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헌법으로 체크하다 - FACT CHECK
JTBC 팩트체커 오대영 기자 외 지음 / 반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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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오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지만, 국민들 중 누구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부터 우리는 또 다른 탄핵 정국으로 들어섰고, 이제 며칠 뒤면 중대한 결정이 내려진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라는 거울이자 나침반이다.

사회과학 책들은 몇 년만 지나도 새로운 사례와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시의성을 잃게 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일종의 역사책이 될 수 있다. 7년 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렇다. 한국이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 있던 당시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온갖 거짓 주장들이 난무했고, JTBC 팩트 체크 팀은 헌법이라는 기준으로 그런 주장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했다. 그들이 검증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대통령은 탄핵 심판 중 사임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불소추 특권이 있으므로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 청와대도 압수 수색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풀어나갈 열쇠는 헌법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는 헌법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팩트 체크 팀도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국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팩트 체크 팀은 직접 헌법책을 찾아 읽고 수십 명의 헌법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탄핵을 둘러싼 온갖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헌법은 법조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우리는 헌법을 자신도, 진실도, 민주주의도 지킬 수 있는 방패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팩트 체크한 거짓 주장들 중에는 지금의 탄핵 정국에서도 반복되는 것이 많아 기시감이 느껴진다. 반복되는 역사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선례가 우리에게는 거울이자 나침반이 되어준다. 물론 지금도 JTBC 팩트 체크 팀의 탄핵 관련 팩트 체크는 계속되고 있고 기사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지만, 지금의 팩트 체크와 이때의 팩트 체크 모두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의 탄핵 정국 관련 책들뿐만 아니라, 8년 전에 나온 이 책 또한 지금의 이 정국을 헤치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 다시는 '헌나'가 붙는 사건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헌나'는 헌법재판소의 사건 분류 부호 중 탄핵 심판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들도 우리도 8년 뒤에 '헌나'가 붙는 사건이 다시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때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과, 헌법이라는 원칙에 의거해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며칠 뒤 우리가 어떤 길에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헌나' 사건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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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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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해당 책과 『봄눈』의 스포일러 포함

민음사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시리즈 첫 권 『봄눈』이 2020년에 출간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기다렸다. 4년이나 소식이 없어 프로젝트가 중단됐나 했다. 그런데 작년 7월 두 번째 권인 『달리는 말』이 출간됐고, 지난 달에 세 번째 권 『새벽의 사원』이 출간됐다. 올해 안에는 마지막 권인 『천인오쇠』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풍요의 바다> 시리즈 전체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봄눈』을 읽으면서 순간순간의 미세한 감각과 감정까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폭력적인 제국주의에 경도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2년 뒤 다음 권인 『달리는 말』을 읽으면서 풀렸다. 『달리는 말』은 예상보다 작가의 극우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그가 빠져버린 파시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추구했던 순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봄눈』의 주인공 기요아키와 『달리는 말』의 주인공의 이사오는 겉보기엔 성향이 정반대다. 기요아키는 나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감정에만 집중해서 살지만, 이사오는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혼다는 이사오가 기요아키의 환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둘이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면 틀림없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생각하는 순수를 위해서 다른 것들은 다 내던져 버린다는 점에서 둘은 한 사람처럼 닮았다. 문제는 이사오가 추구하는 순수, 절대적인 가치가 천황제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추구하는 순수와 어긋나는 것들은 무조건 악으로 간주하고 배척하고 제거하려고까지 하면서, 그의 순수는 폭력과 파시즘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사오는 정계와 재계가 유착해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 자기들의 배만 불리고,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에 분개한다. 여기까지는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오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상식적인 현대 민주 시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정재계의 부패한 인사들을 암살하고 계엄령(이사오 무리가 거사를 일으키기로 계획했던 날이 우연하게도 12월 3일이니 지금 이 시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한국 독자로서는 더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을 선포해 사회를 청소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모두가 단결해 과거의 태평성대를 회복하자니. 그의 해결책은 시대 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는 애초에 그런 과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허상이다. 허상을 순수한 가치이자 궁극의 아름다움이라고 믿었던 이사오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잡아도 허상을 향해 달려가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자신이 바라던 최후를 맞는다.

