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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사랑에 빠진 사람을 두고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상대의 결점이나 단점을 정확히 못 보고 장점만 크게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사랑뿐일까. 어쩌면 친구나 동료 사이에도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상대를 실제보다 좋게 보고 나중에야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 아니면 계속 눈에 콩깍지가 씌인 상태로 관계를 이어가든지. 김화진의 첫 장편소설 <동경>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이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친구이자 동료가 나온다. 아름과 해든은 민아가 진행하는 인형 리페인팅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수업이 끝날 때쯤 세 사람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민아는 자신의 리페인팅 회사를 차리면서 아름과 해든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리페인팅도 좋지만 민아가 더 좋았던 아름은 민아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반면, 해든은 전공인 사진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민아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후로 육 년 동안 민아의 회사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은 아름은 자신이 더 이상 리페인팅을 좋아하지 않고 사진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민아는 일견 성공한 사업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민아의 내면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말 못한 비밀과 불안이 많이 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엄마에게조차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민아는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름을 내심 부러워 한다. 해든은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처럼 내면에 그늘진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민아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반면, 내면에 그늘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아름에게 시기심 또는 답답함을 느낀다. 아름은 민아의 회사를 떠난 후 해든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는데, 친구로서 해든을 좋아하는 마음과 부하로서 해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부딪치면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아름과 민아, 해든은 서로를 어느 정도 이상화(idealization)한다. 상대를 이상화하는 정도가 가장 심한 인물은 아름이지만, 민아와 해든 또한 아름은 자신들과 다르게 밝고 솔직하다고 단정한다든지, 불우한 가정사나 위험한 습관, 현실의 불안 등을 다른 두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관계가 무너질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각(idea)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름이 나같다고 생각했다가, 그 다음에는 민아가 나같다고 생각했다가, 해든이 나같다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에는 아름도 민아도 해든도 나와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름이 나같다고 생각한 건 아름의 우유부단한 면 때문이고, 민아가 나같다고 생각한 건 힘든 이야기를 남에게 잘 털어놓지 못하는 면 때문이고, 해든이 나같다고 생각한 건 나와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을 좀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면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나와 같지 않다고 생각한 건, 아름의 우유부단함은 다정함의 다른 이름이고, 민아의 과묵함은 책임감의 다른 이름이고, 해든의 완고함은 단단함의 다른 이름이란 걸 깨닫고 난 다음이다.
아름과 민아, 해든은 그대로인데 나의 평가만 달라진 걸 보면 나는 나와 비슷한 단점을 가진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나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저항감이 있는 것 같다. 전자는 민아, 해든과 비슷하고, 후자는 아름과 비슷하니 역시 나는 이들 셋 모두와 비슷한 걸까. 나같기도 하고 나같지 않기도 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내 마음의 거울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