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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꾸 말해서 또 말하면 지겨울 것 같지만, 난 어렸을 때는 책을 읽지 않았다. 어렸을 때가 언제냐 하면 고등학생 때까지다. 그 뒤부터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나도 한해에 삼백권 넘게 본 적 있기는 한데, 그건 겨우 한해 정도다. 그때 읽은 거 기억하느냐면 기억 못한다. 그냥 한권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었다. 잠시라도 읽은 책을 생각했다면 조금 기억했을지도 모를 텐데. 책을 읽고 쓴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린다. 좋아하는 건 여러 번 보는 사람도 있던데 난 여러 번 본 책도 별로 없다. 좋아하는 책 한권을 볼 때마다 새로운 걸 찾아내면 참 기쁠 텐데, 아직 그렇게 하고 싶은 책은 만나지 못했다. 맞다.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여러 번 깊이 보고 싶은 책을 만나지 못했으니 앞으로 조금 더 즐겁게 책을 만날 수 있겠다. 내가 찾는 책이 어떤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평생 책을 봐도 못 찾을까.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책도 많으니 내가 바라는 책을 만나는 건 쉽지 않겠다. 사람찾기는 내가 할 수 없겠지만 책찾기는 할 수 있겠다.
나쓰키 린타로는 어렸을 때 부모가 헤어지고 어머니가 일찍 죽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할아버지와 살았다. 린타로는 학교에 잘 가지 않고 할아버지가 하는 고서점에서 책을 자주 읽었다. 린타로가 고등학생 때 갑자기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니 린타로가 고등학교 몇학년인지 나오지 않았다. 1학년일까. 린타로는 잘 모르는 고모와 살게 되었다. 나쓰키 책방을 떠날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그곳에 얼룩고양이가 나타난다. 얼룩고양이는 사람 말을 하고 자신을 얼룩이라 한다. 얼룩이는 린타로한테 자신을 도와 갇힌 책을 풀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슬프고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던 린타로는 얼떨결에 얼룩이를 돕는다. 얼룩이는 린타로한테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을 하는데 얼룩이와 린타로 그리고 같은 반 친구 유즈키 사요가 함께 미궁에 가는 건 어린 왕자가 생각나게 한다.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고 지구로 오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첫번째는 아주 많은 책을 읽고 읽은 책은 다시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는 사람을 만난다. 책을 많이 읽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유리문에 자물쇠를 달아두는 건 좋지 않겠지. 그 사람은 세상에 있는 많은 책을 보려면 한번만 봐야 한다 생각했다. 두번째 세번째도 별로 다르지 않은 듯하다. 두번째 사람은 두껍고 어려운 책은 줄거리와 요약만 보면 된다 여겼다. 세번째 출판사 사장은 좋은 책보다 세상이 바라는 책을 만들고 팔았다. 한마디로 돈만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아주 빨리 돌아간다. 책이 아니더라도 볼 건 많다. 책은 가만히 앉아서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는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린타로와 얼룩이 그리고 사요가 만난 사람은 지금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린타로는 세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든 책을 남기려고 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을 잊었다. 그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겠지.
네번째에는 책을 만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책 마음이 일그러졌다. 그건 그걸 읽은 사람 때문일까. 오래전에는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주었을 거다. 지금이라고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앞에 나온 세사람 같은 사람이 많겠지. 책은 거기에 상처받았을 거다. 사람은 왜 책을 읽게 됐을까. 지식이나 정보 때문에 봤겠다. 소설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린타로가 말한 건 이거다. 린타로는 고전을 많이 읽었다. 나쓰키 책방이 고서점이어서 그런 책이 많았다. 린타로 할아버지는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책방을 했다. 책을 읽기만 하면 안 되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겨야겠지.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 마음이 일그러진 책은 다시 괜찮아질까.
사람이 좋아하면 마음을 갖는 책도 있을까. 그런 말이 나와서. 린타로는 책을 봤지만 다른 데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게 뭐 어떤가 싶기도 하지만. 린타로는 얼룩이를 만나고 돕고는 세상으로 조금 눈을 돌렸다. 적극성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지 않겠지만, 학교에 다니고 반장인 유즈키 사요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린타로는 이제 자신이 혼자다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나 선배뿐 아니라 책속에서 만난 것도 친구라 여긴다. 린타로가 얼룩이를 도왔지만, 린타로는 얼룩이가 자신을 도왔다고 말한다. 둘 다 맞다.
책이든 사람이든 펼쳐야 알 수 있다.
희선
☆―
“시대를 뛰어넘은 오래된 책에는 큰 힘이 담겨 있단다. 힘이 있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읽으면, 넌 마음 든든한 친구를 많이 얻게 될 거야.” (26쪽)
“책에는 마음이 있지. 소중히 대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을 가진 책은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반드시 달려가서 힘이 되는 법이야.” (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