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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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문보영 시인님도 미니멀리스트구나 싶어 반가워하며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니 초콜릿 포장지나 고무줄이 늘어난 바지처럼 '설레지 않아서'가 아니라 버려야 해서 버린 물건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작심하고 물건을 버린 이야기는 아니고, 시인인 저자가 그날 그날 버린 것들에 대한 단상을 기록한 일상 산문집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쓰다 만 노트나 애착 베개처럼, 더는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나에게도 많이 있다.


근데 이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불안해서 버린다니. 보통은 불안해서 못 버리거나, 없어도 불안하지 않아서 버리지 않나. 불안해서 버리는 마음이란 뭘까. 일단 이 책에 나온 불안해서 버린 사례로는 진척이 없는 새 시집 원고가 있다. 마감 기한 전까지 원고를 다 쓸 자신이 없고, 다 쓴다 해도 그렇게 벼락치기로 쓴 시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자신이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과감하게 원고를 엎었다. 그랬더니 그 전까지 불안감,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해졌다. 세상 천지가 시 쓸 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억지로 다녔던 학원을 끊었던 기억과도 비슷했다. 학원을 끊었더니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


버렸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도 있다. 어머니의 수술을 앞두고 저자는 가족들과 수술과 여행의 공통점을 나열하며 불안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수술 당일이 되자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이대로 영영 어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어머니도 금방 저자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저자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의 소변을 컵에 받아 버리는 일에는 익숙해져도, 어머니와의 이별이라는 생각 자체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버려도 남아 있는 마음들을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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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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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웠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선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 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악.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재단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선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이라는 확신은 더더욱 안 든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들이 일관되게 담고 있는 생각과도 비슷하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의 두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왕따 사원과 낙하산 팀장대리로 만나 회사 생활을 하다가 고등학생 시절 경애가 운 좋게 살아남은 화재 사건에서 상수의 친한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전에 발표한 장편소설 <복자에게>에서는 법정에서 욕을 해서 징계성 좌천을 당한 이영초롱이 어릴 때 잠깐 살았던 제주로 돌아가 옛 친구 복자와 재회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영초롱은 자식들을 책임지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부모와 불의의 편을 드는 사법부를 비난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자신을 환대해 주었던 친구 복자 앞에선 자신 또한 무정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30대 여성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계약직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일을 맡는다는 건 영두에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는데, 강화에서 태어나 지금도 강화에서 사는 영두가 중학교 때 잠깐 창경궁이 위치한 종로구 원서동 낙원하숙에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두는 오랫동안 그 시절을 자신의 흑역사로 여기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서는 기억보다 훨씬 정확한 재료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 관련된 인물 또는 장소, 물건 등을 다시 대면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의 기억, 과거의 인물, 과거의 장소와 다시 대면하는 과정에서 영두는 과거의 자신이 자기만의 서사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 시절의 영두는 아직 어렸고, 모르는 게 많았고,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관심과 호의를 무례나 무시로 받아칠 필요는 없었다. 당시 낙원하숙의 주인이었던 문자 할머니는 생판 남인 영두를 친손녀처럼 예뻐해주고 돌봐줬다. 그 때는 그게 별 일 아니라고, 오히려 부담스럽고 굴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문자 할머니의 마음은 지금의 영두가 친구 은혜의 딸 산아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이제 와서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갚을 길이 없는 그 마음에 대해, 영두는 글쓰기로 보답하고자 한다. 예산과 일정 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청경궁 지하 발굴 공사를 강행하는 한편으로, 이제는 빈 집이 된 낙원하숙을 드나들고 그 시절 함께 하숙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모르는 (대온실과 문자 할머니의) 역사의 공백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일제의 잔재인 대온실과 잔류 일본인의 역사는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소설 속에서 영두가 공사를 강행하지 않고 문자 할머니의 과거를 들추지 않도록 말리는 사람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두가 보기에 실체를 바로 보지 않겠다는 건, 바닥이 튼튼한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다. 그 건물은 금방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아도 불안하다.


