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송경원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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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팟빵 매거진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의 애청자이다. 이 채널의 모든 코너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씨네21 송경원 편집장이 진행하는 <극장전>을 좋아한다. 영화를 OTT로 보거나 유튜브에서 요약 영상을 보는 것으로 갈음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즐거움과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기쁨을 알리고 싶어 하는 두 진행자의 열렬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다. 그런 송경원 편집장의 첫 영화 비평집이 나왔다. 제목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영화에 대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공부한 저자는 영화 평론가로 데뷔한 이후에 영화 기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평론가일 때나 기자일 때나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늘 어려웠다. 이는 영화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쓴 지 15년이 된 지금은 영화에 대한 글쓰기가 결국 나에 대한 글쓰기라고 느낀다. 예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볼 때, 그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보이는 것은 그 영화가 변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화 글쓰기는 스스로의 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의 자신의 좌표를 만든 영화들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영화에 대해 과연 그런지 의문을 제기하는 글도 있고, 이 영화의 이런 점과 저 영화의 저런 점이 비슷해 보여도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대목도 있어서 해당 영화를 보다 풍부하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영화 비평집이지만 드라마 <파친코>,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만화책 <3월의 라이온> 등의 리뷰도 실려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덕력' 내지는 '덕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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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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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지금의 대청댐 자리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에서 태어났다. 나의 외가는 어머니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약 삼십 년을 서울에서 쭉 살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외할머니와 외삼촌 가족은 다시 대청댐에서 가까운 대전으로 이사했다. 나의 외가가 있던 자리는 예전에 수몰되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척과 이웃들도 전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살면서 마련한 기반을 전부 버리고 돌아간 걸 보면,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 가족은 그곳이야말로 그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고 느끼는 것 같다.


셸리 리드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나의 외가처럼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1948년 미국 서부 콜로라도 주. 열일곱 살의 빅토리아는 아버지, 남동생, 이모부와 함께 살고 있다. 빅토리아가 열두 살 때 빅토리아의 어머니와 오빠, 이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열두 살이면 아직 어른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집안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가족 사업인 복숭아 농사와 판매도 거들고 말썽꾸러기 남동생도 보살펴야 했다. 학교에 다니거나 친구를 사귀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빅토리아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동안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이 남자의 이름은 윌슨 문. 그는 이제껏 빅토리아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눈길과 친절한 태도, 사려 깊은 말로 단번에 빅토리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인 데다가 아메리칸 원주민 출신인 그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빅토리아의 남동생은 윌슨 문이 빅토리아 주변에 다시 나타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빅토리아는 당장이라도 윌슨 문과 함께 마을을 떠나고 싶지만, 잘 모르는 남자와 마을 밖에 나가서 산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빅토리아에게 고향은 애증의 대상이다. 빅토리아의 고향은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이웃끼리 가깝고 친하지만 약자, 소수자를 차별하고 외부인을 배척한다. 빅토리아의 고향은 산으로 강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답답한 공간이지만 바로 그 산과 강 덕분에 전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복숭아를 생산할 수 있다. 빅토리아는 고향 사람들이 준 상처를 고향의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향이라고 느끼는 장소의 요체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일까. 자연을 잊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언제든 삶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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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기술 곤도 마리에 정리 시리즈 2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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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대정리를 하면서 곤도 마리에의 책들을 연이어 읽고, 내친 김에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보고 있다. 요즘 보는 채널은 극단적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계신 분의 채널이다. 이 분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 씨처럼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집에서 많아 봤자 2~30개의 물건만 가지고 산다. 이 분이 롤모델로 삼는 미니멀리스트는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도 '버렸는데' 자신은 아직 그 경지에 못 다다랐다며 자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체 뭘 얼마나 더 버리시려고...


