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해 전 값이 싸고 가벼운 사진기가 있었으면 해서 인터넷에서 열심히(살까 말까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찾아서 샀는데, 사진을 찍으니 어두웠다. 그건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 날 집 안에서 노란색을 찍었더니 연두색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찍은 노란 꽃은 그대로였다. 노란색만 연두색으로 찍히는지 알았는데, 두해가 지나서야 보라가 파랑으로 나온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보라색 찍은 적 없었던가. 아니 찍은 적 있다. 보라와 하얀색이 섞인 팬지였던 것 같은데(어쩌면 조금 큰 제비꽃일지도, 밑에 사진과는 다른 꽃이다). 보라색이라 해도 자주색에 가까운 게 있고 파랑에 가까운 보라색이 있다. 이번 악스트에는 파랑이 더 들어갔을까. 내 사진기가 집 안에서는 노랑과 보라를 그대로 못 보다니. 책은 바깥에서도 파랑으로 나왔다. 자연에 있는 색은 그대로 봐도 사람이 만든 건 잘 못 보는가보다. 이 책은 진한 보라다.
갑자기 이 책 사고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책이 나한테 온 날 비가 오고 책이 담긴 상자가 젖어 있었다. 그게 젖었다고 책까지 젖었을까 했는데, 상자에서 책을 꺼내보니 왼쪽 위가 빗물에 젖어 있었다. 이 책 한권만 샀다면 상자가 아닌 비닐에 넣어서 보내줬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책을 받고 책에 흠집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다(이번 악스트는 겉에 흠집도 좀 있구나).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산 책일 때는 더. 그래도 그건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이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흠집을 자꾸 생각하면 다른 걸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말 하고 책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하면 좋겠지만, 이런 건 악스트에 나오지 않았다. 이번 열쇠말은 ‘라이벌’이다. 어쩐지 나와는 먼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아주 상관없지 않을지도. 어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경쟁 같은 걸 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도 아주 안 하는 건 아닐지도. 라이벌 하면 경쟁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경쟁이 나쁜 것만은 아닐 거다. 경쟁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아지게 한다.


소설은 삶의 라이벌일 수도 있구나. 라이벌이라는 말을 보고 내가 처음 떠올린 건 만화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이다. 내가 본 건 만화가 아닌 만화영화지만. <나루토>도 조금 비슷한 느낌이다. 자신의 맞수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건 실력이 비슷한 사람일 때가 많지 않을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닌가. 넘고 싶은 사람을 맞수라 여기고 수행(훈련)하는 사람도 있겠구나. <고스트 바둑왕>이 그렇지 않나 싶다. 바둑은 하나도 몰랐던 신도 히카루가 오래전 바둑기사로 억울하게 죽고 에도시대에는 혼인보 슈사쿠로 바둑을 둔 유령 후지와라노 사이를 만나고 바둑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이 때문에 히카루는 평생 맞수 토야 아키라를 만난다(그 반대일 수도). 히카루가 아키라를 만났을 때 히카루는 아키라 맞수는 아니었다. 맞수가 되어갔다는 게 맞다. 그런 일도 일어나겠지. 아키라는 히카루 안에 있던 사이를 쫓고 다음에는 히카루가 아키라를 쫓는다. 나루토도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우치하 사스케를 맞수라 말하고 실제 그렇게 된다. 나루토와 사스케는 닌자다. 겨우 이 설명밖에 못하다니.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좋은 걸까. 뭐든 잘하고 맞수가 없는 사람은 쓸쓸하다고도 한다. 아키라도 사이를 만난 히카루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기 또래에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더 빨리 프로 바둑기사가 됐을 거다. 하지만 아키라는 히카루를 만나고 달라졌다. 사이가 아닌 히카루가 둔 바둑에는 무척 실망했지만. 그런 모습을 본 히카루는 자신이 곧 아키라를 따라잡겠다고 한다.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대단하다. 난 그런 말 못한다. 그런 게 없기도 하구나. 경쟁하는 것을 보면 늘 저런 걸 해야 할까 한 적도 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하려면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 난 그런 게 싫다. 살면서 꼭 다른 사람과 싸워야 하는 건 아니기도 하다. 자신과도 늘 싸워야 한다. 이건 맞수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어떻든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것보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게 좋을 것 같다. 한사람 한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살리는 것도 괜찮겠다.
이번 악스트에서 만난 사람은 배수아다. 배수아는 악스트를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기도 한데. 그래선지 처음에는 자신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먼저 물어봤다. 배수아가 한국과 독일에서 살았다니 몰랐다. 아니 언젠가 독일에 갔다는 말 들었던가. 난 그 뒤 아주 한국으로 돌아왔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자신의 소설을 읽는 공연을 했다는 건 색다르게 보였다. 그런 걸 하는 사람이 늘어도 좋을 것 같지만, 소설을 소리내 읽기라도 하면 괜찮겠다. 배수아가 자신이 스스로 소설을 읽은 건, 자신이 그걸 가장 잘 알아서였다 했다. 배수아 소설은 예전에 조금 봤는데 어려웠다. 난 그래도 배수아 소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여러 이야기를 봐도 쓰는 건 별로 없구나. 윤고은은 잘못된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카페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못 찾아간 일.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어떤 사람은 집을 잘못 찾아가지 않았던가. 그런 소설도 본 적 있다. 윤고은이 쓴 소설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도 생각난다. 어떤 일이 잘못되는 건 싫지만 그런 이야기는 조금 괜찮을 듯하다. 내 일이 아니고 그저 보기만 해설지도.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도 있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