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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내가 국어사전을 처음 산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인 것 같다. 다음이 없으니 처음 샀다고 말할 수 없겠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국어사전을 산 걸까. 그런 게 생각나지 않는다니 슬프다. 영어사전은 영어를 배워서 산 것 같은데. 지금 영어사전은 없지만 국어사전은 있다. 있기만 하다. 사전 찾아보는 일은 아주 가끔이다. 아주 펴 보지 않는 것보다는 좀 나을까. 사전에 실리는 말은 바뀌기도 하는데, 오래 전 것을 그냥 쓴다니. 가끔 국어사전에서 사람 이름으로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런 건 나오지 않는다. 사전이 크지 않아서고, 정말 알고 싶다면 그런 것만 실린 사전을 보면 있겠지. 사전을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까. 있을 거다. 국어사전 같은 말뿐 아니라 이런저런 사전을 재미있게 여길 거다. 말이든 다른 것이든 정확하고 뚜렷하게 알아두면 딱 알맞은 말을 언제 어디서 써야 할지 잘 알겠다. 어떤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난 바로 말할 수 있을까. 못한다. 말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편지쓰고 일기 썼는데, 그런 거 쓰는 데 모자람을 느끼지 못했나 보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쓰지 않았나 싶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구나. 실제 말은 하지 않을지라도 이런저런 말을 알려고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글쓰는 사람에는 자신만의 사전 같은 게 있기도 하다.
맨 앞에 나오는 아라키 고헤이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 삼촌이 준 《이와나미 국어사전》을 보고 사전을 좋아하게 되고 언젠가 사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아라키는 자신이 학자가 되는 건 힘들다 여기고 출판사 겐부쇼보에 들어갔다. 아라키는 서른일곱해 동안 사전을 만들었다. 감수를 맡은 마쓰모토 선생과는 서른해 동안 함께 일했다. 사전 만드는 일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이 있어야겠지. 예전에는 이런 생각 안 해 본 것 같다. 아니 책 한권 만드는 데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책 한권과 사전은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까 싶다. 아라키는 곧 정년을 맞는다. 마쓰모토 선생과 새로운 사전 《대도해》를 만들려 했는데. 다행하게도 아라키 뒤를 이을 사람을 찾았다. 제1영업부에서 일하는 마지메 미쓰야다. 이름이 마지메여서 아라키가 처음에는 잘못 생각했지만. 일본말로 마지메(真面目)는 ‘성실하다’는 뜻이다. 이름 마지메와 성실하다 마지메는 한자가 다르다. 발음은 같고 뜻이 다른 말은 한국말에도 많다. 그건 한자말이어서 그렇구나. 이 책을 보고 국어사전을 펴 보니 한자가 참 많았다.
지금도 사전 만드는 사람 있을까. 없지는 않겠구나. 이 일은 한두해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빨리빨리 해서 결과를 내야 하는 일이 많지만, 시간을 오래 들여서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런 것이 사라지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 바로 돈이 되지 않는다고 거기에 쓰는 돈을 줄이거나 없애기도 하겠지. 겐부쇼보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메가 사전 편집부로 가고 《대도해》를 만들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그 소문을 먼저 들은 사람은 니시오카였다. 니시오카는 마지메와는 아주 다르게 사람과 잘 지내고 사전 만드는 일을 아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니시오카도 사전 만들기를 좋게 여겼다. 《대도해》 만드는 걸 이어서 하는 조건에는 니시오카가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도 있었다. 광고하는 곳은 니시오카한테 딱 맞을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니시오카는 자신이 쫓겨났다 여겼다. 사전 편집부를 떠나는 니시오카는 조금 섭섭하게 여겼지만 나중에 도움을 준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길게 나오지 않는다. 마지메가 짧게 말하는 걸 보고 알았다. 사람은 자신한테 딱 맞는 일을 하면 잘하겠지. 맞는지 안 맞는지 몰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어떨까. 하고 싶은 게 자신한테 잘 맞으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다.
시간은 열세해가 흐르고 사전 편집부에 새로운 사람 기시베 미도리가 왔다. 그동안 사전 편집부는 《대도해》와 다른 일을 함께 했다. 마지메는 기시베가 오고 《대도해》 만들기에 힘을 쓴다. 두해가 더 지난 뒤에야 드디어 《대도해》를 만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종이 이야기가 짧았지만 인상 깊었다. 그것도 사전 만드는 것만큼 온 마음을 기울였다. 한사람 마쓰모토 선생은 《대도해》가 나오는 걸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 마쓰모토 선생은 《대도해》가 나오리라고 믿었겠지. 미우라 시온은 사전을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라 했다. 바다를 건너는 배는 바다에 가라앉지 않게 잘 만들겠지. 사전도 그럴 듯하다. 사전을 만드는 일과 삶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끝낸다 해도 끝나지 않는 것이, 곧 앞에 사람이 다하지 못하면 뒤에 사람이 이어서 하는 것 말이다. 무언가 하나에 자기 삶을 걸다니.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다. 그런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세상에는 빨리 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도 있다. 하나만 생각할 게 아니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좋겠다.
*더하는 말


이 소설은 지난해(2016) 일본에서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만들었다(영상은 영화가 먼저였다. 한국에서는 <행복한 사전>으로 나왔다). 소설보다 만화영화를 먼저 봤지만, 그때도 소설이 있다는 거 알았다. 사전에 넣을 말을 모으다 낱말 하나가 빠진 것을 알고 지금까지 한 걸 다 검토하는데 그 부분 엄청났다. 그걸 하는 데 여러 사람과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나가 빠졌을 때 다른 것까지 다시 돌아보다니, 사전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내가 잘못 쓴 걸 알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거 찾아서 고칠 때보다 그냥 둘 때가 더 많다.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니 고치면 좋을 텐데. 책이 아니어서 하는 마음이 있어서겠지. 우연히 보면 고치기도 한다. 그건 오타일 때. 글을 쓸 때 틀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귀찮아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거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만화영화로 보는 <배를 엮다>도 괜찮다. 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해치지 않고 만화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준다. 소설을 먼저 봤다면 다르게 생각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좋은 건 어떤 걸로 보든 좋다.
희선