극단적 미니멀리스트의 정리법이 매운맛이라면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은 안 매운맛, 아니 달콤한 맛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곤도 마리에는 설레는 건 남기라고 하잖아...)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의 핵심은 첫 번째 책인 <정리의 힘>에 거의 다 담겨 있고, 두 번째 책 <정리의 기술>은 <정리의 힘>이 성공한 후에 나온 'A/S(애프터 서비스)'용 책이다. <정리의 힘>과 <정리의 기술>을 비교하면, <정리의 힘>이 매운 맛이고 <정리의 기술>이 안 매운맛이다. <정리의 힘>이 설레는 것만 빼고 다 버리라는 식으로 충격을 준다면, <정리의 기술>은 설레는 것을 구별하는 법, 설레는 것을 정리하는 법 등 디테일한 조언을 해준다.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저자가 정리 컨설턴트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리바운드 된 사례가 나온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정리법을 익히면 절대 리바운드 되지 않는다고 장담했던 걸 반성하고, 정리하는 사람의 정리에 대한 의지가 높을수록 정리된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리바운드 가능성이 낮다)는 걸 재확인했다. 어릴 때 좋아했던 인형을 알레르기 때문에 버려야 했던 기억과 가족사진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앨범으로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한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정리의 목표는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함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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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힘 곤도 마리에 정리 시리즈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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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31일부터 새해를 맞이해 대대적으로 집을 정리하고 있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라는 원칙을 되새기며 매일 집안 곳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어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구분하고 있다. 그동안 정리를 안 하고 산 것도 아닌데 버릴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책이야 평소에 열심히 사들이니까 많은 게 당연한데, 옷이나 화장품은 일 년에 몇 개 살까 말까 한데도 모으니 한가득이다. 세일이니 특가니 원 플러스 원이니 하는 문구에 혹해 구입한 칫솔과 치약, 비누 등은 평생 써도 다 못 쓸 것 같다. 덕분에 한동안 쇼핑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니 안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일까.


이번에 정리를 하면서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 <정리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곤도 마리에는 2011년에 출간한 첫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 전역에 정리 열풍을 일으켰고, 그의 정리법을 소개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가 되었다.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2012년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고, 2020년 <정리의 힘>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마음에 남는 대목이 매번 다르다. 이번에 마음에 남은 대목은 남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에는 먼저 자기부터 정리하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나만 정리를 하는 경우 내 주변만 깔끔하고 다른 사람들의 공간은 지저분한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도 그런 적이 있는데 그 때 잔소리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자신의 공간을 다시 점검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더는 정리할 것이 없어 보였던 공간에서 정리할 거리를 찾았다. 요점은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시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이 마음에 남았던 걸 보면 요즘 내가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계엄 사태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세상,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 환멸을 넘어 우울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시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맞는다면, 바뀌지 않는 세상과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할 시간에 나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맞겠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작년보다 더 넓고 깊게 읽고, 더 부지런히 쓰고, 더 진지하게 경험하고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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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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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내에 처음 출간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세이 <책으로 가는 문>을 2023년 출간된 개정판으로 다시 읽었다. <책으로 가는 문>은 2010년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총 400권이 넘는 이와나미 소년문고 전권을 석 달 간 읽고 최종적으로 50권을 선정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고른 이와나미 소년문고 추천 도서 50권이 소개되어 있다. 소개된 책 중에는 <어린 왕자>, <삼총사>, <비밀의 화원>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책도 있고, <추억의 마니>, <하이디>처럼 저자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원작도 있고, 저자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책도 있고 저자가 신뢰하는 지인이 추천한 책도 있다. 한국의 작가 김소운의 <파를 심은 사람>도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글 중에서 특히 표제작 <파를 심은 사람>이 재미 있다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2부 '소중한 책 한 권이면 된다'에는 어린이책과 저자의 오랜 인연이 나온다. 저자는 대학 시절 만화 연구회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만화 연구회가 없어서 아동문학연구회에 들어갔다. 당시 저자는 친구들이 읽는 칸트나 헤겔, 마르크스의 책도 읽어보고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 문학도 읽어 보았지만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책은 아동문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저자는 이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도 줄곧 아동문학에 관심을 두고 좋은 작품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이 책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서사에 모티프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언급도 나온다. 저자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을 읽고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시대가 파국을 향해 가는 것을 예감하면서, 그래도 '소년들이여'라는 느낌으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89쪽). <하늘을 나는 교실>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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