작가의 삶만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달리는 말』 속 이사오의 모습을 작가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지 않을 수 없다. 운동이라고는 숨 쉬기밖에 안 하며 나라에는 관심도 없던 기요아키가 (혼다의 환생 이론이 맞다는 전제하에) 검도로 몸을 꾸준히 단련하며 애국심이 투철한 이사오로 환생한 것은, 작고 병약한 문학 소년에서 근육질의 극우 청년단 지도자로 변신한 미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사오에게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주었던 혼다와 사와 같은 어른들이 있었고, 미시마에게는 혼다와 작품 속에서 그가 말하는 논리들을 만들어낸 이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사오도 미시마도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자신이 추구하는 절대적 가치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토록 꿈꾸었던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마지막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만큼 아름답지도 장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마음속에 떠올리는 상념과 감정의 단편들, 그 순간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세밀히 포착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도입부에서 혼다가 바라보는 무미건조한 법원과 교도소 풍경 묘사조차 혼다의 복잡한 마음 한 구석 한 구석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참신한 비유와 날카로운 통찰로 그 순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을 더없이 적확하게 묘사한다. 뭘 해도 결론은 할복인 이사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가 어떤 사고와 감정을 통해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사오의 무모한 행보를 이성의 눈으로 지켜보지만 결국 그의 순수함에는 감동을 받는 혼다의 모습에, 결국 순수의 손을 들어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미시마는 천황제와 극우 사상을 향한 이사오의 열정을 진지한 마음으로 썼겠지만, 맨 정신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P.S. 『달리는 말』에서부터 번역자가 바뀌었고, 두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줄었다. 같은 시리즈의 전작인 『봄눈』과 번역의 톤을 맞추기 위해 출간이 늦어졌다고 한다. 『봄눈』에서 『달리는 말』로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느낄 수 있게 신경 쓴 것이 보인다. 그러나 『봄눈』과 달리, 문장 구조가 뒤엉킨 비문과 사람들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난해한 한자어가 곳곳에서 보인다. 『봄눈』의 번역자들이 문장 구조를 정돈하고 생경하고 난해한 한자어는 풀어 썼는데, 새 번역자는 영어 번역체가 심하고 일본어의 일상적 화법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다 그렇게 된 걸까('대칭을 이루는'이라고 옮겼으면 좋았을 텐데 '시머트리컬한'이라고 영어 발음 그대로 음차한 부분에서는 좀 놀랐다). 내가 『봄눈』을 읽은 게 2년 전이니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원문과 비교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정확하지 않겠지만,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그럼에도 글의 아름다움은 남아 있지만, 유려하고 부드럽게 읽혔던 『봄눈』 번역본의 한국어 문장들을 생각하면 아쉽다. 『새벽의 사원』과 『천인오쇠』의 번역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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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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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자체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이 작가의 작품이 좋다고 말하기 꺼려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미시마 유키오다. 그가 극우 천황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 책 『봄눈』으로 미시마의 글을 처음 접한 나는 읽으면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왜 그런 사상에 빠져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작품이 속한 <풍요의 바다> 시리즈 이후 그가 더 이상 작품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게 작가 자신이었다는 게 더 안타깝다.

