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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미수와 신복일에게는 자식이 다섯 있다. 그들은 일화, 월화, 금화라는 이름의 딸 셋을 얻은 후 목화와 목수라는 딸, 아들 쌍둥이를 얻었다. 그들은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가정은 대체로 편안하고 행복했다. 첫째 일화는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둘째 월화는 글쓰기와 연기 등에 재능을 보였다. 금화는 옛말에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는 딸부잣집 셋째딸이고, 목화와 목수는 쌍둥이답게 늘 붙어 다니며 남다른 우애를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목화와 목수를 데리고 숲으로 놀러갔던 금화가 목화와 목수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금화가 실종된 건지 납치된 건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족들은 그 날 이후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목화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잠이 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가운데 오직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목화는 그것이 꿈인 줄 아는데, 나중에 기사를 찾아 보고 자신이 꿈에서 구한 사람이 실제로도 생존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목화는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단 한 사람, 금화 언니를 구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금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금화가 사라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런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최진영 작가의 장편 소설 <단 한 사람>은 실제의 죽음과 가상의 초능력이 결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목화는 나중에 자신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도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목화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목화의 외할머니 임천자가 꿈을 통해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했다면, 목화의 어머니 장미수는 자신의 능력을 거부하고 경멸하면서 꿈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잠들지 않고 두통에 시달리는 편을 택한다.
목화는 자신의 능력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세상을 경멸하는 핑계로 삼지도 않는다. 그저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사람을 구해야 하면 사람을 구하고, 떨어진 체력을 좋아하는 일로 보충하면서 살아간다. 목화는 이것이 나무의 생애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무는 인간의 수명의 몇십, 몇백 배에 달하는 세월을 한 자리에서 보내며 자신의 잎이 떨어지는 것도 견디고, 가지가 부러지는 것도 견디고, 줄기를 베어가는 것도 견디고, 끝내 밑동만 남게 되는 것도 견딘다. 그렇게 해서 처음과는 다른 모습이 될지라도 나무는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한다. 마치 이름과 추억을 남기고 가족들 곁에 영원히 살아 있는 금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