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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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크고 두툼해서 다 읽는 데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었다. 에이모 토울스의 이참에 에이모 토울스의 다른 책도 다 읽어보려고 살펴봤는데, 국내 출간작 3권 중에 <모스크바의 신사>는 진작에 읽었고 <우아한 연인>만 아직 안 읽어서 바로 구입해 읽고 있다(이 책도 너무 재미있다). 


1954년 네브래스카. 소년원에서 퇴소한 열여덟 살 소년 에밋은 원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에밋의 아버지는 최근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에밋이 어릴 때 집을 떠났다. 에밋은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린 동생 빌리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계획을 세우는데, 에밋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다. 소년원의 문제아 더치스와 울리가 원장의 차 트렁크에 몰래 숨어서 에밋을 따라온 것이다. 고지식한 성격의 에밋은 더치스와 울리를 소년원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그때 더치스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울리의 가족이 사는 뉴욕으로 가서 울리의 할아버지가 울리에게 남긴 신탁자금을 찾아 나눠갖자는 것이다. 


사실 에밋은 더치스의 제안을 내켜 하지 않았는데, 독서광인 에밋의 동생 빌리가 자신이 사랑하는 책의 저자가 뉴욕에 산다며 뉴욕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링컨 하이웨이를 타고 뉴욕으로 떠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사건과 사고, 만남과 배신, 우연과 필연 등등이 이어지며 네 소년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만났다가 다시 흩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이 모든 일들이 겨우 열흘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고 놀랐는데, 그만큼 에피소드들이 극적이고 장면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섬세하며 탁월하다. 


미성숙한 소년 넷이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은 설정의 영화 <스탠 바이 미>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시체(the body)>가 떠오르기도 했다(에이모 토울스는 제2의 스티븐 킹이 될 수 있을까? 그럴지도...). 이참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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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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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정희는 재취업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 성훈이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어딘가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무리 연락해도 남편은 답이 없고,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운 정희는 남편이 출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때 낯선 남자가 정희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성훈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지애의 남편이라며 성훈의 행방을 묻는다. 지애가 결혼한 줄도 몰랐던 정희는 성훈과 지애가 함께 도망간 것 같다는 남자의 말에 혼란스러워 한다. 


어린 자식의 죽음과 배우자의 실종이라는 설정만으로도 <가장 나쁜 일>이라는 제목이 타당하게 느껴지는데, 이 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정희는 (어린 자식의 죽음과 배우자의 실종보다도) 더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정희만 '가장 나쁜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탈북자 출신인 점례는 남한에서 아들을 잃었고, 점례의 동료인 철식 역시 남한에서 아내 록혜를 잃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의 빌런은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만드는 인물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애초에 그런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 구조 혹은 환경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정희와 성훈이 아들을 잃지 않았다면, 국가의 의료보험 제도가 훨씬 더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들을 케어할 수 있었다면, 정희도 성훈도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도 그토록 비참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 


인간의 생로병사가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고도의 돈벌이가 된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나쁜 일, 더 나쁜 일, 가장 나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산다는 건 돈이 든다는 것이고, 돈이 드니까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되고,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이후 정희의 삶이 더욱 궁금하다. 정희는 과연 (나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살아갈 낙이나 희망을 찾았을까. 언젠가 정희의 후일담을 읽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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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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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을 가진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휴먼 드라마 풍의 소설이다. 1급 말더듬이 진단을 받은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건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한테도 괴롭힘을 당한다. 유일한 식구인 엄마는 술을 즐겨 마시고 남자 취향이 별로다. '나'는 언어 교정원을 찾아온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지만, 원장이 내는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자신처럼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점점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화자인 '나'는 말더듬증이 있을 뿐, 내면의 언어는 상당히 풍부하다. 입을 통해 발화하지 못하는 말들을 죄다 글로 적어서, 나중에는 '소설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언어 교정원에 다니기 전의 '나'는 아직 열네 살인데도 어른들을 낮잡아 보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등 건방지고 염세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언어 교정원에 다니면서 겉보기에 멀쩡한 어른들 중에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말 자체는 유창하게 잘하지만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특정 단어를 발화하지 못하는 등 같은 말더듬증 환자라도 증상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 초반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나는 소설 후반에 이르러 좀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그 사이 세상이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서는 아니고, '나'가 변했기 때문이다. '나'의 말더듬증은 여전하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문제 없이 살고 있지만, 그동안 '나'는 소설 쓰기라는 재능을 발견했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 원래는 가정과 학교가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정서적 안정을 형성해 줘야 하는데, 이 소설에선 가정과 학교가 지옥이고 제3의 공간인 언어 교정원이 가정과 학교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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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지도 - 위대한 정신을 길러낸 도시들에서 배우다
에릭 와이너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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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가 2016년에 발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시기에 어떤 도시에서 창의적인 천재들이 갑자기 다수 출현한 것은 당시 그 도시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특징 때문이라고 보고, 이러한 관점에 따라 아테네,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 콜카타, 빈, 샌프란시스코 등을 여행한다. 책이 두꺼운 편이지만(516쪽), 저자의 문체가 워낙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있어서 술술 읽힌다. 


대체로 전성기에는 도시가 부유하고, 도시 안팎의 물리적, 정신적 소통이 자유로운 반면, 전성기가 끝날 때는 도시가 가난해지고 폐쇄적이 되는 듯하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하고 있는 K-POP만 보아도 엄청난 자본이 몰리고 있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나라에서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성공하고 싶다면 풍부한 자본이 있고, 출신보다 실력을 우선시하는 (개방적인)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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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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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도리스 레싱의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는 여성, 비백인 등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 차별이 어떤 식으로 백인 남성의 기득권 강화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도리스 레싱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 역시 여성 혐오와 흑인 혐오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며, 여성인 동시에 흑인인 흑인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피폐한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타인의 기원>은 토니 모리슨이 타계한 2019년으로부터 2년 전인 2017년에 발표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해리엇 비처 스토 등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백인 남성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인종 차별, 흑인 혐오 정서를 내보였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보나 젠더로 보나 기득권층에 속하는 그들이 왜 이런 식으로 차별과 혐오의 정서를 내면화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예로 든 백인 남성 작가들은 소설에서 흑인을 묘사할 때 고유한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지 않고, 멍청하고 게으르고 성과 폭력에 물들어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어떤 집단을 균질하게 보고 납작하게 묘사하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인 데다가, 흑인이 백인과 동일한 노동을 해도 절반 이하의 소득을 얻고,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더 심한 처벌을 받는 등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저자는 또한 유럽에서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등이었던 사람들이 미국에 오면 전부 '백인'이 되고, 아프리카에서 콩고인, 가나인, 케냐인이었던 사람들이 미국에 오면 전부 '흑인'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인종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과정에서 후속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며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가난한 백인들이 부유층 우대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 정부에 투표한 것은 미국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인종이라는 허상의 관념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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