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유영미 옮김 / 한길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라고 해서 구입했다. 읽어보니 통일 이전의 동베를린이 배경인 로맨스 소설이다. 그런데 로맨스 소설로 보기에는 주인공인 두 남녀의 나이 차이가 너무 크고, 남자에게는 이미 가정이 있으며, 학대 내지는 폭력으로 보이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문제적인 관계를 그린 소설에 부커상 위원회가 그런 큰 상을 준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에는 이 소설에 그려진 두 남녀의 가학적-피학적 관계가 통일 이전 동독 사회 내부의 국가-국민(혹은 정부-시민)의 관계를 은유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독일 통일 이전인 1986년 7월 11일. 동베를린에 사는 열아홉 살 소녀 카타리나는 버스에서 우연히 한스라는 남자와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한스의 나이가 카타리나의 부모 뻘인 쉰세 살인 데다가 그에게는 이미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다는 것. 한스와 카타리나는 그러한 것들을 의식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 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카타리나가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이런 상황이 불안한 한스는 카타리나에게 점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타리나는 한스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카타리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새로운 도시에는 너무나 많고, 결국 한스의 불안을 증폭시킬 만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줄거리만 보면 흔하디 흔한 치정 소설 같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에 묘사된 통일 이전 독일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가령 소설 초반에 카타리나가 쾰른에 사는 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통일 이전 쾰른은 서독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카타리나가 할머니 집에 가려면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분단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할머니 집에 가는 데 정부의 허가서가 필요하다는 게 신기하겠지만, 북한에 부모님이 살아계셔도 만날 수가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허가서를 받으면 동독 사람도 서독에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카타리나가 동독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고 훨씬 쾌적한 서독 거리 한 구석에 거지가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소설에 묘사된 통일 전후의 독일 사회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읽다 보니 카타리나와 한스의 관계도 단순한 불륜, 치정 관계 이상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한스가 카타리나에 대한 의심과 집착이 심해진 나머지 카타리나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일종의 육체적 고문을 가하는 장면 등은 '슈타지'로 불리는 동독 시절의 정보기관이 시민들을 대했던 행태를 연상시킨다. "카타리나는 일 년 뒤에도 한스와 함께하게 될까? 일 년 뒤에도 그녀의 나라가 아직 그녀의 나라일까?" (376쪽) 같은 문장은 카타리나에게 한스가 일종의 나라였고,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결말은 결국 지구 상에서 동독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한때 동독의 시민이었던 사람들은 나라 잃은 사람들이 되었음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작년 한 해 동안 두 명이나(각각 다른 그룹. 둘 다 최애 아님).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다수의 여성에게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 형사 처벌을 받았고, 그 밖에도 좋아하는 배우, 작가, 예술가, 정치인 등등이 범죄 또는 스캔들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여태 남아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남성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는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에게 호감을 느끼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왜 여성은 남성과 직접 만나거나 사귀는 게 아니라 멀리서 팬질, 덕질을 할 뿐인데도 이런 죄의식 또는 걱정을 느껴야 하는가.


미국 시애틀 출신의 에세이스트, 도서평론가, 기자인 클레어 데더러가 쓴 <괴물들>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팬의 시선에 대한 책이다. 어려서부터 열렬한 예술 소비자였던 저자는 자신이 열광했던 예술가 또는 창작자 중에 끔찍한 성폭행범, 학대범, 마약 중독자 등이 있는 걸 알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가령 로만 폴란스키, 마이클 잭슨,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어낸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전 세계인이 다 아는 범죄자 또는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똑같이 저지른 일반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비난하거나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예술 작품(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마이클 잭슨의 음악,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은 여전히 소비되고 심지어 찬사를 받을까.


