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London Voice - 삶은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이상은 지음, 신정아 사진 / 북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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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은이 좋다. 이 분 음악을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담다디'는 그 때 고작 두 살이었던지라 잘 알지도 못한다. 맨처음 좋아하게 된 노래는 아마도 <비밀의 화원>. 스무살 무렵 교정하느라 한창 치과에 다녔는데, 치과 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이 노래가 나왔다.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나와서 '이 노래가 나랑 무슨 인연이 있나?' 싶었을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노래도 많이 나왔는데 내가 유독 이 노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 한동안 참 많이도 들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 서정적인 가사가 좋았다.

 

이상은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하게 된 건 그보다 후의 일이다. 집에 있다 보면 적적해서 배경음악처럼 라디오를 틀어 놓곤 하는데, 어느날 주파수를 돌리다가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라는 방송이 잡혔다. 그 때가 마침 새로운 음악 없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좋아하는 올드팝부터 최신 외국 음악, 세계음악 등 다양한 노래가 나와서 좋았다. 진행스타일도 좋았다. 말투는 털털하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느낌은 조심스럽고 차분했다. 나도 그녀 나이쯤 되면 이렇게 때묻지 않은 느낌으로 음악 얘기, 사는 얘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London voice는 딱 이상은 같은 느낌의 여행기다. 작은 것 하나에 유난히 감동하기도 하고, 오노 요코처럼 그녀가 무진장 좋아하는 화두에는 열정적으로 달려든 여행의 기록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팬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니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런던은 이상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라고 한다. 8년 전 미술을 배우는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 후 도망치듯 떠났던, 아픈 추억이 서려있는 땅. 그래서인지 첫부분부터 다시 런던땅을 밟는 설렘, 과거의 자신과 재회하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런던은, 전처럼 춥고 싸늘하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는 예술의 의미를 알고 싶어 번민하는 처지여서 도시마저도 스산하고 쓸쓸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보헤미안 뮤지션이자 자유인이기 때문에 보는 느낌도 달라졌나보다. 만약 지금 내가 런던 땅을 밟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보일까? 여행은 외부의 것이 아닌, 내 안의 것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녀의 경우를 보니 정말 맞는 것 같다.

 

 

8년 후 다시 런던을 찾아야 할지 꽤 많은 고민을 했다. 8년 전 아쉽게 떠나왔던 곳이기에 꼭 한번 다시 오고는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사랑에 다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겁내듯이, 또 같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떠났다. 다행이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하기만 했던 내가 편안하게 웃을 줄도 알고, 무엇보다 자주 웃고 있으니까.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변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 확신을 믿었고, 난 지금 런던이다. (pp.102-3)


여행지뿐 아니라 그곳의 음악, 미술, 그리고 그녀 주변의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가 화제로 등장한다. 음악과 미술은 그녀의 전문분야니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사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은 살짝 놀랐다. 하긴 나도 어떤 그림이나 어떤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추억들이 있을터. 그때만큼은 아티스트로서의 옷을 벗고, 주변인들에게 편안하게 이런저런 바람들을 늘어놓는 느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영국 미술과 음악의 좋은 점, 우리나라 인디씬에 대한 기대, 더욱 우호적이고 풍성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소망 등등, 단순히 여행의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세심한 감성과 독특한 관점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처럼 쓴 부분도 좋았다. 다른 이가 하면 빈말 같고 듣기 좋은 말로만 들릴 것도, 이상은은 몸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와닿았다. 왜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의 어른이 되는 걸까? 난 남들에 비해 얼마나 다르고 개성적으로 살고 있을까? 그녀를 보면 이런 내면의 소리(voice)들이 날 파고들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밑줄 한 번 긋고 반성하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책 (일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의 풍부한 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건, 영국에서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이 '돈'이 아닌 성격과 취미, 취향, 흥미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을 전적으로 신봉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와 직업을 뛰어 넘어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참, 이런 대목도 있었다. (일본이나 우리처럼)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 누구입니다" 식으로 자신의 학력과 경제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자신의 '계급'을 여전히 강조하는 사회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는 남미에서 수입한 유기농으로 재배한 커피를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자기소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예찬하는 부분이 참 끌렸던 게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도 똑같다. 내 이야기를 음악에 담고, 은근슬쩍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껴지는 음악이 필요했다. 그런 음악이 좋았다. 내 작은 일부라도 음악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다. 세상이 정해 놓은 '영토'에서 아등바등하며 살기보다 오로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네 삶도 한층 풍성해지리라.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pp.116-7)