이 소설의 서사 자체는 통속적이다. 지체 높은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청춘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봄눈』의 남주인공 기요아키가 사랑하는 것은 여주인공 사토코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금지되고 불가능한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이다. 귀족 가문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인 그는 손에 물 한 방울, 흙먼지 한 톨 안 묻히고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현실의 더럽고 속된 것, 복잡한 이해관계가 없다. 아름다움과 순수, 그것에 대한 도취만 집착만이 있을 뿐. 박경리 작가는 이러한 탐미주의를 일본 특유의 나약한 로맨티시즘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기요아키와 아야쿠라 백작 같은 나약한 로맨티시스트들에게 침을 뱉고 싶고, 등장인물 중에서 그나마 상식적이고 건실한 혼다에게 더 공감한다. 현실을 회피하면서 결벽적일 정도로 순수한 감정만을 추구하는 기요아키를 보면 아이고, 이 답답한 도련님아,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글 자체의 아름다움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문장도 평범하지 않고,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단순히 문장이 아름다워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두루뭉술하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모습들을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해 내 더 감탄스럽다. 글 자체만으로 늘 곁에 두고 읽고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네 사람의 머리 위에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졌다.'라고 단순히 쓸 수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어느새 네 사람의 머리 위에는 별들이 가득했고 선명한 은하수가 천정에 걸려 있었다. ... 해가 지고 나니 훨씬 크게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 낮에는 그토록 멀어 보이던 바다와 모래사장이 하나의 어둠으로 녹아드는 모습, 끝도 없이 증식하는 압도적인 별들의 복작거림....... 그런 것들에 둘러싸인 네 젊은이는 거대한 거문고 같은, 보이지 않는 악기 속에 안긴 듯했다.

그 악기는 틀림없는 거문고였다! 그들은 거문고의 몸통 속에 섞여 들어간 네 개의 모래알이었다. 그곳은 한없는 어둠의 세계였지만 몸통 바깥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세계가 있었다. 한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팽팽히 당겨진 열세 개의 현에 더없이 새하얀 손가락이 닿으면, 유유히 운행하는 별들의 음악이 거문고를 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네 개의 모래알을 뒤흔들었다.


읽는 사람마저 밤하늘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세밀하게 감지하고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폭력적인 사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작가 자신의 풍부한 지식도 소설 곳곳에 채워져 있다. 혼다가 서양의 자연법과 마누 법전의 종교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법을 비교하며 고찰하는 부분, 혼다와 태국 왕자들이 환생에 대해 토론하는 부분, 사토코를 만나게 해달라고 혼다가 아픈 기요아키 대신 부탁하러 갔을 때 월수사 주지가 혼다에게 법상종의 교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부분은 굳이 넣지 않아도 됐을 것 같지만)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소설에 쏟아부었다'는 작가의 말이 실감난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에서는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때로는 작가 자신이 길게 사상을 설명하지만, 그것이 뜬금없다거나 억지스럽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품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법과 종교와 철학, 사상에 대한 고찰이 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얇은 겉껍질 안의 세계는 더 넓고 깊어진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1권인 이 책에서는 아직 제국주의나 천황주의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인 만큼 기요아키와 사토코, 혼다가 누리는 부와 안락한 생활을 받쳐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시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이들마저 남을 부리는 것에도, 남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도 너무나 익숙한 지배 계급이라는 것이 언뜻언뜻 드러날 때는 섬뜩하지만. 나머지 세 권에서 이야기는 어디로 뻗어나가서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까. 이 연약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는 어떤 종말을 맞을까.

P. S. 원문 자체가 영어 번역체가 심한 데다 일본어의 일상적 어법을 벗어날 때가 많아 번역 자체가 전쟁 같았다는데, 이렇게 유려한 문장으로 옮겨내다니 번역자들과 편집자의 노고가 컸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들로 접할 수 있게 해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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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을유사상고전
이세동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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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지식인의 필독서라는 사서삼경을 다 읽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다. 그중에서 『시경』은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민요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진입 장벽이 제일 낮았다. 『시경』은 어렵지 않게 읽었는데 나머지 책은 읽을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자금성의 물건들』을 읽으면서 『서경』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공자는 구전되어 오던 요순시대와 하나라, 상나라의 역사, 주나라 사관들의 기록들을 모아 요순시대부터 주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는데, 그 책이 『서경』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하면서 『서경』을 비롯한 유교 경전들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유가 사상을 국시로 삼은 한나라가 들어서자, 유교 경전 복원이 추진되었다. 한 문제 때(재위 기원전 180년~기원전 157년)『서경』을 복원하려고 한나라 조정은 진나라 관리였던 복생을 불렀다. 그는 분서갱유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서경』의 일부를 집 안에 숨겨놓았고, 『서경』 전체를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가 불렀을 당시 복생은 이미 90세가 넘은 데다 방언이 심해 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딸뿐이었기에, 한나라 관리 조착은 복생의 딸과 함께 복생이 암송하는 『서경』을 받아 적어 복원해 냈다고 한다. 『자금성의 물건들』의 저자 주용은 복생이 평생 동안 숨 죽여 살면서 『서경』을 지켜내고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온 힘을 쏟아서 딸과 조착과 『서경』을 복원해 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진실이라면 그들이 지켜낸 역사를 2천 년도 넘은 미래를 살고 있는 내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나는 『서경』을 읽게 되었다.