이 책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의 목록을 열거하거나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대하는 복잡한 팬의 마음, 예술 소비자의 심리를 소개한다. 영화 팬인 저자는 로만 폴란스키의 범죄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의 영화까지 싫어하기는 힘들다고 고백한다. 나는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영화를 본 적조차 없기 때문에 저자의 고백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작품을 접한 적은 있지만 팬이 될 정도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이 존재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마이클 잭슨이다. 나는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을 '아동 성추행 혐의가 있는 불세출의 스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가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 영상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관심이 살짝 식은 후에야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그의 팬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혐의는 혐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만약 혐의의 대상이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면 - 가령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이라면 - 과연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 비슷한 예가 쟈니스 엔터테인먼트(현 스타토)이다. 이 회사가 그동안 얼마나 큰 범죄를 일으켰고 은폐해 왔는지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회사 소속의 연예인들을 좋아한다. 가해자는 죽은 사장이니까 소속 연예인들은 좋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의 소속사가 비슷한 범죄를 일으켰어도 똑같이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주로 남성 예술가를 다루지만 여성 예술가를 다룬 부분도 있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감정도 어려운 문제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귀었던 실제 경험을 담은 책 <단순한 열정>은 배우자가 있는 남성과 교제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반도덕적이고, 탈냉전 이전에 적국인 러시아의 남성과 사귀었다는 점에서 반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인 예술가가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했는데, 반대로 남성인 예술가가 그런(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글을 썼다면 나는 과연 그 책을 좋아했을까. 아마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구분은 개인적인 선호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남성 작가가 자신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대해 쓴 글은 허다한 반면 여성 작가의 그런 글은 드물다. 이 책에 나오는 모성 문제처럼 - 남성은 부성이 없어도 비난 받지 않지만 여성은 모성이 결여되었다는 혐의만 있어도 비난 받는다 - 사회가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다면 일개 독자인 나 정도는 관대하도 괜찮지 않나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대신해서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어떤 범죄까지는 괜찮고 어떤 범죄는 안 괜찮은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억지로 정한다 해도 어차피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예술 영화의 팬이 아니기 때문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평생 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문학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독자로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전혀 호감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성성에 대한 집착과 여성 혐오가 스스로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자유의지로 살아간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는데 그중 하나가 공간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표준어인지 방언인지)에 차이가 생기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어느 동네(서울이면 강남인지 강북인지), 어떤 형태의 집(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또는 어떤 평수의 집에서 살았는지 등등에 따라 각자 다른 계급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전지영의 소설집 <타운하우스>에는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여덟 편의 단편이 살려 있다. 맨처음에 실린 <말의 눈>은 학교폭력 피해자인 딸 서아의 회복을 위해 낯선 섬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엄마 수연의 이야기를 그린다. 수연은 서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 서아도 자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서아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비슷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서아가 목격자로 지목되면서 점점 불안감을 느낀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 시내로부터 멀리 위치한 타운하우스의 이미지가 수연과 서아 모녀의 고립된 상황과 겹쳐지며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이어지는 단편 <쥐>는 해군 관사로 사용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윤진의 이야기를 그린다. 윤진은 해군인 남편 몫까지 독박 육아를 하느라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데다가 경력 또한 끊어진 지 오래고, 해군 관사에서 여자들의 관계는 남편들의 계급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 남편의 부대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남편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관사에 사는 여자들 사이에서 겉도는 존재인 대령의 아내가 윤진에게 아파트에 쥐가 있다고 말한다. 이 소설 또한 독자의 공포감, 불안감을 자아내는 장치로 해군 관사라는 밀폐되고 위계적인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사격장 근처에 사는 부부가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수산 시장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안과의의 이야기를 그린 <맹점>, 부촌의 한 저택에서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 손님을 태운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그린 <언캐니밸리>와 같은 동네에서 하숙을 하는 예술고등학교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소리 소문 없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고용되어 있었던 제철소가 문을 닫기 직전의 상황이 배경인 <남은 아이> 또한 공간의 특징이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다. 


<뼈와 살>만은 등장 인물들이 속해 있는 공간이 아닌 등장 인물이 만드는 공간이 중요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예술가인 '나'는 푸른 실크로 된 아름다운 집 모형을 만들어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 상태다. '나'의 후배인 이선은 그런 '나'의 작업 스타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선에게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생활 공간인 걸 넘어 개인의 취향과 욕망 등이 반영된 공간임을 감안할 때 이런 설정은 매우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끝나기는 할까 걱정되고 초조했는데, 팬데믹이 끝난 지금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했던 그 때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런 줄 알았는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바닷가의 루시>의 도입부를 읽는 동안 그 때의 공포와 불안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갑자기 전 지구에 전염병이 퍼지고,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격리나 거리두기 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타자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정당성을 얻기 시작했던 그 때. 그 때 우리는 무엇을 겪고 어떻게 변했을까. 정말로 '변화' 하기는 했을까.