나의 하찮은 재주로 어떤 글이야 쓰기가 쉽겠냐마는, 여행기는 감상을 글로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도 읽은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감상문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뭘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감상을 남기는 건데도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상은을 보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지다. 나도 나만의 삶, 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상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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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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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아는 자만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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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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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은 원래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순전히 내 실수 때문에 읽게 되었다.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쓴 <예술가의 방>이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억해두었다가 며칠 전에 마침 도서관에 있기에 빌렸는데, 아뿔싸! 잘못 빌렸다. 출판사도 똑같고 제목도 비슷한데, 이 책은 '예술가'가 아니라 <작가의 방>이었네.

 

... 뭐, 이것도 운명이려니.  

그런데 원래 실수나 우연에서 비롯되는 일 중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많다고 하듯이, 이 책도 행운 같은 책이었다. 내용도 좋았고, 국내 주요 문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앞으로 책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의 방>은 한국일보 수속논설위원 박래부 기자가 여섯 명의 문인의 방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섯 문인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라니...!!! 인터뷰를 한분씩 따로 엮어도 책으로서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책에서 다 만나게 되다니 사치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이문열의 서재는 머리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다. 또한 지칠 때 차 마시며 쉬는 곳이기도 하며, 쓰임새에서는 또 다른 사적 열망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필용 책상 옆에 우스운 인연으로 갖게 된 검도용 죽도 한 자루가 놓여 있기도 한 그의 큰 서재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 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딧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문열의 방 p.13)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건만, 자폐아의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방이기도 하다. (김영하의 방 p.63)


예술가의 방이든 작가의 방이든, 처음에 누군가의 방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은 방도 대단할까, 어떤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궁금증 말이다. 확실히 작가들의 방은 뭔가 달랐다.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장서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과 사진, 장식품들... 하나하나 특별하고 개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방들은, 정확히는 서재 내지는 작업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은밀하고 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조금씩 무너졌다. 뭐, 애초에 그들이 남들과 똑같이 밥 먹고 옷 갈아 입는 공간을 보고 싶다는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지만. (대체 그걸 봐서 어쩌겠느냐...)

 

오히려 이 책은 슬프고 무겁다. '작가의 방'이라는 제목은 너무 신변잡기적이어서, 마치 저자가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여기 나온 작가들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다들 전쟁, 민주화 등 시대로부터 비롯된 깊은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치 그 아픔과 고통을 토해내고 분출하듯이 작가들은 글을 썼고, 그런 그들의 산고를 지켜본 것이 바로 그들의 방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엄숙해지고, '작가의 방'을 넘어 '작가의 삶', '작가의 숙명'이라는 주제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직 생각이 다 여물지 못해 글로 풀어쓸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시대적인 비극을 거름 삼아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감성과 사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삶이고 숙명이 아닐까.

 

그들(작가들)은 책을 거름 삼아 또 다른 책을 생산해 내고 있었고, 그들의 서재는 고서점 같기도 하고 과거의 온갖 정신이 누워 있는 박물관 같기도 했다. 그 방은 과거의 무덤이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생아실이었다. (글쓴이의 말 p.5) 


