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시렁 - 등산이 싫은 사람들의 마운틴 클럽
윤성중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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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인데 요즘 들어 등산을 하고 싶다. 즐겨 보는 여행 유튜브 채널에 등산하는 에피소드가 자주 나와서 그런가 싶다. 그 유튜버는 나와 같은 30대 비혼 여성인데, 주말마다 자신이 있는 곳 근처에 있는 산을 하나씩 천천히 혼자서 오른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아침 일찍 산을 오르고 점심 무렵 내려와서 밥을 먹고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식으로 한 주를 시작하면 몸도 마음도 상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집 근처 공원도 며칠에 한 번 갈까 말까 하지만 말이다.


<등산 시렁>은 '등산'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윤성중은 <월간 山>의 기자다. 오랫동안 등산을 즐겨 해온 저자와 달리, 저자 주변에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기획이 <등산 시렁>이다. 한 달에 한 번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데리고 등산을 한다. 사실상 초보자와 하는 등산인 만큼 난도가 높은 산을 고르는 경우는 드물다. 동행인의 자택 또는 직장에서 가까운 산이나 서울의 안산처럼 접근성이 좋고 난도가 낮은 산을 주로 택한다. 등산을 하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잠깐 쉬는 동안 음료수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낭독을 하거나 명상을 하기도 한다. 산을 오르다 지치면 정상까지 안 가고 도중에 하산하기도 한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과의 등산'이라는 콘셉트와는 살짝 어긋나지만, 발상이 기발하고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저자 또는 편집자라도 책에 꼭 집어넣고 싶었겠다 싶은 에피소드도 많다. 립밤 목걸이 만들기가 그랬고, 오서산 국수 이야기도 그랬고, 달팽이와의 인터뷰도 그랬고, 아내의 브라톱을 입고 달린 사연도 그랬고, 대학교 산악회에 가입 시도한 이야기도 그랬고 ㅋㅋㅋ 작가님 캐릭터도 재미있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강렬해서 드라마로 제작해도 좋을 것 같다. <고독한 미식가>처럼 매회 다른 산을 오르는 직장인 이야기. 나만 재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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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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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은 1995년에 출간된 한강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1970년생인 작가가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약 1년 간 쓴 여섯 편의 단편을 엮었다. 이 시절에는 어떤 소설, 어떤 책이 유행했는지 궁금해져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찾아봤다. 1993년에는 <서편제>, <나의 문화유사답사기>, <7막 7장>, 1994년에는 <일본은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5년에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고등어>, <신화는 없다> 등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이런 책들이 잘 팔리는 시절이었다고 하니 한강 작가의 소설을 두고 당시 평론가, 독자들이 슬프다, 우울하다는 평을 쏟아낸 것이 이해가 된다. 성공하기보다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고, 서른 이전에도 이후에도 삶에 잔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요즘 독자들은 당시 독자들이 음울하다고 여겼던 이 책의 정서를 보다 친숙하게 여길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도 (당시 독자들보다는) 요즘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만하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은 결벽증 때문에 룸메이트를 구하기 힘든 정선이 자흔과 같은 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정선은 생활 습관이 전혀 다른 자흔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월세 부담 때문에 나가라는 말을 못한다. <어둠의 사육제>의 영진은 같이 살던 인숙 언니가 보증금을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이모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진은 베란다에서 지내게 되는데, 밤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저 많은 아파트 중에 자신의 집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비참함을 느낀다.


<야간열차>의 영현과 동걸도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한 영현은 동기 중에 가장 먼저 취직한 동걸을 부러워 한다. 그러면서 동걸이 예전에 술자리에서 이야기했던, 청량리에서 동해로 떠나는 야간열차를 종종 탄다. 정작 동걸은 그 야간열차를 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된 후로는 그를 부러워 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질주>의 인규는 어릴 때 동네 아이들의 폭력에 의해 동생 진규를 잃었다. 이후 인규는 동생을 죽인 아이들에게 복수를 감행했으나 동생의 죽음을 방관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에게는 복수하지 못하고, 그런 상태로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다.


