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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시인은 늘 시를 쓸까, 무언가 쓸거리가 떠오르면 쓸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겠다. 언제나 쓸 게 떠오르면 쓰는 사람도 있고 어느 날 떠오르면 쓰는 사람도 있겠지. 쓰지 않아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그건 생각나지 않아도 쓰는 거다. 작가는 그러려나. 시인도 작가와 다르지 않지만 아주 조금 다른 데가 있을까. 나도 소설가나 시인이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잘 본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소설가나 시인이어서 우리와 다르다 말하면 그 말에 반박하고 싶기도 하다(소설가나 시인을 시샘하는 건지도).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세상에는 많은 것을 스쳐지나는 사람이 있고 작은 것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 건 어린이가 잘한다고도 하는구나. 어린이는 거의 모두 시인이기도 하겠지.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어린이가 순수하고 낯선 눈길로 세상을 바라볼 거다. 세상을 많이 알고 일찍 어른이 되는 아이도 있구나. 난 그것을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도 시다 생각한다(언젠가도 이런 말을). 난 세상 비밀을 잘 보지 못한다. 어쩌다 한번 볼까. 가끔 본다고 생각하다니. 이런 마음은 안 될 텐데. 시를 많이 만나면 시를 조금 잘 쓸 수 있으려나 생각하면서 가끔만 만난다. 어쩐지 난 마음먹고 하면 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적이 한번도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내가 하는 건 마음대로 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건 아쉽게 여기는구나. 그 반대가 더 나을 텐데.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해도 지금까지 내가 책을 보거나 시를 봐서 유치해도 글을 쓰는 거겠지. 내가 영향받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노래다. 중, 고등학교 때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다. 시는 많이 적어두지 않았지만 노랫말은 노래 들으면서 받아적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다. 가끔 찾는 건 일본노래 노랫말이구나. 우연히 들은 노래에 마음에 드는 말이 있으면 노랫말을 찾아서 한국말로 옮겨보기도 한다. 그건 어쩌다 한번이다. 시와 노래 아주 먼 사이는 아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시인의 말>에서, 5쪽)
시인이 한 말이 따스하구나. 세상에 있는 슬픔을 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라디오 방송에서 신철규 시인 시집 제목을 들었다. 시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오랫동안 그 방송에서 이 시집을 준다는 말을 했다. 처음 시집 제목 들었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야 만났다. 관심을 가졌기에 만난 것일지도. 이게 첫번째 시집일까. 슬픔을 많이 말하는 듯하다. 세상에는 한사람이 다 알 수 없는 슬픔이 있을 거다. 자신한테 슬픈 일이 일어나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슬프면 슬픔에 잠겨 있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픔에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어쩌면 그건 누구나 느낄지도 모를 일이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우리는 운동장 한구석에 모여 때를 기다린다
한 손에는 그을린 유리를 들고
손바닥만한 달이 운동장만한 해를 가린다
달의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달과 태양이 포개지면서
검은 우물이 만들어진다
태양에 은빛 갈기가 돋아난다
눈동자가
깊이
깊이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아
나는 주저앉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가운데서
-<개기일식>, 42쪽
개기일식을 실제 본 적은 없다. 난 그걸 보면 아주 신기하게 여길 듯한데, 이 시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프기도 하다고 한다. 그런 느낌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웃는 가운데서 홀로 우는 사람도 있다. 난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좀 그러는구나. <개기일식>에서 저 사람(시인)도 그랬을까. 시를 보고 시인 이야기라 생각해도 될지. 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기도 하겠지. 꼭 그걸 구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인도 그러기를 바랄 거다.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슬픔의 자전>에서, 50쪽)
우리가 평생 동안 흘린 눈물을 모은다면
몸피보다 더 큰 물방울이 눈앞에 서 있을 거야. (<무지개가 뜨는 동안>에서, 105쪽)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시집 제목이 나오는 시다. 저런 일 있으면 정말 슬플 것 같다. 지금은 가난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 게 슬프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게 별거 아니다는 거 알 거다. 내가 이런 말 들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면서 나도 하는구나. 어릴 때부터 세상 이치랄까, 깨달음이 있다면 살면서 덜 헤매고 덜 슬퍼할지도 모를 텐데. 그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길인가. 지구에 사는 많은 건 힘든 일이나 슬픔을 겪고 한층 자란다. 그리고 남의 슬픔을 보기도 하겠지.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