여섯 작가 중 나는 신경숙, 공지영, 강은교 같은 여성 작가들 얘기가 더 좋았다. 내가 여자라서 우대하는 게 아니라, 일단 이 분들이 소개한 방이 내가 기대한 '방'의 개념에 더 가까웠고, (김영하는 대학교에 있는 개인 연구실, 김용택은 본가 서재를 소개했다) 특히 신경숙의 <외딴 방>에 얽힌 이야기는, 저자가 신경숙을 취재하고 싶어서 이 책을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만큼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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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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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식탁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흰 벽, 수공 소나무 캐비닛, 조리대, 주방 기구들, 장식장에 깔끔하게 쌓인 흰 웨지우드 접시들, 메모판에 핀으로 꽂은 가족사진, 냉장고를 장식한 학교 알림장과 애덤의 그림. 그 모든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p.251)

 

 

며칠전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다 읽고도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해되지 않아서 어제 한 번 다시 읽었다. 벤이 변호사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부분까지는 꿈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책인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진건 꿈뿐인 처지로서, 현실에 굴복하고 꿈을 포기한 벤이 파멸하기를 은근슬쩍 바랐다. 마치 벤이, 비록 아무 가진 것 없어도 '사진가'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며 사는 게리를 비웃고 미워했듯이 말이다.

 

어쩌면 삶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외줄타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꿈쪽으로 몸이 쏠려 넘어진 사람을 조롱하고, 현실적이다 못해 속물이 되어버린 사람을 경멸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건 꿈과 현실, 어느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외줄을 타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빅 픽처>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조국인 미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한다. 책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는 미국 중심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반미 성향이 높은 프랑스인들의 취향을 자극한 모양이다.

 

뜬금없이 웬 미국을 비롯한 현대 문명의 본질 얘기를 꺼냈느냐 하면 ... 미국 문화의 핵심이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꿈'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로 바꾸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헐리웃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인데, 그네들의 꿈은 아주 간단하다. 부와 명예를 얻거나, 여자라면 멋진 부자와 결혼하기. 그리고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꿈을 그러한 물질적인 개념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벤도 똑같다. 로스쿨에 들어가고, 월가의 변호사가 되고,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고, 상류층만이 사는 마을로 이사를 가는게 곧 자기 꿈인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성공한 변호사이자 중산층 가장의 삶일뿐, 자기 자신은 한번도 그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는걸.

 

 

그러나 이 책을 두번째 읽은 지금은, 무엇보다도 저자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후회하고 급기야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꿈과 현실 사이의 외줄타기는, 어쩌면 나같은 범인(凡人)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숙명 같은 것. 어떤 학교에 갈 것인가, 무슨 전공을 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하는 굵직한 결정부터 위시리스트에 담긴 물건을 지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사소한 결정까지 등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행여 후회하고 되돌리려는 순간, 인생은 절벽 아래로 쳐박힌다.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진정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이 책의 프랑스 판 소설 제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라고 한다. 자신의 삶이라. 어젯밤 침대에 누워 내 인생을 누군가와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바꿀지 생각해보았다. 다행인지, 아니면 무슨 자신감인지 달리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내 삶에 꽤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by 이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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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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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등 자기계발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성이 쓴 책이다. 이전까지 이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즐겨 읽을 정도인데, 웬일인지 주변에서 안 좋은 평을 많이 들었고, 서점에서 들춰봐도 내용이 영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나만 유독 편견을 가지고 있는건가 싶었지만, 인터넷상의 리뷰만 보아도 '굉장히 좋았다'는 찬사부터 '돈이 아깝다'는 비난까지 호오가 매우 심하게 갈리는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전작처럼 무작정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주문을 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어도 크게 손해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골라보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소감은... 아, 사실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 책은 좋은 책일까, 안 좋은 책일까?

