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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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은 1,2,3권 다 읽으면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아직 2,3권을 안 읽었고 언제 읽을지 몰라서 1권만 지금 리뷰를 쓴다. 하라다 히카의 <할머니와 나의 3천 엔>,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를 읽고 이 작가는 여자 혼자 돈 벌고 먹고 사는 이야기를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낮술>도 예외는 아니다. 


주인공 쇼코는 서른한 살 여성으로, 현재는 이혼했고 하나뿐인 딸은 남편이 키우는 상태다. 쇼코는 동창이 사장인 인력 사무소에서 '지킴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특이하게도 쇼코는 낮이 아니라 밤에 일을 하는데, 가령 밤에 집을 비워야 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을 대신해 그의 반려견, 아픈 아이, 노모 등을 돌보는 것이다. 그렇게 밤부터 다음 날 오전 시간까지 일을 한 쇼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에 그날의 첫 끼를 먹으면서 간밤의 피로를 씻어주고 이후에 이어질 잠을 부르는 '낮술'을 마신다. 


이 소설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와 구성이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주인공이 매일 다른 장소에서 일을 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급격한 허기를 느끼며(하라가 헷따!) 자신의 위장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낸 다음 맛있게 먹는다. 차이가 있다면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은 술을 절대 안 마시는 반면, <낮술>의 쇼코는 때론 밥보다 술이 먼저일 만큼 술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 


또 다른 차이점은 <고독한 미식가>에는 고로상의 개인사가 적은 반면, <낮술>에는 쇼코의 개인사가 적지 않게 나온다. 여기서 개인사란 쇼코가 과거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준비되지 않은 결혼을 한 바람에 결혼 생활 내내 불행했고 이혼 후에도 죄책감과 후회에 시달리는 것인데, 어차피 벌어진 일 이제 와서 생각해 봐도 별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는 쇼코의 모습과, 지금부터라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애틋하기도 하고 남 같지 않기도 하고... 얼른 2,3권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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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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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 작가님이 강력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이다. 맨 처음에 실린 단편 제목이 <화분>이라서 식물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임이랑 작가님(a.k.a. 식물이랑)이 추천하실 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화분이 그냥 화분이 아니야... 무려 아버지의 유골을 묻은 화분. 근데 화분이 말을 해. 정확히는 화분에 심은 식물이.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화분 말고 말하는 화분이 또 있어. 그 화분하고 이 화분하고 만나서 나중에는... 아무튼 재밌으니 읽어보시라. (참고로 팟캐스트 <임이랑의 식물수다>에 이유리 작가님이 출연하신 회차가 있으니 궁금하면 들어보시기를.)


[시즌2] 5화. 브로콜리 펀치의 사정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3072/episodes/24353596

[시즌2] 6화. 소설가의 식물 생활 feat. 이유리 작가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3072/episodes/24353598


이어지는 <둥둥>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인생을 건 열성팬이 바다에 빠졌다가 캐리어에 매달려 '둥둥' 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표제작이기도 한 <브로콜리 펀치>는 복싱 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하는 상황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왜가리 클럽>이다. 다른 단편들과 달리 (화분이 말을 한다거나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는 식의) 판타지적인 설정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MBTI가 I로 시작하는) 내향인인 나로서는 낯선 동네에서 낯선 사람들과 우연히 친구가 된다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비일상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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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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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크고 두툼해서 다 읽는 데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었다. 에이모 토울스의 이참에 에이모 토울스의 다른 책도 다 읽어보려고 살펴봤는데, 국내 출간작 3권 중에 <모스크바의 신사>는 진작에 읽었고 <우아한 연인>만 아직 안 읽어서 바로 구입해 읽고 있다(이 책도 너무 재미있다). 


