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헌법으로 체크하다 - FACT CHECK
JTBC 팩트체커 오대영 기자 외 지음 / 반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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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오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지만, 국민들 중 누구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부터 우리는 또 다른 탄핵 정국으로 들어섰고, 이제 며칠 뒤면 중대한 결정이 내려진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라는 거울이자 나침반이다.

사회과학 책들은 몇 년만 지나도 새로운 사례와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시의성을 잃게 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일종의 역사책이 될 수 있다. 7년 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렇다. 한국이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 있던 당시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온갖 거짓 주장들이 난무했고, JTBC 팩트 체크 팀은 헌법이라는 기준으로 그런 주장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했다. 그들이 검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대통령은 탄핵 심판 중 사임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불소추 특권이 있으므로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 청와대도 압수 수색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풀어나갈 열쇠는 헌법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는 헌법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팩트 체크 팀도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국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팩트 체크 팀은 직접 헌법책을 찾아 읽고 수십 명의 헌법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탄핵을 둘러싼 온갖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헌법은 법조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우리는 헌법을 자신도, 진실도, 민주주의도 지킬 수 있는 방패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팩트 체크한 거짓 주장들 중에는 지금의 탄핵 정국에서도 반복되는 것이 많아 기시감이 느껴진다. 반복되는 역사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선례가 우리에게는 거울이자 나침반이 되어준다. 물론 지금도 JTBC 팩트 체크 팀의 탄핵 관련 팩트 체크는 계속되고 있고 기사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지만, 지금의 팩트 체크와 이때의 팩트 체크 모두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의 탄핵 정국 관련 책들뿐만 아니라, 8년 전에 나온 이 책 또한 지금의 이 정국을 헤치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 다시는 '헌나'가 붙는 사건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헌나'는 헌법재판소의 사건 분류 부호 중 탄핵 심판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들도 우리도 8년 뒤에 '헌나'가 붙는 사건이 다시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때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과, 헌법이라는 원칙에 의거해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며칠 뒤 우리가 어떤 길에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헌나' 사건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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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나쁜 여자
권오숙 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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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그 여성이 세상의 온갖 비난을 견뎌내면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그린 책인 줄 알았는데, 그 여성의 주장이 이러이러한 점에서 논리에 맞지 않으니 거짓임이 분명하다고 단정하는 책이었다. 이 책뿐 아니라 익명의 대중들은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먼저 유혹했으면서 남성을 성폭력 가해자로 몰아가는 나쁜 여자라며 2차 가해를 가한다. 이런 '나쁜 여자' 이미지의 역사는 최초의 여성 이브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세계 모든 지역에 뿌리내려 있다. 이 책은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의 문화 콘텐츠까지 다양한 매체에 나타난 나쁜 여자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러한 나쁜 여자 이미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어떻게 그 시대의 남성 중심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그런 다음 현대의 콘텐츠들 속 나쁜 여자들을 통해 현대의 나쁜 여자들이 어떻게 이런 낡은 여성관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의 영화, 웹툰까지 종적으로, 한 시대 안의 다양한 상황과 작품을 살펴보며 횡적으로 수천 년에 걸친 나쁜 여자 이미지를 살펴보고 있다. 열한 명의 학자들이 주제 하나씩을 맡아 소논문을 하나씩 썼다. 소논문의 형식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나 일반 성인 독자들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2022년에 출간된 책이라 최근의 작품들도 분석하거나 예시로 들고 있고 최근의 상황도 이야기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이것은 시간에 따라 약해질 수밖에 없는 장점이지만, 출간된 시점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고 기록한다고 달리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책에 실린 열한 편의 논문을 관통하는 생각은 '나쁜 여자' 이미지에 남성들의 두려움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낳았기에 자기 자식임이 확실한 여성과 달리,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해야 여성이 낳은 자식이 자기 자신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강한 생식력을 지닌 고대 여신들은 남편을 배신하는 음탕한 악녀로 전락했다. 선한 신의 이름으로 싸워 이겨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던 기독교 성직자들은 힘없고 약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고문하고 처형했다. 고전 소설에서 가부장제의 근본적인 모순은 해결되지 않은 채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 <사씨남정기>의 교채란, <심청전>의 뺑덕 어멈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여성들, 가부장제의 규범을 지키지 않은 여성들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이 전가된다.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쁜 여자'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고 자신들이 누리던 것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두려움은 계속되고 있고, 그 실체 없는 두려움이 문화 콘텐츠들에도 반영되어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런 두려움이 만들어낸 가부장제의 장벽은 여전히 허물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반영한 납작한 평면이었던 나쁜 여자 캐릭터들이, 자기 서사를 갖게 되고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해 가는 데서 희망을 본다. 여전히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 가치관은 공고하고, 최근에 만들어져 더 진전된 여성관을 반영하거나 여성들이 직접 만든 나쁜 여자 캐릭터들도 이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곤 한다. 가부장제를 일거에 허물 수는 없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저자들은 보여준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자신과 다른 여성을 검열하고 억압하게 하는 나쁜 여자 이미지를 고찰하고, 그것을 떨쳐냄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의 건전한 판단과 여성 스스로의 긍정적 자아의식을 이끌어 낸다는 취지는 긍정적이다. 그리고 그 취지를 풍부한 예시와 명쾌한 설명, 거침없는 비판이 뒷받침해 준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표지 디자인과 화질이 떨어지는 흑백 도판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 지수나 책 제목으로 검색한 결과를 봐도 일반 독자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진 책은 아닌 것 같다. 표지 디자인을 좀 더 눈에 띄는 것으로, 흑백 도판을 컬러 도판으로 교체하고 더 홍보하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읽히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고 대표 저자가 말했는데, 그 바람대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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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 놓고 딴소리 - 드라마, 예능, 웹툰으로 갈고닦는 미디어리터러시 생각하는 10대
이승한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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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도서의 장점은 교과서처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기억해야 할 점은 딱딱 짚어준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211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 판형도 작아, 마음 먹으면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가 중간중간에 들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중요한 단어나 개념은 본문 옆의 작은 글 상자에서 설명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거기에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하듯이 경어체로 서술하는데, 친근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문체라 더 쉽게 읽힌다. 이 책에서 언급한 콘텐츠 중 본 것은 영화 <검은 사제들>(2015) 하나밖에 없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프로그램이나 이슈들을 알게 돼서 흥미로웠다.


