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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남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9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평점 :

19세기 영국 런던. 부유한 이모 댁에서 사촌 이디스의 시중을 들며 지내온 마거릿은 이디스의 결혼을 계기로 고향인 남부의 시골 마을 헬스톤으로 돌아간다. 런던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뒤로 하고 전원에서의 소박한 생활에 적응하기로 마음 먹기가 무섭게, 마거릿의 아버지 헤일 씨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한다. 더는 마을의 교구 목사로 지낼 마음이 없어졌으니 가족 모두 북부의 공업 도시 밀턴으로 이사를 가자는 것이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결심을 번복하지 않고, 앞으로의 생계와 눈 앞에 닥친 이사, 지인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자리 잡고 살아갈 생각에 마거릿은 눈앞이 캄캄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소설 <북과 남>은 초반부터 흥미진진하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촌이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탄탄한 남자와 결혼하는 상황부터가 유쾌하지 않은데, 그 결혼으로 인해 자신은 가난한 고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다가 그 사촌이 소개해준 남자와도 잘 안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적은 수입이나마 보장해 주었던 교구 목사직을 가족과 상의도 없이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고, 불평불만 많은 어머니와 자신을 적대시하는 하녀를 데리고 사실상 혼자서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주인공이라니. 이 소설과 자주 비교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버넷의 상황이 훨씬 더 낫게 느껴질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가 마무리된 후에도 마거릿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자신의 고향인 헬스톤이 비록 가난한 시골 마을일지언정 자연의 아름다움과 공기의 깨끗함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했던 마거릿은 삭막한 공장 일색인 데다가 매연 때문에 제대로 숨 쉬기도 힘든 공업 도시 밀턴의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지인 하나 없는 이곳에서 마거릿이 겨우 알고 지내게 된 가족이 둘인데, 하나는 아버지의 제자인 공장주 손턴 씨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공장 노동자인 히긴스 씨 가족이다. 졸지에 공장주 측과 노동자 측 사이에 낀 처지가 된 마거릿은 양측의 사정을 청취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마거릿과 손턴 씨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처럼 첫 만남부터 자신에 대한 '오만'과 상대에 대한 '편견'으로 반목을 거듭하며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립은 그저 두 남녀의 밀고 당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첨예한 화두였던 노동자와 공장주 간의 갈등, 나아가서는 농업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영국의 경제 중심지였던 남부와 산업 혁명 이후 공업을 기반으로 신흥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북부 사이의 세력 다툼을 상징한다. 양심상의 이유로 목사직을 그만두는 목사, 상관의 폭력에 대항했다가 도망자 신세가 된 군인, 하녀보다 더 나은 수입을 보장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취직하는 여성들 등 당대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