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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4 ㅣ 소설 보다
김채원.이선진.이연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지난 2023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은 책날개가 없어졌는데, 책값이 오르고 책날개가 다시 생겼다. 맨 앞에 속 종이도. 책값에는 종잇값 많이 들어가겠지. 그동안 책값이 싸서 이 책을 봤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그래도 이 책은 비싸지 않은 걸지도. 뭐든 오르기만 하는구나. 값이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도 있을까. 그런 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별로 없을 듯하다. 다른 나라 책은 환율에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기는 한다. 이건 내가 일본말 책을 사 봐서 아는구나. 그런 거 안 사 봤다면 몰랐겠다. 영어는 모르니 영어로 쓰인 책은 안 사 봤다. 갑자기 영어 이야기가 나오다니. 엽서는 예전에 봐둔 게 올랐다. 그때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책값이 올랐지만, 소설은 여전히 세 편 담겼다. 첫번째 김채원 소설 <럭키 클로버>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본 <빛 가운데 걷기>는 쓸쓸한 이야기네 했는데. <럭키 클로버>도 쓸쓸한 이야길지도. 엄마가 물려준 자두 농장을 하는 자영은 혼자다. 엄마는 어디론가 떠났다. 왜 엄마는 떠났을까. 함께 살면서 자두 농장을 하면 괜찮았을 텐데.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라고 언제까지나 함께 살지 않아도 되겠지. 따로따로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살아도 괜찮겠다. 난 클로버 병정이 나타나는 게 환상 같기도 했는데, 김채원은 그걸 환상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이 말을 보니 더 무슨 이야긴지 모르게 됐다.
다음 이선진 소설 <밤의 반만이라도>도 그렇게 밝지는 않다. 밤이 나와서 그런가. 밤은 어둡지. 누구나 밤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밤을 사는 사람 있을지도, 아니 밤이라고 어두운 것만은 아닐 거다. 여기엔 시각 장애인이 나온다. 이수 씨는 눈이 보이지 않고 딸인 다운이도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아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미숙이는 활동 보조사로 일하는 새엄마와 다운이 집에 가고 다운이하고는 같은 반이었다. 미숙이와 다운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미숙이는 다운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운이는 잘 모르겠다.
미숙이는 새엄마와 아빠와 살았는데, 아빠가 바람이 난 게 소문이 나서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런 일이 미숙이와 다운이를 가깝게 해주었을지도.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 단편소설 보기도 했는데, 다 다른 이야기지만 아주 다른 건 아닐지도.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나올 것 같다. 작가가 그 시간을 지나오고 그때 이야기 쓰고 싶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성장통인가. 미숙이와 다운이가 서로 다른 중학교를 다니게 되어도 오래 친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연락이 아주 끊어진 건 아니었나 보다. 스물아홉살에 다시 만났으니 말이다. 다운이 엄마 장례식장에서. 어릴 때 다운이 엄마와 다운이 그리고 미숙이는 보물찾기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건 보물찾기보다 뭔가를 두고 오는 거였다. 거기엔 무엇을 두고 온 걸지. 뭔지 모를 말을 썼다.
마지막 소설 <하와이 사과>(이연지)는 영화를 하는 사람 이야기다. 영화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빨간 여자는 뭘까 했는데, 지수 모습이고 연재와 선배인 영완의 앞날 모습이었을까. 오래전부터 사람은 기계가 나타나고 일자리를 잃었다. 사람이 할 일이 아직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람이 할 걸 다 해 낼 것 같다. 예술은 사람이 해야지 했는데, 인공지능은 그림뿐 아니라 글을 쓰고 음악도 만든다. 여기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포포와 영화를 만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에비 에이프릴까지 나온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할 게 없겠다. 인공지능한테 뭔가 만들 게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은 한사람이면 되려나. 인공지능이 많은 걸 하면 사람은 어떻게 될지.
이 소설 제목인 ‘하와이 사과’는 알약이다. 이걸 먹으면 손끝이 빨개지고 시간이 지나면 온몸이 빨개지나 보다. 그걸 먹은 모습이 사과처럼 빨개서 하와이 사과인가. 그 약을 먹으면 뭔가 만들고 싶어진단다. 자신보다 인공지능이 영화를 잘 만들어도 약에 의지하는 건 안 좋을 것 같은데. 마지막 소설도 지금과 비슷하구나.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 인공지능이 나왔다고 해도 난 별로 관심 안 갖고 유치한 글을 쓴다. 인공지능이 나보다 글을 더 잘 쓸지도. 내가 인공지능보다 글을 못 쓴다 해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내 일자리를 잃을 걱정이 없다고 여기는 건가 보다. 기계나 인공지능은 완벽할지도 모르겠다. 그걸 만들고 쓰고 고치는 건 사람이다. 완벽한 것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해서 더 나은 것도 있을 거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희선
☆―
“너보다 저게 잘 써.”
지수가 미간을 좁혔다. “포포?”
나는 끄덕였다. (<하와이 사과>에서, 145쪽)
“하연재. 나 갈 데 없어, 지금. 나 없어지게 생겼다니까?”
“그렇지 않아.” 나는 이 말이 진심으로 지수에게 위로가 될 거다 생각했다.
“직업의 소실은 존재의 소실과는 다르니까. 작가라는 직업이 없어져도 너라는 인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하와이 사과>에서,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