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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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보니 대학원 선후배, 동기들 중 대부분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설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로 갔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전시 관련 수업은 딱 한 개밖에 듣지 않았으니 내게 전시는 가지 않은 길, 그래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여러모로 본받고 싶었던 옛 동료도 전직이 갤러리 큐레이터였다고 하니 전시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그래서 '전시 디자이너의 에세이'라는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전시는 어떻게 준비되고 디자인되는지 궁금해서.

이 책은 전시 디자인이라는 일에 대한 본격적인 직업 탐구가 아니라 에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전시의 A부터 Z까지 짚어가지는 않는다. 저자가 방문했거나 함께 일했거나 몸을 담았던 스물한 곳의 미술관을 주제로 삼아, 각 미술관의 건축 특징과 전시 시스템, 전시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그곳에 얽힌 저자 자신의 경험, 추억을 엮어서 쓴 책이다. 장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 4페이지, 미술관 풍경을 담은 사진 7페이지, 해당 미술관을 관람할 때 필요한 정보 1페이지로 한 장이 구성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이나 미술관이 위치한 문화권 같은 특정한 기준으로 장들을 배열한 것은 아니니,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으면 된다. 각 장의 본문은 짧고 사진은 많아 틈 날 때마다 한 꼭지씩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글 하나하나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거기에 담긴 저자의 고민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현장에서 직접 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지금 우리 미술관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예쁘고 멋진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는 과정에서, 전시의 이미지만 남고 전달하려 했던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까.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품인데, 작품 외의 지나치게 화려하고 강렬한 디자인 요소들이 작품을 가려버리지는 않을까. 관장이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미술관 전시나 운영의 가이드라인도 바뀌는 일이 많은데, 무조건 과거를 폐기하기보다는 거시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과 자기 일을 통해 미술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4페이지 안에 짤막짤막하게 자기 생각을 담아야 하니 아주 깊이 담론을 심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읽다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에 대한 고민들은 꽤 깊지만, 전시를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에드워드 호퍼 전을 저자가 디자인했다는데, 호퍼 전에 대한 이야기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룬 장과 휘트니 미술관을 다룬 장에서 하고 있다. 두 장에 걸친 이야기들을 그러모아도 호퍼 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 호퍼 전의 전시장을 찍은 사진 한 장과 그에 대한 설명 세 줄, 호퍼의 작품이 전시된 모습을 담은 휘트니 미술관 사진 다섯 장과 휘트니 미술관 이야기를 담은 다섯 페이지 중 일부. 이게 독자에게 주어진 모든 단서다. 두 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디자인을 통해 휘트니 미술관을 전시 공간에 풀어내려고 했다는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 호퍼 전에 갔던 내 기억을 겹쳐 보니, 휘트니 미술관의 호퍼 전과 서울시립미술관의 호퍼 전이 참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기억 한 조각과 저자가 던진 작은 퍼즐 조각들을 맞춰서 얻은 결과였다. 그것만으로는 감질나서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호퍼 전뿐만 아니라 다른 전시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으면 했지만, 이 책에서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저 저자가 들려주는 스물한 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저자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통해 스물한 곳의 미술관을 만났다. 사진을 공부한 사람답게 사진의 톤들이 통일되어 있고 강렬한 원색의 피사체를 찍은 사진들도 혼자 튀지 않아 보기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각 장소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어 스물한 곳이나 되는 미술관을 한 곳 한 곳 방문하는 느낌이 든다. 하얀색 표지와 하얀색 본문 페이지들 사이에 올해의 팬톤 컬러라는(이 책은 작년에 나왔지만) 피치 퍼즈로 물든 페이지들을 넣어 포인트를 준 디자인은 정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자의 글과 사진이 만들어내는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한층 더 살린다. 사진 설명은 모두 책 맨 뒤로 옮겨서 모아놨는데, 그 덕분에 사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만 사진 설명이 있는 페이지와 사진과 본문이 있는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일장일단이 있다.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홍보하고 진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듣고 싶다는 처음의 기대는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예술이 있는 곳들에 잠시 머물러 일상의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피카소가 말한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영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라니, 그 목적은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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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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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사진들도 본문 디자인도 정갈하고 단정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 꼭지씩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전시 디자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면 아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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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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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역사'는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정식 한국어 단어는 아니고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을 의미하는 인터넷 속어다. 그래서 책의 제목만 보면 인류의 온갖 실수와 과오의 흔적을 담은 지도들이 담긴 책인가 싶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마흔 곳의 폐허는 누군가의 과오라기보다는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자연 환경의 변화 때문에 그 쓸모를 다 하고 버려진 곳들이 대부분이다. 학교에 무단 결석을 했다는 이유로 열네 살 소년이 50대가 될 때까지 가둬놨던 레녹스성 병원이나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들을 죽을 때까지 가둬놨던 아캄펜섬처럼 '흑역사'의 의미에 딱 맞는 장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인류의 과오보다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장소들의 쇠락이다. 원제도 '잊힌 장소들의 지도책Atlas of Forgotten Places'니 '흑역사'라기보다는 '쇠락의 역사''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마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흑역사'라는 강렬한 어감의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 같다.


