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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2월
평점 :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랑 형태가 있다. 부모와 자식, 남과 여,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형태뿐 아니라 종류도 많다. 한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그런 건 사랑이 아닌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그렇겠지. 누군가를 생각하면 잘하고 싶을 거다. 그런 마음이 잘못 흐르면 집착이 될지도. 이런 게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있는 일일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한부분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려고도 한다. 부모와 자식도 남인데. 부모가 자식을 가깝게 여기는 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 부모한테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면 자라서도 그걸 바라기도 한다. 난 어떨까. 잘 모르겠다.
먼저 말할까 한다. 그건 여기 나오는 사람이 여자라는 거다. 둘 다 작가다. 둘 다 서로가 쓴 책을 읽고 그것을 좋아했다. 그 두 사람이 만난다. 최소운이 잡지를 만드는데 서영한테 글을 써줬으면 한다는 부탁과 함께 한번 만나자고 한다. 한서영은 《스틸 라이프》라는 시리즈를 썼다. 그 소설은 서영이 두 해 동안 만나고 헤어진 사람 이야기기도 했다. 서영은 꿈속에서 늑대가 되고 보름달이 뜬 날 사귀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현실에서는 보름이 지나면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다. 서영은 그렇게 누군가와 헤어진 다음날부터 미친듯이 글을 쓴다. 세상에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영처럼 꿈속에서 늑대가 되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떠오르면 미친듯이 하는 거 말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겠지. 그걸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한단다. 그런 거 조금 부러운지도. 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짧은 시간 동안 글을 많이 쓰지 못한다. 꼭 써야 하는 것이 아니어설까. 이건 아니겠구나.
서영이 쓴 소설을 보고 좋아하는 소운은 서영과 조금 다르다. 이야기가 꺼내달라고 하면 쓴다. 이런 작가도 실제 있겠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건 다 다르겠지. 서영과 소운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한테 끌렸다. 서영은 자신이 꿈속에서 늑대가 되고 소운을 잡아먹고 헤어질까봐 소운을 피한다. 그러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 소운이 서영한테 다가간다. 서영은 소운한테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말한다. 소운은 서영한테 보름달이 뜬 날 잠을 안 자면 어떻겠느냐 하고 그날 밤을 함께 새우기로 한다. 소운이 먼저 잠들고 서영도 잠들고 만다. 그래도 서영은 다른 날과 다른 꿈을 꾼다. 두 사람이 사귄 것도 아닌데 바로 안 좋은 꿈을 꿀까. 그날 뒤부터 두 사람은 가깝게 지낸다. 소운은 일이 많아지지만 서영은 글을 쓰지 못한다.
두 사람이 여자일 뿐이고 보통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더 가깝게 되고 소운은 글을 잘 쓰고 서영은 쓰지 못해서 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소운은 서영이 어린시절 받은 상처를 스스로 낫게 하기를 바랐다. 그건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스스로 해야 한다. 서영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마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운을 만나고 그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가 꼭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서영은 그걸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걸 하면 자신을 좋아하고 다른 것도 쓸 수 있겠지. 누군가를 만나고 보름달이 뜬 밤 늑대가 되는 꿈을 꾸지 않아도 말이다. 그것도 괜찮은 것일지 몰라도 늘 그러면 글을 오래 쓰지 못할 거다. 어떤 자극을 받고 글 쓰는 게 안 좋은 건 아니겠지. 그런 게 있어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어쨌든 쓰는 사람이 있을 거다. 시간이 흐르면 어쨌든 쓰는 걸로 바뀌면 좋을까. 그렇다 해도 글이 쓰고 싶어서 쓰는 건 다르지 않겠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두 사람이 함께 자라기도 하지만 한사람이 희생하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한테 자극이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이라면 더 좋겠다. 이건 친구도 그럴지도. 소운과 서영은 둘 다 작가여서 그럴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이 다른 걸 바라고 다른 걸 한다 해도 그럴 수 있겠다.
희선
☆―
“나를 좋아하고, 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글을 쓰고 싶다. 사랑해야 쓸 수 있는데, 사랑하는 동안에는 쓸 수 없다.”
소운은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지지 않고 나를 쓸 수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 서영은 한참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왜요? 소운이 물었다.
“작가는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써요. 세상이 끝나거나 멸망한 뒤에, 그 바깥에서 쓰는 게 아니라고요.”
나는 왜 그 일을 할 수 없을까, 서영은 생각했다.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