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生、大事なものが盜まれました (講談社タイガ) (文庫)
北山 猛邦 / 講談社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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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중요한 걸 도둑맞았어요

키타야마 타케쿠니

 

 

   

 

 

 

 명탐정 이야기 만큼 괴도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겠지. 난 괴도 뤼팽밖에 모르지만. 아, 20면상도 있던가. 뤼팽이나 20면상 이름은 알아도 책은 못 봤어. 뤼팽 이야기는 어렸을 때 텔레비전 방송으로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희미해. 로빈후드도 비슷한 걸까. 임꺽정이나 홍길동은? 괴도가 나타난 건 어쩌면 더 옛날에 이야기가 있어설지도 모르겠어. 명탐정 코난에도 괴도가 나와. 만화에 나오는 얼굴이 아주 똑같지 않지만 코난으로 작아진 쿠도 신이치와 닮았어. 여자친구는 란을 닮았어. 같은 얼굴인데 한쪽은 탐정이고 한쪽은 괴도군. 괴도 여자친구 아버지는 경찰이야. 그것도 재미있는 설정이지. 괴도는 자주 나오지 않아서 이름은 몰라. 키드던가. 코난도 괴도를 잡으려고 하는데 늘 놓쳐. 언젠가 잡을 수 있을까. 잡지는 않고 누군지 알기만 할지. 어쨌든 그날이 오면 코난이 끝날지도. 그것보다 코난이 쿠도 신이치로 돌아오면.

 

 제목에서도 알겠지. 무언가를 도둑맞는 이야기라는 걸. 소설에 나오는 곳은 나기노 섬이라는 곳이야. 이곳에는 고등학교가 세개로 섬 사람들은 세곳에서 한곳을 나온 사람이 많아.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섬을 나가 보통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아. 세곳에서 한곳은 등대가 학교 건물인 도다이모리 고등학교야. 다른 곳은 미타테 고등학교와 고쿠인 고등학교야. 두 학교는 다른 이름도 있어. 미타테는 탐정학교, 고쿠인은 괴도학교라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학교지. 미타네는 공부 잘하고 돈도 좀 있어야 다닐 수 있는 듯해. 고쿠인에 가장 학생이 많은데, 이 학교에 들어가는 데는 조건이 있어. 그건 몸 어딘가에 점이 있는 거야. 그 점은 이 섬에 유배온 죄인을 나타내는 증표야.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후손이 여전히 살아. 고쿠인, 점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를 훔치는 기술이 있었어. 괴도학교에서는 지금 시대에 맞게 그 기술을 쓰는 방법을 배울까. 도다이모리 고등학교는 두 곳에 가지 못하고 섬을 나가지도 않는 아이가 들어가는 곳이야. 이 섬은 세 세력이 균형을 지키고 살아가. 별난 섬이지.

 

 오래전에는 학교가 다르면 친하게 지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학교가 달라도 친하게 지내.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람만 그럴까. 도다이모리 고등학교에 들어간 신토 유키코와 미타테 고등학교에 들어간 치토세 케이 그리고 고쿠인 고등학교에 들어간 고부네 시시마루는 친구야. 가장 자주 나오는 아이는 신토 유키코고 유키코가 다니는 도다이모리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유키코 담임인 요사리 메구루야. 요사리 메구루가 바로 제목에 있는 선생님이야. 어쩐지 시작 잘못한 것 같아. 다음에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좀더 말해야겠지. 먼저 말해둘 게 있어. 이 섬에는 스무해 전에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괴도 페레스가 나타났는데 몇해 전쯤부터 괴도 페레스는 활동을 멈췄어. 그런데 가끔 괴도 페레스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

 

 유키코와 시시마루는 미타네 고등학교에 들어간 치토세 숙제인 미해결사건을 풀려고 해. 미해결사건이라 했는데 그건 무엇을 도둑맞았는지 찾아내는 거야. 무언가를 도둑맞은 곳에는 괴도 페레스가 남긴 카드가 있었어. 그 카드가 있어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도둑맞았다는 것을 알게 돼. 괴도는 보물이나 값나가는 것을 훔칠 것 같은데, 여기 나오는 괴도는 물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훔칠 수 있어. 괴도 페레스 카드가 발견된 곳은 세 곳으로 세 곳 공통점은 거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과 나기노 섬에서는 좀 높은 건물이라는 거야. 거기에서 도둑맞은 걸 뭘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잘 모르겠지. 나도 잘 몰랐어. 거기에서 사라진 건 차원이었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차원이지. 삼차원에서 차원을 하나 빼면 이차원으로 그건 그림 같은 거야. 높이가 없어지는 거지. 이차원은 어떨까.