<진달래 능선>의 정환은 월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황씨의 집에 세들어 사는데, 황씨는 아침마다 나무를 태우고 밤마다 우는 기이한 행태를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환은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에서 도망쳐 나온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 헤어진 여동생의 안부를 걱정한다. <붉은 닻>의 동식은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동생 동영이 제대 후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다 불우하고 불행하다. 그런 그들이 좀 더 살아볼 용기를 내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자기 자신보다 더 불우하고 불행한 사람을 만나서이다. 가령 <여수의 사랑>의 정선은 고아라서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자흔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어둠의 사육제>의 영진은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은 명환과의 만남을 통해 이모의 집을 떠날 용기를 내게 된다. <야간열차>의 영현은 동걸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현실 부정을 그만두고 취직을 한다. <진달래 능선>의 정환은 죽은 딸을 그리워 하는 황씨를 보면서 자신만 가족에게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자신도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산다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나에게만 삶이 힘든 것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조건에서 사는 사람도 많고, 좋은 조건을 갖췄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나 자신의 고통만 들여다 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들여다 보라고, 그것만이 내 삶의 '여수'나 '동해'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이 책은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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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3-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수의 사랑 읽어보고싶어요. 저는 한강작가의 책을 딱 3권 읽었는데 올해는 다른 책들도 다 읽어보고싶네요.
 
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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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나온 이 소설을 2016년에 처음 읽고 2025년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쓴 리뷰를 찾아 보니 그 때의 나는 일 년 전 사고로 친구를 잃은 이정희가 친구의 명예를 지켜주려고 애쓰는 이야기로 읽은 것 같다. 이번에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는 이정희와 친구 서인주의 관계가 그저 친구이기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희와 인주는 분명 친구였다. 그것도 아주 오랜. 중학생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성격도 취향도 많이 달랐지만 그 덕분인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당시 정희 아버지는 일을 안하고 어머니는 식당 일 때문에 바빠서 정희는 집에 있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자주 인주네 집에 놀러 갔는데, 인주네 집에는 화가인 외삼촌이 있었다. 여느 남자들과 달리 인상이 유순한 외삼촌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곧 그림에 흥미를 느끼고 외삼촌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보다는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인주는 정희와 외삼촌이 그림을 매개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몇 년 후 외삼촌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충격으로 인해 정희는 그림을 그만두고 영문과에 진학한다. 화가가 된 것은 오히려 인주인데, 미술 전공자도 아니면서 독학으로 미술을 배우고 미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일 년 전 미시령에서 죽었다. 그 때까지 정희은 인주가 사고로 죽었다고 믿었는데, 인주가 함께 미시령에 가자고 했을 때의 어조가 죽으러 가는 사람의 어조가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인주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주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미술평론가 강석원이 조만간 출간할 인주의 평전에 인주가 자살했다고 쓸 예정임을 알게 되면서 정희의 믿음이 위협받기 시작한다.


정희는 강석원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강석원 몰래 강석원이 소유하고 있는 인주의 그림을 보러 가기도 하고, 인주의 죽기 전 행적이나 생전에 인주가 만난 사람들을 찾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희는 인주의 오랜 친구인 자신조차 인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걸 깨닫고, 좀 더 일찍 인주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자신과 인주 그리고 외삼촌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정희에게 인주는 친구였고 외삼촌은 첫사랑이었다. 외삼촌에게 정희는 조카였고 인주는 조카의 친구이자 (아마도 첫)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인주에게는 어땠을까. 인주에게도 정희는 그저 친구, 외삼촌은 그저 외삼촌이었을까. 그저 친구, 그저 외삼촌이었다면 인주는 왜 외삼촌이 죽고 정희가 그림을 그만둔 후에도 혼자서 계속 그림을 그렸을까. 그것도 외삼촌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그림을.