내가 읽은 『서경』은 중문학자 이세동 교수가 번역한 2020년 을유문화사판이다. 자비 출판으로 2024년에 번역 출간된 판본을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나온 한국어 번역판이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하고 절충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도록 번역한 것이 보인다. 각 편의 앞에는 해설이 있고 본문에도 각주를 풍부하게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번역의 원전이 된 것은 당나라의 유학자 공영달이 편찬한 『상서전의』로, 복생이 복원한 28편을 토대로 한 『금문상서』와 동진 때 매색이 찾아냈다고 하는 58편 중 『금문상서』와 일치하는 부분과 새롭게 찾아낸 부분을 합치고 정리한 것이다. 문제는 매색이 찾아낸 부분 중 『금문상서』에 없던 부분은 후대의 위작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금문상서』도 현대 학자들은 그 시대 당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전국 시대에 정리한 고대사 자료로 보고 있다. 『서경』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 중 고고학적으로 그 존재가 입증된 것은 상나라와 주나라밖에 없다. 하지만 전국 시대에 쓰였다 해도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료와 전해 오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고, 위작으로 밝혀진 부분들도 동진 시대에 발견되었으니 동진이 존속하던 시기(317년~420년)를 생각하면 적어도 1600년은 된 것이고, 당시 중국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문헌이나 유물로 입증된 정확한 역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대 중국의 정치, 사회 체계와 정치 이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의 왕과 신료들에게는 이 책은 바른 정치를 위한 교과서였다. 과거 시험에서 『서경』은 시험 범위에 들었고, 왕과 신하의 강론 시간인 경연에서도 『서경』은 기본 교재였다. 하지만 현대인이고 정치인도 아닌 나는 그들처럼 『서경』으로 시험을 볼 필요도 없고 그것을 현실 정치에 적용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이 책 전체에서 반복하는 도덕 정치는 현실 정치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다. 선한 이는 복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고 이 책은 끊임없이 말하지만, 부귀영화와 천수를 누리다 편안히 죽은 악인들은 바로 최근 우리 정치판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태해지지 말고 늘 근면할 것,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사나 다른 일을 처리하지 말 것, 책임은 아랫사람들이 아닌 자신이 질 것. 이런 원칙들은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당시에도 이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군주나 지방관들은 있었고, 이런 도덕 정치를 외치던 위정자들도 정쟁과 음모, 반란에 시달렸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적이나 반란 세력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등 나름대로 정치적 술수도 써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도덕 정치의 원칙을 이상으로 내세운 것은, 그러한 이상이 세워져 있어야 현실이 그 이상이 세운 목표치의 몇 분의 1이라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역사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애초에 요순시대는 역사보다는 고대 설화의 영역이고 하나라도 고고학적으로 존재가 입증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1600년 전까지 형성된 고대 중국의 정치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행정 체계와 사법 체계도. 그 모든 것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의 정치, 행정, 사법 체계에 영향을 미쳤다. 정교가 분리되고 점술은 비과학적인 것이 된 현대인이 보기에는 제사가 중요한 정치 행사이고 점술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점술만으로 결정하지는 않았고 군주 자신과 신하들, 백성들의 의견을 모두 반영했다는 데서 과거의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좀 더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라 때 왕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물길을 냈다는 부분이 지명만 바뀌면서 반복될 때는, 성경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가 무한 반복되는 부분을 읽는 듯했다(이 부분이 이 책을 읽을 때의 고비였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신하나 백성이나 후손에게 남기는 권고도 비슷비슷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번역자가 각 장 앞의 해설과 각주로 보충 설명해 주거나, 본문에서 엿보이는 당시의 사회상이 흥미로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현대인인 내게는 이 책이 정치 교과서라기보다는 고대 중국의 면면을 축소해서 모아놓은 상자 같았다. 2천 년 전 중국의 이야기가 현대 한국인인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2천 년 전 고대 중국인들이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면서 구축해 온 원칙과 체계가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끄는 데도 영향을 주었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지루하고 단조롭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출판 시장에서 5년만 지나도 절판되는 책들이 넘쳐나는 지금까지도 2천 년을 살아남은 이유와 의미는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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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각 - 돼지국밥부터 꼼장어까지, 살아 있는 의리의 맛
고운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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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큰집이 있었던 곳이지만 우리 집에서 워낙 먼 곳이라 거의 가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친가 쪽 친척들이 경상도 사람들이고 친구, 지인, 선후배 중에도 경상도 출신이 많은데 부산은 경상권을 대표하는 도시니 속으로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부터 매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게 되면서, 부산은 내게 좀 더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 그해부터 여섯 번 부산에 가면서 찐 로컬 맛집은 아니지만 프랜차이즈에서 돼지국밥과 밀면을 먹고, 자갈치시장에서 지인들과 꼼장어구이를 먹었다. 그중 돼지국밥은 평소에도 종종 먹는다. 그래서 부산 음식을 다룬 『부산미각』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부산미각』과 같은 시리즈의 전작인 『중화미각』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감이 더했다.

