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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ㅣ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시와 바람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도 불지 않는 작은 방에서 ‘바람이 불었다’ 말하고 싶다니. 바람이 불면 어쩐지 좋을 것 같아서. 바람이라 해도 칼처럼 아픈 바람은 싫다. 철마다 부는 바람은 다르다. 언제 부는 바람이든 좋아하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마음이 답답할 때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바람 쐬러 간다 말한다. 늘 집 안에만 있는 것보다는 가끔 바깥 바람을 만나면 기분 좋겠지. 나도 가끔 그렇다. 어쩌면 바람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일지도 모를 텐데, 난 바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람아, 미안해.’ 바람을 만나러 나가면 바람뿐 아니라 다른 것도 만난다. 그건 시?
시는 세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시로는 모든 걸 나타낼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건 쉬운 게 아니다. 그걸 하려고 해야 하니 말이다. 보이는 것을 지나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 애써야 한다. 무언가를 나타내기에 좋은 말도 찾아야겠구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글로 쓰면 좋을까, 아니 글로 쓸 수 있다면 좋을까. 보는 것보다 바로 마음에 오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온통 글로 나타내 그걸 볼 수 없는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모두 글로 쓰기 어렵겠지. 글로 다 쓰기에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넘쳐날지도 모르겠다. 시에 아름다움만 담는 건 아니구나. 보이는 것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쓴다면 좋을 텐데. 편지처럼.
이 시집 제목은 오병량 시 <편지의 공원>에 나오는 말이다. 공원에서 편지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공원에 누워 공원을 바라봤다고 편지에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그저 내 느낌일 뿐이다. 시는 누군가한테 보내는 편지다. 받은 사람은 한사람이 아니다. 누구한테나 보내는 것이어서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이런 거 좋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으로 시나 여러 글을 본다면 그것을 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훨씬 잘 알아들을지도. 친구가 자신한테 쓴 편지만큼은 아닐지라도. 한사람한테 쓴 게 아니어서 누구나 자기 처지에서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괜찮다. 자기 처지가 아닌 다른 사람 처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괴롭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 때문에 괴롭다. 그래서 사랑 자리에 다른 말을 집어넣어도 괴롭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괴롭다. 우리는 사탕 때문에도 괴롭다. 한낱 사탕 때문에도 괴로울 때가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괴롭다. 사탕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도 우리는 말 때문에 다시 괴롭다. 우리는 말하면서 괴롭다. 말한 뒤에도 괴롭고 말하지 못해서도 괴롭다. 말하기 전부터 괴롭다. 말하려고 괴롭고 괴로우려고 다시 말한다. 우리는 말 때문에 괴롭다. 괴롭기 때문에 말한다. 괴롭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고 우리에게 말한다. 누구에게 더 말할까? 괴로운 자여, 그대는 그대 때문에 괴롭다. 그대 말고 괴로운 사람이 있어도 괴롭다. 그대 말고 괴로운 사람 하나 없더라도 그대는 괴롭다. 괴롭다 못해 외로운 자여, 그대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 때문에 외롭다. 나는 나 때문에 괴롭고 괴롭다 못해 다시 말한다. 나는 나 때문에 말한다. 나는 나 때문에 말하는 나를 말한다. 나는 나 때문에 내가 아니다. 나는 나 때문에 늘 떠나왔다. 나는 나 때문에 그곳이 괴롭다. 내가 있었던 장소. 네가 머물렀던 장소. 사람이든 사랑이든 할 것 없이 사탕처럼 녹아내리던 장소. 그 장소가 괴롭다. 그 장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그 장소를 버리고 그 장소에서 운다. 청소하듯이 운다. 말끔하게 울고 말끔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운다. 그 장소에서 그 장소로 옮겨왔던 수많은 말을 나 때문에 버리고 나 때문에 주워 담고 나 때문에 어디 있는지 모르는 그 장소를 나 때문에 다시 옮겨간다. 거기가 어딜까? 나는 모른다. 너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그 장소를 괴롭다고만 말한다. 괴롭지 않으면 장소가 아니니까. 장소라서 괴롭고 장소가 아니라서 더 괴로운 곳에 내가 있다. 누가 더 있을까? 괴로운 자가 있다.
-<괴로운 자>, 김언 (44~45쪽)
괴롭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이 가장 많이 나와서구나. 괴롭고 외롭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고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겠지. 시는 괴롭다, 외롭다, 아프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시여서 그럴까. 억지로 웃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겠지. 담아두고 쌓아두면 언젠가 한번에 터지고 무너질 거다. 그렇게 되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시는 안 좋은 걸 조금씩 빼내는 일을 하는지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