 

 

 

미국 명문 사립 중고교의 인문고전 독서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1)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소화한다. 2) 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고전을 한 권씩 철저하게 떼는 일이 미국의 명문 중고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교는 어떠한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p.29)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p.65)

 

 

도입부에서 저자는 세계 상위 0.1%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교한다. 알다시피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제도가 실시된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상위층은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해왔을까? 바로 인문고전을 읽혔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시켰고,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등 중국의 고전을 읽히는 것으로 교육을 했다.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세기 독일 교육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 결과 한국의 교육은 인문고전을 탐독하며 사상을 심화시켜온 전통을 잃고, 실용적인 기술만을 배운 하급 인력을 양성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교육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저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장한나가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렇고, 알렉산더 대왕, 조지 소로스, 세종대왕, 정약용, 이이, 이병철, 정주영 등 인문고전 독서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비결 중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인문고전 독서가 어떻게 개인과 가문,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고, 후반에서는 초보자들이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방법과 자녀들을 위한 독서교육 방법, 추천도서 등도 안내해준다. 이렇게 이 책은 인문고전을 읽어보고 싶기는 하지만 선뜻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준다는 점에서는 괜찮다. 나도 이 책을 읽고나서 아직 못 읽은 고전 몇 권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대개 몇 권으로 나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비싸지만, 두고두고 읽을 것이고, 저자의 말대로 밖에서 커피나 간식 사먹는 돈에 비하면 싼 것 같다.

 

 

서점에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등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승자들의 투자 비법을 담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의 책을 죽어라고 읽고 그들의 비법을 열심히 따라 한 사람 중에 놀라운 이익을 실현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열한 인문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차원 높인 뒤에 터득한 투자의 비결을 담은 그들의 글을, 인문 고전을 전혀 읽지 않은 두뇌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투자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pp.112-3)

 

 

하지만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을만큼 마음에 쏙드는 책은 아니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제 3장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인데, 제목 그대로 인문고전을 읽는 목적은 단순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 세계 상위 0.1%가 되기 위한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까지 인문고전을 탐독해온 이들은 인간의 본성,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 우주의 원리 등 보다 높은 차원의 문제들을 탐구했고, 자본주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고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것은 재테크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인문고전 독서가 세계 상위 0.1%들의 성공의 비결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자식에게 인문고전을 읽히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교육열도 따라야 할 것이고, 저자의 주장대로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그만한 수준의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훗날 인문고전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만한 기회(학업, 관직, 직업 등)가 제공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상위층이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성공과 부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고, 부모가 교육적인 소양이 있고, 폐쇄적인 환경 덕분에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고, 학벌이나 관직, 직업이 세습되기 때문에 실용기술을 요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다. 

 

 

 

이계안은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에서 한 여성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인문학과, 고고학과, 문화인류학과 등 소위 인문계열을 최고의 학과로 인정한다. 영국의 이튼스쿨을 나온 명문가 자제들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고고학과로 진학한다.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일을 하는 최고의 수재들은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출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p.156)

 

 

장점도, 단점도 많은 책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썼는데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끝없이 소외당하고 있던 인문고전의 가치를 새로 발견한 시도는 좋다. 이 책을 읽고 '고전을 읽어봐야지'라고 새롭게 마음먹거나, '아, 나만 어렵게 느낀게 아니었구나'라고 위안을 얻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두가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인문고전을 읽자'고 주장한다는 것은 용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목적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기 위한 것으로 귀결된 점은 역시 아쉽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고, 아담 스미스, 케인즈가 그러했고, 정약용, 이이가 그러했듯이 고전을 읽는 이유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조리를 시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사상가들은 괴로웠다. 사적으로도 고달팠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해 독서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계속 고전을 탐독하고 연구했다. 저자의 주장대로 상위층이 되기 위해서, 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고전을 읽는다? 그건 앞뒤도 안맞고, 너무 타협적이다. 그래서 비타협적인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이 책에 혐오감을 느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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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1-08-0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님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호오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말씀!40자평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이 책이 좋은 책일지 나쁜 책일지 저도 무척 궁금하네요. 어떤 분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다른 인문학서를 한 권 더 읽는 것이 나을지...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책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1-08-03 16:41   좋아요 0 | URL
저는 안 좋은 평을 더 많이 보았는데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고, 어떤 책이든 일단 읽어보고 평가하는 것이 독자의 소임이겠지요...^^ 덧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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