무너지지 않아도 불안하다, 라고 쓰면서 나는 어쩐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떠올랐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친일(또는 반민족 행위자. 둘 다 마음에 드는 단어는 아니지만 대체할 말을 몰라서 그냥 쓴다)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라 꼴이 이렇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건국 초기에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한국 근현대사 시간에 필수적으로 배우는 내용인데, 당시 그 내용을 배울 때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이렇게 큰 후폭풍으로 밀어닥칠지 몰랐다. 지금으로서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 있는 친일, 반민족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더 시급하게 느껴진다. 창경궁 대온실 바닥을 들어내듯.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 봉투를 열어 헤치듯.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 글의 도입부에 쓴 "(각자의 사정이 있으므로)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결론"과 배치된다. 이 사람은 이래서 봐주고, 저 사람은 저래서 봐주고, 그러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된 건지도. 근데 왜 항상 어떤 사람들만 봐주고, 어떤 사람들은 안 봐주는 걸까. 탄핵을 당한 전 대통령이 아직도 관저에 있는 게 말이 되나. 탄핵 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는 게 말이 되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흘러도. 죄만 밉고 사람은 밉지 않다면, 그만한 죄가 아니거나 미움 이상의 사랑을 품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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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머
모래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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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리와 그를 찾는 모험>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모래의 장편소설 <드리머>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철과 여정, 필립, 명우는 스무 살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이들은 여느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은 널널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필립의 옥탑방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거나 술을 마시며 남아 도는 시간을 죽인다. 문제의 여름 날에도 언제나처럼 기철과 여정, 명우가 필립의 집으로 모였다. 남들보다 늦게 도착한 명우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영양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여정과 그런 여정의 헛소리를 별 대꾸도 없이 듣고 있는 기철과 필립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짜증이 난 상태로 부엌으로 간 명우는 술잔을 찾기 위해 싱크대 위 찬장을 열었다가 낡은 수첩 한 권을 발견한다. 부엌 찬장 안에서 수첩을 발견한 것도 예상 외의 일이었지만, 특이한 만듦새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열어본 내지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그림 한 장이 있었다. 그 순간 필립이 다가와 수첩을 채갔고, 명우는 천만 원을 준대도 수첩을 안 판다는 필립의 말을 듣고 더욱 더 호기심을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첩을 가지겠다는 명우와 수첩을 내주지 않겠다는 필립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자, 보다 못한 기철이 수첩에 얽힌 비화를 들려준다. "그 수첩, 필립네 할머니 거였대. 가리교라고, 그 중국 사이비 종교 있잖아."...


이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인 네 명의 청춘들이 수첩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이다. 조폭 출신의 아버지를 둔 명우는 친구들 중에 가장 유복하고 좋은 대학에도 다니지만,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이런 게 인생이라면 계속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수첩을 발견한 후로는 공포가 희열이 되고, 불안이 사라지고, 세상의 비밀을 다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급기야 명우는 수첩을 손에 넣기 위해 기철과 여정을 이용하고, 그렇게 수첩과 관련을 맺게 된 네 사람의 남은 인생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다른 하나는 수첩 자체에 얽힌 비밀이다. 소설 속 문제의 종교 '가리교'는 도교 연단술과 불교 밀교 수행, 지역 샤머니즘, 기독교 신앙까지 각종 다양한 종교적 레퍼런스를 섞어서 만든 잡탕 신흥 종교다. 교주인 렁왕웨이는 예지능력과 치유 능력, 텔레파시 등 갖가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면서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신도들을 모았다. 초능력이니 신흥 종교니 하는 걸 누가 믿나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숟가락을 구부린다든가, 꿈으로 태아의 미래를 알 수 있다든가 하는 소리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문제는 초능력이나 신흥 종교 자체라기 보다는 그런 것들에 혹하는 인간들의 심리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혹하는' 심리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보여준다. 자기 삶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인간은 없고, 있다 한들 만족도를 200퍼센트, 300퍼센트로 늘리는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방법을 모르니까 보통은 돈이나 권력을 탐하는데, 돈이나 권력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누가 혹하지 않을까. 작가가 소설에 불교와 힌두 사상의 신비주의를 많이 담았다고 하는데, (나처럼) 잘 몰라도 충분히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오컬트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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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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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수면장애가 다시 생겼다. 보통은 오후 열한 시쯤 잠자리에 들어서 오전 일곱 시쯤 일어나는데, 요즘은 열두 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고 겨우 잠들었다 깨면 새벽 네 시다. 잠이 안 오면 나는 무조건 책을 읽는데,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다시 잠들 기미가 안 보일 때 읽기 좋았던 책이 김영하 작가의 신작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한줄 한줄 읽다보면 순식간에 글 한 편을 다 읽고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매직...! (그만큼 내용이 흥미롭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읽기 좋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김영하 작가가 발표한 책들을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 책만큼 작가님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발표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개인사라든가,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에 남몰래 안고 있었던 열등감이나 우울, 불안, 죽음에 대한 충동 등을 전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젊을 때는 인생이 선불제인 줄 알고 지금의 고생이 나중의 영광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인생은 후불제이며 젊어서 함부로 쓴 건강과 시간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고백 또한 가슴에 사무쳤다(ㅠㅠ).


