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아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가끔 글쓰기 책을 보았다. 그걸 보고 글을 써 본 적은 거의 없는데 지난해(2017)에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최진우)를 보고 나도 한번 백일 동안 써 볼까 하고 썼다. 거기에 나온 말에서 따라한 건 거의 없다. 백일 동안 쓰기만 따라했구나. 백일 동안 쓰니 백일이 지나고 바로 안 쓸 수 없었다. 글은 쓸수록 느는 거 맞을까. 난 왜 하나도 늘지 않을까. 슬프다.

 

 지난해(2017)에 백일 동안 글쓰기를 다 하고도 날마다 쓴다. 늘 쓸 게 없어서 ‘뭐 쓰지’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겨우 겨우 쓴다. 백일 동안 쓸 때는 좀 더 빨리 쓸 게 떠올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쓰고 나면 괜찮기도 하고, 정말 못 썼다, 이런 걸 쓰다니 하기도 한다.

 

 얼마전에 쓰기만 하고 타이핑 하지 않은 걸 한꺼번에 하고 보니, 아주 잘 쓰지는 않았지만 써둔 게 있어서 기분 좋았다. 그걸 보고 잘 못 써도 더 써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써둔 걸 보고 조금 힘을 내다니. 써둔 건 써둔 거고, 새로 쓰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는 나를 괴롭게도 즐겁게도 한다. 괴로워도 쓰는 건 즐거움이 더 커서겠지.

 

 글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다. 잘 쓴 다른 사람 글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잘 못 써도 자신이 쓴 글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글은 자기 나름대로 쓰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아쉽게 여기지만. 난 내가 쓰고 싶은 걸 써야겠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저렇게 써라 한 적도 없는데 이런 말을 했구나. 앞으로는 쓸거리가 나를 많이 찾아오고 내가 그걸 잘 알아보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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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편하지 않게 잠을 잤더니

가위에 눌렸다

아니 그건 꿈이었다

누군가 내 팔을 칼로 찔렀다

언젠가는 목졸리는 꿈도 꾸었는데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꿈은

기분 좋지 않다

내 걱정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나쁜 꿈은

꿈일 뿐이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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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하나를 지났구나 생각하면

다시 앞을 가로막는 벽

 

높고 단단한 벽은

넘지도

부수지도 못하고

언제나 멀리 돌아서 간다

 

돌아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괜찮다

 

벽은 자신을 조금 자라게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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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 소심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 순무의 묘생 일기
윤다솜 지음 / 북클라우드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한국에 고양이를 기르는, 아니 모시는 집사는 얼마나 될까. 예전보다 많이 늘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이 언제인지 정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고양이뿐 아니라 반려동물은 거의 집 안에서 기른다. 사람이 늘 한곳에만 있어야 한다 생각하면 답답하겠지만 고양이는 다르겠지. 바깥에서 사는 고양이는 위험에 쉽게 드러나고 오래 살지 못한다. 고양이는 자기 영역을 지키고 사니 집 안에서만 지내는 고양이는 그곳을 자기 영역으로 여기고 살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고양이도 다 다를 거다. 자신과 사는 고양이가 어떤지 알아보고 고양이가 싫어할 만한 건 안 하는 게 좋겠다. 이건 고양이뿐 아니라 사람한테도 그래야 한다. 고양이와 사는 사람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낫다 생각할까. 그런 때가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일부러 바뀌어야 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바뀐다. 상대한테 자신을 맞추는 거겠지. 난 딱히 그런 일 없었구나. 고양이나 개를 길러 본 적 없으니. 다른 사람이 반려동물과 사는 모습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해도 난 그렇게 하기 어려울 듯하다. 동물 목숨도 사람 목숨 만큼 무겁고 소중하다. 사람과 사람 인연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 연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윤다솜과 남편이 순무를 만난 게 그렇게 보인다. 윤다솜은 결혼하고 몸이 안 좋아졌다. 그런 걸 보면 결혼이 쉽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도 몸이 좋아지지 않아 윤다솜은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윤다솜은 남편과 고양이를 기르자는 이야기를 하고 찾아보다가 지금 순무가 된 고양이 사진을 보고 한번 만나기로 한다. 갓 태어난 새끼는 아니고 태어나고 다섯달쯤이 지난 고양이였다.

 

 한번 고양이를 보고 마음이 자꾸 가서 윤다솜과 남편은 그 고양이를 데려다 살기로 한다. 이름은 순무라고 지었다. 순무가 이름이 없었을 때는 그저 많은 고양이에서 하나였을 텐데 이름을 지어주자 더 가까운 고양이가 되었다. 어린왕자가 생각나는구나. 어린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윤다솜과 남편은 순무와 서로 길들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고양이는 환경이 바뀌면 거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예전 사람과 순무가 헤어진 게 다행이다 싶다. 그 사람은 순무가 건강해서 병원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고 했는데 순무는 아픈 곳이 있었다. 크게 아픈 건 아니어서 약을 먹고 나았다. 윤다솜이 순무 이야기를 하는 건 꼭 아이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은 많구나. 순무는 조금씩 윤다솜과 남편을 받아들였다. 사람도 상대가 자신한테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듯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 마음은 더 모르니 가만히 내버려두기도 해야겠다. 시간이 흐르고 순무는 새로 살게 된 곳이 안전하고 윤다솜과 남편이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아이를 갖게 되고 낳으면 아이한테 이것저것 다 사주기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갓난아이한테 있어야 하는 건 물건이 아니고 부모 사랑이 아닐까. 윤다솜은 순무한테 있어야 하는 게 뭘까 하고 이것저것 사들였다. 하지만 순무는 많이 먹지도 않고 장난감도 많지 않아도 괜찮았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아니다. 그걸 생각하면 이것저것 사지 않을 텐데.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동물한테도 물건보다 마음을 주는 게 낫다. 사람이 마음을 주면 동물은 거기에 답하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가도 동물은 사람이 어떻든 떠나지 않는다. 사람이 동물을 배신하는구나. 동물을 기르려는 사람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든 하지 않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동물과 끝까지 가리라고 본다.