인주가 어떤 마음으로 정희와 외삼촌을 바라보고 어떤 심정으로 그림을 그려 왔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다만 정희는 인주의 사인을 밝혀냄으로써 인주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부터는 인주의 친구로서가 아니라 인주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인주의 몫이었던 삶을 살기로 한다. 정희가 인주 몫의 삶을 살듯이, 인주는 외삼촌 또는 정희 몫의 삶을 살았다. 죽은 사람 몫의 삶을 대신 산다는 모티프는 한강 작가가 이 소설 이후에 발표한 <소년이 온다>에도 나온다. 타인 몫의 삶을 대신 산다는 것은 사랑인가 흠모인가 연대인가 속죄인가. 하나로 단정하기가 나로서는 아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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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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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들이나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접할 때마다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고 감사하지만, 내가 만약 저 시절에 태어났다면 나는 저렇게 살지 못했을 것 같다, 직접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어디선가 초인이라도 나타나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대하며 조용히 살았을 것 같다, 라고 말이다. 이를 다시 확인한 계기가 지난해 12월 3일에 일어난 비상계엄 선언과 그 이후의 일들이다.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드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뉴스를 켠 후에야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뒤늦게 그간의 일들을 따라 잡으면서 나는 권력만 믿고 초법적인 행위를 저지른 대통령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한편으로 그 야심한 시각에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향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모든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 그야말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괴로움, 죄책감 등을 느꼈다. 그러나 전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고 깨어 있었다 한들 내가 국회로 달려 갔을까. 끽해야 텔레비전 뉴스와 SNS 타임라인을 하릴없이 들여다 보면서 사태의 변화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래 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 이데아>에서 꾸짖었던,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 사람. 그게 나니까.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 2014년에 출간된 이 소설을 그동안 여러 번 읽었는데, 이번에는 5.18 당시 계엄군에 적극적으로 맞섰던, 동호와 은숙, 선주, 진수 같은 소설의 중심 인물들보다 그러지 않은, 그러지 못한, 그럴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계엄군을 보낸 상황. 그들을 막으려고 시위대로 나선 시민들 다수가 죽거나 크게 다쳤는데, 여기에 정부는 추가로 계엄군을 더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마침내 광주에 도착한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집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살하겠다고 위협하고, 며칠 전부터 도청을 지키고 있는 시민들은 제발 한 명이라도 더 도청으로 나와서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절규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기를 택하는 마음은 차라리 없기를 택하는 마음에 가깝다. 그런 그들을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이라고 해서 불의가 좋았던 것이 아니다. 독재를, 계엄을, 폭력을, 살상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항거하지는 못했지만, 시가전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와서 헌혈을 했다. 시위대 편에서 함께 싸우지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덜 배고프라고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시위대에 보냈다. 마치 오늘날 비상계엄을 선언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시위에 촛불로, 응원봉으로, 선결제로, 후원으로 힘을 보태는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이 용기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선(善)일 테니.


예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5.18을 주제로 한 '역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12.3 비상계엄 이후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모든 것이 동시대적이고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느껴진다. 다시는 반복될 리 없다고 믿었던 일이 불과 몇 달 전 일어날 뻔했던 걸 상기하면 지금도 정신이 번쩍 든다. 언젠가 또 다시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어떤 감상을 느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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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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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스라엘. 이십 대 초반 여성 한나는 오전에는 유치원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다. 어느 날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한 한나를 미카엘이 붙들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문제는 이때쯤부터 한나가 자신의 선택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미카엘과 헤어질 명분도 없어서 얼마 안 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버린 것이다. 한나는 결혼, 임신, 출산으로 인해 유치원 교사 일도, 문학 공부도 포기한 데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미카엘은 한나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때로는 그 자신도 지치고 힘이 든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가 1968년에 발표한 소설 <나의 미카엘>은 한나와 미카엘 부부의 결혼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부부는 남들이 보기에는 둘 다 선남선녀에 일찍 결혼해서 순조롭게 아이를 얻고 행복하게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문제가 많다. 일단 둘 다 서로를 만나기 전에 이성 교제 경험이 없었고, 취직도 안 했고 집안이 부자도 아닌데 한 명은 공부를 계속하고 한 명은 임신, 출산, 육아로 여력이 없다.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던 집안 어른들은, 막상 이들이 결혼하자 언제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니? 둘째 소식은 없니?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 가치관 차이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일단 두 사람은 부부 간의 성 생활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다. 한나는 어릴 때 '여자는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성(性)적으로 너무 밝히면 안 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것의 역작용으로 인해, 미카엘과 정반대로 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남성과 왕성한 성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카엘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일하면서 학위 준비하고 한나 대신 집안 살림과 아이까지 챙기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한나는 종종 미카엘의 외도를 의심하지만 미카엘로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술을 찬양하고 감성이 발달한 문학 전공자 한나와 매사에 과학 원리를 적용하고 이성을 중시하는 지질학 전공자 미카엘의 성향 차이 또한 날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로망이 많은 한나는 점점 미카엘을 따분하고 지루한 남자로 여긴다. 근면 성실하고 목표 지향적인 미카엘은 점점 한나를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로 느낀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에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전쟁이다. 1956년 수에즈 전쟁에 징집되어 한동안 집을 떠났던 미카엘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흠모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이성적 사고의 결과가 전쟁과 그로 인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임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미카엘은 한나가 결혼 생활 초반부터 이야기했던 삶의 무의미함, 인간의 어리석음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 뭔지, 결혼이 뭔지, 산다는 게 뭔지, 인간이라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일찍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간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고, 아이는 이미 낳아버렸고, 삶은 벌써 중반부(어쩌면 후반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남은 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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