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이야기 와이드판 1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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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판으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만화를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신부 이야기>를 고를 것 같다. 이건 내가 방금 <신부 이야기 와이드판> 1,2권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리지널 단행본으로 읽었을 때보다 와이드판으로 읽었을 때 작화의 정교함과 섬세함, 줄거리의 감동과 내용의 스케일이 훨씬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부 이야기 와이드판>은 가로 17cm, 세로 24cm의 대형 판형으로 표지는 양장본이고 케이스까지 함께 제작되었다. 내지 역시 고급 종이를 사용했고 화려한 면지와 컬러로 된 대형 브로마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내용은 19세기 중앙 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유목민 출신의 스무 살 여인 아미르와 정착민 가문의 열두 살 소년 카르르크가 집안 간의 약속에 의해 부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이국의 문화와 풍습이 품고 있는 생경함과 신비함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한편, 대가족이나 조혼 등 우리네 조상들의 생활상과 닮은 점을 찾는 재미도 준다. 




<신부 이야기>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모리 카오루 하면 떠오르는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체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작화 수준이 훌륭하다. 오리지널 단행본으로 볼 때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지만, 일반 단행본보다 두 배 정도 큰 스페셜 판형으로 보니 더욱 황홀하다. 실크로드의 드넓은 평원을 그린 장면은 호쾌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수나 목공, 요리(빵 만들기) 등을 구현한 장면은 세밀하면서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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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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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하면 영화로도 친숙한 '리플리' 시리즈나 <캐롤> 등이 먼저 떠오른다. 둘 다 지금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될 만큼 신선하고 세련되어 하이스미스가 얼마나 오래 전에 활동한 작가인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2021년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출간된 소설집 <레이디스>에는 하이스미스가 1936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한 단편 16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이스미스가 '리플리' 시리즈,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캐롤> 등을 발표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기 전에 쓰인 작품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미숙하고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의외로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읽을수록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금남(禁男)의 공간인 수녀원에서 어릴 때부터 여자로 키워진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을 시작으로, 지하철 플랫폼 위에 버려진 가방을 둘러싼 두 남자의 갈등을 다룬 <미지의 보물>,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린 뉴욕의 택시 기사가 시골 마을로 휴가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최고로 멋진 아침> 등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 유형과 배경, 소재 등이 다양하고 전개를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스미스가 이후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다.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라는 단편에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남편을 살해하고 예전에 살았던 항구 마을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생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은근하고도 질긴 차별과 억압을 무서우리만치 예리하고 섬세하게 그린 점이 지극히 하이스미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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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색칠 가계부 - 1달에 1장, 쓰면 아끼는
쓰담여사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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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장만하는 품목이 달력과 다이어리, 가계부다. 달력과 다이어리는 대체로 잘 쓰는 편인데, 가계부는 큰맘 먹고 구입해도 한두 달을 못 채운 적이 많아서 올해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구입할 생각이다. 그런 내 눈에 띈 책이 바로 <깍두기 색칠 가계부>다. 


이 책을 쓴 '쓰담여사'는 초보 유튜버이자 블로거,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생활비가 급격히 늘었고 이대로는 맞벌이를 해도 마이너스 통장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저자는 수입을 늘릴 수 없다면 지출을 줄이자는 생각으로 '고정지출을 뺀 변동지출을 100만 원만 쓰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기존의 가계부 작성 방식은 계산하기가 귀찮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시간만 많이 잡아먹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1칸이 1만 원인 100칸짜리 표를 그리고 지출 금액만큼 색칠하는 '깍두기 색칠 가계부'다. 깍두기 색칠 가계부는 쓰는 방법이 간단해서 밀리지 않는다. 쓱 보기만 해도 그동안 얼마나 썼는지, 잔액이 얼마나 남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숫자가 아닌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에 충동구매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계산 및 결산 스트레스가 없다. 색칠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아이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책에는 깍두기 색칠 가계부의 사용법과 효과 외에도 가계부를 활용해 우리 집 경제 상황 파악하기, 연간 이벤트 기록하기, 월간 일정 확인하기, 한 달 예산 정하기 등이 나온다. 워킹맘으로서 저자가 직접 실천하고 효과를 경험한 생활비 줄이기, 더 벌기 팁도 실려 있다. 저자 부부는 온라인 쇼핑몰, 주식투자, 부동산 임대료, 유튜브, 인세 등으로 본업을 통한 수입 외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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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빛 - 빛의 세계에서 전해 주는 삶을 위한 교훈
로라 린 잭슨 지음, 서진희 옮김 / 나무의마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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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혼의 존재를 확신할 만한 사건을 겪어본 일이 없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무당 또는 영매가 존재하고 그들이 죽은 사람들과 교감하거나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나의 인식 여부와는 별개로 영혼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의 빛>을 쓴 로라 린 잭슨은 미국의 영매다. 한국에서 무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듯이 서양에도 영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상하는 모습이 있는데, 로라 린 잭슨은 그런 모습과 거리가 먼 외모를 지녔다. 학력과 직업도 훌륭하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 남편을 둔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저자가 영매로서의 능력을 인식한 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수영장에서 놀다가 문득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만에 엄마를 따라서 외갓집에 갔는데 그것이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이 일을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자신의 모계에 영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저자가 영매로서 산 건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서양에도 영매가 비과학,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낮잡아보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에게 영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철저히 숨기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영매의 기질 때문인지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일이 훨씬 더 적성에 맞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교사의 길을 택했고, 20년 동안 훌륭하게 교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저자는 학교장의 허락 하에 낮에는 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영매로서 사람들을 만난다. 의뢰인들은 대체로 병이나 사고 등으로 가족이나 연인,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다. 저자는 의뢰인의 사연을 듣고 망자가 보내는 이미지나 단어를 해석해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상담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의뢰인이 오래지 않아 저자가 망자를 대신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눈물을 터트리는 대목들이 뭉클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연구하는 단체인 윈드브리지 연구소에서 공인받은 영매이기도 하다. 영매로서 자신의 영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는 한편, 영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과학자들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다른 영매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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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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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있다. 재작년과 올해 2차에 걸쳐 출간된 김영하 소설 결정판 박스 세트를 틈날 때마다 한 권씩 읽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화자의 직업이 자살 안내자라니 신선하군'이라는 생각 외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자살 안내자인 화자가 그동안 자신이 자살을 도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두 명의 사례를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첫 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유디트라는 여성으로, 유디트는 형제인 C, K와 삼각관계를 이뤘다가 죽음을 택한다. 두 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미미라는 여성으로, 행위예술가인 미미는 비디오 아트를 하는 C와 협업을 했다가 죽음을 택한다. 두 개의 사례 모두 남자는 어리숙하고 우유부단한 반면 여자는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 소설이 출간된 90년대를 강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구 한국어판 제목은 '상실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 (<에반게리온>도 비슷한 걸 보면 세기말 남성 창작자들의 공통된 성애관이었던 걸까.) 


전체적으로 지금의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세기말 감성이 낭낭한 소설이지만, 다비드의 유화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시작한다든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가벼운 혼란을 준다든지, 종국에는 인간 존재의 허무, 기억의 불완전성, 관계의 허구성 등을 사유하는 점 등은 김영하 작가의 작품답게 우아하고 영리하며 성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 <작별인사>는 가장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철이'가 스스로 인간 되기를 포기함으로써 역으로 가장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이야기인데, <파괴>의 75쪽에 "마네킹보다 사람은 우월한 존재일까. 왜 만화영화의 요괴들과 사이보그들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안달일까?"라는 문장이 나와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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