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어떤 소설이든 사람을 말할 텐데 마땅한 제목은 떠오르지 않고, 책 제목과 해설 제목에 ‘사람’이 있어서 나도 ‘사람’을 넣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직도 단편소설 보는 건 쉽지 않다. 하나만 깊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다 어중간하게 보는구나. 맨 앞에 실린 소설 <호수─다른 사람>은 여러 번 보았다. 여러 번 봤다고 새로 알게 된 게 있느냐 하면 그런 건 없다. 이번에도 이한이 여자친구 민영을 때린 것 같고 진영은 그런 이한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진영이 생각하는 걸로 느꼈다. 누군가한테 맞는 여자와 진영(민영)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영은 확실하지 않지만 진영은 사귄 남자 친구한테 맞았다. 그걸 보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설에서는 이한이 진영이나 여자를 때린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말했다.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때리는 사람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예전에 봤을 때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도 모르겠다. 남자아이가 진영과 우는 민영한테, “야. 너도 세컨드지? (29, 41쪽)” 하는 말이다.
장난이다, 실수였다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은 그렇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싫다면 그건 폭력 아닐까.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도 장난이다 하는 사람 있다. <호수─다른 사람>에서 민영은 이한이 실수로 자기 팔을 세게 잡았다는 듯 말했다. <괜찮은 사람>에서 남자는 갑자기 불이 나가 실수로 여자를 밀었다고 말한다. 이것도 첫번째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돌아오는 봄에 결혼하기로 한 두 사람은 남자가 샀다는 집을 보러 가는 길이다. 여자는 남자 때문에 다치고 몸이 편하지 않은데도 함께 차를 탔다. 다른 사람은 이한과 이 남자를 괜찮은 사람이다 말한다. 여자와 민영은 어떻게 생각할까. 남이 괜찮다 한다고 자신도 괜찮다 여길까. 작가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고 쓴 건지 모르겠지만, 두 소설을 보다보면 이한과 남자가 괜찮은 사람 같지 않다. 어쩌면 그건 그 사람한테 있는 한부분일지도. 그것만 보고 괜찮지 않은 사람이다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 걸까.
사람이 들어가는 소설은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과 <눈사람>이 있다. 두 소설은 조금 다르지만.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은 아이가 들어가기 힘든 니꼴라 유치원에 다니고 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다. 그렇기는 한데 소문 때문에 의심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가르쳤다. 어쩐지 ‘나’는 자기 아들이 귀한 사람 대접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니꼴라 유치원을 다닌 아들을 낳고 기른 ‘나’ 자신이 귀한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아이로 자기 꿈을 이루려는 사람도 많겠지. <눈사람>은 지금 어른이 된 기채가 형과 살던 열한살 때 일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오는 벌레는 정말 벌레일까. 열한살 아이가 본 환상일까. 은영이라는 여자아이는 기채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형은 어릴 때 엄마 때문에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자랐다. 엄마가 떠나고 둘만 남았을 때는 즐겁게 살고 형은 꿈도 있었다. 하지만 형은 형이 일하던 편의점 사장 때문에 빚을 지고 사람이 바뀌었다. 형도 동생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벌레가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벌레들>이다. 예연과 희진 그리고 수지 세 사람은 균형을 맞추고 살았는데 균형이 깨진다. 셋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다.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 <당신을 닮은 노래>에서 딸은 스물아홉 암환자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은 딸이 자신을 닮았다는 건데, 이 말이 저주처럼 되기도 했다. 딸은 난소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엄마 때문은 아닐 거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 그런 유전자가 있다 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방>은 지금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재인과 수연은 무언가 터진(핵폭탄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시에 가서 돈을 벌기로 한다. 다른 곳에서는 함께 살수 없었지만 도시에서는 같은 방에서 살 수 있었다. 도시에서 돈을 벌어 좋은 방을 얻어 살기를 꿈꾼다. 수연 몸이 이상해지고 돌처럼 굳고, 재인은 그런 수연 옆에 머문다. 바깥은 전염병이 퍼지고, 아무도 도시에서 나갈 수 없었다.
여기 실린 소설에서는 희망을 보기 어렵다. 읽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소설도 있지만 어둠에 빠뜨리는 소설도 있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한 게 있다.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건 신분이 다른 인도 사람이 나오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마지막 것은 좋아한 사람과 멀어진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외국인 노동자도 잠깐 생각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남자 여자(굴 말리크와 타니 칸)가 나왔지만, 사람은 다 누군가한테 인정받고 싶어한다. 자신을 잃으면 좋아하는 사람도 친구도 멀어지겠지.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건 괜찮지만 그것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된다. 아쉽게도 사람은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그걸 깨닫는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