  코로나가 한창 퍼지고 있던 2021년에 출간된 책이라 그때의 상황과 관련된 내용들도 꽤 많다. 드라마처럼 출연자의 표정 연기가 잘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방역 수칙을 준수한다면서 마스크를 벗고 촬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나 보도 전문 채널 YTN, 연합뉴스 TV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방송사가 음성 언어 발표자의 얼굴만 클로즈업해, 청각장애인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야기 등. 출간된 지 3년이 지나고 코로나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시의성이 떨어지지만, 오히려 코로나 유행 시기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팬데믹이 터진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도 있고, 장애인의 알 권리는 언제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들은 성인 독자들 또한 기억하고 명심하면 좋은 것들이다.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면서 미디어에서 보고 듣는 것으로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은 성인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강조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독해 능력)'은 성인 독자들에게도 필요하다. 2020년 개정된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의 외모를 평가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조롱, 혐오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주민의 어눌한 한국어 표현 및 행동을 구경거리로 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지만, 이 조항을 지키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지금도 종종 보인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예능은 예능일 뿐이니까 따지지 말고 그냥 재밌게 보자.'는 말을 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는 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면 당장 미디어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디어가 세상을 보여주고 표현하는 방식을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하고 개선하게 할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다. 그러니 저자가 잘 봐 놓고 하는 한소리를 성인 독자들도 귀 기울여 들으면 좋다. 허투루 보지 않고 잘 봤으니 한소리를 할 수 있는 거다. 우리도 대충 보지 않고 한층 더 나아진 미디어 리터러시로 보고 나면 우리만의 한소리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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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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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안녕, 이렇게 같이 책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네.

H: 그러게. 그런데 이 책 저자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B: 4년 전에 우리가 같이 얘기했던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의 저자야.