  '지도책'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각 장소의 세부 지도는 꽤 꼼꼼하게 그려져 있다. 그 장소의 과거 구조와 현재 구조, 사라진 건물과 남아 있는 건물, 장소가 있는 곳의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루스벨트섬(구 블랙웰섬)'의 세 시기 지도를 나란히 놓아 이 섬에서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 페이지가 인상적이다. 각 장소의 현재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에서는 폐허 특유의 스산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영미권 논픽션 저자들이 흔히 그렇듯 이 책의 저자도 유머 감각과 서정성이 섞인 문체로 쉽고 재미있게 책 속 폐허들에 얽힌 역사를 설명한다. 예쁜 외국 풍경도 보고 싶고 교양도 쌓고 싶다면 가볍게 읽기 좋다. 이 책의 원서가 2021년에 출간되었으니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그 시기의 독자들로서는 여행을 못 가는 대신 이 책으로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이제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으니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장소들에 가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만 아주 풍부한 볼거리, 이야깃거리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도 30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에서 마흔 곳이나 되는 폐허를 이야기하니 아주 깊이 있게 각 장소를 들여다보진 않는다. 텍스트만으로는 3, 4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게 끝인가' 싶은 챕터들도 있고, 사진이나 지도가 기대한 것보다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는 평도 있다. 제목을 보고 인류의 온갖 추악한 면모를 이 책으로 보겠다고 기대하거나 페이지마다 이야기와 풍경들이 넘쳐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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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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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장소들 중 대부분이 역사나 자연 환경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몰락한 곳들이라 ‘부끄러운 역사‘, ‘망신스러운 역사‘의 의미에 가까운 ‘흑역사‘라는 제목이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세계 곳곳의 폐허들에 숨겨진 역사와 그곳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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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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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안녕, 이렇게 같이 책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네.

H: 그러게. 그런데 이 책 저자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B: 4년 전에 우리가 같이 얘기했던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의 저자야.

H: 아, 그랬지. 그런데 이 책 꽤 한참 전에 나온 책 같은데?

B: 나는 2016년 개정판으로 읽었긴 하지만 사실 2000년에 쓰인 책이 원서야.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손녀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이 책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두 책의 출간 시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지.

H: 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B: 예전부터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을 책 찾다 우연히 이 책이랑 마주치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계 시민으로서 읽어야 되는 책인데 여태 안 읽고 있었구나 싶었어.

H: 그런데 24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 읽으면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B: 그렇긴 하지. 2016년 개정판이어서 편집자가 200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의 상황을 업데이트한 주석을 넣긴 했는데, 2016년도 벌써 8년 전이잖아.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거 같아. 2022년 1월에 <위대한 수업>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장 지글러 교수가 강의를 했었거든. 그때 한 이야기와 이 책에서 한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 물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야기하니 이 책 내용과 겹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시점 이후로 세계의 기아 문제가 나빠지면 더 나빠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아.

