 만들 뿐, 허튼 일에 한눈 팔지 않았다. 그런 친구네 집안을 고깝게 본 경쟁사가 거짓 소문을 퍼트려 친구네 집안을 망하게 했고, 나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망하는 현실을 보다 못한 할아버지는 저주토끼를 만들어 복수에 나선다. 


<머리>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종이나 비닐, 플라스틱, 캔 같은 쓰레기만이 아니라 대변과 소변, 머리카락, 깎아낸 손톱, 발톱, 각질, 비듬 등의 오물도 포함해서 그렇다. 만약 이 오물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나'를 생성한다면 어떨까. 그 '또 하나의 나'가 원래의 나와 구분되지 않고, 원래의 나보다 훨씬 더 나 같다면, 나는 어떻게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괴하고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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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6 - 몽골 편 : 위대한 제국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6
설민석.김정욱 지음, 박성일 그림, 김장구 감수 / 단꿈아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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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만화도 보고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가족 모두 읽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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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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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기 전에는 정지아 작가를 몰랐고, 정지아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 정지아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1990년 <빨치산의 딸>로 데뷔해 올해로 작가 활동을 한 지 33년이 되었고, 그동안 소설집 <행복>, <봄빛>, <자본주의의 적> 등 다수의 책을 발표하셨다고 한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부지런히 따라 읽어볼 생각이다. 

이 소설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후 하나뿐인 딸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딸은 젊은 시절 빨치산이었고 늙어서도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를 평생 미워했다. 사상이나 이념보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거니와,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는 동네와 학교에서, 커서는 직업 선택과 결혼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한 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그리고 아버지와 그들의 사연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딸은 아버지가 그저 이념에 눈이 멀어 가족과 생계는 뒷전으로 여겼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사내가 아니라, 평등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으며 혈연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헌신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도 그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끝내 실패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빨치산이라는 것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가 된 딸이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 더 관심이 갔다. 조부모상을 치르면서 장례가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상주가 되면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소설 속 딸은 아버지의 장례를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지만, 과연 나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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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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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편의점 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집이다.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을 읽는 건 <편의점 인간> 이후 두 번째인데,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재가 파격적이고 전개 방식이 독특해서 과연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 사이에서 별명이 '크레이지 사야카'라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듯 ㅎㅎ 실례인가?) 


책에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와 했던 마법소녀 놀이를 아직도 그만두지 못한 서른여섯 살 직장인(<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 해온 남자아이를 대학에서 만나 그를 자신의 집으로 납치, 감금한 여대생(<비밀의 화원>), 성별이 금지된 학교에 다니며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고등학생(<무성 교실>), 사람들이 더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에 당황하는 중년 여성(<변용>)의 이야기 중 무엇 하나 식상하거나 지루한 것이 없었다.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을 앞으로도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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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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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 역사>를 쓴 미국 작가 니콜 크라우스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약 20년 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단편 열 편을 모았다. 가장 오래 전에 발표된 작품은 2002년에 발표된 <미래의 응급 사태>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각 지역에 설치된 배급소에서 가스 마스크를 받아 가라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작가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한참 전에 팬데믹 발생 직후의 풍경을 예측한 듯한 상상을 했다는 게 놀라웠고, 팬데믹이 여러 면에서 인간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미리 경고한 점이 신기했다. 


니콜 크라우스는 (자신처럼) 유대계 미국인인 이성애자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표제작 <남자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여성은 독일인 남자친구로부터 만약 자신이 나치 점령기에 태어났다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지시에 따랐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이스라엘인 남성 친구로부터는 군에 있을 때 상부의 명령에 따라 팔레스타인인 가족 전체를 죽일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다면 남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 의지나 공동체의 도덕 윤리보다 눈앞의 권력을 중시하고 부당한 폭력을 용인하는 것,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것일까. 그런 남성, 남성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점점 더 불행하고 잔혹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 


주인공이 지금은 아이지만 순식간에 자라서 남성의 세계로 편입될 두 아들을 위태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아들 가진 어머니의 마음이 대체로 이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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