 

 높은 건물에서 차원을 훔친 건 괴도 페레스가 아니었어. 괴도 페레스인 척한 사람이었어.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오래전에 문 닫은 공장 굴뚝에서 괴도 친구가 뛰어내려 죽어서야. 다시는 높은 곳에서 누군가 뛰어내려 죽지 않기를 바란 거였어. 그것도 도둑질이라 할 수 있고 누군가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겠지. 가장 피해를 입는 건 바로 괴도 페레스지. 괴도 페레스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안 좋은 말을 듣거나 범인으로 잡히면 안 좋잖아. 전설의 괴도 페레스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어. 유키코 담인인 요사리였어. 유키코도 그걸 알게 되지만 친구 둘한테는 말하지 않아. 괴도였던 요사리가 어떻게 도다이모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됐는지는 수수께끼야. 괴도학교에서 선생님을 했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요사리는 괴도 페레스였을 때 기억이 없대. 기억을 훔치는 괴도가 있어서 빼앗겼어. 그 괴도 언젠가 나올 것 같은데. 요사리가 기억을 도둑맞았다고 말하는 건 세번째 이야기에 나와.

 

 우리가 어떤 물건이 뭔지 모르면 사는 게 편하지 않기도 할까. 충격으로 기억을 잊어도 사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잖아. 그건 일상생활하는 기억은 있어서지. 지금 많은 사람이 쓰는 휴대전화기를 잊는다면. 두번째에서는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기가 뭔지 잊어버려. 휴대전화기로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은 뭔가 이상할 것 같아. 유키코가 그랬어. 친구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고 메일을 보내지 못하고 사전과 알람시계가 없어졌다고 생각해. 휴대전화기(스마트폰)를 보고는 이게 뭐야 해. 앞에서 친구 둘을 말했는데, 유키코가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건 요사리야. 그 일도 가짜 페레스가 상관있어서였어. 요사리가 가짜 페레스를 찾는 건 지금 도다이모리 선생님인 자기 생활을 지키고 싶어서였어. 난 도둑맞은 기억을 찾으려는 걸까 했는데.

 

 정리하기 어려운 이야기야. 그러면 다르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어.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듯해. 괴도가 훔치는 건 물질만이 아니다는거. 개념 같은 건 도둑맞아도 그걸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그걸 알게 해주는 게 있어. 그건 유키코가 학교에서 받은 휴대등이야. 무언가를 도둑맞거나 도둑맞은 곳에 가면 유키코가 목에 건 등불이 커졌어. 그건 도다이모리 학교에 있는 등대불이기도 해. 휴대등 가진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기도 해. 유키코한테는 뭔가 힘이 있어서 휴대등이 반응을 보인 거겠지. 그것도 수수께끼야.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어.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게 없어지면 나을 거야 하기도 하잖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어진다고 모든 게 괜찮을까. 처음에는 괜찮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안 좋은 게 나타나겠지. 싫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없애기보다 그것과 함께 하는 방법을 찾는 게 낫겠어. 이건 그럴 수 있을 때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건 피하는 게 좋겠어. 따로 사는 거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해. 이 말은 조금 뜬금없나. 기억을 도둑맞은 요사리는 그렇게 사는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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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일지라도

멈춰서기보다 한발 나아가자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넘어지면 조금 아플 테지만

그건 피할 수 없다

쉬고 싶을 때는 잠시 쉬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

 

한발 내딛으면

다음은 저절로 이어진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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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와

잠들지 못한 적 있으세요

앞으로 다가 올 슬픔을 느낀 건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슬펐는지

잠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일어나서 생각했지만

어디에서 온 슬픔인지 알 수 없었어요

 

봄이 가는

여름이 가는

가을이 가는

겨울이 가는

슬픔을

갑자기 더 많이 느낀 건지도 모르겠어요

 