1954년 네브래스카. 소년원에서 퇴소한 열여덟 살 소년 에밋은 원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에밋의 아버지는 최근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에밋이 어릴 때 집을 떠났다. 에밋은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린 동생 빌리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계획을 세우는데, 에밋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다. 소년원의 문제아 더치스와 울리가 원장의 차 트렁크에 몰래 숨어서 에밋을 따라온 것이다. 고지식한 성격의 에밋은 더치스와 울리를 소년원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그때 더치스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울리의 가족이 사는 뉴욕으로 가서 울리의 할아버지가 울리에게 남긴 신탁자금을 찾아 나눠갖자는 것이다. 


사실 에밋은 더치스의 제안을 내켜 하지 않았는데, 독서광인 에밋의 동생 빌리가 자신이 사랑하는 책의 저자가 뉴욕에 산다며 뉴욕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링컨 하이웨이를 타고 뉴욕으로 떠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사건과 사고, 만남과 배신, 우연과 필연 등등이 이어지며 네 소년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만났다가 다시 흩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이 모든 일들이 겨우 열흘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고 놀랐는데, 그만큼 에피소드들이 극적이고 장면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섬세하며 탁월하다. 


미성숙한 소년 넷이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은 설정의 영화 <스탠 바이 미>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시체(the body)>가 떠오르기도 했다(에이모 토울스는 제2의 스티븐 킹이 될 수 있을까? 그럴지도...). 이참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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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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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정희는 재취업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 성훈이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어딘가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무리 연락해도 남편은 답이 없고,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운 정희는 남편이 출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때 낯선 남자가 정희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성훈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지애의 남편이라며 성훈의 행방을 묻는다. 지애가 결혼한 줄도 몰랐던 정희는 성훈과 지애가 함께 도망간 것 같다는 남자의 말에 혼란스러워 한다. 


어린 자식의 죽음과 배우자의 실종이라는 설정만으로도 <가장 나쁜 일>이라는 제목이 타당하게 느껴지는데, 이 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정희는 (어린 자식의 죽음과 배우자의 실종보다도) 더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정희만 '가장 나쁜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탈북자 출신인 점례는 남한에서 아들을 잃었고, 점례의 동료인 철식 역시 남한에서 아내 록혜를 잃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의 빌런은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만드는 인물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애초에 그런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 구조 혹은 환경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정희와 성훈이 아들을 잃지 않았다면, 국가의 의료보험 제도가 훨씬 더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들을 케어할 수 있었다면, 정희도 성훈도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도 그토록 비참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 


인간의 생로병사가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고도의 돈벌이가 된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나쁜 일, 더 나쁜 일, 가장 나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산다는 건 돈이 든다는 것이고, 돈이 드니까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되고,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이후 정희의 삶이 더욱 궁금하다. 정희는 과연 (나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살아갈 낙이나 희망을 찾았을까. 언젠가 정희의 후일담을 읽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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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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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을 가진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휴먼 드라마 풍의 소설이다. 1급 말더듬이 진단을 받은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건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한테도 괴롭힘을 당한다. 유일한 식구인 엄마는 술을 즐겨 마시고 남자 취향이 별로다. '나'는 언어 교정원을 찾아온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지만, 원장이 내는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자신처럼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점점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화자인 '나'는 말더듬증이 있을 뿐, 내면의 언어는 상당히 풍부하다. 입을 통해 발화하지 못하는 말들을 죄다 글로 적어서, 나중에는 '소설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기 전의 '나'는 아직 열네 살인데도 어른들을 낮잡아 보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등 건방지고 염세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언어 교정원에 다니면서 겉보기에 멀쩡한 어른들 중에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말 자체는 유창하게 잘하지만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특정 단어를 발화하지 못하는 등 같은 말더듬증 환자라도 증상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 초반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나는 소설 후반에 이르러 좀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그 사이 세상이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서는 아니고, '나'가 변했기 때문이다. '나'의 말더듬증은 여전하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문제 없이 살고 있지만, 그동안 '나'는 소설 쓰기라는 재능을 발견했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 원래는 가정과 학교가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정서적 안정을 형성해 줘야 하는데, 이 소설에선 가정과 학교가 지옥이고 제3의 공간인 언어 교정원이 가정과 학교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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