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모들 창비만화도서관 7
근하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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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모들이라... 나에게도 이모가 둘 있는데, 엄마와 이모들이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나 또한 이모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다. 어릴 때는 이모들이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 나한테 옷도 사주고 가방도 사주고 잘해줬던 것 같은데, 이모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나서는 자연히 조카인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이건 삼촌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내 지론은, 조카 사랑은 이모 삼촌이 결혼하기 전에나 가능한 것이고 결혼한 후에는 조카고 뭐고 자기 자식뿐이다... 


그래서 이 만화를 보면서 진희 이모가 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까지 아픈 효신을 자신이 맡겠다고 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희 이모가 비혼이고 레즈비언이라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진희 이모가 비혼이 아니었다면, 이성애자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바로 결혼할 수 있었다면, 만화 속에서처럼 효신을 맡겠다고 할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진희 이모가 법적으로 비혼이고, 실제로는 동거인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여자이니까 같이 살 수 있었지, 만약 진희 이모한테 남편이 있거나 남성 동거인이 있었다면 절대 효신이 못 데려왔다. 자식이 있는데 남자면 그것도 어렵고. 


이 만화에서 가장 문제는 효신의 아빠다. 아무리 아내를 잃고 힘든 상태라고 해도 엄마를 잃은 어린 딸보다 힘들까. 힘들어도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애 앞에선 힘든 내색 안 하고 살아야지. 이런 놈도 이성애자 남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가장 대접 받고 산다는 게 참... 그에 비하면 애도 안 낳고 결혼도 안 하고,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문제 많은' 여자들인 이모들은 얼마나 어른스럽고 성숙한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만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런 당신들은 얼마나 성숙한 어른인지 묻고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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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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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하면 한국에선 <인간실격>이 단연 유명하고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에선 <인간실격> 못지 않게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반면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달려라 메로스>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연예인들이 <달려라 메로스>를 언급하는 장면을 하도 많이 봐서 언젠가 원작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2022년 민음사 판으로 읽게 되었다. (속 시원...) 


알고 보니 <달려라 메로스>는 장편이 아니라 (이 책 기준) 열일곱 쪽 남짓한 단편이다.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 원작도 아니고 독일 시인 실러의 장편 시 <인질>이 원작이라고. <달려라 메로스>는 폭군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메로스가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를 대신 인질로 세우고 고향에 다녀온다는 내용이다. "기다리는 몸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몸이 괴로울까?"라는 명대사는 이 소설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겪은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이 책의 전반부에는 <달려라 메로스>를 비롯한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 단편들이 실려 있고, 후반부에는 일본의 전래 동화를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로 각색한 <옛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십여 년의 도쿄 생활을 회고하면서 쓴 자전적 소설 <도쿄 팔경>이 참 좋았다. 기뻤던 일도 슬펐던 일도,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모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마음에 남고, 그것들이 결국 하나의 생[一生]으로 정리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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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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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렘의 책을 읽다가 결국 포기했다. 책 읽다가 포기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SF 소설은 완독을 못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고 과학 같은 이 느낌... 근데 <미키7>은 괜찮았다. 너무 재밌어서 한 번에 다 읽었다. SF 소설 잘 못 읽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이 찬사로 들릴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이런 기분. <마션> 이후 오랜만이야... 


주인공 미키는 거액의 빚을 지는 바람에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이 되어 우주 개척단에 참가하게 된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능력 때문에 온갖 위험한 임무를 떠맡는 미키. 그렇게 미키1, 미키2, 미키3, 미키4, 미키5, 미키6이 죽고, 미키7이 어느 날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얼음 구덩이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미키7이 죽었다고 생각한 베르토는 미키8의 재생성을 요청하는데, 다음날 미키7이 베르토 앞에 나타난다. 미키7이 죽지 않고 미키8과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본부에 알려지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데... 