H: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잖아.

B: 24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건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문제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회 구조, 세상의 흐름은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그걸 이 책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H: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얘기한 것처럼 역시 자본주의가 문제겠지.

B: 맞아. 사실 이 지구에서는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대. 그것도 한 명이 하루에 2400~2700칼로리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 문제는 아무리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도 그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 거야.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도 자기들 이익이, 권력이 더 우선인 사람들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법과 규제가 있는 건데, 그런 규제들을 다 풀면 세상이 알아서 잘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자본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야.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과거의 자유주의를 계승한 거지. 장 지글러 교수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몇몇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온 지구의 경제를 틀어쥐고 있어서, 기아와의 투쟁이 어렵다고 얘기해. 그런 사실들을 폭로해 왔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게서 소송도 많이 당했다고 지글러 교수가 <위대한 수업>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

H: 진실을 말한 대가가 너무 무겁구나. 평생 그렇게 싸워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B: 엄청난 액수가 걸린 소송을 계속 당하면서도 지글러 교수는 다국적 기업과 그들이 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자국의 개혁도 중지시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아. 그리고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하지만 자신이 구호 현장에서 봤던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는 잃지 않는 게 책 곳곳에서 느껴져. 온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하거든. <위대한 수업>에서도 영양실조 때문에 노마라는 병에 걸려 안면 조직이 녹아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직접 인쇄해 와서, 이걸 꼭 방송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 그렇게 비싸지 않은 항생제만 사 먹어도 퇴치할 수 있는 병인데, 가난해서 걸린 병이라고 했었어. 정말 이건 꼭 알려야겠다는 열의와 간곡함이 느껴졌어. 구호단체의 일이 오히려 각 지역의 지배층들의 배를 불려주고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어버린다 해도, 그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지글러 교수의 마음이 느껴졌어.

H: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싸워왔는데도 세상은 여전한 걸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B: 이 책의 마지막에서 부르키나파소에서의 농업 개혁이 실패로 끝난 것을 듣고 지글러 교수의 아들이 말해. 그러니까 결국 좌절과 절망만 남은 거냐고. 지글러 교수는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자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자기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기 나라 경제가 자립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H: 공산주의를 시작한 사람들부터 최근의 개혁자들까지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해 왔던 일이야. 늘 느끼는 거지만 현실은 참 구체적이고도 너무 굳건히 우리 앞에 서 있는데, 이상은 그에 비해 단순하고 너무 멀게 느껴져.

B: 체 게바라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잖아. 우선 이상을 높게 잡아야 현실을 그 이상의 50퍼센트, 70퍼센트, 90퍼센트로 점점 끌어올리지. 장 지글러 교수는 원래 인간은 자신 곁에 있는 가족, 일족, 이웃에게서만 연대감을 느꼈지만 국가를 세우면서 처음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 그렇게 인류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해. 희망은 정의를 향한 인간의 불굴에 의지 속에 있다고. <위대한 수업>을 보면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보여. 방송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럴 거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음, 예를 들어보면 선진국들에서 소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그러니까 소를 더 살찌우기 위해 소들에게 풀 대신 곡물 사료를 먹이는데, 그런 축사의 연간 옥수수 소비량이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고 하잖아. 우리가 고기를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그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글러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어. 우리가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행동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 책의 다음 개정판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어.

* 종이책이어서 업데이트되지 못한 2024년 2월 현재의 상황

- 내전 기간인 1996년 적대 세력 수천 명을 포위해 굶어 죽게 만들었던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2006년 체포되었고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복역 중이다.

- 현재도 기후 난민은 기존의 난민 정의(국적,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자국 내에서 박해에 이르는 차별을 받고, 그와 같은 박해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 대신 '기후 변화로 인한 강제 실향민'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 이 책에서는 2015년에 세계 인구가 71억 명이 될 것이고 그중 6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2024년 현재 세계 인구는 약 81억 명이고 202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6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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