책의 제목이 된 <단 한 번의 삶>이라는 문구는 (후기를 제외하고)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어떤 위안>이라는 글에 등장한다. 이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겁을 주었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았으며, 온다 한들 자신으로서는 삶을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단 한 번의 삶을 살고, 살면서 무수한 선택을 하며,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삶을 바꿀 수도 있지만 무수히 많은 다른 선택이 그 선택을 무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나 후회로 지금을 흘려보내기 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낫다.


돌이켜 보면 나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나 후회를 종종 하는 편이고, 그때마다 여지 없이 수면장애가 발생했던 것 같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새벽에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할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런 삶은 아무리 부유하고 화려하다 해도 부럽지가 않다. 오히려 작가님이 책에 쓰신 대로 나이가 들면서 급속도로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한스러울 뿐. 제목은 <'단 한 번'의 삶>이지만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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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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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에 걸쳐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4년 전 처음 읽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읽은 것인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이 소설이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만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한 제주 4.3 사건의 참혹한 진상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 사이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시고, 이를 계기로 한강 작가님의 등단작부터 최근작까지 다시 읽어 보면서 한강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다시 만난' 지금은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 사뭇 다르다.


소설가인 경하는 오랫동안 우울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기를 소망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이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간다. 인선은 경하에게 당장 제주로 가서 집에 혼자 남은 새의 먹이를 챙겨 달라고 부탁하고, 다친 친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경하는 그 길로 제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경하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폭설이 내려서 중산간 깊은 골짜기에 따로 떨어져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는 길이 천리만리다.


소설은 우울증으로 인해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경하가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는 여정을 내 기억보다 훨씬 오랫동안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경하가 내내 머릿속에 담고 반복해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언젠가 경하가 꿈에서 본 장면으로,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심어져 있는 모습이다. 때마침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나무들이 바다에 쓸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경하는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구해야' 한다고 느끼고 하나라도 더 뭍으로 옮기려고 하지만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언젠가 경하는 인선에게 이 꿈에 대해 말했고, 인선은 꿈속의 장면을 영상으로 구현해 보자고 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인선의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 동안 경하는 인선과 친구가 된 과정과 인선이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 인선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인선의 집에 머물렀던 추억과 인선과 함께 자신의 꿈을 영상으로 구현하기로 했던 약속 등을 떠올린다. 고생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한 후에는 인선의 혼처럼 느껴지는 존재와 대화하며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이 감내해야 했던 각자의 삶의 진상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을 다루지만, 사건을 사건 자체로 그리기 보다는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더욱 중심적으로 그린다. 이는 <소년이 온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 자체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그리는 반면, 이 소설은 인선의 가족이 대대로 겪은 수난과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사건 자체에 대한 묘사의 밀도는 낮은 대신 사건의 지속성과 비극성을 강조한다. 이는 실제로 4.3 사건이 1948년 한 해에 잠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학살이며, 최근까지도 정확한 진상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관점은, 4.3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4.3과 무관한) 경하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경하는 개인적으로 힘든 사건을 겪은 듯 보이는데 그 사건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사건이 남긴 고통을 혼자서 오래 앓기만 한다. 그러다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에 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고통을 혼자서 오래 앓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칠게 표현하면)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너도 아프고 우리 모두 아프다는 인식을 통해 아픔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소설이 아픔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인선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경하가 병원 곳곳에 붙어 있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볼지 말지, 인선의 다친 손가락과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을 제대로 볼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처를 보는 행위 자체가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상처를 보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선의 손가락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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