 

 동물은 사람보다 적은 시간을 산다. 사람보다 오래 살거나 사람과 비슷하게 사는 동물도 있지만. 고양이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사람이 느끼는 시간과 다를 것 같다. 동물한테는 시간이라는 말도 없겠구나. 윤다솜과 남편이 순무와 산 지 두해가 됐다고 한다. 순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 사는 동안 즐겁기를. 윤다솜이 순무와 함께 한 이야기를 보니 기분 좋구나. 다른 사람 고양이지만. 윤다솜이 순무한테 이것저것 해주겠지만, 순무는 더 큰 걸 윤다솜과 남편한테 줄 거다. 윤다솜과 남편은 주고받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순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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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 내 안의 빛이 되어준 말들의 추억 월간 정여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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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지 모르겠지만 월간 정여울이라는 걸 알고 혼자서 거기에 글을 쓰다니 대단하다 생각했다. 열두달 한다고 했나. 내가 만난 건 여섯번째로 ‘반짝반짝 - 내 안의 빛이 되어준 말들 추억’이다. 이런 말을 보고 나도 뭔가 떠올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건 없다. 아니 그때는 내게 빛이 됐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잊은 걸지도.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둔 적도 얼마 없고 그걸 자주 보지 않았다. 시를 적어둔 적은 있구나. 그건 어쩌다 한번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릴 때 책을 안 봐서 더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이 아닌 누군가한테 들은 말은 뭐 없을까, 없다. 정여울은 글을 열심히 써서 냈더니, 교수님이 그 글이 무척 눈부셨다고 했단다. 작가 가운데는 선생님 칭찬을 듣고 된 사람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따로 글을 쓸 일이 있었나 싶다.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글로 칭찬 들을 일도 없었구나. 그게 아니어도 선생님한테 칭찬 들은 적 없다. 학교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다녔다.

 

 지금 내가 사는 것도 학교 다닐 때나 다르지 않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기. 그래도 가끔 나한테도 뭔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뭔가는 뭔지. 나도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자기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 정여울은 삶의 중심을 자기 안에서 찾게 해준 게 인문학이라 한다. 지금 아주 사라진 건 아닐 텐데 어쩐지 요새는 인문학이라는 말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내가 못 듣는 것뿐일지도). 지금은 무엇으로 옮겨갔을까. 페미니즘, 미투운동.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것도 인문학일지도. 내가 정보를 얻는 곳은 라디오 방송이나 인터넷 책방이나 책이다.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고 들리면 듣고 새로 나온 책 이야기가 보이면 볼 뿐이다. 게으르구나. 난 시대의 흐름에 잘 따라가지 못한다. 모두가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인문학도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는 소설 이야기도 한다. 평범하게 살기 어렵게 된 에이미가 나오는 길리언 플린 소설 《나를 찾아줘》. 식구와도 거리 조절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길버트 그레이프》(피터 헤지스). 유색인 가정부가 용기를 내서 자기들 이야기를 하고 백인으로 작가가 되려는 스키터와 우정을 나누는 《헬프》(캐스린 스토깃). 세 소설 공통점이 있다. 다 영화로 만들었다는 거다. 책뿐 아니라 영화 이야기도 하는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도 말하는 《82년생 김지영》(조남주)도 있다. 루쉰이나 신영복도. 정여울이 말하는 책을 봐도 괜찮겠다. 이렇게 말하고 난 안 볼지도 모르겠다. 난 언제나 책은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세권에서 두권은 보았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예전에 영화 한번 봤다. 예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어떤 거든 책처럼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말지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 욕심이나 미련을 가진 게 있는 듯하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책을 보면 될까.

 

 요새 많이 쓰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을 쓰는 걸까. 난 그 말 쓰는 것도 싫어서 못 쓰겠다. 그 말은 무척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말은 부드럽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이든 글로 쓰는 말이든. 하지만 부드럽게 고치고 진짜 뜻을 숨기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은 잘 알아봐야 한다.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 어떤 말은 들으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실제 들은 것이라기보다 소설에서 본 말일지도).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은 들여야 한다. 난 어렸을 때는 다른 생각 별로 못했다. 책을 읽고 조금 생각하게 된 듯도 하다. 아니 책을 읽은 다음 생각해서구나. 쓰는 게 생각하는 거다. 그런 시간이 아주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고 본다. 쓰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도 괜찮다. 요새는 그런 모임도 있구나.

 

 달마다 화가 한사람 그림을 책에 싣기도 하는가 보다. 이번에는 프란츠 마르크다. 글도 보고 그림도 봐서 좋다. 프란츠 마르크 이름 처음 들은 것 같다. 한번쯤 들었지만 잊은 걸지도. 프란츠 마르크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프란츠 마르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그림이다. 화가, 작가에는 그런 사람 많겠다. 꼭 누가 자신을 칭찬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용기 대단하다. 정여울도 그런 사람인 듯하다. 월간 정여울을 쓰는 걸 보니. 열두번째까지 즐겁게 쓰기를 바란다. 난 무엇이든 천천히 할까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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