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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살인 ㅣ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평점 :
지구는 인류가 서로 싸우고 사라질지 정말 여러 이야기처럼 소행성이 날아와서 멸망할지. 소행성이 날아오고 지구에 생명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가 남아 있는 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생명체가 다시 나타날 거다. 그런 일은 오래전 육천육백년 전에 있었다. 지구를 지배한 파충류 커다란 공룡이 살다가 어느 날 사라지지 않았나. 아주 갑자기는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서 공룡이 죽었을 거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마란 법이 없기는 하다. 달도 소행성과 지구가 부딪쳐서 생겨난 거니. 그때 지구엔 아무것도 없었다. 지구는 뜨거운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겠지. 오래전 일을 생각하고 지구로 소행성이 부딪친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정말 우주로 달아나려고 준비하는 사람 있을지, 있을 것 같다. 돈 많은 사람은. 난 아마 그 날이 올 때까지 그냥 그대로 살겠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그때 읽고 싶은 책이 나한테 없다면 참 아쉬울 듯하다. 아니 도서관은 그대로 있을 테니 거기에 가서 빌려와서 보면 되겠다.
앞에서 지구가 소행성과 부딪친다는 말을 한 건 이 소설 설정이 그래서다. 《세상 끝의 살인》에서는 소행성이 지구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것도 이천이십오년 삼월 칠일에 소행성이 지구와 부딪친다고 한다. 지금은 이천이십사년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 텐데, 고하루는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운전학원에 다닌다. 운전학원이 운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엔 강사가 한사람 있었다. 이사가와 강사다. 여성 강사와 스물세살 여성이 나와서 그런지 장류진 소설 <연수>가 생각나기도 했다. 거기에서 운전을 배우는 사람은 하루보다 나이가 좀 많았던 것 같지만. 비슷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여성 두 사람이어서 생각난 것뿐이다.
소행성은 일본 구마모토현 아소군에 떨어진단다. 일본에 사는 많은 사람은 일본을 떠나고 다른 나라로 갔는데, 세상에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도 떠나지 못하겠지. 일본과 가까운 한국 사람도 많이 떠났을 것 같다. 여기엔 나오지 않았지만. 이사가와 강사와 하루가 운전 교습을 하려고 차를 타려고 했더니, 차 트렁크에 여성 시체가 있었다. 운전하는 데 차 트렁크는 왜 열어보나 하는 생각이 들겠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할 거 아닌가. 하루는 생존 배낭을 가지고 다녔다. 그걸 트렁크에 넣으려다 여성 시체를 발견한다. 배낭이 없었다면 여성 시체는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 발견됐으려나. 배낭을 트렁크에 넣지 않고 뒷자리에 두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지금 들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
여성 시체를 보고 이사가와는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고 시체가 어떤지 살펴본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추리한다. 그런 모습 봤을 때 예전에 뭔가 다른 일을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사가와는 예전에 경찰이었다. 그러니 시체를 잘 살펴보고 언제쯤 죽었는지 다른 곳에서 죽임 당했다는 걸 알았겠지.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때 제대로 경찰이 일을 할까. 그래도 두 사람은 경찰서로 간다. 거기에서 두 사람이 더 죽임 당한 걸 알게 된다. 비슷한 방법으로 죽임 당해서 연쇄 살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곧 모두 죽을 텐데, 누가 사람을 죽였을까. 세상이 멸망할 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사회 자체가 움직이지 않을 테니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하나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그런 거 생각하니 좀 무섭구나.
사람은 동물이지만 생각하기에 본능으로만 살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사회가 멈췄다 해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병원을 여는 사람이 있고 떠나지 못하고 남은 사람이 남은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해도 모두가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거다. 남은 사람은 서로 돕고 살겠지.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이사가와는 정의감이 남다르지만. 세상이 끝나지 않았으니 범인을 잡아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세상이 어떻든 사람은 사람으로 살다 죽어야 할 거 아닌가. 누군가를 괴롭혔던 사람도 세상이 끝나가자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다. 예전에 그런 일 안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책을 보기 전에 맨 앞에 일본말로 쓰인 걸 보고 이건 어디에 나오는 걸까 하면서 앞이 아닌 뒤를 살펴보다 어떤 걸 보았다. 그걸 봤다고 해서 내가 바로 뭔가 알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걸 보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못 찾고 바로 앞에서 찾았다. 책 앞부분이다. 두번째 문단부터다. 이런 걸 왜 맨 앞에 적어둬서. 이런 게 없었다면 내가 뒷부분을 안 봤을 거 아닌가. 책은 앞에서 차례대로 보는 게 가장 좋다. 살짝이라도 뒤를 먼저 보면 뭔가를 알아버리기도 하니. 뭔가 알게 된다 해도 그것보다 다른 걸 더 보면 괜찮기는 하겠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서로 돕는 거. 세상이 끝나간다 해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거. 세상이 끝나서 모두 죽는다 해도 누군가한테 죽임 당하는 건 안 좋지 않나. 이 책을 보니 스스로 죽은 사람도 많았다. 진짜 세상이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면 그런 사람 있을까, 있을지도.
하루도 마음이 왔다 갔다 했지만, 마지막까지 마음을 지켰다. 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자기 마음을 지키면 좋겠다 생각한다. 모두가 죽는다 해도. 죽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더 좋지 않나. 난 그런데.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