똑같이 생긴 미키7과 미키8이 (사실은 둘이지만) 한 사람인 척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 <페어런트 트립>이 생각나기도 했다(<페어런트 트립>은 쌍둥이 자매가 한 사람인 척하는 내용이다).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면 인간과 그를 복제한 복제인간은 동일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걸로도 볼 수 있는데, 미키7과 미키8이 제한된 식량을 두고 다투는 모습이나 각자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작가는 둘이 다른 인격이라고 보는 듯하다. <미키7>은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미키17>의 원작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미키7>에서 미키는 빚 때문에 익스펜더블이 되고, 익스펜더블이 된 후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능력 때문에 개척단 사람들로부터 노예나 머슴처럼 부림을 당한다. 복제인간을 만들고 우주 개척을 할 만큼 기술이 발전해도 부의 불평등, 계급 차별 같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아찔하고 참담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선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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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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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출판사(문학동네)에 대한 신뢰로 구입한 책이다. 표지를 열고 나서야 작가가 칠레 사람이고(루이스 세풀베다 이후 칠레 작가의 책을 읽는 게 참으로 오랜만) 일반적인 소설이 아닌 과학 논픽션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과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약간의(사실은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으나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문구에 마음을 달래며(재미가 없어도 대체 어떤 소설이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는지 보기라도 하자) 다음 장을 넘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너무 재밌었음.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프러시안블루라는 안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시안화물이라는 인체에 치명적인 화합물이 탄생했고, 이는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한 독가스를 생성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편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독가스 공격을 주도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그가 발견한 질소 덕분에 비료 혁명이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의 목적이나 의도와는 다른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고 과학계를 떠나거나 아예 세상과 등지는 인물들도 있다. 


때로는 문제의 답을 찾은 후 더욱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양자역학이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는 각각 행렬역학과 파동방정식을 이용해 고전물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각자의 방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서로에 대한 공격과 반박을 한참 동안 거듭한 끝에야 알아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학자의 모습처럼)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만 들여다 보지 않고, 전화통을 붙들고 스승에게 징징대거나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천재도 별 수 없구나(평범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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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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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시작한 아니 에르노 전작 읽기의 끝이 보인다. 이제 <한 여자>, <여자아이 기억>, <칼 같은 글쓰기>만 읽으면 국내에 출간된 아니 에르노의 책은 전부 읽은 셈이 된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한 번에 몰아서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것이 많고, 작가와 작품의 거리가 짧은 만큼 독자인 나에게 전해지는 자극이 커서, 이토록 강렬한 독서 체험은 이번이 처음이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얼어붙은 여자>는 아니 에르노가 1981년에 출간한 세 번째 책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주변에서 보았던 여자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머니와 이모들, 이웃 아주머니들 등 저자가 어릴 때 보았던 여자들의 모습은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가녀리고 우아한 여성들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많이 먹고 마시고, 실컷 자고 열심히 일했으며, 크게 웃고 울고 떠들었다. 저자의 부모는 함께 식당 겸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호방한 성격의 어머니가 주로 청소와 빨래, 돈 관리를 담당했고, 섬세한 성격의 아버지가 요리와 설거지, 딸의 등하교를 도맡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자는 남녀의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자신과 다른 계층의 아이들을 사귀면서, 저자는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르주아 또는 중산층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의 세계에서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성격과 태도도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자라면 야망을 크게 가지고 점점 더 많은 성취를 하는 것이 장려되는 반면, 여자는 그러한 꿈을 가지는 것이 장려되지 않았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남자를 서포트하는 역할에 머무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그렇게(남자의 서포트나 하는 여자로) 키우지 않았다. 하나뿐인 딸에게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교육을 받게 해줬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일찍 시집 가서 아이를 키우며 젊은 시절을 보내기 보다는,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직업을 가지라고 재촉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저자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았다. 결혼이라는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는. 


대학 졸업 즈음 결혼한 저자는 결혼한 후에도 순조롭게 학업을 이어가서 원하던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곧바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교사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문제는 결혼 직후만 해도 저자와 비슷한 처지였던(고학력 대졸 실업자) 저자의 남편은 아내의 서포트와 기혼자, 가장 특혜 등을 누리며 취업, 승진, 연봉 상승 루트를 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남편의 성공으로부터 덕을 보기는 했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콩고물일 뿐. 기껏해야 남편이 흘리는 콩고물이나 받아먹으려고 여자들이 어릴 때부터 피 땀 눈물 흘리며 공부하고 입시 치르고 취업 준비하는 건 아니잖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18년이나 결혼 생활을 지속했다는 게 대단하고(이 책 내고 1년 후 이혼했다고), 첫째 낳고 어렵게 교사 자격증 따서 교사 일 시작한 후에 학교에 기혼 유자녀인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둘째를 낳는다(?)는 사고방식이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전체적으로 <82년생 김지영>의 프랑스 버전 같기도 한데, 이 책은 1981년에 나왔고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에 나왔다는 거(대체 한국은 얼마나 후진국인 거야)... 지금 프랑스 여성들의 삶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이 시절보다는 나아졌을까 아니면 도긴개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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