H: 아, 그랬지. 그런데 이 책 꽤 한참 전에 나온 책 같은데?

B: 나는 2016년 개정판으로 읽었긴 하지만 사실 2000년에 쓰인 책이 원서야.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손녀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이 책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두 책의 출간 시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지.

H: 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B: 예전부터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을 책 찾다 우연히 이 책이랑 마주치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계 시민으로서 읽어야 되는 책인데 여태 안 읽고 있었구나 싶었어.

H: 그런데 24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 읽으면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B: 그렇긴 하지. 2016년 개정판이어서 편집자가 200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의 상황을 업데이트한 주석을 넣긴 했는데, 2016년도 벌써 8년 전이잖아.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거 같아. 2022년 1월에 <위대한 수업>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장 지글러 교수가 강의를 했었거든. 그때 한 이야기와 이 책에서 한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 물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야기하니 이 책 내용과 겹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시점 이후로 세계의 기아 문제가 나빠지면 더 나빠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아.

H: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잖아.

B: 24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건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문제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회 구조, 세상의 흐름은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그걸 이 책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H: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얘기한 것처럼 역시 자본주의가 문제겠지.

B: 맞아. 사실 이 지구에서는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대. 그것도 한 명이 하루에 2400~2700칼로리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 문제는 아무리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도 그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 거야.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도 자기들 이익이, 권력이 더 우선인 사람들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법과 규제가 있는 건데, 그런 규제들을 다 풀면 세상이 알아서 잘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자본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야.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과거의 자유주의를 계승한 거지. 장 지글러 교수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몇몇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온 지구의 경제를 틀어쥐고 있어서, 기아와의 투쟁이 어렵다고 얘기해. 그런 사실들을 폭로해 왔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게서 소송도 많이 당했다고 지글러 교수가 <위대한 수업>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

H: 진실을 말한 대가가 너무 무겁구나. 평생 그렇게 싸워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B: 엄청난 액수가 걸린 소송을 계속 당하면서도 지글러 교수는 다국적 기업과 그들이 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자국의 개혁도 중지시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아. 그리고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하지만 자신이 구호 현장에서 봤던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는 잃지 않는 게 책 곳곳에서 느껴져. 온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하거든. <위대한 수업>에서도 영양실조 때문에 노마라는 병에 걸려 안면 조직이 녹아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직접 인쇄해 와서, 이걸 꼭 방송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 그렇게 비싸지 않은 항생제만 사 먹어도 퇴치할 수 있는 병인데, 가난해서 걸린 병이라고 했었어. 정말 이건 꼭 알려야겠다는 열의와 간곡함이 느껴졌어. 구호단체의 일이 오히려 각 지역의 지배층들의 배를 불려주고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어버린다 해도, 그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지글러 교수의 마음이 느껴졌어.

H: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싸워왔는데도 세상은 여전한 걸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B: 이 책의 마지막에서 부르키나파소에서의 농업 개혁이 실패로 끝난 것을 듣고 지글러 교수의 아들이 말해. 그러니까 결국 좌절과 절망만 남은 거냐고. 지글러 교수는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자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자기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기 나라 경제가 자립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H: 공산주의를 시작한 사람들부터 최근의 개혁자들까지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해 왔던 일이야. 늘 느끼는 거지만 현실은 참 구체적이고도 너무 굳건히 우리 앞에 서 있는데, 이상은 그에 비해 단순하고 너무 멀게 느껴져.

B: 체 게바라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잖아. 우선 이상을 높게 잡아야 현실을 그 이상의 50퍼센트, 70퍼센트, 90퍼센트로 점점 끌어올리지. 장 지글러 교수는 원래 인간은 자신 곁에 있는 가족, 일족, 이웃에게서만 연대감을 느꼈지만 국가를 세우면서 처음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 그렇게 인류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해. 희망은 정의를 향한 인간의 불굴에 의지 속에 있다고. <위대한 수업>을 보면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보여. 방송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럴 거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음, 예를 들어보면 선진국들에서 소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그러니까 소를 더 살찌우기 위해 소들에게 풀 대신 곡물 사료를 먹이는데, 그런 축사의 연간 옥수수 소비량이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고 하잖아. 우리가 고기를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그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글러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어. 우리가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행동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 책의 다음 개정판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어.

