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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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마리의 실험동물이 화성을 향해 쏘아 보내진다. 그로부터 삼백 년 후,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 중에서 단 한 마리만이 눈을 뜬다. "이곳은 화성인가, 사후인가?" 흩어진 기억과 떠오르는 질문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루 앞에 시베리안허스키 한 마리가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 기억이 맞다면 눈 앞에 있는 개의 이름은 라이카. 아니나 다를까, 개는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만든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우주로 보내졌지만 스트레스와 과열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라이카가 맞다며 루를 반긴다. 그렇다면 유령 개가 사는 이곳은 화성인가, 사후인가? 루는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죽은 걸까?


김성중 작가의 장편 소설 <화성의 아이>는 화성으로 보내진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루는 무수한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얻어진 데이터를 조합해 만든 클론이다. 라이카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에 있을 때 과학자들에 의해 강제로 임신 당한 루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그와 동시에 사망한다.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마야는 유령 개 라이카와 로봇 데이모스의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지만, 이따금 자신을 낳은 엄마 루와 엄마의 고향인 지구를 궁금해 한다.


이 소설은 총 여덟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장은 서로 다른 화자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누구와도 교미하지 않은 채" 수태한 엄마 루에게서 나온 딸 마야는 마치 메시아처럼 유령 개와 벼룩 네 마리만이 살던 황폐한 화성을 라이카, 데이모스와 함께 새로운 에덴 동산으로 바꾸어 간다. 지구인들은 '얼어붙은 사막'으로 알고 있는 화성을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풀숲이 우거진 땅으로 변모시킨다. 이 과정에서 키나라는 소녀를 만나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제3장 <라이카>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작가가 창작한 허구의 존재이지만 라이카는 지구상에 실존했던 개를 모델로 한다. 소설에서 라이카는 인간들에게 번번이 배신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인간을 사랑한다. 그 결과 "겁쟁이 인간들을 대신해 우주로 나갔더니 일곱 시간 만에 개죽음"을 당했어도, 우주에서 홀로 삼백 년을 보내는 신세가 되었어도, 그리하여 다시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도, 성인 여자의 몸을 가진 루와 그의 딸 마야를 보자마자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개는 이렇게도 인간을 사랑하는데 인간은 개한테 왜 그럴까. 개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 다른 인간들에게도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인간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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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친구
밧탄 지음, 나민형 옮김 / 빗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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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중학생 루리코는 하굣길에 우연히 언니의 친구였던 교코 언니를 만난다. 머리카락도 짧고 행동거지도 남자 같은 자신과 달리 누가 봐도 '멋진 어른 여자'인 교코 언니를 루리코는 남몰래 동경한다. 그런 루리코를 교코 언니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예쁜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런 교코 언니가 좋아지는 만큼 루리코의 마음 한구석에서 궁금증이 커진다. 언니는 이렇게 좋은 교코 언니와 왜 절교를 한 것일까. 교코 언니와 너무 친해지면 안 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걸까.


일본 작가 밧탄의 만화 <언니의 친구>는 루리코와 나쓰 자매, 그리고 두 자매의 친구인 교코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자들 간의 사랑을 다룬 GL 만화이지만 수위 높은 장면은 없고,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 구성으로 되어 있다. 루리코와 교코의 감정에 더 이입해서 읽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나쓰가 매우 빌런처럼 느껴졌다. 상황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을 한 건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나 하나 잘 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렇게 살면 정말 행복할까. 