우선 전작처럼 다루고 있는 지역색을 살린 표지가 독자를 반긴다. 표지의 옅은 푸른색 바탕색은 바다를 연상시키고, 부산을 상징하는 바다와 등대, 갈매기, 부산국제영화제를 연상시키는 필름과 슬레이트,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그 위에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뒤표지를 메뉴판 모양으로 만들어 거기에 본문에서 소개되는 음식들을 적어놓은 것은 전작 『중화미각』과 같다. 전작처럼 단일한 배경색 위에 단순한 형태의 오브제들을 놓고 뒤표지에는 메뉴판을 실어 시리즈의 통일성을 만들면서도 부산만의 특징이 드러나게 디자인했다.

본문에는 열아홉 가지의 부산 음식과 부록 속 다섯 가지의 조미료가 소개되어 있다. 『중화미각』이 화려하고 다채롭다면 『부산미각』은 좀 더 담백하고 소박하다. 『중화미각』에서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중국 음식들도 소개되고 그 음식들과 관련된 낯선 역사와 문화도 만날 수 있다. 반면 『부산미각』에는 우리도 몰랐던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곳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와 관련된 역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재일교포의 생존을 위한 분투가 담긴 낙곱새부터 6.25 전쟁 당시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밀면까지, 한국인이라면 직접 겪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고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들이 대부분 부산에서 나고 자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부산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책에서는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진하게 풍긴다. 중국이 연구의 대상인 반면 부산은 삶의 터전이니, 『중화미각』이 중국의 역사, 문학, 문화 등 인문학적인 지식이 차지하는 분량이 많은 반면, 『부산미각』은 부산 음식과 부산이라는 땅 자체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오는 서정적인 부분이 많다. 비문학이라기보다 한 편의 에세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벽 골목에서는 아낙네들이 재첩국을 한 동이씩 이고 아침을 아직 안 먹은 동네 사람들에게 팔고 다니고, 낙동강가 갈대숲에서는 사람들이 은백색 웅어를 잡는다. 이런 수십 년 전 부산의 풍경,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동래파전을 다룬 꼭지는 6페이지밖에 안 되고(그것도 사진들이 섞여 있고 마지막 페이지는 두 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꼭지들도 10페이지 안팎이니 생각보다 각 음식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좀 더 풍성한 지식과 읽을거리를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음식에 대한 지식도 조금 쌓고 경험하든 경험하지 못했든 부산 음식에 담긴 부산의 역사, 그 속의 희로애락을 살펴볼 수 있으니, 부산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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