소설은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인 루시의 전 남편 윌리엄이 남들보다 먼저 팬데믹을 예견하고 루시에게 뉴욕을 떠나 메인 주에 있는 저택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루시는 윌리엄이 하도 강력하게 권해서 져주는 느낌으로 윌리엄을 따라간다. 처음에 루시는 몇 주 아니면 몇 달 후면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팬데믹이 훨씬 길어지자 당혹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두 딸조차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와중에 동네에선 뉴욕에서 온 두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곤혹스럽다.


가벼운 산책 외에는 외출도 하기 힘들고 집필도 어려워지자 루시는 온갖 상념에 빠져든다. 어느 날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어느 날엔 윌리엄과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식이다. 루시는 매우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종종 괴로워 한다. 루시의 불우한 과거는 루시가 윌리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스테이크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는 것도 모를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자란 루시에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이다. 


아마도 루시에게 윌리엄은 단순한 성애 대상이 아니라 원가족이 해주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를 하게 해준,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고 그래서 성애적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헤어지기 힘든 사람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루시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남편인 데이비드야말로 다른 이득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고 사랑한 첫 번째 남자가 아닌가 싶고, 그래서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좀처럼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데이비드와 결이 비슷한 밥 버지스와 루시가 잘 되는 전개를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일단 이 책에선 아니었다(다음 책에선 어떨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세계관에서 루시 바턴과 함께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올리브 키터리지가 팬데믹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몇 번 나온다. 밥 버지스가 어린 시절에 잠깐 보고 스쳐간 여자와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도 있다. <오! 윌리엄>에서는 아직 존재감이 미약했던 윌리엄의 이부 누나 이야기도 좀 더 전개된다. 루시의 두 딸, 베카와 트리시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모녀 관계, 자매 관계에 상처가 있는 루시가 자신의 두 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우리 작가의 첫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을 읽었다. 조우리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이전에 읽은 <라스트 러브>, <팀플레이>, <이어달리기> 모두 좋았지만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이 특히 좋았다. 퀴어, 노동, 여성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조우리 작가의 포부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라스트 러브>, <팀플레이>, <이어달리기> 등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기 이전에 작가가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초반에 실린 단편들은 여성의 노동,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에서 입주청소 일을 하는 엄마는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직원에게 하대를 당하고, 동료인 금자씨는 중국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한다. <11번 출구>의 다미는 지하철 역사 인근의 빵집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아르바이트이다 보니 돈도 경력도 되지 않고 이마저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에 떤다. <미션>의 미경은 (대기업으로 보이는) 물류회사의 정직원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지만, 남성 중심적인 조직의 권위에 굴복해 자신의 존엄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늘 맞닥뜨린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평온한 삶을 산다고 보기 어렵다.


표제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여성, 노동보다 퀴어 요소가 더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레즈비언인 '나'에게는 십 년 동안 연애하고 오 년 동안 동거 중인 여자친구 정윤이 있다. 정윤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여자(사람)친구 네 명이 있는데, 이성애자인 이들은 자신들의 연애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반면 레즈비언인 정윤은 그러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낀다.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무성애자 성향의 비혼인으로서 이성애자 친구들이 연애, 결혼, 임신, 출산 이야기를 할 때 거리감을 느낀 적이 많은데(그들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겠지...), 그런 거리감에 대한 소설이라서 반가웠다. 


<나사>는 낡은 의자의 다리를 고정하는 나사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다소 추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공사 현장에서 통행 차량을 막는 일을 하는 여자가 나오는 <물물교환>과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일하는 여자가 나오는 <블랙 제로>는 여성의 노동,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초반부의 소설들과 이어진다. 맨 마지막에 실린 <개 다섯 마리의 밤>은 노동하는 퀴어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먹고 살기가 아무리 힘들고 소수자로 차별 받는 게 아무리 괴롭더라도 혼자인 것보다는 함께인 편이 낫고, 그러니 계속 같이 걷자는 말을 건네주는 듯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