가는 게 슬프다면

많은 것이 깨어나는 봄이 오고

열매 맺는 여름이 오고

무엇이든 내려놓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가을이 오고

견뎌야 하는 겨울이 온다고 여기면

덜 슬프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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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는 운동신경과 상관없이 탈 수 있다. 만화에서는 운동 잘 못하는 사람이 자전거를 잘 타게도 그린다. 자전거는 페달을 잘 돌리면 앞으로 간다. 내가 자전거를 자주 타거나 많이 탄 적은 없지만. 이것도 오래 타면 엄청난 운동이 될 거다. 자전거는 잠깐만 타도 다리가 아프다.

 

 몇해 전에 우연히 자전거 경기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봤다. 제목이 <오버 드라이브>였던가. 운동을 잘 못하는 남자아이가 고등학교 자전거 경기부에 들어가고 경기에도 나갔다. 그건 본 지 오래돼서 어땠는지 잊어버렸는데, 그때 그거 보면서 자전거로 어떻게 산을 오르나 했던 건 기억한다. 거기에 나온 아이는 경기 자전거 타고 얼마 안 됐는데 잘 탔다.

 

 

 

왼쪽 소호쿠(맨 앞이 오노다 사카미치), 오른쪽 하코네 학원

 

 

 

 자전거 경기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겁쟁이 페달>이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 보았다. 언젠가 슬램덩크에 나온 아이 이름이 사쿠라기 하나미치(강백호)라고 했는데, 겁쟁이 페달에 나오는 아이 이름 비슷하다. 마지막뿐이지만. 오노다 사카미치. 사카미치는 오르막을 나타내는 일본말로 사카미치는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잘 갔다. 지금 생각하니 학교 이름도 비슷하다. 쇼호쿠(슬램덩크), 소호쿠(겁쟁이 페달)로.

 

 진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일본만화에서 운동하는 아이는 모두 전국대회에 나가 자기 학교가 이기기를 바란다. <겁쟁이 페달>에 나오는 소호쿠 고등학교 아이들도 자전거 경기에서 이기는 게 꿈이었다. 운동 경기에서 이기려면 잘 해야 하지만 운도 조금 따라야 한다. 아니 이건 무엇이나 그렇던가. 운을 끌어들이는 사람도 있겠지. 만화에 나오는 중심인물은 거의 그렇기는 하다. 뭐든 잘하는 아이도 있지만, 아주 잘하지 않아도 어쩐지 해 낼 것 같은 믿음이 가는 사람도 있다. 오노다 사카미치가 그런 사람이다.

 

 다른 아이들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고 경기 자전거를 탔겠지만, 사카미치는 자전거 경기부에 들어가고도 모두와 달리는 걸 즐겼다. 사카미치는 어렸을 때부터 보통 자전거로 아주 먼 곳까지 다녔다.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로 아키하바라에 자주 다녔다. 먼 곳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 건 차비가 들지 않아서였다. 사카미치는 얼떨결에 경기 자전거를 탔는데 잘 탔다. 앞서 간 다른 아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거겠지. 앞에 간 아이와 차이가 많이 나고 오르막길이었는데 사카미치는 자전거 속도를 냈다. 그리고 친구 둘을 보고 웃었다. 사카미치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웃고 웃으면 더 빨라졌다.

 

 세상에는 여러 운동이 있는데 자전거 경기도 괜찮아 보인다. 모두와 함께 하면서도 혼자 하는 것이기도 한 자전거 경기. 경기 자전거는 보통 자전거보다 가볍다. 그래서 산도 오를 수 있는 거겠지. 산을 오를 때는 페달을 힘껏 밟아야겠다. 그런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기는 하다.