* 종이책이어서 업데이트되지 못한 2024년 2월 현재의 상황

- 내전 기간인 1996년 적대 세력 수천 명을 포위해 굶어 죽게 만들었던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2006년 체포되었고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복역 중이다.

- 현재도 기후 난민은 기존의 난민 정의(국적,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자국 내에서 박해에 이르는 차별을 받고, 그와 같은 박해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 대신 '기후 변화로 인한 강제 실향민'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 이 책에서는 2015년에 세계 인구가 71억 명이 될 것이고 그중 6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2024년 현재 세계 인구는 약 81억 명이고 202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6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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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희정 지음 / 갈라파고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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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하고 싶다고 누구나 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일할 자격’이 없으면 일할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시장에서 ‘일할 자격’은 어떤 것들일까. 이 책에서 한마디로 요약하는 ‘일할 자격’은 ‘정상성’이다. 젊고 건강하고 신체나 정신에 이상이 없을 것. 어느 모로 보나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저자는 ‘일할 자격’이 있는 ‘정상적인’ 노동자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밝히고, ‘정상’ 노동자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며 월급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삶. 이런 삶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쏟는 노력은 비정상적이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업무 외 시간에도 자기 계발에 힘쓴다. 순종적이면서 자기 주도적이라는 모순적인 인재상은 사실상 실현하기 불가능하니 그런 인재인 척 처세한다. 이렇게 끝없이 노력해도 눈에 보이고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가 있어야만 노력하고 있다고, 성실하다고 인정받는다. 슬프게도 그렇게 노력해서 이룬 성과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 사회에서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봐 쉬지 않고 달리는 마음을 자기계발서는 동력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은 불안이고 자본주의는 그런 불안을 먹이 삼아 성장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건강하고 성실하고 정상적인 노동자,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는 우리 내면에 주입된 환상이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 환상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환상 속 모범적인 노동자상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들,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보인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하는 청년들, 미혼모, 정신 질환자, 자신도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인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더 나이 든 노인들을 돌보는 일로 떠밀리는 돌봄 노동자들, 과체중이어서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노동자로 치부되는 사람들, 현역병의 신체 기준에 미치지 못해 보충역이 된 사람들. 이들이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비정상’ 노동자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전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정상이라는 범주 밖으로 밀어내고 삶을 영위할 권리마저 위협하는지 분석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 자신이 정상적인 노동자, 쓸모 있는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관리, 자기 계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소진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심지어 조장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노쇠해지고, 언제라도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어 정상의 범주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 경쟁 사회에서는 그들을 보호하기보다는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력, 더 젊고 건강한 몸들을 찾는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178개의 기술협약 중 현재 한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22개뿐이고,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협약들에는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위한 협약, 업무상 재해 급여에 관한 협약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뒷덜미가 서늘해지지 않을 노동자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자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일할 자격을 요구하며 삶을 영위할 권리조차 공짜로 내어주지 않는다. 세계 인권 선언에 따르면 그 권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것인데. 이 사회가 지닌 노동의 환상에 잡아먹히지 말고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직시하라고 하지만, 그 환상을 채워주지 않는 노동자가 다시 노동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이 다 게으른 노동자의 핑계라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실제로 나 자신도 ‘네가 노동자로서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을 남 탓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도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도 자신도 성실한 사람, 정상적인 노동자라는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소진되다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이 되었을 때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절망하기보다는 계속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려고 한다. 일할 자격뿐만 아니라 말할 자격조차 박탈하는 힘을 뚫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료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비정상의 범주에 있는 노동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함께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1급 몸, 1등 국민, 정상적인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몸, 국민, 노동자를 나누는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일의 세계 안에서도 나다움을 지키면서 타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 세상은 ‘일할 자격’을 요구하면서 그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내치는 사회가 아니라, 단순히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더 행복하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일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나도 절망하기보다는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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