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생활 - 부지런히 나를 키우는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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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읽는 생활'을 하기가 힘든 요즘이다. 내가 속한 업계는 연말연시가 대목이라서 일이 많기도 하고, 갑자기 아버지의 눈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집을 수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가는 곳마다 들고 다니면서 한 줄이라도 읽으려고 애쓴 책이 있다. 임진아 작가의 신간 <읽는 생활>이다. 


나는 임진아 작가를 좋아한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오늘의 단어> 등 임진아 작가가 집필한 모든 책을 읽었고, <어린이라는 세계>, <올리브색이 없으면 민트색도 괜찮아> 등 임진아 작가가 그린 삽화가 들어간 책들도 사랑한다. 최근에는 오직 임진아 작가를 보기 위해 북서울 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도 다녀왔고, 임진아 작가의 2023년 일력은 친구한테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부탁해두었다. 


<읽는 생활>은 그동안 출간된 임진아 작가의 책 중에 가장 글밥이 많다. 책 제목이 '읽는 생활'인 만큼 주로 작가이자 독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실려 있지만, 어떤 글에는 어린 시절의 임진아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대목도 있고, 또 어떤 글에는 임진아 작가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려볼 수 있는 문장도 있다. 


가장 좋았던 글은 서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책을 닮은 사람'이라는 글이다. "그곳은 요즘 내가 완전히 잊고 지냈던, 실은 내가 향하고 싶던 공기로 그득하다. 어쩌면 빵을 만들지도 모르는 나, 어쩌면 시금치에 다른 간을 더해서 저녁 테이블에 올려놓을지도 모르는 나, 어쩌면 소도시로 여행을 갈지도 모르는 나, 어쩌면 방 구조를 바꿀지도 모르는 나. 그럴지도 모르는 나를 만나면서, 나는 내일이면 넘겨지는 새로운 페이지를 다르게 떠올려보게 된다. 어쩌면 가장 나를 닮은 시간을 서점에서 다시금 만나는 건지도 모른다." (121쪽) 


임진아 작가처럼 나도 서점에 갈 때마다 '내가 완전히 잊고 지냈던' 나, '실은 내가 향하고 싶던', '그럴지도 모르는' 나를 만나고 오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쩌면 바로 그 기분 때문에, 십 년이 넘도록 독서라는 취미에 매진하고 서평 쓰기라는 습관을 지속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은 한 번만 살지만, 책을 읽으면 그 때마다 삶을 다시 살 수 있다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현재의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때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책을 읽으면 언제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 듯한 기분을 느끼니까. 


앞으로 또 다시 책 읽기가 힘들거나 버겁게 느껴질 때면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 읽어야겠다.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찾게 되는 영양제처럼, 책과의 거리가 멀어진다고 느낄 때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의 원기와 활력이 채워져서 책을 찾는 손길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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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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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소설 하면 <디어 랄프 로렌>이 떠오른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갈마드는 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적응하고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손보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도 비슷한 구성을 지녔다. 처음에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해서 중심에 놓인 살인 사건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채유형과 진경언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 정통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채유형이라는 인물이 우연히 접하게 된 살인 사건을 통해 그동안 외면해온 문제들과 마주하고 끝내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야기는 채유형이 대학 후배의 소개로 한 인터넷 방송국의 PD가 되면서 시작된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랐지만, 취업에 있어서도 학업에 있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유형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여태 숨기고 있는 양부모와, 고등학교 때 받은 익명의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 친부의 정체- 친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며 파월 노동자와 참전 군인의 밀린 월급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방화를 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가 채유형으로 하여금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고 느낀다. 


그런 채유형이 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직 형사인 진경언을 만난다. 채유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은 10대 남학생이 동갑인 여학생과 2살 연상의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문제아의 일탈 행동으로 보고 있지만, 채유형은 진경언과 함께 사건 기록을 살피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 사건이 그런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이들 모두가 '을지로의 숲'이라는 장소를 알고 있고 이들의 배후에 한 남자가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두 사람이 협력하여 청소년 범죄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버디물이자 사회파 추리 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속하는 장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이 소설의 전체를 설명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근간이 되는 살인 사건 외에도 채유형과 진경언 각자의 개인사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채유형은 친부가 살인자이며, 그런 살인자에게조차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이 부러워한 사람이 남모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채유형과 진경언이 만난 '숲의 아이들'은 한 남자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그의 살인 병기로서 행동했다. 이는 외화 벌이와 애국 행위라는 명목으로 이국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수많은 군인(+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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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강의 시간 2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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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지만 우타강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다. 쇠락해가는 마을에서 으쌰으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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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강의 시간 2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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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지만 나는 <우타강의 시간>이 훨씬 더 좋다. 바다보다 산을 좋아해서 그런가. 쇠락해가는 온천 마을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좋아서 그런가. 아무튼 신간이 나올 때마다 예약 구매하고, 사자마자 읽고 또 읽고, 읽을 때마다 힐링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전권 소장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우타강의 시간>은 전권 소장할 듯. 


이 만화는 '일본 온천마을 판 전원일기'라고 할 만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한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어려서부터 잘 알고 각자 사연도 많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즈키는 어떻게 보면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인데,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도망간 기구한 팔자라서 그런지 다들 자기 자식처럼 아껴주고 품어준다. (개중에 안 그런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다른 어른들이 혼내준다) 


온천마을을 이끌어가는 젊은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인 다에는 또래 남자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프리마돈나' 대접을 받는다. 정작 다에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도 다에를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즈키는 누가 다에를 좋아하는지 열심히 살펴보는데, 그러다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엄청난 사실을 2권 마지막에 알게 된다. 너무 재밌잖아... 요시다 아키미가 요시다 아키미 했잖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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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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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2014년작 <재인, 재욱, 재훈>은 '재'자 돌림 삼 남매가 우연히 작은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대전의 연구 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첫째 재인, 대기업에서 플랜트 짓는 일을 하는 둘째 재욱, 고등학생인 막내 재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인물들이다. 바람기 많은 아버지와 우유부단한 어머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도, (재인, 재욱의 경우) 어릴 때 공부를 잘해서 수재 소리도 들었지만 진학-취업 루트를 타면서 평범한 직장인이 된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친숙한 모습이다. 


그런 세 남매가 어느 날 어떤 일을 계기로 작은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재인은 손톱이 유난히 단단해지고, 재욱은 크고 작은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별것 아닌 능력이지만, 이들은 각자의 직업과 상황을 활용해 능력을 발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일을 해낸다. 일종의 군상극이라는 점에서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 <피프티 피플>이 떠올랐고, 평범한 소시민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이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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