 

 겁쟁이 페달은 자전거 경기가 대단하게 보이게 하는 것도 있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걸 사카미치가 해 내서 더 좋았다. 소호쿠 아이들은 사카미치를 믿었구나. 3학년과 함께 나간 전국대회는 끝났지만 겁쟁이 페달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2학년이 되고 전국대회에 나가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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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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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늘 시를 쓸까, 무언가 쓸거리가 떠오르면 쓸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겠다. 언제나 쓸 게 떠오르면 쓰는 사람도 있고 어느 날 떠오르면 쓰는 사람도 있겠지. 쓰지 않아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그건 생각나지 않아도 쓰는 거다. 작가는 그러려나. 시인도 작가와 다르지 않지만 아주 조금 다른 데가 있을까. 나도 소설가나 시인이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잘 본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소설가나 시인이어서 우리와 다르다 말하면 그 말에 반박하고 싶기도 하다(소설가나 시인을 시샘하는 건지도).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세상에는 많은 것을 스쳐지나는 사람이 있고 작은 것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 건 어린이가 잘한다고도 하는구나. 어린이는 거의 모두 시인이기도 하겠지.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어린이가 순수하고 낯선 눈길로 세상을 바라볼 거다. 세상을 많이 알고 일찍 어른이 되는 아이도 있구나. 난 그것을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도 시다 생각한다(언젠가도 이런 말을). 난 세상 비밀을 잘 보지 못한다. 어쩌다 한번 볼까. 가끔 본다고 생각하다니. 이런 마음은 안 될 텐데. 시를 많이 만나면 시를 조금 잘 쓸 수 있으려나 생각하면서 가끔만 만난다. 어쩐지 난 마음먹고 하면 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적이 한번도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내가 하는 건 마음대로 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건 아쉽게 여기는구나. 그 반대가 더 나을 텐데.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해도 지금까지 내가 책을 보거나 시를 봐서 유치해도 글을 쓰는 거겠지. 내가 영향받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노래다. 중, 고등학교 때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다. 시는 많이 적어두지 않았지만 노랫말은 노래 들으면서 받아적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다. 가끔 찾는 건 일본노래 노랫말이구나. 우연히 들은 노래에 마음에 드는 말이 있으면 노랫말을 찾아서 한국말로 옮겨보기도 한다. 그건 어쩌다 한번이다. 시와 노래 아주 먼 사이는 아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시인의 말>에서, 5쪽)

 

 

 

 시인이 한 말이 따스하구나. 세상에 있는 슬픔을 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라디오 방송에서 신철규 시인 시집 제목을 들었다. 시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오랫동안 그 방송에서 이 시집을 준다는 말을 했다. 처음 시집 제목 들었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야 만났다. 관심을 가졌기에 만난 것일지도. 이게 첫번째 시집일까. 슬픔을 많이 말하는 듯하다. 세상에는 한사람이 다 알 수 없는 슬픔이 있을 거다. 자신한테 슬픈 일이 일어나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슬프면 슬픔에 잠겨 있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픔에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어쩌면 그건 누구나 느낄지도 모를 일이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우리는 운동장 한구석에 모여 때를 기다린다

한 손에는 그을린 유리를 들고

 

손바닥만한 달이 운동장만한 해를 가린다

달의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달과 태양이 포개지면서

검은 우물이 만들어진다

태양에 은빛 갈기가 돋아난다

 

눈동자가

깊이

깊이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아

나는 주저앉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가운데서

 

-<개기일식>, 42쪽

 

 

 

 개기일식을 실제 본 적은 없다. 난 그걸 보면 아주 신기하게 여길 듯한데, 이 시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프기도 하다고 한다. 그런 느낌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웃는 가운데서 홀로 우는 사람도 있다. 난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좀 그러는구나. <개기일식>에서 저 사람(시인)도 그랬을까. 시를 보고 시인 이야기라 생각해도 될지. 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기도 하겠지. 꼭 그걸 구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인도 그러기를 바랄 거다.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슬픔의 자전>에서, 50쪽)

 

 

 

우리가 평생 동안 흘린 눈물을 모은다면

몸피보다 더 큰 물방울이 눈앞에 서 있을 거야.  (<무지개가 뜨는 동안>에서, 105쪽)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시집 제목이 나오는 시다. 저런 일 있으면 정말 슬플 것 같다. 지금은 가난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 게 슬프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게 별거 아니다는 거 알 거다. 내가 이런 말 들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면서 나도 하는구나. 어릴 때부터 세상 이치랄까, 깨달음이 있다면 살면서 덜 헤매고 덜 슬퍼할지도 모를 텐데. 그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길인가. 지구에 사는 많은 건 힘든 일이나 슬픔을 겪고 한층 자란다. 그리고 남의 슬픔을 보기도 하겠지.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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