이 만화에서 나쓰의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현실의 남자 중에 자기 아내한테 자기보다 더 깊이 사랑했던 애인이, 그것도 여성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랬구나'라고 넘길 남자가 있을까. (평소에 범죄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이 부분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나쓰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GL 만화를 아직 많이 안 봐서 그런가. 그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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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마음
임이랑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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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마음>은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등을 쓴 임이랑 작가가 2004년부터 약 20년 동안 자신의 홈페이지 '감정공작소'에 남긴 글을 엮은 책이다. 제목은 '밤의 마음'이지만, 본문은 '아침'에서 시작해 '오후'와 '밤'을 지나 '새벽'을 맞이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아침에는 '아침'의 글을, 밤에는 '밤'의 글을 읽는 식으로 읽는 시간을 조절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임이랑 작가님의 글을 매우 좋아하는 독자로서 한 번에 끝까지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했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로 요약한 것도 놀랍지만, 그 세월 동안 꾸준히 기록을 남긴 것도 대단하다. 최근에 <일기 쓰는 법>이라는 책을 읽기도 했지만, 나도 매일 뭐라도 기록하고 오래 간직해야겠다. 저자가 오래 전 런던의 빈티지 숍에서 단돈 1파운드를 주고 산 빨간색 가죽 가방 이야기처럼, 과거의 사소한 행동이 나만의 특별한 역사가 되는 과정을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까. 프리랜서 창작자로서 겪는 이중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자기만의 루틴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칠십 살 할머니가 되어도 음악하(고 글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저자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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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법 - 매일 쓰는 사람으로 성찰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조경국 지음 / 유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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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경국은 2006년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저자가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신문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할 때 겪은 일 때문이다. 당시 저자는 어떤 소송의 참고인 자격으로 관여하게 되었는데, 소송을 건 원고가 자신이 매일 기록한 일기를 증거로 제시하고 그것이 재판에서 유의미한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매일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일기 쓰기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단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일과를 복기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하는 일을 습관화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일기 쓰기가 어렵다면 매일 짧은 메모를 쓰는 습관부터 들여보자. 일단 가볍게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을 써보는데, 기왕이면 육하원칙을 지켜서 쓰는 편이 문장도 길어지고 내용도 구체적이고 자세해진다. 사실 위주의 문장에 개인적인 느낌이나 감상, 생각을 덧붙이면 내용이 훨씬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진다. 인상적이었던 대화를 인용하거나 그림 또는 사진을 덧붙이는 것도 좋다. 좋아하는 노트나 펜이 있다면 일기 쓰는 시간이 한결 더 즐거워질 것이다. 요즘은 디지털 도구도 많으니 자주 사용하는 앱이나 SNS에 틈틈이 자신의 일정이나 생각, 느낌 등을 기록한 다음 한 번에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매일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뭘까. 첫째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기를 쓰면 매일 똑같이 흘러 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기 쉽고,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둘째는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매일 글을 쓰면 그 자체로 글 쓰는 습관이 몸에 붙고,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는 버킷 리스트 실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기 쓰기를 통해 오토바이를 타고 전 세계의 서점을 여행하고 싶다는 꿈을 발견했고, 2019년에 그 꿈을 이뤘다. 이 이야기를 담은 책도 곧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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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셋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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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자인 아키코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운영한 식당 자리에 자신의 가게를 연다. 메뉴는 매일 바뀌는 빵과 수프뿐이지만 그 날 새벽에 구입한 식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 것이 통했는지, 아키코의 가게는 금세 단골이 생기고 오픈 전에 줄이 생기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아키코는 그 날 준비한 식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하는 원칙을 오픈 첫 날부터 고수한다. 초기에는 아키코의 방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키코 자신조차 불안해 한 적도 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매출에 큰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무레 요코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몇 해 전 동명의 일본 드라마로 먼저 만난 작품이다. 드라마를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는데 원작 소설도 너무 좋아서 2권도 읽었고, 이번에 나온 3권도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3권은 아키코의 반려묘 타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래로 새롭게 아키코의 반려묘가 된 아기 고양이 두 마리와 보내는 일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은 '타이'와 '론'인데, 각각 타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다. 이것만 봐도 아키코가 타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첫 고양이 하쿠에게 "너는 내 인생의 첫 고양이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 고양이는 너 하나야. 우리의 사고뭉치 티거도, 하쿠의 한 종류인 거야."라고 쓴 김하나 작가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키코의 가게는 오픈 초기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잘 운영되는 중이다. 그러나 아키코의 가게가 잘 되는 걸 눈여겨본 대기업이 비슷한 콘셉트의 훨씬 더 저렴한 가게를 근처에 열면서 위기감을 느낀다. 아키코의 가게 직원 시마에게는 시오라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키코의 지인 두 사람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아키코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삶의 유한함을 다시금 확인하며 더욱 정성껏 자신의 일상을 돌보는 아키코의 모습이 좋았다. 4권도 나왔으면(드라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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